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중국 불경의 탄생 ━ 인도 불경의 번역과 두 문화의 만남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9. 1. 27.
중국 불경의 탄생 - 이종철 지음/창비 |
이종철: 중국 불경의 탄생 ━ 인도 불경의 번역과 두 문화의 만남
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 | 21세기에 다시 쓴 간행사
책머리에 | 동아시아의 문화적 용광로, 한역불전
제1장 중국 역경사의 거시적 소묘
제2장 중국 역경사의 명장면
제3장 중국 역경사의 여적(餘適) 1: 인도불전과 한역 사이에서
제4장 중국 역경사의 여적(餘適) 2
맺음말
책머리에 | 동아시아의 문화적 용광로, 한역불전
20 인도불전의 역경사는 통상 구마라집과 현장을 분기점으로 삼아, 구마라집 이전의 한역을 '고역', 구마라집 이후 현장 이전의 한역을 '구역', 현장 이후의 한역을 '신역'으로 통칭한다. 고역과 구역의 차이에 관해서는 승우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즉 고역은 번역자가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 양자 가운데 어느 한쪽에만 밝았거나 둘 다 어두웠기 때문에 산스크리트어 원문의 의미가 중국어 번역문에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에 비해 구마라집 이후의 구역은 번역자 자신이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 양자에 밝아 인도불전의 오의를 중국인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스 언어와 타깃 언어 양자에 대한 습속도가 양질의 번역을 낳는다는,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평가인 셈이다.
24 이러한 번역 사례는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이, 지루가참이 속해 있던 위진시대에 활발히 논의됐던 노장사상의 일환인 현학(노자나 장자가 말하는 無를 세계의 근원이자 도의 근본으로 여기는 사상)을 통해 걸러져, 당시의 중국 독서인층에게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번역은 원문의 '일차적 해석'이다. 고역시대에 빈번하게 채택되는 번역어 가운데 노장사상의 전문술어가 많다는 사실은, 중국문화가 노장사상의 세계지평에 의거해서 인도불전의 세계관에 접근하는 해석학적 이해의 기틀을 이미 마련하고 있었다는 상황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제1장 중국 역경사의 거시적 소묘
27 구마라집이 대승경전과 중관사상 논서를 '문질빈빈'의 이상적인 한문 문장으로 번역해낸 이후, 그 이전의 번역문을 둘러싼 갈등 곧 내용이 우선이냐 형식이 우선이냐 하는 갈등은 멈추게 되고, 내용과 형식을 다 충족시킬 수 있는 번역문의 한 모델이 비로소 중국 문화계에 등장하게 된다.
30 현장이 산스크리트어 원문의 직역 가능성에 대해서 아무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지만 역경작업에 임할 때, 현장은 구마라집과는 달리 상당히 기술적인 접근방식을 택한다. 후대에 '오종불번(五種不翻)'으로 통칭하게 되는 번역방식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오종불번’이란, 산스크리트어 그대로 음역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5가지 유형의 어휘를 말한다. 현장은 이들 5가지 유형의 산스크리트어 어휘를 변별해냄으로써 이를 번역하지 않고 음역으로 남겨놓는 번역 원칙을 자신이 주관하는 역장에서 적용하였다.
제2장 중국 역경사의 명장면
39 한역대장경 성립의 역사를 놓고 보면 사정은 정반대로, '불타'라는 번역어가 쓰이게 되는 것은 현장 전후에서나 있는 일이고 현장 이전에는 '불'이 '붓다'의 역어로 쓰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붓다'(buddha)의 음역은 '불(佛)→불타(佛陀)'의 시간적 순서를 밟아나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역 불은 또다른 한역 '불타'의 준말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독립적인 음역으로 볼 수밖에 없다. 상식의 허를 찌르는 이러한 시실의 배후에는 중앙아시아 언어라는 변수가 숨어 있다.
39 불교전래 초기에 불교는 인도에서 곧바로 중국으로 들어가지 않고 언제나 중앙아시아를 경유해서 들어갔다. 이러한 불교전래 과정을 역사언어학적으로 응용하여, 중국의 학자 계선림은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가 중앙아시아의 토카라어에서 '붓'(but) 이 되고, 이 토카라어 '붓'이 '부도(浮屠)' '부도(浮圖)' '불(佛)' 등 다양한 음역으로 번역되다가 마지막에 '불(佛)'로 정착하게 된디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이 가설은 현재 학계에서 가장 설득력이 높은 탁견으로 인정받아 거의 정설로까지 굳어지고 있다.
40 부처님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가 '불'로 정착하게 되는 과정과는 달리, 봇다가 깨달은 진리 또는 '진리'라는 뜻 말고도 '존재' '현상' '교설' '속성' 등 다양한 뜻이 들어 있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는 한역 초기부터 줄곧 '법(法)'으로 의역되어 번역자마다 번역어를 달리하는 혼선을 피할 수 있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중국에서 최고(最古)의 역경가로 손꼽히는 후한(後漢)의 안세고 때부터 '다르마'를 거의 한결같이 '법'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르마'의 역어로 ‘법’을 배당하는 일은 중국인들의 어휘체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41 이미 형성되어 있던 '법' 개념의 토대 위에서 '다르마'의 역어로 '법'을 할당한 뒤, 중국인들의 사유체계 안에서 '법'은 새로운 의미내용을 지닌 말로 탈바꿈한다. 이제 '법'은 윤리적 본보기만을 뜻하는 딱딱한 말이 아니라 산스크리트어 '다르마'가 지녔던 철학적·종교적 의미까지도 아울러 포괄하는 새로운 말로 거듭나는 것이다.
42 '불(佛)'과 마찬가지로 번역어 '승(僧)'도 '승가'의 줄임말이 아니고 산스크리트어 '상가'의 또 다른 역어인 셈이다. 현재 '승가'라는 음역이 '승'과 함께 쓰이고 있는 것은 현장이 '승가'라고 번역한 데 그 연원이 있다.
43 산스크리트어 '상가'가 중국에서 '승'으로 번역된 이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점차로 인원수에 관계없이 한 사람의 출가수행자라도 모두 '승'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승'의 용례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스님'의 직접적인 어원에 해당한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이러한 '승'의 의미변화를 통해서 집단과 개인을 동일시하는 동아시아의 공동체 위주의 문화양상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65 '공'과 '무'의 명석판명한 구분법에 의거해서 육가칠종의 백가쟁명 시대를 수습한 인물은 구마라집 및 그의 제자 승조이다. 구마라집은 대소품 『반야경』을 다시 번역했을 뿐 아니라 『반야경』에 대한 주석서 『대지도론』을 번역하였다. 게다가 『중론』, 『백론』, 『십이문론』 등 반야경의 공서상을 철학적으로 심도있게 다룬 논서를 번역하여, '본말', '유무'와 같은 위진현학의 중심 문제를 불교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망할 수 있도록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구마라집은 위진현학의 '무'에 '필경공'을 대치시켜 '공성'을 실체시 하려는 모든 견해를 차단함으로써 '무' 또는 '본무'라는 역어가 지녔던 본체론적 냄새를 말끔히 제거하였다. 구마라집의 용어 사용법에서 '무'는 '무자성(無自性)'의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유와 무는 불교적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되어 더 이상 위진현학처럼 대립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산스크리트어 '슈니야'(sunya/sunyata)가 '무(無)'에서 '공(空)'으로 정착되기까지 지참과 구마라집의 연대를 계산해보면, 2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 셈이다.
85 그 결과, 수많은 중국인 제자의 조력을 받으며 후세에까지 그 영향력이 시들지 않는 수많은 번역어가 동아시아 사회에 정착하게 된다. '공(空)'이란 번역어가 실질적으로 확정된 것도 구마라집 때이며, '열반'이란 말이 산스크리트어 '니르와나'(nirvana)의 역어로 정착된 것도 구마라집에 이르러서이다. 중요한 대승경전은 대부분 그 이전의 역본과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세심하게 다시 번역하였고, 『중론』 『백론』 동 중관 논서 등도 초고본을 만든 뒤 이를 토대로 몇 년에 걸쳐 다시 점검하면서 최종본을 확정짓는 등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요즘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부 번역작업과 대비해보면 후인을 깨우쳐주는 바 크다.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지주 독송하는 경전 가운데 『관음경』 『아미타경』 『금강경』 『법화경』이 있는데, 이 모두가 구마라집이 번역한 역본이니 구라마집의 한역이 동아시아 불교계에 끼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하다.
116 '알라야'는 곳간이나 저장소를 뜻하고, '식'은 인식 또는 마음을 뜻한다. 따라서 '알라야식'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의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현상들이 그것으로부터 나와서 다시 그 안으로 되돌아가 차곡차곡 저장되는, 마치 지하저장고와 같은 '심층마음'을 가리킨다.
118 수·당시대에 이르면 현대의 우리에게도 낯익은 몇 가지 불교계의 풍경이 눈에 띈다. 그중에 두 가지만 추려보자. 첫째, 사찰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추세가 경해지면서 불교계에도 유교의 종법(宗法)질서와 비슷한 사찰 운영방식이 출현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스승이 제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단지 사찰의 물질적 자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신적 자산 곧 사찰의 대표간판 격인 불교학설까지도 고스란히 제자로 전해지며 이는 다시 손제자로 전승되는 새로운 정신적 위계질서가 불교계의 전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118 남북조시대까지는 한 사원이 불교의 다양한 사상유파 가운데 어떤 한가지 학설만을 계승한다는 그러한 학설상의 '전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 사원의 주지는 꼭 정해진 어느 한가지 학계에 속할 필요는 없었으며 따라서 한 사원의 정신적 풍토는 불교계의 다양한 사상에 대해서 비교적 '열린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수·당 시대에 대두하는 전문화의 노정은 이전의 사상적 다양성을 약화시키며 상대적으로 '닫힌 체제'로 향하였다. 이리하여 이른바 '종파(宗派)'가 출현하게 되니 천태종·화엄종·법상종·선종 등의 종파와, 그를 계승·선양하는 전문사찰이 바로 이 수·당시대에 형성된다.
119 종파의 대두와도 연관되는 현상이겠지만, 경제적·정신적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수·당 불교계는 인도불교의 산스크리트어 원전에 대한 태도 및 역경작업에 대한 태도에 큰 변화를 보인다. 곧 인도불전의 원래의 의미를 깊이 좀더 깊이 끝없이 캐묻는 모범생적인 태도보다는 이미 중국어로 번역된 불전에 대해서 중국어로 주석하거나 해석하면서 나름대로 이해한 바를 저서의 형태로 당시의 중국 지식인층에게 묻는 도전적인 태도로 바뀐다. 강하게 말하면 인도불전을 땅 속에 묻고 가능한 한 중국의 번역불전에만 의존해서 불교적 사유를 개진하려는 시도가 수·당 불교계에서는 지배적인 흐름이었다.
120 수·당시대 역경사에서 가장 걸출한 업적을 남긴 이는 현장이다. 중국의 '4대 역경가' 가운데에서도 현장의 역경작업은 그 질과 양 모두 단연코 수위에 꼽힌다. 일반적으로 구마라집이 74부 384권, 진제가 49부 142권, 불공이 111부 143권을 번역했다고 하는데, 현장은 75부 1,335권을 번역했다고 하니, 역경분량만 놓고 보더라도 다른 세 사람의 것을 전부 합쳐도 현장의 성과에는 반도 못 미친다.
120 현장은 다른 역경가와는 달리 중국인이었고 게다가 17년간에 걸친 긴 인도 유학기간 동안 산스크리트어 및 인도불교의 교의에 정통했기 때문에 다른 역경가에 비해서 역경가로서의 월등한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122 현장이 당나라의 수도이자 당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던 장안에 입성한 것은 625년, 그의 나이 26살 때이다. 장안은 당시 세계적인 무역거점 가운데 하나였으며 씰크로드의 기점이자 종착지였다.
제4장 중국 역경사의 여적(餘適) 2
186 한편, 서양철학사의 굵직한 흐름 가운데 하나인 현상-본질 구도에 입각해서 현상 저 너머에 또는 현상 저 안에 불변의 실체로서 도사리고 있는 존재론적 본질을 상정하는 태도도 있을 수 있겠다. 우리는 현상의 배후에 존재론적 본질을 상정하는 사유경향을 한 묶음으로 통틀어서 '실체적 사고' 또는 '기체 중심주의'라 명명해볼 수 있을 것이고 이와 같은 사유경향을 고수하는 입장을 '본질주의자'로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사상에서는 법(法)의 세계, 곧 존재론적 본질이 없는 현상의 세계만을 이 세계의 전부로 제시한다. 이는 다르마 세계를 넘어 그 어떠한 초월적 실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사상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승불교의 공사상에서 이 무아사상이 인식론적·존재론적으로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187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는 『중론송』 귀경게에서 '희론적멸'로 수식되듯이, 현상에 존재론적 본질(自性)에 내재돼 있다고 보는 본질주의적 접근방식이 철저히 차단되는 뭇 현상간의 인과관계 그 자체이다. 이 점에서 '연생법'과 '연기'는 엄연히 구별된다. 연기를 '인과관계'라 할 수 있다면 연생법 곧 인과관계 속에서 생멸하는 뭇 현상은 '관계 내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성(空性, sunyata)'은 현상에 존재론적인 본질이 없다는 사태를 기술하는 말로 뭇 존재에는 자성이 없다는 언명인 '제법무자성(諸法無自性)'과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연기=공성'은 '인과관계는 존재론적 본질이 차단된 경지에서 성립한'다는 언명이 되며, 이를 현상에 적용해서 말한다면, '인연에 따라 생긴 현상에는 존재론적 본질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189 공사상은 전형적으로 "a 에 b가 없다"(a: 연생법, b: 自性)는 문장표현을 취한다. "책상이 공하다"는 말은 '책상에 존재론적 본질이 없다'는 뜻이지 '책상
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책상이 있다"고 할 때, 그 말은 '책상이 연생법으로서 있다'는 뜻이지, '책상이 존재론적 본질을 지니고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공'을 과대적용하여 현상 자체까지도 부정해버린다면, 이는 무변(無邊) 또는 단변(斷邊)이라는 극단에 빠지고, '있다'는 말을 과대적용하여 존재론적 본질까지도 있다고 하면, 이는 유변(有邊) 또는 상변(常邊)이라는 극단에 빠진다. 유변과 무변이라는 양극단을 여윈 자리, 이 자리를 나가르주나는 '중도'(中道, madhyamapratipat)'라 언명한다.
195 여기서 공(空)과 유(有)가 공존 가능한 것은 공=무자성과 현상적 유(有)가 배타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의 공사상은, 현상적 유의 배후에 존재론적인 본질 또는 형이상학적인 실체를 또다시 상정하는 것을 유변(有邊) 또는 상견(常見)이라 부정하며, 또한 존재론적 본질이 없다고 해서 현상적 유{有)마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적 시각을 무변(無邊) 또는 단견(斷見)이라고 부정한다. 따라서 존재론적 본질이 전제되지 않은 현상적 유를 말하는 점에서, 공(空)과 유(有)는 양립해도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
맺음말
218 번역은, 번역자가 타깃 언어(target language)의 의미의 그물망을 순순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신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슈니아/슈니야따'는 일차적으로 중국어의 '무(無)'의 의미장으로 편입된다. 이는 중국의 번역자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해석학적 지평에서 나온 번역이기 때문에 이때의 번역은 번역자의 '일차적 해석'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라는 번역어를 '슈니에/슈니야따'가 쓰려고 있는 원래의 문화적인 컨텍스트와 다시 대조해볼 때, 또다시 인도문화와 대화를 시도할 때, 번역자는 무의 그물망을 비켜가는 소스 언어(source language)의 중충적 의미장을 깨닫게 된다. 이제 번역자는 기존의 무란 번역어를 버리고 기존의 의미의 그물망에서는 그물코의 역할도 수행할 수 없었던 '공(空)'을 새로운 번역어로 배당하여 기존의 의미의 그물망을 늘려나간다. '공'은 재편된 의미의 그물망에서 새로운 그물코로 자리잡으며, 더불어 기존의 해석학적 지평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인도문화의 '슈니야/슈니야따'는 새로운 해석학적 지평을 통해 공이란 '이차적 해석'을 얻게 되는 것이다.
218 인도불교의 전문술어가 거듭된 번역·재해석 과정을 겪으며 중국인의 언어망으로 편입되자, 이제 중국인은 원전을 팽개친다. 이제 인도불교 용어는 더 이상 인도문화의 전유물이 아니며, 번역어가 풍기는 생경한 냄새는 가신 지 오래다. 중국인은 이 단계에서 또다시 3차, 4차에 걸친 재해석을 하며, 당대 이후 세차게 전개되는 이른바 '종파불교(宗派佛敎)'에서 보듯이, '중국적 불교'를 형성해나간다. 삼론종(三論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등이 그 도정에 자리잡고 인도와 중국의 절충을 꾀해보기는 하지만 결국은 중국식 종교개혁의 산물인 선불교가 중국불교의 마지막 종착역이 된다.
220 결국 우리는 객관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서, 객관성을 베일에 가려버리고 있는 의미의 그물망, 곧 언어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의 언어상 그 어떤 차이점이 '완전한'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론으로 다음과 같은 작업가설을 제시할 수 있겠다.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를 대조해볼 때, 중국어가 이미지 언어(image-oriented language)의 성격이 강하다면, 산스크리트어는 개념 언어(concept-oriented language)의 성격이 강하다. 인도의 오랜 학문적 전통에서 산스크리트어 문헌을 읽는 기초학문으로 문법학과 논리학을 꼽으며 이를 '두 눈'으로 비유할 정도로 중시했던 데 반해, 한역불전 중 불교논리학 문헌 기운데 한역된 텍스트는 불과 두 권에 불과하고 그나마 별로 읽히지 않았다는 점을 실례로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책 밑줄긋기 > 책 2012-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르치아 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0) | 2019.02.15 |
---|---|
이인호: 하루 한자 공부 ━ 내 삶에 지혜와 통찰을 주는 교양한자 365 (0) | 2019.02.11 |
게리 윌스: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0) | 2019.02.10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0) | 2019.02.07 |
존 도미니크 크로산: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폭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0) | 2019.01.20 |
양자오: 장자를 읽다 ━ 쓸모없음의 쓸모를 생각하는 법 (0) | 2019.01.14 |
고익진: 불교의 체계적 이해 (0) | 2019.01.10 |
현장법사: 반야심경 ━ 불교의 가르침을 가장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260자 경전 (0) | 2019.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