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모나한, 피터 저스트: 사회문화인류학 ━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24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8. 9. 13.
사회문화인류학 - 존 모나한.피터 저스트 지음, 유나영 옮김/교유서가 |
아주 짧은 소개
1. 동고에서의 다툼: 현지조사와 민족지
2. 벌 유충과 양파 수프: 문화
3. 어느 짧은 만남: 사회
4. 페르난도가 아내를 얻고자 하다: 성과 혈연
5. 라 보세가 바카르가 되다: 카스트, 계급, 부족, 민족
6. 누요에서의 축제: 사람들의 소유물
7. 비마에서의 가뭄: 사람들이 믿는 신
8. 냐뉴 마리아가 벼락을 맞다: 사람들의 자아
후기: 우리가 배운 몇 가지 것들
1. 동고에서의 다툼: 현지조사와 민족지
26 인류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인류학자가 무엇을 하는지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인류학자가 하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민족지(ethnography)다. 문화인류학자나 사회인류학자에게 민족지란 생물학자의 실험실 연구, 역사학자의 문헌조사, 사회학자의 설문 조사와도 같다.
56 참여관찰의 결과물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온갖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은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최대한 충실하고 정직하게 들려주려는 민족지 학자들의 선의의 노력에 의존해왔다. 또한 우리는 자기 직업의 윤리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민족지 학자의 기본적 양식에 의존해왔다. 우리 모두는 완벽한 서술적 객관성이란 성립 불가능하고, 어떤 사회나 문화에 대한 포괄적 이해 또한 도달 불가능한 목표이며, 윤리적 문제는 해결하기보다 제기하는 편이 더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가 이런 의문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아마도 학문 분야이자 인본주의적 기획으로서 인류학의 근본적 건전성을 보여주는 최선의 지표일 것이다.
2. 벌 유충과 양파 수프: 문화
61 인간에게는 독특한 점이 많이 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비범한 특징은 세계를 개념화하고 그 개념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일 것이다. 인류학, 특히 미국 전통에서 훈련 받은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능력을 문화(culture)라고 부른다.
62 빅토리아 시대인 1871년에 에드워드 B. 타일러가 문화에 대해 내린 다음의 정의는 이후 30년간 도전받지 않았다. "광범위한 (비교) 민족지적 의미에서 보았을 때 문화 혹은 문명이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그 밖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획득한 능력과 습관들을 포함하는 복합적 총체이다."
83 문화의 내용이 임의의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라면,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가 지닌 모습 또한 임의의 역사적 산물이다. 문화는 대단히 깊고도 광범위하게 우리의 세계관을 결정하므로 특정 세계관이 다른 세계관보다 우월하다거나 특정 세계관이 다른 세계관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할 만한 객관적 근거는 없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문화는 서로에 대해 상대적으로만 평가할 수 있으며, 특정한 믿음이나 행동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우선 해당 문화의 맥락과 관련지어 이해해야 한다. 간략히 말해서 이것이 문화상대주의라 불리게 된 것의 근간이다.
3. 어느 짧은 만남: 사회
113 부르디외는 마르크스와 베버의 통찰을 결합하여,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사회가 전문화되고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지니며 위계적으로 조직된 무수한 장(field) 또는 제도(예술 과학, 법률, 경영, 대중 매체 등)들로 분리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지위를 얻기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았다. 이 투쟁에는 경제적 자본과 문화 자본이라는 두 가지 주요한 자산이 존재하며, 이 두 가지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순수 예술이나 고급 음식 같은 것을 즐기고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은 유년기 초의 경험과 더불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주어진 장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예컨대 대학 교육과 같은 형태로 구매할 수도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는 그 개인을 이런 교육과 배경을 누리지 못한 타인들로부터 구별 짓는 일종의 제 2의 천성으로서 나타나며, 이런 식으로 우리 자신의 제도 안에서 계층 분리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 계층 간의 이러한 경계는 다양하고 미묘한 방식을 취해 가며 적극적으로 유지된다.
4. 페르난도가 아내를 얻고자 하다: 성과 혈연
127 오난의 죄는 방종의 죄가 아니었고 그의 손바닥에서 털이 돋아나지도 않았다. 그의 죄는 죽은 형제의 (부계) 혈통을 잇는 데 협조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소로레이트 혼인의 경우, 이는 죽은 여성의 친족측이 그 남편에게 아내를 제공하는 계약상의 의무를 다한다는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두 경우 모두 결혼관계는 두 친족 집단 간의 계약 관계로서 실제 결혼한 당사자들이 죽은 뒤에도 지속된다. 나아가 이러한 의무의 핵심에는 고인의 혈통을 계승하는 것에 대한 이해관계가 놓여있다.
140 인간 역사의 상당 기간, 심지어 오늘날의 많은 곳에서도 집단은 친족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혈통은 재산을 소유하고 그 구성원의 삶을 규제하는 주된 수단이다. 이러한 집단의 구성원리는 매우 간명하더라도, 실제로 종족, 씨족, 친척이 그 구성원을 받아들이거나 내보내는 실천에서는 혈통이나 친족의 공식 이데올로기와는 거의 무관한 갖가지 방식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5. 라 보세가 바카르가 되다: 카스트, 계급, 부족, 민족
147 국가 상징 ━ 국기, 국가, 공공기념물 등 ━ 그리고 국민국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 신화를 차용한 정교한 시민 의례가, 공통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수단으로서 만들어지고 시행되었다. 뒤르켐은 이것을 '집합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s)'이라고 일컬으며 사회적 연대의 상징적 속성을 인정했다. 단순하고 동질적인 사회들이 그 미미한 차이를 가지고서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열중하는 한편, 복잡하고 이질적인 사회들이 그 유기적 다양성으로부터 통일을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153 카스트와 종족 범주가 흔히 그 구성원들의 사회적 순위를 매기고 삶의 기회를 제한하거나 열어주는데 사용되는 반면, 인종(race)은 인간이라는 생물 종 전체를 서로 다른 수준의 지능, 아름다움, 윤리적 행동 능력, 기타 특성들과 이데올로기적으로 연관된 소수의 범주들로 분리함으로써 한층 더 멀리 나아간다. 이런 인종 관념은 불평등을 강화하는 데에서 특히 강한 힘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인 양, 아무런 의문 없이, 많은 경우 인종주의의 희생자들에게까지 순순히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특수한 민족적·국지적 차원에서 발현되는 인종주의는 전지구적 인종 위계를 재생산하는 듯 보이는 경우가 많다.
154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브라질의 한 농촌 마을의 사례다. 이 마을 주민의 선조들 중에는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메리카 원주민, 중동인, 심지어 아시아인도 있다. 우리의 동료인 캐서린 하워드에 따르면, 이곳 사람들은 한 가족 안에서 피부색이 전부 제각각인 자녀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여겼으므로 형제 중에 키가 큰 아이와 키가 작은 아이가 있을 수 있듯이 한 부부가 흑인 자녀, 백인 자녀, 황인 자녀를 모두 갖는 것도 유별난 일이 아니었다.
156 19세기의 인류학자들은 인간을 인종적 범주로 분류하는 측정 가능한 '과학적' 근거를 발견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인종을 '인체측정학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로서 특히 두개골을 대상으로 무수한 측정이 행해졌지만 전부 헛수고였다. 알고보니 인종 집단 내의 차이가 인종 간의 차이만큼이나 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인류학자 대부분의 동기는 매우 인종주의적이었고, 그들의 결론은 우생학자나 나치 등 증오의 과학적 명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채택되었다.
6. 누요에서의 축제: 사람들의 소유물
182 소비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학습해야 하는 것이며, 한 사회에서 가치 있는 물건으로 학습되는 것이 다른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7. 비마에서의 가뭄: 사람들이 믿는 신
206 하나의 신앙을 다른 신앙의 관 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은 별개의 신앙 체계가 출현하는 정도까지 진행될 수도 있다. 예전에 인류학자들은 이런 신앙에 혼합주의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지금은 이 용어를 지양하고 있다. 모든 신앙이, 심지어 가장 정통적인 형태의 세계 종교도 실은 다양한 믿음과 관습의 역사적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계 종교의 믿음과 관습이 이렇게 국지적 관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현상은 너무나 활발하게 일어나므로 신도들 사이에서 바라는 만큼 높은 수준의 정통성을 획득한 세계 종교가 과연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지적 신앙과의 연결 고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선교 전략과 결합 되었을 때, 이는 같은 종교의 신자들이 이름만 같다 뿐이지 사실상 다른 신앙을 공유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8. 냐뉴 마리아가 벼락을 맞다: 사람들의 자아
228 지난 수십 년간 유럽과 미국 산업 사회의 많은 부문들은 성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과거 지배 관념의 급진적 수정과 남녀 관계의 변화를 경험했다. 성별화된 정체성의 대안적 정의에 대한 관용은 새로운 현상이 아닐지 몰라도, 현재 새롭게 출현하는 남녀 간의 대칭성은 새로운 종류의 것이다.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의 성별이 대칭적으로든 비대칭적으로든 서로를 보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면, 현재 우리 서구에서는 성별이 적어도 고용과 같은 사회 생활의 특정 국면에서는 원칙적으로 무관하다는 관점으로 이동하고 있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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