책을 읽다보면 | 12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4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 10점
마르퀴 드 콩도르세 지음, 장세룡 옮김/책세상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804_39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4

인간은 무한해질 수 있는 완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가능성을 발휘하는데 있어서 전제조건이나 구속조건은 없으며, 노력하고 공부하면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다. 이것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철학자들은 역사를 보자. '과거에는 형편없었는데 지금은 훌륭하잖아' 이런 식의 증거를 가져다 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가져온다. 역사철학자들이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그들의 말을 절대로 믿으면 안된다. 미래학자들의 말과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얘기를 하는 사람들의 말은 믿으면 안된다. 


콩도르세는 역사를 10개의 시대로 나누었다. 정태적인 부족사회에서 시작해서 농업이 있고, 문자의 발견, 그런 다음 서구의 사람들이 꼭 집어넣는 것이 희랍사사람이 재능이 있었다는 것. 희랍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심성구조가 적대적이고 대결적인 것을 좋아한다. 아곤이라고 하는 논쟁. 그런 다음에 희랍문명이 쇠퇴하면서 콩도르세를 비롯한 계몽시대의 사상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 중세는 퇴보의 시대라는 것. 지금의 밝음을 강고하기 위해서 중세의 퇴보를 굉장히 강조한다. 움베르트 에코가 이 점을 굉장히 불만스럽게 여겨서 중세라는 4권의 책을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세의 퇴보 대신에 지금 자신들이 살고있는 시대의 바로 전조처럼 나타난 것이 르네상스. 한국에서도 르네스상스라고 하면 왠지 좋은 걸로 생각되는데 계몽주의의 편견이다. 실제로 르네상스를 보면 르네상스는 중세에 속하기도 하고 난삽하고 어지럽다.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를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르네상스에 대한 생각을 다 깨뜨려버렸다. 그 다음의 시대는 무엇인가. 인쇄술을 발명해서 과학이 교회와 국가의 족쇄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인쇄술이 필요했던 시대, 바로 콩도르세가 말하는 지식의 중요성이다. 이게 바로 8번째 시대이다. 그 다음 9번째 시대가 콩도르세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데카르트부터 프랑스대혁명에 이르는 시대로서 진정한 폭발적 진보의 정점이라고 평가하는 시대. 


그렇다면 10번째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이성이 촘촘하게 지배하고 합리적인 예언에 기초한 인류의 무한한 진보와 완전해질 가능성에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는 시대. 콩도르세는 자연과학을 기초로 삼아서 그 위에서 여타의 학문의 도덕이 발전한다. 자연과학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정확함을 얻어낼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을 도덕과학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과학과 도덕과학을 별개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고 곧바로 도덕과학에 적용할 수 있을 때 인간의 삶은 진보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지상 낙원이 형성되면 인간 본성의 존엄성과 권리들이 완전히 실현될 것이고, 콩도르세 같은 사람들은 악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탐욕이나 두려움, 시샘도 없어질 것이고, 이성이 스스로 창조해낸 낙원에서 같은 인간 동료들과 더불어서 진정으로 존재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욱 순수한 향유로 아름답게 한다. 인간이 이성에 의해서 깨움침을 얻고 지식을 제대로 쌓아간다면 인간이 무엇때문에 시샘하고 탐욕스러워서 자기자신이나 이웃을 갈아먹고 이런 짓을 저지르겠는가. 그런 힘에 의해서 인간의 불평등이나 국가간의 불평등, 전쟁 이런 것들이 없어질거라 본 것이다. 순진하다고 생각이 든다. 악의 위력을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콩도르세 혼자만이 아니라 디드로나 당랑베르의 책을 읽어보면 그 당시 계몽철학자들, 경제학자의 글을 읽어보면 참으로 인간에 대해서 낙관적일 수 있나, 순진할 수 있나 생각이 된다.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를 읽지 않아도 진보를 믿는데, 계몽주의 이성을 믿는 사람으로서 과연 인간에게서 가장 심각한 장애물 중 하나인 악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한번 쯤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계몽의 이성이 실패함으로써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전쟁밖에 없는데 전쟁의 역사를 읽기보다는 《평화의 발명》을 읽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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