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스펜서: 개인 대 국가 ━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개인 대 국가 - 10점
허버트 스펜서 지음, 이상률 옮김/이책


해설 저주받은 사상가를 다시 읽는다

서문

제1장 새로운 토리주의

제2장 다가오는 노예제

제3장 입법자들의 죄

제4장 거대한 정치적 미신

저자 후기

옮긴이의 말




해설 저주받은 사상가를 다시 읽는다

23 그는 왜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반대했을까? 첫째, 역사를 돌이켜 보면 침략 받기 때문이든 침략하기 위해서든 정부는 전쟁 때문에 생겨났다, 그리고 정부는 강제력에 의지한다: "군인, 경찰, 교도관 즉 칼, 곤봉, 족쇄는 고통을 가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고통을 가하는 모든 것은 이론상 나쁘다. 국가는 악을 복종시키기 위해 사악한 수단을 사용한다." 결국 "정부는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다." 정부는 더 큰 악과 싸우기 위한 일종의 필요악이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에서 부도덕한 정부의 권력을 제한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24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역할을 하다 보면 직무 수행에서 비효율적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본연의 역할마저 해치게 된다. 스펜서는 비효율성을 피하고 효율성의 증대를 위해서도 정부 역할의 전문화, 즉 정부 권력의 제한을 주장하였다.


25 자신들의 문제를 자유로운 계약, 자제, 자발적인 협동을 통해 해결하지 않고 정부의 힘이나 강제적인 협동에의 지해 해결하려는 성향을 낳는다. 이처럼 국가 간섭이 늘어나면서 생겨나는 개인의 무력화를 스펜서는 역사의 퇴보로 보았다. 그렇다면 정부가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상업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다. 종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자선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의 자연권을 지키는 것 ━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 ━ 약자에 대한 힘 있는 자의 침해를 막는 것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의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부의 당연한 임무이자 본래의 임무이다."


26 동등 자유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동등 자유의 법칙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은 만일 그가 다른 어떤 사람의 동등한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자유가 있다"는 법칙이다. 스펜서는이 동등 자유의 법칙을 인간이 최대의 행복을 누리는 완전한 사회의 기본 원리로 제시한다. 그는 삶의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 본다. "행복은 모든 욕망의 정당한 만족에 있다. 즉 행복은 모든 능력의 정당한 행사에 있다."


28 국가 윤리와 가족 윤리는 구분되어야 한다. 국가 윤리의 본질적인 원리는 정의이며, 가족 윤리의 본질적인 원리는 관용(자선)이다. 어느 한쪽의 원리가 다른 쪽의 원리에 침입하는 것은 즉각적으로든 먼 후 일에든 해를 끼친다. 특히 국가 윤리 속으로의 가족 윤리의 침입은 사회적으로 해롭다. 게으름과 방종이 만연되어 사회가 퇴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온정주의적인 정부를 반대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제1장 새로운 토리주의

78 토리주의와 자유주의는 본래 다음과 같은 것에서 생겨났다. 즉 전자는 호전성에서 생겨났고, 후자는 산업주의에서 생겨났다. 전자는 신분 체제를 지지했고, 후자는 계약 체제를 지지했다. 전자는 계급 간의 법적 불평등을 수반하는 강제적인 협동 체계를 지지했고, 후자는 그들 간의 법적 평등을 수반하는 자발적인 협동을 지지했다. 물론 그 두 당파의 초기 행동이 한쪽은 이 강제적인 협동을 초래하는 동인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쪽은 그 동인을 약하게 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강제 체계를 확대해 온 한, 지금 자유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토리주의다.


제2장 다가오는 노예제

83 동정이 사랑과 유사하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동정이 그 대상을 이상화한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동정심은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기억을 한동안 억누른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불쌍한 친구"에게 나타내는 감정은 "나쁜 놈"이라는 생각을 차단한다/


83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함을 자세히 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비참함을 도와 줄 가치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함으로 생각하지 않고 도와 줄만한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함으로 생각한다. 대체로 그들은 도와 줄 가치가 없는데도 말이다.


86 옛 빈민법을 만들었고 수정했으며 운영한 자들에게 끔찍할 정도의 도덕적 타락을 낳은 책임이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 도덕적 타락을 없애는 데는 한 세대 이상 걸릴 것이다. 나는 또한 최근과 현재의 입법자들에게도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들의 규제 조치로 구빈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영속적인 떠돌이 무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 입법자들에게는 또한 끊임없이 악한을 공급한 책임도 있다.


86 나는 박애주의자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없지 않다고 믿는다. 무가치한 자들의 자식들을 도와주려고 그 박애주의자들은 가치있는 자들의 부모에게 늘어난 지방세를 부담시켜 이들의 자식들에게 손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도 인정한다. 즉 공적인 기관과 사적인 기관의 보살핌을 받고 이 때문에 늘어난 아무 쓸모 없는 이 무리들이 이 기관들의 쓸데없는 유해한 간섭으로 인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받게 되었을 고통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고 싶은 책임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11 그는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많이 일할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일할 수 있는가? 그의 노예 상태 정도는 그가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그가 간직 할 수 있는 것의 비율에 따라 다르다. 그의 주인이 개인이냐 사회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쩔 수없이 그가 사회를 위해 일해야 하고 사회가 인정하는 만큼의 몫을 국고에서 받는다면, 그는 사회의 노예가된다. 사회주의 제도는 이런 종류의 노예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그리고 최근의 많은 조치와 게다가 지지받고 있는 조치들은 우리를 그런 노예 상태로 데려가고 있다.


121 사회주의 자의 공론은 "실천적인" 정치인의 공론을 무효화하는 것과 비슷한 한 가정에 의해 무효가 된다. 관료주의가 의도 된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관료주의는 결코 그렇게 작용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라는 조직도 현재 있는 사회 조직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인간 본성으로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현재의 인간 본성이 지니는 결함이 현재의 사회 조직에서와 똑같은 해악을 공산주의에서도 생겨나게 할 것이다. 권력욕, 이기심, 부정, 거짓은 종종 비교적 짧은 시간에 사적인 조직을 대실패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한 것들의 결과가 세대에 걸쳐 축적되는 곳에서는 불가피하게 해악이 더 커질 것이고 이 해악을 치료하기는 더 어려워 질 것이다.


124 성격에서의 진보 없이는 어떤 진보도 일어날 수 없는데, 이 성격에서의 진보는 질서있는 사회 생활이 부과하는 제한 하에 평화로운 산업을 수행하는 것에서 생겨난다. 사회주의자들의 믿음뿐만 아니라 이 사회주의자들을 위해 부지런히 길을 마련해주고 있는 소위 자유당원들의 믿음도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잘못된 인간성은 적당한 솜씨를 발휘해 좋은 제도에 맞게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상이다. 어떤 사회 구조에 있든 시민들의 나쁜 성질은 나쁜 행위로 나타날 것이다. 무가치한 본능에서 훌륭한 행동을 얻을 수 있는 정치 연금술은 없다.


제3장 입법자들의 죄

164 남은 평생 동안 각각의 성체는 공로에 따라 이익을 얻으며, 공적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이 경우 공로와 공적이란 생명이 요구하는 모든 것(음식을 얻고 은신처를 찾고, 적을 피하는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같은 종의 개체들과 경쟁하거나 다른 종의 개체들과 대립할 때, 각각의 성체는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쇠약해져 절멸하거나 번성해 그 수가 늘어난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체제가 유지 될 수 있다면, 그 체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종에 치명적일 것이다. 각각의 개체가 받는 이익이 그 열등함에 비례한다면, 점진적인 퇴보가 초래될 것이다. 


164 자연이 가족집단 안에서 처리하는 방식과 가족 집단 밖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서로 정반대이며, 또한 어느 한쪽의 방식이 다른 영역에 침입하는 것은 즉각적으로든 먼 후일에든 해를 끼칠 것이다.


165 인간 사회가 열등한 단위들에게 이익을 주고 우월한 단위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다른 사회들과의 투쟁에서 자신의 사회를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가족 생활의 원리를 채택해 사회 생활에서 완전히 실행한다면 적이 적을수록 보상이 언제나 크다면, 사회에 치명적인 결과가 곧 뒤 따르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가족 체제가 국가 체제 속에 부분적으로 침입만 해도 치명적인 결과가 서서히 생겨날 것이다. 모든 종은 이 상반된 원리들의 작용 하에서 현재와 같은 적절한 생존 방식에 도달했으며 또 그런 적절한 생존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가 법인 자격으로 그 원리들의 작용에 간섭하면 즉각적으로든 먼 후 일이든 재난이 없을 수 없다.


166 물론 동정심 문화에서 생겨나는 부수적인 사회적 이익도 언제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족 윤리와 국가 윤리 간의 철저한 구분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 또한 관용이 전자의 본질적인 원리가 되어야 하고, 반면에 정의는 후자의 본질적인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에서만 그렇다. 또한 시민들 사이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노동(숙련된 노동이든 비숙련된 노동이든 육체 노동이든 정신 노동이든)에 대한 보상으로 그 수요에 의해 입증되는 가치만큼 받는 그런 정상적인 관계가 엄격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182우리는 입법자가 이 여러 종류의 사실들을 잘 알았는가 몰랐는가에 따라 도덕적으로 죄가 없는지 아니면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만한지 말해야 한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생리학, 병리학, 치료술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얻은 의사는 그가 치료하던 사람이 죽어도 형사상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잘 준비했으며 최선의 판단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넓은 범위에 걸쳐 체계적으로 연구해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의 조치가 좋은 결과는 커녕 해악을 낳았다면 그도 마찬가지로 잘못 추론했다는 것 이상의 비난을 받을 수 없다. 이와 반대로, 입법자가 제안된 법안에 어떤 평가를 내리기 전에 검토해야 할 많은 사실들에 관해 전혀 또는 대체로 아는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도와 준다면, 이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죽게 된다면 그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이것은 보조 약제사가 모르면서 처방한 약 때문에 사람이 죽었을 경우 그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제4장 거대한 정치적 미신

223 계약관계가 자유인들 사이에서는, 그리고 초기 사회의 단위를 형성하는 작은 집단의 수장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관계가 이 작은 집단 안에서도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집단으로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구성원들(노예있다 하더라도)의 권리를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그 구성원들이 노동에 대한 보답으로 충분한 식량, 옷, 보호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줄고 상업이 발달해 자발적인 협동이 강제적인 협동을 점점 더 대신하면, 그리고 동의하의 교환에 기초한 사회 생활의 수행이(부분적으로는 한동안 중지되지만) 점차 재확립되면, 큰 국가를 유지시키는 방대하면서도 복잡한 산업조직이 가능해진다.


230 이렇게 해서 우리는 소위 의회의 신적인 권리와 이것에 함축되어 있는 다수의 신적인 권리가 미신이라는 명제에 다시 돌아온다. 사람들은 국가 권위의 원천에 대한 옛 이론을 버렸지만, 국가 권위의 무제한성에 대한 믿음은 간직하였다. 이러한 믿음은 당연히 옛 이론을 동반한 것이었으며, 새로운 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통치자가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졌을 때는 백성에 대한 무제한적인 권력이 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통치 단체에 그 무제한적인 권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신성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그 통치 단체에 말이다.


234 "왕을 둘러싸고 있는 신성은 권력을 물려받는 [왕의] 몸 주위에 사람들의 넋을 잃게 하는 광채를 남겼다. 하지만 그것이 상당히 사라지자, 국민이 다스리는 국가에서는 정부란 단지 관리위원회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분명하게 알기 시작했다. 이 관리위원회가 어떤 내재적인 권위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그 불가피한 결론은 이 관리위원회의 권위가 그것을 임명하는 사람들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권위는 바로 이들이 부과하고 싶어하는 한계를 갖는다. 이런 결론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결론이 추가될 것이다. 즉 그것[정부]이 통과시키는 법은 본질적으로 신성하지 않으며, 그 법이 어떤 신성함을 갖고 있다면 이 신성함은 완전히 윤리적인 인가(우리가 알게 된 것처럼, 사회적인 조건에서 행해지는 인간 생활에서 유래 할 수 있는 윤리적 인가)때문이라는 결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윤리적 인가가 없으면 법은 신성함이 없으며 따라서 도전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올 것이다. 과거에는 자유주의의 임무가 왕의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진정한 자유주의의 임무는 의회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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