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라이언: 정치사상사 ━ 헤로도토스에서 현재까지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8. 11. 18.
정치사상사 - 앨런 라이언 지음, 남경태.이광일 옮김/문학동네 |
서론_ 정치를 생각하며
1권 헤로도토스에서 마키아벨리까지
제1부 고전적 이해
제2부 그리스도교 세계
2권 홉스에서 현재까지
제1부 근대
제2부 마르크스 이후의 세계
참고문헌
더 읽어볼 만한 책들
찾아보기
1권 헤로도토스에서 마키아벨리까지
제1부 고전적 이해
제1장. 왜 헤로도토스인가?
50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민주적 아테네는 민주적 시라쿠사와 싸웠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전쟁에 열중했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후대의 로마도 그렇듯이, 고대의 전쟁이 큰 수익을 낳았기 때문이다. 약탈은 농사를 짓는 것보다 더 수지가 맞았다. 가까스로 연명하는 빈민도 부자가 되려는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약탈의 이익에는 탐닉했다. 투키디데스는 민주주의의 호전성이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여겼다. 그는 당대의 독자들에게 자신이 쓴 역사가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 본성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똑같으며, 인간의 정치적 열정과 야망은 근절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시대든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투키디데스가 말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55 멜로스는 결국 기아 상태에 몰려 항복했다.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의 남자들은 전부 살해되었고 아녀자들은 노예로 팔렸다. 500명의 아테네 이주민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사건은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평화를 애호하고 인도적이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숙고할 거리를 던져준다. 민주주의도 대학살을 저지른다는 것을 과소평가하면 안된다.
59 지금 우리에게 있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가지는 중요성은 명백하다. 첫째, (투키디데스의 설명에 의해) 이는 이후 모든 시대와 관련되는 민주주의의 강점과 약점을 잘 보여준다. 아테네의 각종 방책, 애국심, 활력, 결의는 대단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테네는 변덕, 잔인함, 불화도 대단했다. 민주주의의 지지자들은 민주주의를 실시하면 보통 사람이 상당한 용기와 창의 성을 발휘할 수 있고, 유능한 장군, 조직자, 공공정신이 투철한 정치가를 발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주의의 반대자들은 엄청난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파벌주의, 혼돈, 군사적 재앙으로 치닫게 된다고 말했다.
제2장. 플라톤과 반反정치
116 국가가 야기하는 마지막 생각을 보자. 플라톤이 설명하는 이상적인 정부는, 정치를 다루는 기술의 문제보다는 영혼을 다루는 기술의 문제의 영역이다. 그것은 정치에 관한 구도와 거리가 멀다. 규제할 만한 경제 생활도 없고, 억눌러야 할 범죄도 없고, 해소해야 할 이해 갈등도 없고, 화해시켜야 할 정책 다툼도 없고, 완화하거나 수용하거나 억눌러야 할 가치의 충돌도 없다."수많은 중대한 문제들에 관해 한마음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플라톤의 답변은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모든 중대한 문제에 관해 언제나 한마음이 됩시다." 이것이 답이다. 멋진 신세계는 플라톤식 유토피아가 20세기에 취할 법한 타락한 형태에 대한 패러디다. 또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평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모색 한 결과물이다.
제3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는 철학이 아니다
146 시민에게 필요한 자질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부유한 아테네인이 다른 사회 계층을 대하는 태도, 나아가 경제적 이익이 정치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현실적인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146 그가 생각하는 시민의 권리는 지배와 피지배에 관한 (경제적이 아니라) 정치적인 동등권이다. 단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시민의 핵심 요소가 아니다.
150 정치적 지배의 재능은 널리 퍼진 게 아니므로 정치는 본래 '귀족적'이다. 또한 정치적 재능은 상속되기 어려우므로 세습적 귀족정은 불완전하다. 정치적 재능을 가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을 찾아내 비세습적 귀족정을 선택한다. 그것이 바로 현대의 대의정치다.
150 그러나 대의정치의 본질은 민주적 시민층이 스스로 지배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제대로 진행된다면 그 결과로 선출 귀족정이 생겨난다. 그것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수의 상식과 소수의 재능을 결합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본 제도다.
제4장. 로마의 통찰력: 폴리비오스와 키케로
196 시민의 정치적 권리는 투표와 공직을 맡을 권리였다. 이 권리들을 가진 시민은 옵티모 유레 ━ '1류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 였다. 하지만 시네 수프라기오를 가진 시민, 즉 미노레 유래 ━ 2류 시민 ━ 도 중요한 권리들을 누렸다. 특히 중요한 것은 유스 프로보카티오니스, 즉 정무관이 중대 범죄에 관해 내린 선고에 맞서 민회에 상소할 수있는 권리였다. 바울은 시민권을 주장했다가 "그대가 카이사르에게 상소하였으니 그대를 카이사르에게 보내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 그가 행사한 것이 바로 유스 프로보카티오니스였다.
201 공화정의 본질과 정치의 목적에 관한 키케로의 주장은 공화주의 전통을 확고하게 정의했다. 그것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었다. 국가의 본질에 관한 그의 정의는 훗날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레스 푸블리카 res publica (공적인 것)는 레스 포풀리 res populi (민중의 것)다. 레스 푸블리카는 거의 번역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공적인 것은 다소 투박하고 모호하다. 레스 푸블리카는 기본적으로 제도 전체를 가리키며, 모든 사람의 이익을 추구하는 제도를 유지하는 모레스를 향한다. 그
제5장.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시
250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원죄는 우리에게 가장 중대한 현실이다. 구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이것은 정치 권력과 정치 생활에 대한 사고 방식에 명확한 성격을 부여한다. 그렇지 않고 원죄의 교리가 제공한 틀이 부재한다면, 그 사고 방식은 어둡고 염세적이고 속되며, 경험적으로만 매우 그럴듯해 보였을 것이다. 정부와 정부에 수반되는 법과 법 집행기구가 없으면 우리는 타인에 의해 강도, 폭행, 살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없고 법이 집행되지 않으면 우리는 당연히 적이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적에게 선제 공격을 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적의 두려움이 점점 커지면 적이 선제 공격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홉스가 등장한다.
제2부 그리스도교 세계
제6장.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아퀴나스까지
289 긴급한 질문들이 등장했다. 교회는 뭔가를 소유해야 하는가? 그런 목적을 가진 교회는 정체가 무엇인가? 주교구의 주교는 자신과 기부로 얻은 재화를 자신의 사적 재산으로 소유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공동 소유자여야 했다. 공동기구가 가진 처분권을 행사하기에 적합한 사람은 주교이거나 부제들의 집단이었다. 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소유한 재산을 위원회가 집사처럼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공동 모델이 바람직한 교회의 재산 소유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289 교회는 영원 불멸이었다. 상속자도 없었고, 교회 재산이 한 소유자에게서 다른 소유자에게로 넘어가는 일도 없었으며, 어떤 봉건적 부담금도 없었다. 지주는 큰 손해를 보았다. 가장 기분이 언짢은 지주는 바로 왕이었다.
제7장. 아퀴나스와 종합
345 폭군의 지배를 참고 견뎌야 하는 경우는 오로지 폭군을 타도하려는 시도가 더 나쁜 악을 유발하게 될 때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수동적 복종이나 수동적 불복종의 주장은 없다. 또한 키케로처럼 정치적 살해에 대한 열정도 없다. 왕의 권력은 공동체의 합의에 근거하므로 왕을 왕위에서 몰아내는 것도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의 행위여야 한다.이 명백하게 현명한 견해는 아퀴나스는 언급하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들이 언급한 의문을 제기한다. 누가 공동체를 대변 하는가? 1680년 로크는 혁명을 논의할 무렵 '하늘에 대한 호소'라는 말을 만들었다. 한 세기 뒤에 많은 미국 혁명가들이 그랬듯이, 하늘에 대한 호소는 한 개인이 혁명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해 야 하는 일이지만, 정치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일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학자들은 로크를 아퀴나스의 제자라고 간주했다.
제8장. 14세기 공위 시대
360 단테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목적이 인류에게 인간 고유의 완성을 구현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전제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성적인 삶에 도달하는 개인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법칙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는 능력이다. 이 완성은 평화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평화의 유지는 지배자의 근본 의무다. 특별히 난폭한 그 시대에 단테도 여느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평화를 갈망했다. 정부의 지상 과제는 정의로운 통치다. 그래야만 지배자의 신민들이 평화의 축복을 이용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계발할 수 있다.
제9장. 인문주의
429 몽테뉴가 현대적 의미의 개성과 현대적 사생활의 개념을 발견했다고 말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그의 수상록은 그가 실제로 한가지 주제, 즉 그 자신에 관해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으며, 이는 최초의 근대적 자서전이라고 볼 수 있다.
429 여기서 우리는 사적인 측면과 공적인 측면 간의 새로운 갈등이 등장하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 이것은 사리사욕과 공공정신 간의 전통적인 긴장도 아니고, 현세의 관심과 내세의 관심 간의 그리스도교적 긴장도 아니며, 진리의 추구와 동료들에 대한 의무 수행 간의 플라톤적 긴장도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내밀한 관계의 즐거움, 가정의 행복, 자신의 삶을 자기 식대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차분한 만족과 공공 생활의 즐거움 ━ 현실적으로는 같지만 실은 크게 다르다 ━ 간의 근대적 갈등이다. 바야흐로 개인과 시민 간의 긴장을 새롭게 독해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제10장. 종교개혁
465 칼뱅은 이 모든 것을 시민 정부의 3대 요소에 대한 논의로 설명했다. 3대 요소란 법의 본성과 목적, 정무관의 역할, 대중의 의무를 가리킨다. 정무관의 선출 방식이 어떻든 간에 그는 신에게 책임을 진다. 그는 내세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칼뱅은 여러 정부 형태의 장점들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취지는 충분히 밝혔다. 혼합정부가 최선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왕정은 폭정으로 변질될 수 있고 민주주의는 선동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스파르타의 균형이 가장 좋다. 개인들이 정부 형태를 논하기보다는 신이 그들을 위해 마련 해준 왕국에서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제11장. 마키아벨리
516 마키아벨리는 또한 성공이 자멸을 초래한다고도 말한다. 어떤 공화국도 영원히 존속할 수는 없으며, 위대한 업적에는 언제나 부패가 따르게 마련이다.
516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보다 오래 살겠지만 결국에는 둘 다 죽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그 진부하면서도 중요한 인간 존재에 관한 진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마키아벨리는 분명 삶은 살아 있는자를 위한 것이고 죽음은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동료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정치 역시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나약한 사람이나 걸음이 더딘 사람은 정치에 끌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약하지 않고 걸음이 더디지 않아도 다른 북소리에 발을 맞추는 사람은 언제든 수도원에 들어가 영원한 진리를 탐구하면 된다. 마키아벨리가 그런 사람까지 비난했을 리는 없다. 그저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 할 말이 없었을 뿐이다.
2권 홉스에서 현재까지
534 1871년부터 1929년까지도 교황정치는 존속하면서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전통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자체 영토도 없이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은 법적·행정적 정체성이 영토적 정체성 못지 않게 필수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534 근대 국가는 그냥 법인체가 아니다. 국가는 영토 내의 모든 주민, 나아가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시민에게도 강제 권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법인체다. 영토적 정체성은 국가에 필수적이다. 적어도 정부가 있다면 정부의 핵심 과제는 그 정부가 지배하는 국가의 영토적 통합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538 유럽 정치사상의 위대한 전통은 홉스로부터 시작해 마르크스로 끝난다고 보는 게 보통이다. 무릇 모든 시대 구분에는 완전히 타당한 출발점을 설정하는 게 불가능하게 마련인데, 완전히 타당한 종지점을 설정하는 것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쉽게 말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홉스, 로크, 루소 등 사회 계약론자들의 저술에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통합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국가는 인위적이고 법적인 조직이며, 입법의 관념에 함축된 하향식 권력을 뒷받침한다.
제1부 근대
제12장. 토머스 홉스
568 국가는 개인들의 합의를 통해 인위적으로 수립되며, 그 개인들은 자신의 권리와 결사의 조건에 관해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그 점을 정확히 지적했는데, 그는 인간이 자연의 의도에 따라 폴리스에서 살아가게 된 정치적 동물이라고 생각했던 반면, 홉스는 자연이 우리에게 모종의 목적을 부여하고 있다는 관념 자체를 거부하고 우리가 직접 정치사회를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철두철미 근대 사상가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결국, 개인 생활에만 몰두하고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홉스로서는이를 문제 될 바 없다고 보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삶은 시민이 아니라 여성과 노예에게나 어울린다고 보는 셈이다.
572 홉스는 분쟁의 원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원인을 세 가지로 꼽는다. 그것은 경쟁, 유보, 허영이다. 경쟁은 자명하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생존이 걸린 자원을 획득하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자원을 획득할 방법이 없다면 우리는 최대한 많이 가지려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572 유보 혹은 상호 공포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이것은 20세기 국제관계 이론가들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홉스를 재발견한 이유와 직접 연관된다. 홉스의 주장은 사리사욕에 사로 잡혀 서로 죽일 수도 있는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이 논리적으로 폭력을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제13장. 존 로크와 혁명
609 로크에 의하면 정치 권력은 인간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가 말하는 재산이란 생명, 자유, 토지를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재산'을 '생명, 자유, 토지'보다는 좁은 의미로 사용하지만, 로크는 습관적으로 재산이라는 용어를 현대적이고 좁은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정부가 보호해야 할 '모든 외부 재화'를 포괄하는 전통적이고 폭넓은 의미에서도 사용한다. 정부는 국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권리를 가진 사람은 정부의 보호를 받을만한 소유물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보호받을 '재산'을 가진 셈이다.
635 어쨌든 누구도 제정신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절대적이고 전제적인 권리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어떤 집단도 정부에 그런 권력을 부여 할 수는 없다. 로크가 전반적으로 의지하는 사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떤 개인이나 기관도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리만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존엄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다른 사람들을 방어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고를 합치면 제한정부 이론이 성립한다.
639 로크는 동의를 의무와 연결시키고자 했는데, 그것은 단지 제도의 전통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게하면 누가 무엇에 동의했느냐는 문제가 생겨난다. 한 정부의 치하에 사는 사람이 그 정부에 대해지고 있는 다양한 의무들을 구분하기 위해 로크는 '명시적' 동의와 '암묵적' 동의를 구분한다.
639 로크에 의하면 우리가 현재의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어도 아무런 이의 없이 정부가 주는 혜택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고, 부모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게 해주는 등 정부의 혜택을 누린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현재의 정부에 복종하는 데 동의한다는 전제를 가능케 한다.
654 홉스와 달리 로크는 폭정에 대해, 그것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군주정에 불과한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폭정은 어떤 성격의 정부든 온당한 경계를 넘어설 때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크는 우리가 시민 사회로 들어 설 때 자연법에 따라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우리의 삶을 영위할 자연적 자유를 포기했다는 견해를 취했다.
제14장. 공화주의
685 가장 자연스러운 공화정의 형태는 민주 공화정 혹은 적어도 대중적 공화정이다. 그 사상은 이렇다. 공화정에서는 국민이 주권자다. 매우 작고 단순한 공화정의 국민은 대표 없이 직접 자치한다. 어떤 경우든 공화정은 국민 주권으로 정의된다.
685 헌법의 지배를 받고 일관적으로 공익을 추구하는 국가는 설령 행정 권력이 군주의 수중에 있다 해도 공화국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만약 국민이 스스로의 동의에 의해 형성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배를 받는 국가가 있다면. 그것은 곧 레스 푸블리카 res publica, 즉 공적인 것,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다.
689동의에 의한 정부는 민주주의 ━ 대의제든 의회 민주주의든 ━ 여야만 한다는 생각은 근대적 관념이다. 실제로 우리가 접하게 될 여러 가지 논의들 중 하나는 홉스와 로크의 '소극적' 자유가 근대 사회들이 바랄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자유의 형태라고 가정하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누구나 부당한 대우를 모면할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이 지배되는 방식에 관해 실질적인 발언권을 가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해당한다.
제15장. 루소
731 루소는 무엇보다 군중이 어떻게 국민을 형성하느냐가 중요한 질문이라고 대답한다. 국민이 되는 것은 자연의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단일한 국민이 되겠다는 동의에서만 생겨난다. 예전에 로크가 그랬듯이 루소는 우리가 더 이상 자연법으로만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 '불편'이 우리로 하여금 시민 사회를 만들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권리의 기반은 동의여야 한다. 정치적 권리는 협정으로 생겨난다. 그 동의는 매우 힘든 구속에 종속된다.
744 『사회 계약론』에서 루소는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문제와 씨름했다. 첫째는 그 책의 도입부에서부터 제기되는데, 정치권력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우리는 앞서 그 답을 본 바 있다. 우리가 사회계약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배를 받는다고 믿는 정치권력이라면, 또 그것이 일반 의지를 담고 있다면, 우리는 적법한 국가의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다.
제16장. 미국 건국
792 미국 정치체제의 새로운 점은 대의제는 인민이 대표자들을 통해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이라는 발상이었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였다. 대의민주주의는 미국이 성취한 것으로서 폴리비오스 모델에 따른 단순한 혼합정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이었다. 그러나 대의제야말로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특징이었다.
793 대표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똑똑할 개연성이 높지만 탁월한 미덕의 소유자일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매디슨은 그런 점이 바로 대규모 공화국의 강점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통치의 모든 부문에 필요한 인재 풀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대의제의 요체는 모든 합리적인 관점들을 공정하게 들어줄 수 있을 만큼 크되 너무 커서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닌 규모의 토론실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제17장. 프랑스혁명과 그 비평가들
806 프랑스혁명은 출발부터 지적인 논쟁을 촉발했고, 정치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 불허였다. 런던의 군중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1688년의 명예혁명이나 독립전쟁 성격이 강한 미국혁명과 달리 프랑스혁명은 파리 군중의 폭동으로 시작됐고, 진행 과정에서 군중의 활동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말할 필요도 없이, 프랑스혁명 지도부 가운데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하층계급 출신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부르주아지 출신으로 스스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호랑이 등에 올라타 위태로운 게임을 벌였다.
807 프랑스 혁명이 시작 됐을 때 그 목표는 영국과 미국의 선례를 따라 잡자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프랑스혁명은 점차 유토피아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자유, 평등, 박애 (형제애)'라고 하는 프랑스혁명의 모토만 놓고 보면, 이후 계급전쟁이 치열해지고 경찰 끄나풀들이 준동을 하고 단두대(기요틴)가 쉴 날 없는 아수라장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 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혁명가들은 매디슨이 우려했던 바, '주권을 가진 인민은 그들이 쫓아 낸 군주들보다 더 약하게 굴 수 있다'는 것을 사실로 보여주었다.
제18장. 헤겔: 근대국가-정신의 구현
910 그는 독일의 봉건질서가 종식되기를 열망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옹호했고, 국교회의 존재를 거부했다. 반면에 보수적인 요소도 존재한다. 그는 민주주의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진리는 전체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확신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아슬아슬함보다는 현 상태의 우위를 강조하게 된다. 또 그처럼 실질적 계급 내지는 농업적 생활 방식에 우호적인 인물이 근대화를 열렬히 옹호하기는 어렵다. 생시몽과 마찬가지로 헤겔은 합리적 행정을 중시했고, 일상적인 의미의 정치의 역할을 낮게 봤다. 헤겔에게서 자유주의적 요소와 보수적 요소의 긴장이 더욱 커지는 이유는 근대인 의사를 강조하는 동시에 질서도 중시하기 때문이다.
제19장. 공리주의: 제러미 벤담, 제임스 밀, 존 스튜어트 밀
941 자유론에서 특히 눈에 띄는 발상은 우리가 획일적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라게 되면 여론을 내면화한다는 대목이다. 획일적 민주주의는 잔인하지도 폭압적이지도, 우리가 익히 아는 방식의 편견에 사로 잡혀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차단한다. 당당히 발언하고 싶은, 또는 머릿속이라는 사적 공간에서나마 이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에도 우리는 뒷걸음질하게 된다.
942 밀도 토크빌도 민주주의의 정치적 장치와 획일주의 내지 순응주의적 문화를 단순하게 바로 연결 짓지는 않는다. 두 사람 다 그 어떤 의견도 억압당하지 않는 다원적 자유주의를 소망했다. 두 사람 다 근대 민주주의는 획일주의 내지 순응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그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작은 도시 국가라는 상황, 그리고 명성과 영광을 놓고 경쟁하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뚜렷한 주관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남과 다르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에 근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사회적 삶의 경제적 토대가 많은 사람들을 비슷한 조건에 놓이게 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경제적 이익을 놓고는 다툼을 벌일 수 있지만 전반적인 조건이 유사함으로 말미암아 의견이 획일화되는 것이다.
제20장. 토크빌과 민주주의
982 진정한 인민의 지배는 1권의 한 장을 차지하는 주제다. 1권 2부의 맨 앞에 놓인 이 장은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공직이 선출직일뿐 아니라 1년 내지 2년에 한 번씩 다시 선거를 통과해야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입법부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심급의 판사들과 거의 모든 자리의 고위급 행정관도 거의 지속적으로 인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세습 왕권, 종신직 상원 의원, 대단히 제한적인 유권자층, 왕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제에 소속된 판사 등등에 익숙한 프랑스인에게 미국의 제도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983 토크빌은 다수란 국가의 공동선을 진정으로 원하는 평화적인 대다수 시민이라고 말함으로써 다수의 지배가 독재로 변질될 수 있다는 불안을 걷어내지만 불안은 잠시 뒷전으로 밀렸을 뿐이다. 다수는 국가의 공동선을 원하는 평화적인 시민으로 구성돼 있지만 무소불위한 존재이며 다수의 횡포를 막아 낼 수 있는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994 토크빌은 미국의 문화적 삶에 대해 거리낌없이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민주주의 체제는 고급 문화를 산출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고 미국의 삶이 활기는 넘치지 만 단조롭다고 봤다. 미국을 방문한 유럽인들은 대부분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토크빌은 미국 정치인들의 수사적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또 미국인들은 실생활면에서 데카르트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위대한 철학자를 배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봤다. 물론 이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찰스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같은 걸출한 철학자가 배출됐다. 미국 독자들은 토크빌의 이런 무시에 개의치 않는다. 미국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개인주의에 대한 논의다. 토크빌은 평등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자유보다는 평등을 더 갈망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제21장. 카를 마르크스
1016 마르크스는 방대한 분량의 글을 썼지만 정치 이론의 이슈들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정치권력을 설명하는 이론도 없다. 물론 지배자가 피지배자들을 어떻게 골탕 먹이는 지에 대한 흥미로운 발상을 설명한 부분은 있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사회주의하에서 의사 결정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소멸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시민에 대한 이론이 필요치 않았다. 법률도 국가와 더불어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법의 지배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었다.
1058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마르크스가 구상하는 바로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작동하는 민주주의적 통치형태다.
1058 새로 들어선 지배계급이 복속된 계급을 지배하는 과거의 체제들과 달리 프롤레타리아는 계급을 완전히 폐기하고자 한다. 그 방법은 사회주의를 가동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기하고 사회적 소유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모든 계급이 폐기된다. 이후 어떠한 형태의 사회적 조직화가 이루어지든 그것은 엄밀히 말해 국가는 아니다.
제2부 마르크스 이후의 세계
제22장. 20세기 그리고 그 너머
1078 20세기의 주된 불안감은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보전할 수 있느냐였다. 그래서 많은 사상가들은 안정을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은 정치에서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역할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수한 형태의 민주주의(직접 민주주의)를 너무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위험성이 있었다. 약간 달리 표현하면, '순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이웃들끼리 공동체의 문제를 토론하는 제퍼슨식 소공화국이 아니라 독재자들이 군중을 자극해 자신의 적들을 광적으로 증오하게 만드는 1930년대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 대회 같은 것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라는 우려였다. 이것이 바로 '대중사회'에 대한 가장 심각한 형태의 두려움이다.
1081 현대사회는 개성이 발양되기에는 대단히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는 우려다. 이런 생각은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 연원을 두고 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 체제 속의 인간은 군중 속으로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체제 속의 인간은 도덕적, 정치적 행동이나 사고 면에서 자기 주변 사람들을 모방한다. 모방의 대상인 사람들 역시 자기 주변 사람들을 모방한다. 여기서 예상되는 것은 광범위한 의미에서 문화적, 정치적, 정신적, 심리적 파탄이었다. 토크빌은 군사 독재가 미국에서도 등장할지 모른다고 우려했지만 더더욱 우려한 것은 '조용한 독재' 즉 개인들이 내면으로 숨어들고 공적인 영역은 외면함으로써 책임지지 않는 정부가 사회의 주요 문제들을 전담 관리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제23장. 제국과 제국주의
1112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이 식민지와 무역 거점을 건설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영토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면서 선진국은 후진국 종족들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새로운 개념도 등장했다. 그중 일부는 19세기에 '과학적' 인종주의로 발전했고, 일부는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설파한 정치에 적합한 종족 집단이 있고 노예 상태에 있어 마땅한 종족 집단이 있다는 인종차별 논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종족적 차원에서 또는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차원에서 제국을 정당화한 논리 가운데 일부는 종교적 관점에서 이교도 인디언들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한 스페인식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기도 했다. 반면에 종교와는 무관한 제국주의 논리도 있었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인종주의적 시각이 큰 힘을 얻었다. 과거에는 멀리있는 야만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시도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백인의 책무'로 발전했다. 이런 생각은 당대에는 상식이었다.
1131 문명인과 비문명인 구별의 현대판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문명화되지 않은 종족들에게 문명화의 축복을 베풀 권리 내지는 의무가 있다는 식의 관념이다. 그런 축복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최소한 기독교 국가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인식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 나아가 원주민들을 인류애와 합법성이라는 문명의 기준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원주민들을 검은 피부의 유럽인으로 탈바꿈시켜 유럽의 문화와 유럽의 정치 이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제국을 원주민을 문명화시키는 도구로 정당화하는 관념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제24장. 사회주의들
1198 사회주의자들의 소망의 대부분은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복지국가의 자본주의가 19세기에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그리고 1950년이 전에는 극소수만이 가능하다고 봤던 일정 수준의 번영과 안보는 물론이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세기 말의 산업사회는 19세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모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정보가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1200 기술의 변화, 생산성 향상으로 확보된 여가, 노조의 기업 관리체제 변혁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한 효과를 낳고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회에서, 또 동일한 사회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다양한 취향이 최대한 발현되는 것이 자본 소유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보다 훨씬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1200 어쨌거나 사회주의적 열망의 중요한 한 가지는 그 수명을 다했다. 생산수단의 공적 소유 및 분배가 번영에 불가결한 요소라는 믿음, 그리고 작업장을 인도적이고 재미있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던 시도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해사 현재의 유럽, 중국, 또는 미국식 자본주의 역사가 역사의 종언 상태라는 의미는 아니다.
제25장. 마르크스주의, 파시즘, 독재
1202 '전체주의'는 항상 인용부호가 많이 따라다니는 단어로서 '독재, 일당 지배, 정치적 반대파를 포함해 모든 적에 대한 조직적 폭력 행사, 국가 테러를 일상적 통치 도구로 동원하는 행위, 지배 정당이 창설·운영하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조직과 기관에 대한 파괴 또는 어용화 작업,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는 선을 조직적으로 흐려버리는 행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한 정치 엘리트의 총체적 통제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일련의 정치 현상'을 간단히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해야 한다. 인용부호는 전체주의라는 개념이 소비에트 체제와 나치 체제에 공통되는 특징을 뽑아 낸 것이라는 지난 세기의 관념에 대한 그리고 전체주의 개념을 다른 맥락에서 오용하는 데 대한 우려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1207 대중의 폭발은 자유주의 내지는 민주주의 체제를 끝장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전쟁의 결과로 말미암아 모든 형태의 권위가 붕괴된 데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주의 체제에서 대중은 엘리트들에게 완전히 장악된다. 전체주의는 대중사회의 한 현상이다. 그러나 대중은 전체주의국가에서 자율적인 역할을 갖지 못한다. 이탈리아 파시즘을 철학적으로 옹호한 조반니 젠틸레를 제외하고 전체주의를 설명하는 논자들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은 엘리트들이 마음대로 주무르는 소재라고 지적한다. 그들을 전투부대로 가공해 조종하는 것은 개별 지도자 또는 당이다.
제26장. 현대 세계의 민주주의
1249 자유민주주의는 비전제적이고 자유로우며 대중적인 혼합 정체이다. '비전제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다수의 권력이 절대적이지 않고 헌법의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대중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정부가 대중 일반에게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또 '혼합정체'라고 하는 것은 일인의 지배 소수의 지배, 다수의 지배를 대통령이나 총리가 이끄는 행정부, 수백 명으로 구성된 의회와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적극적인 주도권은 허용되지 않는다. 유권자의 권력은 통치자들을 퇴출시킬 수 있는 힘이고, 그 영향력은 통치자들이 유권자가 퇴출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나온다.
1285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는 민주주의를 다수결에 의한 통치로 정의하고 다수가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하는 방법들을 찾았다. 롤스에게, 그리고 특히 그의 추종자들에게 권리를 침해하는 투표는 아예 투표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사상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수의 권리와 소수의 권리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하려고 할 따름이다. 권리를 침해하는 투표는 민주적인 투표가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호칭에 걸맞은 유일한 형태의 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다. 왜냐하면 투표는 만인의 동등한 자유를 존중한다는 조건 하에서 행사되는 경우에만 존중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라고 칭하는 이유는 만인의 표가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흑백 인종 분리나 소수 유대인 박해를 찬성하는 투표는 '민주적'이라고 일컬을 수 없다. 전체 주민의 90 퍼센트가 10퍼센트의 유대인을 박해하는 데 찬성하는 투표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민주적인 투표가 아니다.
제27장. 세계 평화와 인류의 미래
1302 최근 200년 동안 제도권 교회의 입지가 약했고, 계속 약해져 온 영국 같은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신앙의 제도적 대용품이라고 할 만 한 것이 발전되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그런 수요도 없었다. 시민들은 선동가들에게 현혹되지도 않았고, 위험한 기획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유별나게 스스로에 만족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전통적인 종교적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면 시민들은 즉각 파시즘이나 그와 유사한 이데올로기에 현혹될 것이라는 생각은 틀렸다. 종교적 신앙이 있다고 해서 그런 신조나 헛소리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사회 전반에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이 없으면 정치적 상식이 잘 통할 것이라는 보장 역시 없다. 핵심은 현대화가 예상과 달리 종교적 신념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학적 신념과 종교적 신앙의 충돌을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철학자들의 추정과 달리,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적 신앙이 형이상학적 확신을 아주 조금만 내포하고 있는 경우에는 과학과 종교의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 점은 그런대로 좋은 소식이지만 현대화가 종교적 신앙의 극렬한 양태를 없애 버릴 것이라는 낙관론도 틀렸음이 입증되고 있다. 종파 분쟁은 여전히 건재하다.
'책 밑줄긋기 > 책 2012-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버트 스펜서: 개인 대 국가 ━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0) | 2018.12.09 |
---|---|
미조구치 유조, 이케다 도모히사, 고지마 쓰요시 :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0) | 2018.12.02 |
셰익스피어: 폭풍우 (0) | 2018.11.29 |
뤼시앵 페브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0) | 2018.11.25 |
댄 스미스: 인문세계지도 ━ 지금의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 트렌드 45 (0) | 2018.11.16 |
브루스 손턴: 고전학 공부의 기초 ━ 서구 문명의 뿌리를 이해하는 법 (0) | 2018.11.14 |
알렉시스 드 토크빌: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2 (0) | 2018.11.09 |
알렉시스 드 토크빌: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1 (0) | 2018.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