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커트: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 - 10점
스티븐 커트 지음, 최현만 옮김/에클레시아북스


서문

라이트(N.T. Wright)의 추천사

제1장. 톰 라이트의 생애 : 등장, 학문, 위상

제2장. 대답을 기다리는 신학적 질문들

제3장. 톰 라이트의 신학 요약

제4장. 톰 라이트의 신학과 목회

제5장. 톰 라이트의 신학과 선교

제6장. 톰 라이트의 신학과 교회의 삶

제7장. 톰 라이트가 교회에 던지는 도전

미주

참고문헌





제2장. 대답을 기다리는 신학적 질문들

41 '우리가 죽을 때 천국에 가는 것이 기독교 소망의 성격으로 확실하게 굳어졌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신학 측면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이 '천국 입장권'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을 분명하게 밝히는 게 아주 논리적인 귀결로 보였다. 그리고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특히 기독교 여름 캠프에서 내놓은 해답은 아주 분명했다. 예수의 값없는 은혜와 그의 속죄하는 죽음의 충족성에 우리의 믿음을 두는 것, 기독교인이되면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점들에 대해 이제껏 많이 들었지만 '천국에서의 자리' 확보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은 좀처럼 생각할 수 없었다.


43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의 해방이 현재에 '풍부한 삶을 영위하는' 자유를 가져온다는 설명 정도는 제시되었지만, 그 외에 우리의 '미래의 소망'으로 제시되는 내용과 현대 기독교인의 삶 사이를 충분히 연결시키고 통합시키는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제3장. 톰 라이트의 신학 요약

68 라이트는 역사를 신앙과 분리시킨 계몽주의의 유산이 단호하게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의미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오직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예수를 새롭게 만들어 내려 하고, 그 결과 기독교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새롭게 구성해 내려는 성향이 존재한다. 만약 역사적인 탐구가 없어진다면, 인간의 그러한 성향을 적절하게 통제해 줄 방법이 사라지는 것이다."


75 1세기 유대인들에게 핵심 사안은 '내가 죽을 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물론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안전 할 것이라고 믿었다), '야훼가 이스라엘의 해방을 가져오실 그날은 언제인가'였다. 즉, 중차대한 문제는 종말론에 관한 것이었다. 


76 라이트는 또한 '복음' 혹은 '좋은 소식'이라는 용어가 출현한 이유에 대에서도 이스라엘의 유배 상태가 끝나고 그들이 기다리던 피조 세계의 해방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일을 수행하는 '메시아' 개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더 폭넓게 발전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소망은 사후에 일어나는 육체와 분리된 축복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매년 출애굽을 기념하면서, 최근의 사건으로는 기원전 2세기에 그들을 압제하던 시리아를 몰아낸 마카베오 가문의 승리를 정기적으로 기념하면서 그들의 마음 속에 불러 일으켜 졌던 기대들이 성취되는 민족적인 해방을 고대하고 있었다.


78 부활 개념은 처음에 이스라엘이 장차 유배 상태에서 풀려나 신원을 받게 될 것에 관한 은유로 사용되었다(예. 에스겔 37장). 이후로도 부활 사상에서 이러한 의미는 누락되지 않았고 주전 3세기경부터 더욱 발전되어 죽은 자의 부활 자체라는 의미도 가지게 된다. 즉 죽은 자들이 그 심판 혹은 신원의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살리시는 사건을 가리키게 된다(다니엘 12:1~3), 이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부활 개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신원하시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피조 세계를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의 궁극적인 증표가 되었다.


79 부활 사상이 전복적인 이유는, 만약 죽음이 언젠가 정복된다면, 폭군들에게는 더 이상 남은 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들의 육체적인 부활(그 외의 것은 부활이 아니라고 라이트는 말한다)은 바리새파 신학과 대부분의 1세기 유대교 종파들의 신학에서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올바른 결말'을 가져다 줄 사건, 즉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해방을 고대했다. 반대로 부유한 귀족이었던 사두개인들은 그러한 부활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거부했다. 그 주된 이유는 그 당시의 정치적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던 열망 때문이었다.


89 라이트는 예수가 이스라엘을 유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악의 세력이 패배하며 야훼가 시온으로 귀환하는 것과 같은 종말론적 사건을 일으키는 메시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분명한 자기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89 이러한 기초 위에서 예수는 메시아로서 자신의 역할을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종이 되어 이스라엘의 소명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 소명이란 이스라엘의 구원을 달성하는 수단으로서 고난과 죽음을 인내하라는 것이었다.


91 라이트는 나아가 복음서 저자들이 그 전체적인 이야기를 모두 이야기하는 목적이 예수의 부활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정도다. 부활은 어떤 기괴하고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이고 전반적인 악의 세력이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하는 사랑과 전면전을 벌여야 했을 때 맞이할 수밖에 없는 적절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93 제라이트는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지식으로서 어떠한 정보의 조각을 알았다는 의미에서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알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 대신 라이트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앎은 곧 사랑의 관계에 대한 앎이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신적 정체성에 대한 예수의 지식은 다름 아닌 소명 의식이었다고 제안한다. 이 소명 의식은 순종과 믿음, 기도를 통해 분투하며 형성된 것으로서, 예수는 자신이 오직 야훼만이 할 수 있고 또한 야훼만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고 또한 되도록 부름 받았다고 이해했다. 그는 이 소명이 진리라고 믿었고 이 믿음을 토대로 단호하게 행동했다. 나중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목적이 예수가 행한 일들을 통해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예수가 경배를 받아야 할 존재라고 확신하였다. 이러한 확신을 불러 일으킨 근거는 바로 그의 부활이었다. 그들은 부활을 근거로 그리고 야훼에 대한 유대교적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를 경배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유일신론을 위협하기보다는 오히려 완성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94 예수의 부활은 사도 바울에게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은 전부터 이미 부활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신원하시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증표로 확고하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94 현시대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던 사건이 이 시대의 한 가운데서 한 사람 예수에게 지금 발생했다는 사실을 그가 깨달았으며, 이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시대가 그 사람 예수를 통해서 이 세계로 침투해 들어 왔음을 알려주는 증표였기 때문이다.


95 라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복음은 개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수단 혹은 '그들이 죽을 때 천국에 갈 수 있는 수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복음은 왕적인 선포이다. 즉, 부활을 통하여 메시아이며 주라고 선언된 예수 안에서 그리고 예수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왕이 되셨고, 이제 그의 세계를 바로 잡는 과정을 시작하셨다는 선포이다.


101 미래에 하나님께서 '의롭다 할' 사람에 대한 현재의 유일한 표지는 더 이상 '율법의 행위들'이 아니라, 메시아 예수에 대한 믿음과 신자들을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로 연합시키는 세례라는 '새 언약'의 증표다. 믿음과 세례 모두가 보여주는 근본적인 진리는 이 둘 모두가 이제는 완전히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오는 길이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철저하게 포용적인 성질을 띤다는 사실이다.


102 왜냐하면 라이트가 '이신칭의' 교리를 주로 구원론(어떻게 우리가 구원 받는가)보다는 교회론(어떻게 우리가 교회를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신칭의' 교리는 어떤 사람이 과연 '적절한 그리스도인'인지 판단하여 배제할 목적으로 다른 어떤 교리들보다 흔히 사용 되어온 교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트는 이러한 배제의 교리를, 세례와 메시아 예수에 대한 믿음을 제외한 다른 경계 표지들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포용의 교리로 변화시켜 놓았다.


110 라이트는 미래의 심판에 관한 믿음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정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또한 분명하게 주장하 바는, 메시아가 시행할 이 심판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에 부합하여 내려질 것이라는 사실이다(예. 로마서 14:9~10, 고린도후서 5:10). 이 구절들을 포함한 몇몇 구절들이 명백하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도 '행위에 따른 심판'을 주장하는 것은 곧 은혜와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121 복음을 개인이 '당신이 죽을 때 천국에 가는 것' 정도로 제한하지 말자. 교회의 역할은 예수가 불러 일으킨 부활의 생명을 보여주는 말과 행동, 급진적이고 성령으로 충만한 증표들을 통해 실제로 나타내면서 성경의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바는 '예수에게 속하라', '이 주되심 아래에서 살라', '이 삶의 일부가 되라'는 부름이 만물을 위한 것이며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4장. 톰 라이트의 신학과 목회

125 특별히 내가 소속된 매우 영국적인 '교외 지역'에서 발견한 것은, 장례식에서 소망에 관한 메시지를 전할 때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 '당신이 죽을 때 천국에 가는 것'과 관련된 내용을 기대한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운명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이해할 만하다. 이러한 관심으로 인해 고인의 가족들은 종종 실질적인 '보편주의 구원론'(그들이 특별히 악한 사람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담은 내용과, 고인이 '더 좋은 곳'으로 갔으며 이제는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벗어났다는 확신이 결합된 메시지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제5장. 톰 라이트의 신학과 선교

148 우리의 전도에서 예수를 단순히 개인적 구세주가 아니라 주로 선포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는 그저 선교에 대한 좀 더 총체적인 접근이 나타난 정도가 아니었다. 나아가 우리는 철저하게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소명을 좀 더 훌륭한 방식으로 통합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결과 우리는 뉴 몰든이라는 교외 지역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이방인들에게 수행했던 방식과 유사한 전도 접근 방식을 구축하게 되었다.


제6장. 톰 라이트의 신학과 교회의 삶

152 새 신자들이 일단 크라이스트 처치에 연합한 후에 큰 도움이 되었던 내용이 '이신칭의'를 교회론적 교리로 재구성한 라이트의 설명이었다.


152 이는 달리 표현하면 전통적인 '경계표지'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 공동체의 일원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지는 오직 세례와 메시아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확언했다고 하자. 이는 어린아이들을 완전하게 포용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아직 "믿음이 어린" 사람들에게 다른 신자들과 동등한 신분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특별히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오랫동안 교회를 지켜온 일부 신자들에게는 거리끼는 일이었다. 그들은 때로 그 두 가지 표지 이외에 더 많은 상징과 실천을 교회의 정당한 구성원임을 보여주는 증표로 계속 유지하기를 원했다. 예를 들면,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하는 것, 교구기도 모임에 참여하는 것, 재정적 기부를 담당하는 교회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것, 심지어는 설교시간에 성경을 펼치는 것과 같은 일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경계표지'로 여기는 관습을 적극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제7장. 톰 라이트가 교회에 던지는 도전

180 우리가 전통적으로 복음주의 신학의 강점으로 간주해왔던 신학의 영역 안에 큰 약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영역에는 기독교의 소망, 죄의 문제, 속죄, 선교, 그리고 성경의 성격과 권위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포함된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더 이상 말할 내용이 없을 텐데'라고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복음주의의 공식적인 주장들을 단순하게 재천명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지 말자.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그리고 종교개혁 전통에 우리가 진정으로 충성하는 방법은 우리의 교리와 실천을 검토하기 위해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성경 안에는 이제껏 우리가 간과해 온 때로는 현재 우리의 이해를 보충해 줄 수 있는 핵심적인 통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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