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연표 |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역사연표

1095년11월 27일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원정 계획을 발표하다.
1096년 유럽 각지에서 군중십자군이 일어나다. 이후 천 년간 계속될 서유럽 유대인 학살의 역사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은자 피에르가 이끄는 군중십자군이 니케아 근교에서 전멸.
1097년 1차 십자군의 대규모 침공. 니케아의 함락. 도릴레온에서의 결전. 안티오키아 포위.
1098년 에뎃사에 백작령 설치. 알렉시오스 1세와의 협약이 깨어지다. 안티오키아와 마라트안누만의 학살. 보에몽이 안티오키아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공국을 설치하다.
1099년6월 15일 예루살렘 함락과 대학살
1100년 예루살렘의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 예루살렘 왕국의 성립
1101년 서유럽에서 온 1101년의 십자군이 전멸당하다. 이제 십자군은 소수의 병력으로 방어를 펼쳐야 한다.
1104년 하란 전투에서 무슬림의 승리. 보에몽의 몰락
1107~8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탈출에 성공한 보에몽은 서유럽에서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여 동방 비잔틴 제국을 침공한다. 두라초 공방전.
1109년 트리폴리 함락. 이로써 4개의 프랑크 식민국가가 형성된다 : 에뎃사 백작령(1097), 안티오키아 공국(1097), 예루살렘 왕국(1100), 트리폴리 백작령(1109).
1111년 바그다드에서의 대규모시위. 민중은 십자군에 대한 반격을 요구한다.
1118년 템플러(성전 기사단)의 창립.
1119년7월 28일 아제르 상귀니스(피의 들판) 전투. 안티오키아의 7천 기사가 전멸하다.
1125~6 년 십자군에 대한 반격을 주도하던 이슬람 지도자들이 암살단 아사신에 의해 암살. 서방의 중동 지배가 기정사실로 보인다.
1127~8 년 이슬람 지도자 장기, 모술과 알렙포를 장악하여 강력한 세력을 형성. 중동에 있던 십자군 식민국가에 큰 위협이 된다.
1130년 안티오키아의 알릭스 공주, 장기와 동맹을 맺고, 아버지 보두앵 2세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키다.
1131년 멜리장드 공주와 위그 드 퓌세의 염문설. 풀크는 예루살렘의 권력을 독점하려 든다. 예루살렘 왕국의 혼란과 위그의 죽음.
1132년 무슬림끼리의 내분에 휘말린 장기는 전투에 패하고 궁지에 몰리지만, 티크리트에서 아이유브와 시르쿠 형제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다. 아이유브 가문이 역사의무대에 등장하다.
1135년 다마스쿠스에서 주무르드 공주의 쿠데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다.
1137~8 년 프랑크 국가들과 동방 비잔틴 제국이 동맹을 맺고 샤이자르를 공격한다. 장기는 정치적, 군사적 수완을 발휘하여, 공격군을 물리치고 동맹을 와해시킨다.
1140년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 왕국의 동맹.
1144년 장기에 의한 에뎃사 백작령 국가(1097~1144)의 멸망. 십자군이 세운 가장 오래된 식민지가 무너지다.
1144~6 년 이슬람에 내한 반격을 주장하며 제2차 십자군의 여론이 형성되다. 성 베르나르두스의 설교.
1145년 사제왕 요한(프레스터 존)에 대한 소문이 서유럽 세계에 널리 퍼지다. 프레스터 존 전설에 따르면 멀리 동아시아(중국)의 기독교 군주인 사제왕 요한이 십자군을 돕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무슬림을 협공하러 오고 있다는 것이다.
1146년 2차 십자군의 침공을 앞둔 시점에서 장기가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다. 그 아들 누레딘(누르 앗 딘)의 권력 승계. 서유럽에서는 엘레오노르 왕비가 문화 부대를 이끌고 제2차 십자군에 참전한다.
1152년 엘레오노르가 남편 루이 7세를 내치고 영국의 헨리 2세와 재혼한다. 훗날 백년전쟁의 씨앗이 된다.
1154년 누레딘, 다마스쿠스를 접수. 서방을 위협하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
1163년 쿠르드 전사 아이유브의 아들인 살라딘(살라흐 앗 딘)이 그의 숙부 시르쿠와 함께 누레딘의 명을 받아 이집트에 파견.
1174년 갈등을 빚던 주군 누레딘의 사망으로, 살라딘은 독자적 세력을 확장한다. 이후 1186년까지 이집트와 시리아 전역을 통일하여 서방 세력을 압도하는 무슬림국가를 형성.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살라딘의 승리. 예루살렘 왕국(1100~1187) 멸망.
1189년 예루살렘을 재정복하기 위한 3차 십자군. 그러나 바르바로사(붉은 수염)라는 별명을 가진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어이없이 사망하여 전력에 타격을 입는다.
1191년 아크레 전투. 엘레오노르가 헨리 2세와 재혼하여 낳은 아들인 사자심왕 리처드가 맹활약한다.
1192년 십자군 지휘부의 내분. 살라딘, 십자군과 화평조약.
1193년 살라딘 사망(55세). 아이유브 술탄국은 권력 승계를 둘러싼 내전으로 혼란.
1194년 사자심왕 리처드가 영국에 귀환하여 동생 존이 빼앗은 왕위를 되찾는다.
1204년 4차 십자군의 탈선. 4차 십자군은 베네치아와 결탁하여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약탈하고 서방의 괴뢰국가를 건설한다.
1209년 알비 십자군이 결성되어 시몬 드 몽포르의 지휘로 서유럽 내에서의 이단 사냥이 자행되다. 같은 해, 프란체스코가 이단 혐의를 받지 않고 교황청의 공인하에 수도회를 결성하다.
1212년 소년 십자군의참극.
1218~9년 우트라 사건으로 분노한 칭기즈 칸, 호라즘을 응징하기 위해 군사를 서방으로 돌리다. 훗날 중동과 유럽을 휩쓰는 몽골 서방 원정의 시작.
1218-21년 5차 십자군의 이집트 침공. 살라딘의 후계자인 알카밀에게 격퇴당하다.
1221년 아시아의 다윗 왕에 대한 소문이 서유럽에 퍼지다. 프레스터 존 전설의 후속편이라꼬도 말할 수 있는 이 전설에 따르면 기독교 군주 다윗 왕이 무슬림을 무찌르며 서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다.
1227년 7~8개 국어에 능통한 시인이자 학자이기도 했던 서방 황제 프리드리히2세가 십자군을 일으키라라는 교황의 명령을 무시하여 파문.
1229년 프리드리히 2세가 평화 외교를 통해 알 카밀로부터 예루살렘을 넘겨받는다. 이때 데려간 병사들이 6차십자군이지만, 실제로는 전투 대신 대화가 있었을 뿐이다.
1239년 프리드리히 2세, 독일에서 군대를 일으켜 이탈리아의 교황을 공격한다.
1244년 예루살렘은 다시 무슬림의 손에 넘어간다.
1248년 성왕 루이의 7차 십자군이 결성되다.
1250년 맘루크(노예 무관)들의 쿠데타. 정권을 장악한 맘루크들온 아이유브 가문의 술탄들보다 더욱 강력한 반서방 노선을 채택한다.
1258년 칭기즈 칸의 손자인 훌라구가 바그다드를 점령한 후 대학살을 저지른다.
1260년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맘루크들이 몽골 기병대를 저지하다.
1261년 동방 비잔틴 제국의 망명정부가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다. 라틴 제국(1204~1261)의 멸망. 그러나 과거의 영화를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1268년 술탄 바이바르스가 몽골과 손을 잡았던 안티오키아를 점령한 후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감행한다. 안티오키아 공국(1007~1268)의 멸망.
1270년 성왕 루이의 8차 십자군.
1289년 트리폴리 백작령(1109~1289)의 멸망.
1291년 아크레 수복. 이로써 200년에 걸친 서방의 식민 통치가 종식되다.

 

출처: 김태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