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시앵 페브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 10점
뤼시앵 페브르 지음, 김중현 옮김/이른비


초판 서문 11

제2판 서문 13

제3판 서문 19


제1부 고독 속에서의 노력

제2부 개화

제3부 자기 세계에 틀어박힘


결론 289


주 303

참고문헌 노트 335

후기 345

해제 | 역사가, 인간 루터를 보다 349

편집을 마치며 357




초판 서문

11 루터의 전기인가? 아니다. 루터에 대한 평가인가? 더더욱 아니다. 단순하지만 비극적이었던 한 운명 곡선을 보여주는 것. 그 곡선이 지나가는 아주 중요한 몇몇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 짚어보는 것. 그 곡선의 최초 비약이 어떤 상황적 압력에 의해 어떻게 수그러졌는지, 다시 말해 그 상승 곡선이 어떻게 하강 곡선으로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것. 어쩌면 역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인 한 개인과 공동체 또는 개인 주도와 사회적 필연과의 관계 문제를 놀라운 활력을 가진 한 인간에게 적용하여 제기 해보는 것. 바로 그 시도가 우리의 계획이었다.


제1부 고독 속에서의 노력

제1장 쾨스틀린에서 데니플레까지

33 루터는 1537년에 이렇게 쓴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었던 게 아니다. 사람들이 그를 무지개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듯이 나 역시 엄하고 무시무시한 심판자로 여겼다." 1539년에는 또 이렇게 썼다. "예수라는 이름은 얼마나 자주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가! 어쩌면 사탄의 이름을 듣는 편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 그리스도가 나를 우호적이고 호의적으로 여길 때까지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38 1521년 4월 18일 목요일 보름스에서 제국의회가 열렸다. 큼지막한 홀에는 몰려든 군중들이 장내를 밝히는 횃불을 아래로 입추의 여지도 없이 들어차 있었다. 루터는 그들이 내뿜는 입김을 얼굴에 둘러쓰면서 독일의 황제(카를 5세)와 교황 특사 앞에 섰다. 심한 불안감으로 한층 더 비장해진 목소리로 그가 외친 주장은 단지 교황의 권한 남용과 타락만이 아니었다. 바로 개인의 양심의 불가침권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철회 할 수도 없고 철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내 양심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습니다." 불후의 명언이다. 그의 정신과 육신이 두려움에 떠는만큼 더욱 억제할 수 없었던 이 확고한 발언은 중세의 동맹 권력자들에게 가 닿는 순간 인류 전체로 확산되었다. 조잡한 수도 사복을 입은 초라한 행색의 수도사는 거기 모인 제후와 귀족들의 호화찬란함 앞에 처음에는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는 그 후 몇 세기 동안 근대 사회의 훌륭한 선구자가 되었다.


41 실제로 데니플레 신부가 주장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는가? 먼저, 루터의 얼굴에 낙인찍기였다. 루터라는 인간이 부당하게 얻은 칭송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는 그의 시도 가운데 가장 이목을 끄는 대목이었다. 발그레하고 고상한 두 뺨, 곱슬곱슬한 머리칼, 온정이 넘치는 모습, 그리고 온화한 언변을 지닌 초인적인 인물,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성인의 거짓된 초상을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제2장 재검토: 발견 이전 

63 그가 열렬히 갈망한 것은 교리가 아니었다. 영적 생활, 내면의 평화, 신 안에서의 평안이었다. 그는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기 기질에 알맞은 것만 모두 흡수 한 뒤 나머지는 사정없이 버렸다. 그는 교리의 유익함이나 위험성을 이성으로 느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가슴으로였다. 그리고 본능으로였다. 설령 다른 영향력들에 복종했을지라도 루터는 정식으로 다르게 반응했을 것이다. 사실은? 그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때까지 마찬가지로 싸웠을 것이고, 모색했을 것이며,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제3장 재검토: 발견

77 루터는 인간을 너무도 현양시켜서, 그 지신 밖으로 끌어내어 신에게로 옮겨놓는다. 인간의 영혼은 믿음에 의해 결합되는 신과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신 안에서, 신과 함께 신처럼 인간의 영혼은 악을 혐오한다. 또한 신과 함께 신처럼 선을 사랑한다. 그리하여 영혼은 자신이 사랑하는 그 선을 행한다  『로마서 강해」에서 루터는 이렇게 말한다.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며, 자기 자신이기도 한 죄인을 혐오하는 죄인이다. 신은 그 죄인을 칭의함으로써 교묘하고 기만적인 이기심을, 이른바 인간의 선한 행위들을 타락시키는 사욕을 소멸시킨다. 그리고 그분은 사랑이시기에 약한 자, 불행한 자, 비참한 이웃에게로 흘러드는 넘치는 사랑으로 신도의 가슴을 채운다.



제2부 개화

제1장 면벌부 사건 

103 면벌부에 대한 논제: 1517년 10월.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 교회 옆문에 라틴어로 된 격문을 붙인다. "진리에 대한 사랑에서 진리가 지배하기를 바라는 열망에서, 아래의 논제들은 문학 석사이자 신학 박사이며 대학교의 전임강사인 R. P. 마르틴 루터의 주재 하에 비텐베르크에서 논의될 것이다. 구두 토론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게는 서신으로 참여하기를 요청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주제는 무엇인가? '면벌부의 효력을 선포하는 것에 대하여'.


제2장 1517년의 독일과 루터 

134 루터는 교부나 신학자가 아니라 예언자였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전대 미문의 그 어려운 일을 해냈던 것이다. 무정부 상태의 독일을 지도하는 것. 그가 열렬히 원하는 것을 독일도 하나 같이 원하고 있다는 환상을 잠시 그 독일에 심어주는 것. 그리하여 그는 몇 달 동안 수많은 불협화음을 내는 목소리들로 훌륭한 합창대를 만들었으며, 탁월한 하나의 노래인 그의 합창곡을 단 하나의 정신으로 만 천하에 내놓게 되었다.


제3장 에라스무스, 후텐, 로마

146 루터는 오로지 또한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고,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지혜로 가득 채워진 그리스도 철학을 지극히 신봉하는 현자였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행동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타협이 성립된다. 그렇기 때문에 식자들 사이에는 이런 편견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너무나 뿌리가 깊어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즉,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정신적 아들이며 아류다. 이를테면 에라스무스의 개혁 욕망을 실현하는 자라는 식의 편견말이다. 오해다. 그것도 맨 먼저 생겨난 오해다. 하지만 곧 다른 오해들이 생겨났고 그것은 더더욱 심각했다.


162 어쨌든 운명의 아이러니였다. 특히 민족적 배타주의와 국가 간의 대립을 초월해 공동의 희망 속에서 형제와 같은 성도들의 단결을 실천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했던 것은 로마 교회였다.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루터교는 구세주의 보편적인 메시지를 독립적인 한 국가 제도의 제한된 계획 아래 종속시켰다. 그로 인해 역사 속에서 종교개혁이 아닌 작은 개혁들이 있으리라는 결론을 얻게 될 시점을 어설프게 서둘러 앞당기려 애썼던 것도 바로 가톨릭교회였다.


제4장 1520년의 이상주의자 

176 무관심과 적의, 그리고 무신앙에 대해 1520년의 루터는 한 가지 치유책 밖에 몰랐다.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이 마음을 움직이도록 맡겨두는 일이다. "말씀이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하다면 완력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완력이 세상을 피로 물들일지라도 말이다. 이단은 영적인 힘이다. 그 힘을 철퇴로 두드려 팰 수도 없고 불을 질러 태워 버릴 수도 없으며 물속에 빠뜨려 익사시킬 수도 없다. 그렇지만 신의 말씀이 있다. 승리하는 것은 바로 그 말씀이다!" 이처럼 세속과 어떠한 결탁도 없는 한 사람이 평화로운 수도원 안에서 신앙심으로 뜨거운 열정적인 수도사의 교회를 꿈꾸었다.


177 견고한 교계 제도와 낡은 관습, 토지와 재판의 견고한 기반을 가진 가톨릭교회로부터 현재 여전히 경쟁 관계에 있는 교회들에 맞서는 선명하게 윤곽이 잡힌 눈에 보이는 교회로부터 유럽에 문화와 전통의 강력한 통일성을 유지시켜주는 문명을 수호하는 교회로부터 로마제국의 진정한 계승자인 그 세속적인 웅대한 건축물로부터 루터는 멀어지고 무관심해졌다.


190 트리어의 판사가 말을 이었다."토론은 없습니다. 책들을 철회합니까, 안합니까?" 그러자 루터의 유명한 말이 있었고, 그 말은 즉각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독일 밖으로 퍼져나갔다. 가장 원문에 가깝게 번역해보자. "성서의 증거나 명백한 논리로 나를 납득시키지 않는 한(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습니다. 교황과 공의회가 너무도 빈번히 잘못을 범하고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했습니다.) 내가 쓴 문구들을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신의 말씀이 내 양심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철회는 할 수도 없고 원하지도 않습니다.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는 것은 위험이 없지도 않고 정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신이시여 저를 도우소서, 아멘!"


제5장 바르트부르크에서의 몇 달

226 루터는 자신의 이상주의에 더욱 자신감을 얻어, 스스로 쌓았던 견고한 벽 뒤로 더 이상 피하지 않는다. 루터에게 자신의 이상주의는 젊은 날의 투쟁에 진저리를 치고 환멸을 느끼는 한 노인이 세계에 맞서기 위해, 또한 성벽 아래에 와서 힘을 잃어버리는 부질없는 폭동에 맞서기 위해 틀어박히는 일종의 피난처가 아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종교개혁 당시 그 열정적인 영토 병합의 노력에서, 당장은 약하고 죽은 것 같으나 장차 모든 것을 부수어버릴 싹을 파악하기 위해 루터와 루터교의 미래와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미 다했다. 실제로 계시를 받은 그 위대한 자, 뛰어나고 열정적인 그 그리스도인의 뜨거운 영혼에서 나오는 것은 한 편의 시였지 행동계획은 아니었다.



제3부 자기 세계에 틀어박힘

제1장 재세례파와 농민들 

252 루터는 농민들의 폭력과 1525년의 대규모 폭동 앞에서 의견을 바꿀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루터를 폭동에 연루시키기를 바랐다. 그를 향한 직접적인 반대·비난·비방이 급소를 건드려서 그가 도전적인 정신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끝없이 부추겼다. 이런 것을 알면 1525년 5월 말 제후들이 진압에 성공하여 보복을 시작할 때 그가 다시 펜을 들어 "약탈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농민 도당들에 반대하여" 냉혹하고 가혹하며 난폭한 팸플릿을 썼다는 사실이 굳이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253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하시지 않은 것은 그들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범할 수 있었던 가장 하찮은 죄악은 침묵하여 일이 되어가는 대로 놔두어 동의하는 것이다." 그는 1525년 5월 30일, 암스도르프에게 이렇게 쓴다. "내 견해는 분명합니다. 운이 막 기울었으니, 제후와 관헌들의 죽음보다는 농민들 모두의 죽음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254 루터는 그런 것은 망상이요 신성 모독이라고 외쳐댔다. 세상은 세상일 뿐이다. 신 스스로가 세상이 보여주는 광경을 결정하신다. 그리고 우리를 이 비극적이고 비참한 무대 위에 마치 배우처럼 살게 하신 것도 신이시다. 도망치지 말자. 세속적으로 살자. 제후든 상인이든 재판관이든, 형리든 군인이든 우리에게 맡겨질 직무를 다하자. 그 직무들로 득을 보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 직무들의 존재를 수락하자.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면 다른 영역에서, 즉 우리가 구원에 대해 깊이 관심을 기울여 애덕과 자비, 그리고 지상의 세계(분노와 힘과 검의 제국)와는 무관한 지고의 미덕들을 행하게 될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영적으로 살자.


제2장 1525년 이후의 이상주의와 루터교 

275 '세속 상황의 인식'(Die gewissen der weltlicher Stande), 이 표현은 문제를 확장시킨다. 이것은 틀어박힌 시기에 루터가 점점 받아들이게 된 인생의 총괄적이고 새로운 개념을 나타낸다. 제후의 권력은 신의 권력의 위임이다. 세상은 총체적으로 신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1520년의 이상주의자는 오만한 무관심으로 세상을 숙고했지만 1530년 이후에는 더는 통용되지 않았다. 세상적인 것은 그의 눈에 거의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는 신의 선물이 아닌가? 그것을 누리는 것은 신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승에서의 임무와 직업, 소명을 부여하는 이는 바로 그분 아닌가? 물론 영성의 영역과 세속의 영역이라는 두 가지 구분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 둘 사이의 대조는 약화되고 선명함을 잃는다. 사실을 말하면, 더는 대조가 아니라 경계가 없어진 바림(그러데이션, gradation)이다.


286 그는 다시 한 번 구원의 사역에서 인간의 의지와 인간 협력의 몫을 되풀이하여 말한다.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는 다시 신인협력설의 지지자가 된다. "신은 자신이 원하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말하는 루터에게 멜란히톤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신은 그분을 원하는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287 멜란히톤의 사상은 그 창시자와 함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터 교회에서 진척을 보이게 될 것이며, 점점 루터교리에 융합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대스승의 사상을 대체할 것이다. 바로 루터가 살아있을 때, 사랑하는 제자의 정신 속에서 이러한 완화작업, 수정작업, 전면 보수작업이 이루어진다.


결론 

292 개혁과 자유 ……. 물론 그는 놀라운 활력으로 교황과 교회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또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었다. 그런데 만일 그가 어떤 하나의 불가항력적 구속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공동체의 이익과 도덕과 교리 자체를 감시하기 위해 신이 세운 국가와 제후의 훨씬 더 강력한 불가항력적 구속을 가했다면, 그는 개선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겠는가? 루터는 어느 때보다도 견고하게 국가와 제후의 세속적인 권한을 다시 정당화하고, 지위를 되찾아 그 면모를 일신했으며, 마침내 영적인 신의 전능으로 그 권한을 두 배나 늘렸다고 거드름 피우지 않았는가? 영적이고 도덕적인 '해방',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늙어가는 1538년의 루터, 다시 말해 멜란히톤과 대화하는 루터를 감안해볼 때, 만일 그가 그런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국가와 제후에 요구했다면 아마 두려움에 크게 떨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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