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워드: 평화의 발명 ━ 전쟁과 국제 질서에 대한 성찰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8. 9. 27.
평화의 발명 - 마이클 하워드 지음, 안두환 옮김/전통과현대 |
개정판 서문
서문
1 서론
2 성직자와 왕 : 800 ~ 1789
3 국민과 국가 : 1789 ~ 1918
4. 이상주의와 이데올로기 : 1918 ~ 1989
5. 토마호크와 칼라시니코프 : AD 2000
후기 : 전쟁의 재발명
옮긴이의 말
1 서론
12 '전쟁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평화는 근대의 발명품이다.' 19세기 중반 법학자 헨리 메인 경은 그렇게 말하였다.
14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발명된 평화 즉, 전쟁이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 국제질서는 어느 시기에나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공통된 바램이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에게 그러한 평화가 실현 가능한 것으로 또 진실로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 받아 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단지 과거 200여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이다.
2 성직자와 왕 : 800 ~ 1789
38 18세기가 시작되면서 평화는 세력들 간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 여겨졌다. 물론 그 균형이라는 것이 지속적으로 전쟁을 통해서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19세기 중반까지도 상비군의 유지 문제에 있어서 영국 의회가 제시한 가장 합리적이고 자명한 논거는 바로 '세력 균형의 유지'였다. 여전히 전쟁은 국제 질서의 한 부분이었지만, 전쟁 수행의 방식은 그들이 유지하고자 싸우는 균형에, 그리고 전쟁의 종결은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 의거해야만 했다.
3 국민과 국가 : 1789 ~ 1918
66 1871 년에 다다르면서 또 다른 새로운 질서가 유럽에서 탄생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국민 국가(nation state)였다. 이전의 질서와 마찬가지로 이 새로운 질서 역시 전쟁에 의해 탄생되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유럽의 산업화는 힘이 토지가 아닌 산업에, 봉건 영토가 아닌 도시들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 구조의 탄생을 촉진하였다.
68 보수주의자들은 국내적으로는 상당한 권력을 상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들 간의 외교적 문제에 있어서는 지배적 지위를 계속 누릴 수 있었으며, 19세기 첫 50여 년 동안 그들이 지켜냈던 세력균형에 기초하여 나머지 50여 년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국가들의 상대적인 지위는 변하였지만 비스마르크가 권력을 쥐고 있는 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공동의 관심은 깨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을 수 있었다. 1871년 서유럽 지역의 안정은 1878년 베를린 회의에 의해 더 동쪽 지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물론 그 회의 역시 지난 25여 년 간 지속된 발칸 지역의 불안한 평화에 마침표를 찍지는 못하였으며, 그 지역에서는 또 다시 25여 년 간 불안한 평화가 계속되었다.
79 따라서 유럽의 모든 열강들이 패배했거나 탈진 상태에 있었던 1918년, 미합중국은 연합국들과 적대국들 모두에게 자신만의 방식을 부과할 수 있는 '기계장치의 신'과 같이 등장하였다. 또 다시 새로운 세계질서가 막 태동하고 있었다.
4. 이상주의와 이데올로기 : 1918 ~ 1989
81 1918년, 외관상, 계몽주의의 자유주의측 계승자들이 마침내 승리한 것 같았다. 500여 년 이상의 오랜 가문의 역사를 자랑하던 지배 왕조들에 의해 구현되었던 보수주의적 질서는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95 1945년 새로운 세계 질서를 탄생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진정으로 전지구적인 것이었다. 파시즘은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단어 그 자체로 거부되었다. 칼로써 흥 하였기에 칼로써 망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사력이 평화의 구축만이 아니라, 평화의 보존에 있어서도 필수적임이 명백해졌다.
100 종종 1945년에서 1989년 사이의 평화는 어느 누구도 감히 싸울 수 없는 전쟁으로 인해 유지되었다라고 말해지곤 한다. 하지만 무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주 형편없는 계산착오로 인한 경우만을 제외한다면 유럽에서 전쟁이 반드시 발발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전쟁과 그에 따른 피해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 다 탈진해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공개적, 비공개적 원조의 효과로 인해 부분적으로는 철의 장막 뒤의 소련의 행동들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서유럽에서 소련에 대한 지지 기반은 흔들리고 있었다.
113 소련의 지도층들은 미국과의 군사적 균형의 유지가 자신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비용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그 결과로 그들은 대립을, 만약 가능하다면 종식시켜야 한다는 매우 뜻밖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113 러시아의 근대화에 있어서의 성과들을 무시할 수만은 없지만, 공산주의 체제는 세 세대에 걸친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이에 반하여 자본주의는 저 유명한 초록월계수처럼 번성하였다. 파시즘은 약속한 군사적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였기에 실패하였으며, 공산주의는 약속한 번영을 가져오지 못하였기에 실 패하였다. 더 이상 소련의 사람들을 철의 장막 너머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행복한 무지의 상태에 가두어 놓을 수는 없었다.
5. 토마호크와 칼라시니코프 : AD 2000
119 근대화된 서양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졌던 종교적 광신주의와 같은 것에 의해 고취된 극단적인 소규모 집단들의 느슨하게 엮어진 국제적 조직들이 최신의 현대적 무기들로 무장을 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속적 세계 질서를 전복시키고, 중세 초기 이후 유럽에서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는 신정정치와 같은 것을 세우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하였다.
129 평화는 앞서 보아왔듯이, 인류에게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위적이고 복잡하며 매우 깨어지기 쉬운 질서이다. 아무런 강제 없이도 자유로이 인정받는 법체계의 전제가 되는 정치적 결속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문화적 동질성(이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나게 된다)뿐만 아니라, 그러한 문화가 전해질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과 같은 모든 종류의 필요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더 나아가 국가가 발전함에 따라 국가의 복잡한 법적, 상업적, 행정적 체계들을 운영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 상당한 정도의 도덕적 권위를 보여줄 수 있는 고도의 자질을 지닌 엘리트들이 요구된다. 이러한 조건들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면, 또는 엘리트들이 썩어 있다면, 평화로운 국제, 사실 국내적이기도 한, 질서를 창출하고자 하는 또는 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공동체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군사적 분쟁의 가능성만 매우 높아질 따름이다.
129 전지구적인 평화로운 질서의 구축은 따라서 국내적인 질서를 가능켜 하는 요소들을 공유할 수 있는 세계 공동체의 창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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