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연기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 인도철학과 불교


십이연기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 인도철학과 불교


연기설은 경전상에서 '매우 심오한 법', 혹은 '알기 어려운 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우며, 각 지분 사이의 관계 역시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날 일부 학자들은 12연기를 논리적인 상관관계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고래로 일 찰나 중에 이러한 12지가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는 찰나연기설, 12지는 여러 생에 걸쳐 시간을 건너뛰어 상속한다는 것으로, 아득히 먼 과거의 무명과 '행'에 의해 '식' 등의 현생의 결과가 초래되고, 현생의 '유'에 의해 아득히 먼 미래세의 생과 노사가 초래된다는 원속연기설, 12찰나에 걸친 인과상속이라는 연박연기설, 그리고 과거 · 현재 · 미래의 생에 걸친 5온의 상속이라는 분위연기설 등 네 가지 해석이 시도되었다.


그리고 분위연기설이 전통적으로 정설로 인정되어 왔다. 이는 부파불교 시대 가장 유력하였던 부파 중의 하나인 설일체유부의 학설로서, 이에 따라 12연기를 삼세(三世) 양중(兩重)의 인과설로 해석하게 되었다.


여기서 '분위(avastha)'란 상태라는 뜻이다. 즉 12지는 모두 5온을 본질로 하지만 두드러진 상태에 근거하여 각각의 지분의 명칭을 설정하였다. 이를테면 무명이 두드러진 상태의 5온을 '무명'이라 하고, 노사가 두드러진 상태의 5온을 '노사'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12지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무명(無明)이란 무지로서, 과거 생에서 일어난 온갖 번뇌를 말한다. 즉 일체의 번뇌는 무명과 관계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과거 생에서의 온갖 번뇌를 무명이라 이름한 것이다.


(行)이란 무명에 따라 과거 생에서 지은 선악의 온갖 업을 말한다. 앞서 업을 일으키고자 하는 충동력을 '행'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과거생의 업은 이미 결과를 낳은 힘으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행'이라고 하였다. 반대로 현생에서의 업은 아직 결과를 완전히 낳지 않았기 때문에 '행'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무명과 행은 과거 생에서 지은 두 가지 원인이다.


(識)이란 모태 중에 잉태되는 찰나의 5온을 말하는 것으로 이 순간에는 5온 중에 '식'이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것을 일시의 한 갈래로 이름하게 된 것이다. 이는 말하자면 원초적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명색(名色)이란 잉태 이후 6처가 생겨나기 전까지의 5온을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의치와 신처(즉 비물질의 명과 물질의 색)는 이미 생겨나 있으므로 4처가 생겨나기 이전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2처는 명색의 상태에서는 아직 그 작용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6처가 생겨나기 이전을 '명색'이라고 하였다.


6처(處)란 여섯 감관이 생겨나면서부터 감관 · 대상 · 의식이 접촉하기 전까지의 5온의 상태를 말한다.


(觸)이란 감관 · 대상 · 의식이 접촉하고 있을지라도 아직 괴로움이나 즐거움의 지각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의 5온으로, 이는 말하자면 태어나서부터 3~4세까지의 단계이다.


(受)란 괴로움 등의 지각은 생겨났으나 아직 애탐을 일으키지 않은 상태의 5온으로 5~7세로부터 14~15세까지의 단계를 말한다. 그리고 '식'으로부터 '수'에 이르는 5지(支)는 과거 생에 지온 두 원인(즉 무명과 행)에 의해 초래되는 현재 생에서의 결과이다.


(愛)란 의복 등의 물건과 이성(異性)에 대한 갈망(湯愛)이 생겨났지만 아직 널리 추구하지 않은 상태의 5온으로, 16세 이후로부터 성년기에 이르기 전까지의 단계를 말한다.


(取)란 갈망이 증가하여 좋아하는 온갖 물건과 이성에 대해 집착하는 상태의 5온으로, 이는 성년기에 해당한다. 앞의 '애'가 처음으로 일어난 탐이라면, 이는 그것이 강력해진 것으로, 여기에는 물질에 대한 집착 · 견해에 대한 집착 · 종교적 신조에 대한 집착 · 자아에 대한 집착 등 네 가지가 있다. 따라서 '애'와 '취'는 번뇌로서, 사실상 과거 생에서의 무명과 동일한 것이다.


(有)란, 앞의 집착으로 말미암아 짓게 된 업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에 의해 미래존재를 낳게 되기 때문에 '유'라고 하였다. 이같은 의미에서 볼 때, 이것은 과거 생에서의 행'과 그 의미가 동일하다. 생(生)이란 전생의 업 즉 유(有)에 의해 초래되는 미래 생의 첫 찰나의 5온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사실상 현재 생에서의 '식'에 해당한다.


노사(老死)란 태어남과 더불어 이전 생에서 지온 업(즉 '유')에 의해 수동적으로 초래되는 결과로, 그런 점에서 현재 생에서의 명색 · 6처 · 촉 · 수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를 다만 노사라고 이름한 것은, 그것에 대해 기뻐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심의 마음을 낳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12지(支)의 관계를 다시 요약하면 '무명'과 '행'은 과거 생에서 지은 현재 생의 원인이고, '식'에서 '수'에 이르는 5지는 그 결과이며(이상 과거 · 현재의 인과), '애'와 '취'와 '유'는 현재 생에서 짓는 미래 생의 원인이고, '생'과 '노사'는 그 결과이다(이상 현재 · 미래의 인과). 이처럼 설일체유부에서는 12연기설을 삼세에 걸친 양중(兩重) 인과, 다시 말해 시작도 끝도 없는 생사의 윤환적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 일부학자들은 이러한 태생학적인 해석을 통속적인 방편설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12 연기설은 궁극적으로 번뇌와 업과 세계의 관계를 해명하려는 것이었다. 즉 번뇌(무명)에 의해 업(행)이, 업에 의해 현실세계(식 · 명색 · 6처 · 촉 · 수)가 낳아지며, 다시 이를 토대로 번뇌(애 · 취)와 업(유)이 낳아지고, 그것에 의해 미래세계(생 · 노사)가 펼쳐진다. '업과 번뇌가 있기 때문에 괴로움의 세계가 있는 것으로, 업과 번뇌가 생겨났기 때문에 괴로움의 세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불교사상사에서는 이 같은 연기설을 업감연기설이라고 한다.


다시 설일체유부의 논의에 따르면, 불타는 '과거 · 현재 · 미래세에 나는 존재하였던가? (혹은 존재하는가, 존재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았던가? 존재하였다면 어떠한 존재이고,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였던가?'에 대한 유정의 의혹을 제거하기 위해 12연기를 설하였다, 인간의 삶은 과거 생으로부터 현재 생으로, 현재 생에서 다시 미래 생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그것은 영속적이고도 단일한 자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번뇌와 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곧 초기불교에서 세계는 경험된 것, 다시 말해 주체적이고도 능동적인 인간 행위의 소산이다. 그리고 경험 내지 행위의 존재 근거는 자아가 아닌 5온이었고, 12연기는 바로 삼세에 걸친 5온의 상속을 해명하는 것이었다. 이로 볼 때 12연기설은 무아설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권오민: 인도철학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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