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 080 윤성익, 명대 왜구의 연구

2018년 5월 28일부터 KBS 라디오 강유원의 책과 세계에서 진행되는 선생님의 라디오 방송을 듣고 정리한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6843


20180914-080 윤성익, 명대 왜구의 연구

14-15세기나 16세기 모두 왜구는 중국과 일본 기타 지역민들이 모두 참여한 다민족적인 집단의 양상을 보인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끌었던 것이 아닌 양 지역의 요인이 결집되어 발생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타당하다. 왜구는 그저 단순한 해적이 아니었고 대규모 조직을 이루고 있었으며, ‘사람’에 대한 약탈이 지속적으로 행해졌다.






고려시대 역사에서는 고려 말기에 오면 왜구에 침입에 따른 피해가 극심하다는 서술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왜구는 일본의 해적 그게 전부이다. 윤성익 박사의 연구서인 《명대 왜구의 연구》를 읽어보면 사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왜구의 피해를 주로 입은 나라는 중국과 한국이다. 그런데 두 나라는 스스로 왜구의 피해자로 인식했기 때문에 주로 왜구가 가진 부정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왜구라는 것이 이름 그대로 일본의 해적이다보니 일본에서는 그것의 침략성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인의 해외진출이나 해상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연구를 집중하였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일본 제국시기에는 일본의 왜구연구가 제국주의적 대외발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이론적 준비이기도 하였다. 해외식민지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왜구의 역사가 동원되고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1945년 전후로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는 연구경향이 크게 달라졌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에는 왜구에 대한 종래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완화하고 해소하려는데 중심을 두고 연구가 행해졌던 것이며, 그렇게 하다보니 왜구의 구성원 가운데에는 중국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실증적 연구도 나오게 되었다. 이는 왜구에 대한 연구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14-15세기나 16세기 모두 왜구는 중국과 일본 기타 지역민들이 모두 참여한 다민족적인 집단의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본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이끈 것이 아닌 여러 지역의 요인이 결집되어 발생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타당하다는 것이다.  왜구는 그저 단순한 해적이 아니었고 대규모 조직을 이루고 있었으며, 바다에서 살고 있는 일종의 해민, 바다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약탈이 지속적으로 행해졌다. 왜구에 대한 연구의 변천을 보면서 우리는 역사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 국가가 요구하는 그 무엇인가에 봉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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