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3 마이클 하워드의 평화의 발명 1


평화의 발명 - 10점
마이클 하워드 지음, 안두환 옮김/전통과현대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811_40 마이클 하워드의 평화의 발명 1


인간의 이성을 일깨우고, 그에 따라서 사회가 개명될 것이고, 또 사회가 개명되면 계몽되지 못한 사람들도 계몽될 것이고, 미래가 평화롭고 누구다 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서로 돕고 그러면 사회가 평화롭고 행복할거라 예상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오늘날까지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서로를 죽여왔다.


우리가 읽었떤 것이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이다. 인간의 정신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이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풀어갈 것이고, 모자란 점이 있으면 보완해 나갈 것이다. 책 제목 자체가 이미 판타지하다. 토크빌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평등한 조건의 상태가 되었으니까 이 상태에서 민주정만 잘되면 인류는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계몽주의가 말해왔으나 지금 왜 그런지 답을 못하는 것이다. 토크빌이 그 책을 쓸 당시만 해도 미합중국이 잘 발전할거라 생각했는데 얼마 안있어서 내전에 시달리게 되었다. 사실 남북전쟁에서 죽는 사람의 숫자가 1차·2차 세계대전에서에서 죽은 미국인의 숫자보다 많으니 처절하고 처참하게 싸웠다. 


18세기 이후에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산업문명이 폭발적으로 발전해서 살육의 규모라는 것이 엄청나다. 근대로 들어와서 전쟁이라는 것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별이 없다. 당장 나폴레옹의 전쟁 때만 해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체감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적어도 1900년대 들어서는 전쟁이라는 것이 총력전이 된 것은 틀림없다. 오늘날도 전쟁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국제질서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머나먼 이상으로 보이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근거한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던 계몽주의 이상으로부터 너무나 멀리온 것 같아서 괴롭긴 하다.


전쟁에 관한 책들은 굉장히 많은데 오늘 읽어보려고 하는 마이클 하워드의 《평화의 발명》이다. 제1차세계대전에 관해서는 아주 탁월한 저작을 가진 사람이고, 《평화의 발명》는 사실 《유럽사 속의 전쟁》의 요약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왜 인류에게는 전쟁이 일어나는가. 각각의 개인 또는 소규모 집단에서는 협력을 하는데 집단의 범위가 어느 범위를 넘어가 버리면 더 이상 협력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있다가 없으면 평화가 되는 거라 예전에는 생각했지만 이제는 평화라는 것은 이제 설계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 마이클 하워드의 《평화의 발명》을 보면 1800년 이후로 지난 200년 동안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 와중에 잠깐 잠깐 평화가 있었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제질서가 필요하다는 것. 마이클 하워드는 전쟁사에 관해서는 석학이다. 최근에 마이클 하워드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아자 가트라는 사람이 쓴 책이 있는데 《문명과 전쟁》이라는 책이다. 사실 마이클 하워드의 《유럽사 속의 전쟁》, 《제1차세계대전》, 《평화의 발명》와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을 읽으면 1800년 이후의 전쟁사에 관해서 탁월한 저작들이다.


지난 70년간의 한국사회를 생각할 때 전쟁 친화적으로 생각해온 것이다. 전쟁을 중심에 놓고 생각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처럼 전쟁을 늘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가지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조지레이코프의 말처럼 전쟁을 생각하지 말고 평화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프레임을 바꾸어서 평화라는 말을 앞으로 내야 할 때가 되었다. 《평화의 발명》라는 제목 자체가 '전쟁의 회피'가 아니라 평화의 발명이라는 제목을 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평화 친화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반전운동이라는 말보다 평화구축운동이라는 말이 훨씬 더 포지티브하고 적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가 "전쟁과 국제 질서에 대한 성찰"인데 그 성찰 위에서 정반대의 패러다임인 "평화의 발명"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헨리 메인의 말로 시작하는데 "전쟁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평화는 근대의 발명품이다." 그전에는 전쟁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다. 전쟁이 디폴트이고, 평화라는 말 자체가 전쟁을 안 할 때이다. 평화라는 말이 어떤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서는 사람들이 워낙 대규모로 죽어가니까 이것을 적극적으로 막아내려는 시도, 이것이 처음에는 반전이었을테고 이것을 좀 더 강력하게 얘기하다 보면 평화라는 말로 나아갈 수 있었겠다. 마이클 하워드는 1789년 프랑스혁명부터 근대의 출발점으로 보는데 우선 그전에 중세 800년부터 1789년 시기를 한 번 다룬다. 책은 얇은데 내용이 굉장히 압축적이어서 단번에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크게 1789년 프랑스 혁명. 1918년 제1차세계대전 종전, 1989년 냉정 종식, 그리고 현대사회로 시대구분을 하며, 대체로 보면 제1차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의 국제질서를 본다고 할 수 있다. 1918년 제1차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사실상 100년 정도가 계속해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라고 할 수 있다. 평화라는 것이 콩도르세와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구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구상들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무기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1918년 이전 시기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위력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니까 섣부른 평화주의가 등장했던 것 같다. 1918년부터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는 20년동안, 다시 E.H 카의 《20년의 위기》에서 말하는 시기 동안, 오히려 현실적인 상황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이 환상적인 평화주의에 있었다. 그런데 1918년 이후 미합중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관철되면서 오히려 미합중국는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관이 없다. 국제관계론에 관한 책들을 보면 이상주의적 국제관계론, 현실주의적 국제관계론을 얘기한다. 현실주의적 국제관계론의 출발점을 투키디데스, 마키아벨리를 이야기하고, 현대사회에서는 E.H 카라든가 한스 모겐소와 같은 사람들을 얘기하는데 사실 그런 얘기들을 읽어보면 조금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허황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1918년 이후 미국에서 지금까지 100년 동안 세계질서를 끌어오는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일단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평화 친화적인 생각이 없다. 평화를 지키는 국제경찰의 노릇을 하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더 항상 큰 폭력으로 작은 폭력을 눌러버리면서 왔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주의적 국제관계론이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간단히 말해서 1789년 프랑스혁명부터 1918년 제1차세계대전이 끝날때까지 유럽에서 이것저것 해봤다. 자유주의 국제관계론은 상업이 발전하면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제레미 벤담이나, 존 스튜어트 밀, 아담 스미스에 기원을 둔 생각들이다. 상업이 발전하면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17,18세기는 전투능력이 강해서 무역도 발전했다. 현실주의적인 전쟁 친화적인 국제관계론에 의해서 평화로운 자유주의적인 이상이 무너졌고,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한 이후에 본격적인 국민국가들이 나서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인 결과가 제1차세계대전이니 이 전쟁을 통해서 유럽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들을 소진해버린 셈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뚜렷한 사실들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아시아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이기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국의 주도로 이어지면서 그 이후의 세계가 미국 주도로 된 것 같지만 사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끝장이 났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 "따라서 유럽의 모든 열강들이 패배했거나 탈진 상태에 있었던 1918년, 미합중국은 연합국들과 적대국들 모두에게 자신만의 방식을 부과할 수 있는 '기계장치의 신'과 같이 등장하였다. 또 다시 새로운 세계질서가 막 태동하고 있었다." 미국의 세계가 언제부터인가를 보면 제1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근대의 계몽주의가 내세운 평화의 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유럽에서도 관철되지 못했고, 또 그만큼 제1차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계몽주의가 내세운 평화의 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소멸되지 않았나 한다.


마이클 하워드가 말하는 평화의 발견이라고 하는 것을 약간 비판적으로 본다면 제1차세계대전이 유럽의 모든 자원을 상실한 결정적 계기이고, 이로써 근대 계몽주의가 내세운 평화의 이념이 현실화되는 것은 실패했다. 그것은 차후에 등장하는 미합중국에 의해서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는 것이 되었다. 이것이 옳다거나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판단해야 하지 않나 한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것처럼 계몽주의가 미완의 것이고, 그러니 계몽주의의 이상을 되살려서 세계를 국제연맹을 구상했던 칸트의 그런 생각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은 조금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한다.


다음주에는 1차세계대전 이후에 냉전기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방식으로 평화가 추구되었는지 깊이 생각을 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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