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민: 인도철학과 불교


인도철학과 불교 - 10점
권오민 지음/민족사


프롤로그 - 다양성과 통일성

1장 인도철학의 일반적 특성

2장 '우파니샤드'의 철학

3장 '바가바드 기타'의 이념

4장 인도의 반(反) 전통철학

5장 초기불교

6장 아비달마불교

7장 대승불교의 성립

8장 중관

9장 유식

10장 여래장

11장 천태

12장 화엄

13장 선

14장 정토

에필로그 - 숲과 마을




프롤로그 - 다양성과 통일성

7 불교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불타의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된 불교는 결국 ·인간이성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서로 대립하기도 하였고 지양하기도 하였으며 종합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타의 말씀이 그의 깨달음을 근거로 한 가설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말씀이 바로 그의 깨달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던 것인가? 2500년에 걸친 불교사상사는 바로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던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해석의 도정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0 오늘날 불교연구의 주류는 원전중심주의, 문헌실증주의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 자체에 대한 연구라기보다 사실상 불교의 문헌학이다. 이는 물론 불교학의 기초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와 더불어 그것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철학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 또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불교의 목적은 문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반성과 그에 따른 세계에 대한 참다운 인식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자유로이 사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롭고 독립된 사색이 결여될 때 이론적 연구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비판정신에서 비롯된다. 비판이 없는 곳에 주체적 사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4 그렇다면 여기서 여럿(多)은 무엇이고 하나(一)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분과 전체, 개인과 사회 이상의 것이다. 여럿이 차별의 현실이라면, 하나는 통일(무차별)의 이상이다. 찰나의 시간이 지배하는 요란한 세계가 현실이라면, 그 같은 요란함에서 벗어난 절대 영원의 세계가 이상이다. 그런데 그러한 통일의 이상은 네루의 말처럼 외부에서 부여된 어떤 것이 아니라, 단순한 지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 언어나 개념으로 결코 규정할 수 없는 그 어떤 절대적인 것으로, 그것은 말하자면 종교적인 절대이다.


1장 인도철학의 일반적 특성

31 불교를 포함하여 인도철학에서는 에고를 무지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속박과 그에 따른 고통은 어떤 원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본성에 대한 무지(avidya)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지로부터 벗어날 때 일체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그 때 진정한 평화와 환희라 할 수 있는 열반이나 해탈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31 후세에 이르면 또 다른 구원(해탈)의 도가 모색되기도 하지만, 인도철학에서의 구원의 도는 본질적으로 정지(正知)이다. 인도의 거의 모든 철학은 궁극적으로 해탈 자유를 추구한다. 그것은 존재본성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35 인도의 어떠한 철학 종교의 사상도 윤회 전생하는 인간의 괴로운 삶을 규정짓는 일차적 근거는 그 어떤 선험적 원죄가 아니라 무지와 욕망에 기인하는 자신의 행위(業, karma)이다. 그러나 한편 인도의 고전 《바가바드 기타》에 의하는 한, 그것은 당위로서의 인간의무이기도 하다. 그럴 때

최선의 행위라고 하는 것은 자파(自派)에서 통찰되어진 방식대로 행해진 행위이며, 그것에 의해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목적은 달성된다. 다시 말해 철학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그것은 종교가 된다. "브라흐만을 아는 자는 브라흐만이 된다."


35 인도의 저명한 현대 철학자인 라다크리슈난은 말하고 있다. "철학의 사상은 그것이 끝까지 추구될 때 삶이라는 지고(至高)의 테스트를 통하여 영위되고 검증되는 종교가 된다. 철학의 훈련은 동시에 종교적 사명의 완수이다."


37 곧 인도에 있어 종교란 오로지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만 기초한 것도 아니며 — 인도사유에 있어 그것은 깊은 종교적 삶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그것을 포함한 일체의 인간행위, 인간의 삶에 기초한 것이다. 다시 라다크리슈난의 말을 빌리자면, "종교란 학적 추상개념도 아니며, 제사의식만도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삶이자 경험으로, 바로 실재의 본성에 관한 통찰(darsana)이며, 그것으로의 경험(anubhava)인 것이다. 왜냐하면 학적인 지식은 직관에 수반되는 것이고, 종교적 도그마는 경험에 수반되며, 그것에 관한 일체의 언어적 표현은 깨달음에 수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란 존재본성에 대한 통찰과 경험, 그리고 그에 따른 인간의 삶의 방식, 살아가는 길(道)이다. 우리는 적어도 그렇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40 이러한 윤회의 관념은 불교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인도의 보편적 사유였다. 그들온 인생이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은 또 다른 다른 생으로의 시작이며, 생은 또한 죽음으로의 준비기간이다. 이처럼 생과 사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인생을 인도인들은 더없이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윤회하는 삶은 괴롭다. 인도철학은 바로 괴로움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41 무엇이 괴로운가? 욕망과 업에 의해 생과 사를 거치며 반복되는 존재 그 자체가 괴로운 것이다.


51 일찍이 그것을 깨달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리시로 일컬어 지기도 하였고, 불타(Buddha), 지나(Jina)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그들은 괴로움에 대한 강렬한 인식과, 진실에 대한 갈망, 그리고 흔히 요가로 일컬어지는 명상과 고행 등 영적 변화를 초래할 만한 실천적 수단을 통해 '그것'을 통찰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토로하였다 그것은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던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신비적 영감을 통해 체득한 것일 수도 있고, 전적으로 자신의 통찰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다. 전자를 슈루티(sruti)라 하고, 후자를 스므리티(smrti) 라고 한다.


51 인도의 철학은 슈루티 즉 힌두의 가장 오래 되고도 신성한 문헌인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는가에 따라 정통파와 비 정통파, 혹은 유파(有派, astika) 와 무파(無派, nastika)로 나누어진다. 유파에 따르면 《베다》는 진리의 원천이다. 《베다》의 말씀은 합리적인 것이든 비합리적인 것이든 절대 무오류의 진리일 뿐 아니라 일체의 철학적 논의의 진위를 판별하는 결정적 기준이 된다.


52 인도철학 사상사에 등장하는 온갖 종류의 사유체계 중 《베다》의 절대 일원론을 계승하는 베단타(Vedanta)학파와 제사의 탐구를 그들의 중심철학으로 삼는 미맘사 학파, 근본원질과 순수정신이라는 이원의 실재로써 세계를 해석하는 상캬(Sarnkhya) 학파와 그 같은 이원의 실재를 실제로 요가수행을 통해 통찰 분별하려는 요가 학파, 세계를 다윈론적으로 해명하는 바이세시카 학파와 그 같은 다원의 실재에 대한 지적 논리적 방법론을 통해 해탈을 추구하는 느야야 학파가 일반적으로 정통파로 분류된다. 이것이 이른바 '6파철학'이라고 일컬어지는 힌두의 전통철학이다. 이에 반해 불교와 자이나교, 그 밖에 차르바카로 불려지는 일련의 유물론적 경향의 사상들이 비 정통파이다.


53 불타는 다만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행위(업)라는 현실적인 조건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할 때 절대적 인격신에 대한 믿음이 부재하는 불교를 어떻게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서구화주의의 산물이다. 신에 대한 믿음은 깊은 종교적 삶에 필요조건도 아니고 충분조건도 아니다. 종교적 체험은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낳아지는 것이 아니다. 인도사유에 있어 믿음이란 수행 즉 존재본성에 대한 통찰의 결과로서 드러나는 내적 직관적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그것은 분명 절대적 권위에 의탁하여 어떠한 주체적 노력 없이 종교적 위안을 얻으려는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믿음과는 다른 것이다.


56 그들은 스승의 인격에 의지하지 말고, 그 가르침(법 )에 의지하라는 불타의 유훈에 따라 오로지 스승이 남긴 교법을 결집하고, 깊이 연구 해석하여 방대한 논서를 작성하였는데, 그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도 한다.


59 이 같은 힌두이즘에 자극을 받아, 혹은 기존의 아비달마불교에 대한 반발로서 불교 내부에서는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들은 불타 교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열반을 추구하던 기존의 불교를 오로지 자리(自利)만을 추구하는 불교라는 의미에서 '소승'이라 폄칭하고, 스스로의 도를 이타(利他)를 지향하는 대승이라 일컬었다. 그들은 불타가 남긴 교법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불타를 해석하였다. 즉 불타를 불타로서 나타나게 한 이념인 반야바라밀다를 통해 그들도 지금 여기서 위없이 높은 깨달음을 성취하려는 이상을 능동적으로 표방하였으며, 그에 따라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등의 새로운 대승경전을 편찬하였다. 이러한 대승경전에서는 대개 반야의 공관과 이에 따른 보살의 실천, 그리고 진리 그 자체로서의 부처의 존재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60 이 같은 대승경전에 근거한 새로운 세계관의 모색이 이루어졌다. 공사상에 근거하여 세계는 유무의 대립을 떠난 중(中)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중관학파, 세계는 다만 의식의 변화된 모습일 뿐이라는 유식학파가 생겨났으며, 마음은 미혹의 생사를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하지만 깨달음의 토대가 된다는 여래장 사상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61 아무튼 중기 대승불교를 장식하는 여래장사상 등의 이론은 말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불교학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 되어 자연히 초기 대승불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후기대승이라고 할 수 있는 밀교가 출현하게 된다. 밀교에서는 불타의 깨달음을 다라니나 진언, 만다라 등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의례를 중심으로 한 신앙 실천중심의 불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점차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게 되어 그것에 동화되기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불교사원을 파괴함으로써, 불교는 13세기 무렵 마침내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62 한편 불교는 13세기 인도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미 서력 기원 전후 동점하여 중국에 전래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수 당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론들이 번역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즉 불교는 결코 단일한 체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의 불교인들은 번역된 온갖 경론들에 대해 체계성을 부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타가 일생 동안 설한 교설을 말씀한 순시에 따라, 혹은 뜻의 얕고 깊음에 따라 각기 그들 나름대로 일체 경론을 분류하고 해석하였는데, 이를 교상판석이라고 한다.


2장 '우파니샤드'의 철학

82 기원전 12세기 무렵에 이 같은 우주에 대한 통일적 모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의 저명한 인도철학자 도잇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도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와 같은 일원론에 도달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여러 지방신들의 기계적인 동일화에 의해 일신교에 이르게 되었으며, 팔레스타인에서는 그들의 종족신 여호와를 위하여 다른 신들을 추방하고, 그 숭배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보다 철학적인 방식에 근거한 일신교는 아니라 할지라도 다양성의 장막을 관통하여 그 밑에 깔린 통일성을 인식함으로써 일원론에 도달하였다."


84 우파니샤드(Upanisad)라고 하는 말은 '가까이(upa)' '아래(ni)' '앉는다(sad)'는 세 말의 복합어로, 제자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스승 가까이 다가가 앉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점차 스승으로부터 은밀하게 전수받은 가르침, 비밀스럽고도 심오한 가르침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84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마지막(anta) 부분으로, 《베다》의 궁극적 가치이며, 목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98 어떤 한 인간이 태어나 아기, 소녀, 여학생, 처녀, 아주머니, 그리고 마침내 할머니로 불려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만 명칭과 형태상의 변화일뿐 본질은 '나'로서 동일하며, 항아리든 기왓장이든 그것들은 다만 명칭과 형태상의 차별일 뿐 본질은 진흙으로서 동일하다. 궁극에 이르러서는 끝내 하나로 귀결되지만, 《우파니샤드》에서는 이 같은 자아의 동일성을 아트만이라 하고, 세계의 동일성을 브라호만(Brahman) 이라고 하였다.


107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이 추구하였던 바는 이 같은 진실의 진실이었다. 그것은 유일의 실재였고 절대적 진리였으며, 그 자체로서의 환희였다. 그것은 변화와 차별의 세계에 내재하는 힘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현실세계로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일체의 변화를 떠난 불멸의 존재를 추구하고자 하였을 뿐이었다. 생성 소멸하는 현실세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샹캬철학이나 불교의 출현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3장 '바가바드 기타'의 이념

131 아르주나의 딜레마는 '어떻게 더 이상 속박을 낳지 아니하면서 사회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었고, 《바가바드 기타》의 메시지는 '행위결과에 대해 집착함이 없이 행위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필경 소수 엘리트들에 대한 가르침이 아닌 세속의 대중을 위한 가르침이었다. 일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만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수드라든, 바이샤든, 크샤트리야든, 그 누구든 그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명상을 위해 숲에 깃들 필요도 없으며, 처자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서 출가할 필요도 없다. 《바가바드 기타》가 다른 어떤 성전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135 믿음과 사랑, 신애(信愛)로 번역된 박티(bhakti) 는 '나누다' '공유하다'는 뜻의 어근 bhaj에서 파생된 말로서, 신과 인간이 그 본질을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마치 연인이 포옹하는 순간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는 것처럼, 믿음과 사랑은 신과 인간을, 인간과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 이는 사랑의 극치인 동시에 인간존재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여기에 '나만을 사랑하라'는 배타나 질투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믿음과 사랑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 이를 박티요가(bhakti yoga)라고 한다.


4장 인도의 반(反) 전통철학

138 기원전 6세기 무렵 인도 땅에는 거대한 변혁의 물결이 넘쳐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와 자아에 대한 철학적 관심을 갖고, 지적 모험을 감행하였다. 이미 그 전 시대에 갠지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마가다의 라자가하, 코살라의 사밧티, 카시의 바라나시 등과 같은 전제국가와 장대한 도시들이 생겨났고, 상공업의 발달과 더불어 장자, 거사로 일컬어지는 거상이나 자산가들도 출현하였다.


138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무력에 의하지 않고서 국가 간의 충돌을 영원히 종식할 이상적 군주로서 전륜성왕이 동경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전통사상에 대한 새로운 도전도 모색되었다. 이는 '깨달음이라는 또 다른 동경이었다. 일찍이 《베다》를 대신하여 《우파니샤드》가 출현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것은 《베다》를 계승한 것이었다. 전통에 반하는 보다 강력한 도전, 혼히 정통의 유파에 대해 무파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철학들이 이 시기에 일어났다. 불교와 자이나교, 아지비카, 그 밖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단적인 사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139 그들 중 가장 전통에 반하는 입장에 선 이들은 차르바카로 일컬어지는, 극단적인 감각론에 입각한 일련의 유물론자들이다. 이들은 반 전통일뿐 아니라 전통과 반 전통을 포함한 전체 인도철학 안에서도 매우 이단적인 사유형태로, 이 책에서 '거의 모든 인도철학'이라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인도철학을 뜻한다. 또한 불교 내부에서도 사견(邪見)이라 할 때, 그것은 대개 행위(업)의 인과를 부정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141 따라서 그들은 추리나 증언에 의해 알려지는 일체의 형이상학적 개념들, 이를테면 초월적인 자아(혹은 영혼)나 신, 인과법칙, 윤회나 영혼의 재생 따위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주장한다. "선 악업의 과보는 존재하지 않으며, 괴로움이나 줄거움은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다. 세계란 다만 지(地)·수(水)·화(火)·풍(風)이라는 네 가지 물질적 요소의 우연적인 결합일 뿐이며, 자아 역시 지성의 속성을 더한 육체일 따름이다. 곧 네 가지 요소의 결합체인 육체가 사멸하면, 자아 역시 사멸하고 말기에 감각적 육체적 쾌락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다."


150 당시 고행은 무아론자이든, 유아론자이든 사문종교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쾌락이 세속의 일이었다면 고행은 출가자들의 일이었다. 불타가 고행자들이 머무는 숲을 찾아갔던 것은 우연이 아니며, 쾌락과 고행을 지양하여 중도를 설파한 것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근거한 것이다.


163 자인나교와 불교는 다 같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업의 법칙상 구원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티르탕카라에 대해 예배하는 것은 그에 의해 구원되기를 바래서가 아니라 해탈한 영혼의 완전성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불교도 그러하지만, 자이나교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업의 해명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업은 어떻게 산출되고, 어떠한 형식으로 영혼을 속박하며, 그 같은 업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자이나교 철학의 중심개념은 영혼과 물질이며, 양자의 연결고리가 업이었다.


5장 초기불교

174 역사상 이 같은 결집이 몇 차례 더 있게 되지만, 아무튼 여기서 결집된 율과 법은 그 후 정리 집성되어 율장과 경장이 되고, 여기에 이것들의 해석인 논장이 더해져 이른바 삼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불교성전이 성립하게 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경장에는 북방으로 전해진(이를 北傳이라 한다) 《아함경(阿含經)》과 남방으로 전해진 《니카야(nikaya)》가 있다.


179 이 같은 초경험적 실재의 존재유무에 대한 물음은 영속론과 허무론으로 양분된 당시 인도 사상계의 한결같은 물음이자 철학일반에서의 물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현실의 초라함에서 벗어나고자 갈망하는 이성적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끝없는 추상적 사변과 논의만을 산출하는 희론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같은 희론으로써 현실 삶의 실제(실존)적 문제인 괴로움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불타의 생각이었다.


180 불타가 설하고자 하였던 것은 바로 그 같은 고통에 대해서였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고, 경험된 것이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불타는 사실상 이 같은 실제적인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였으며, 진정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였다. 불타가 진실로 말하고자 하였던 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생겨남과, 괴로움의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네 가지 거룩한 진리였고, 최초의 설법 또한 이에 관한 것이었다.


184 '일체'란 주관의 자아와 객관의 세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생문 바라문은 일상에서 그것의 근거나 본질로 간주되는 이슈바라와 같은 자재신이나 자아(혹은 영혼)와 같은 단일하고도 영속적인 존재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불타는 일체를 다만 인식의 조건이 되는 여섯 가지 감관과 여섯 가지 대상이라는 12가지 범주, 즉 12처(處)로 분류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처(ayatana)' 란 바로 인식을 낳게 하는 문(門)의 뜻이다.


196 불타는 당시의 사상계를 생성 소멸하는 세계는 자아(아트만)라고 하는 불변의 실체에 근거한 것이며, 따라서 세계자체는 궁극적으로 불변의 실재라는 영속론(常住論, 정통 바라문사상)과, 세계의 생성과 소멸은 우연적인 것일 뿐 어떠한 인과적 관계도 갖지 않는다는 허무론(혁신적인 사문사상)으로 구별하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궁극적 실재의 존재유무에 관한 논의는 인간의 경험을 넘어선 것으로, 희론(戱論)일 따름이다. 그래서 불타는 양자 모두를 지양하는 중도(中道)를 설하였다. 중도란 양극단의 파기이다. 즉 영속론은 우리들 경험의 범위를 초월한다는 점에서 독단이며, 허무론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세계의 연속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역시 독단이다. 곧 모든 존재는 연기의 법칙에 따라 생성 소멸하는 일련의 흐름으로, 불변의 실재도 아니지만[非有] 그렇다고 단멸의 허무도 아니다〔非無].


197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변화의 영역이다. 영원한 것은 다만 사유와 언어의 세계일 뿐 현실이 아니다. 예컨대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면 언제나 영원하고도 단일 보편의 존재로 생각하지만, 현실의 그것은 변화하며 단일하지도 않다 너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같을 수 없으며, 어제의 사랑과 오늘의 사랑 역시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사랑'이라는 동일한 말로 치장된다. 언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그 속에서만 존재한다.


198 '나'라고 하는 관념은 세계(곧 5온)에 대한 이기적 욕구의 결과로서, 세계에 대한 지각과 함께 일어난다. 그럼에도 '나'라고 하는 개체의 현실태는 이기적 욕구에 의해 자기개체성을 고집하기 때문에, 그러한 폐쇄된 개체성이 자아를 세계로부터 분리 독립시켜 지각에 선행하는 영속적인 실체로 간주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무지의 정체이다. 무지란 곧 단일한 자아가 실재한다는 그릇된 믿음이다.


201 윤회 역시 그러하다. 윤회란 마치 풀벌레가 이 풀에서 저 풀로 옮겨가듯이 고정불변의 자아가 존재하여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번뇌와 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경험의 지속은 부단한 생의 흐름(5온의 상속)일 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실체적인 자아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202 초기불교에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변화하지 않는 단일 보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불교의 윤리가 공(空)에 기초한 자비의 윤리라면, 초기불교의 윤리는 무아에 기초한 '버림( 혹은 떠남)'의 윤리이다. 세계의 모든 악은 탐욕과 증오로부터 비롯되며, 그것온 바로 자아에 대한 그릇된 믿음인 무지로부터 야기된다. 자아관념은 일체의 괴로움을 낳는 원인으로, 그것을 버리지 않는 한 괴로움의 속박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세속에서의 선뿐만 아니라 최고선인 열반조차 존재의 실상인 무상과 무아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02 12연기의 첫번째 갈래가 무명이었으며, 다음에 설할 열반에 이르는 8가지 길 가운데 첫번째 갈래가 정견(正見)인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세계는 인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무상하고, 괴로우며, 진실로 '나' 혹은 나의 것이 아니다.


207 열반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다. 열반이란 바로 그 같은 양자택일적인 이원의 사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열반이란 경험세계 자체 (5온)의 소멸이 아니라 그것을 괴로움의 세계로 드러나게 하는 조건들 이를테면 무지와 그에 따른 아집과 집착, 그리고 탐욕과 증오 등의 소멸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것은 5온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끔 하는 조건이 된다. 그럴 때 열반은 사후 가 아닌 살아 있는 동안 '지금 여기서' 획득되는 것이며, 현실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로운 충만함으로 이끄는 힘이 된다. 불타의 역동적인 45년 간의 삶은 바로 이 같은 열반에서 구현된 것이었다.


6장 아비달마불교

216 이 시기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하며, 분열 이전의 불교를 '초기불교' 혹은 '원시불교'라고 한다. 이들 각각의 부파 명칭은 대개 그들이 주장하는 교설이나 스승의 이름, 혹은 교단의 특색 내지 그들의 거점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216 이를테면 설일체유부는 일체법의 실재성을 주장함으로써 붙여진 명칭이다. 또한 일설부는, 불타는 한번의 말씀으로 일체법을 설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설출세부는 불타는 세간적 존재가 아니고 무루의 출세간적 존재라고 설함으로써, 설가부는 일체법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설적인 것이라고 설함으로써, 상좌부의 또다른 명칭인 분별설부는 그들의 사상이 비판적(분별적)이기 때문에, 경량부는 아비달마를 지식의 근거로 삼는 설일체유부와는 달리 경을 지식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그리고 설전부는 5온의 전지 상속을 설함으로써 붙여진 명칭이다.


217 불타 입멸 후 남은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교법을 정리 해석하고 연구하여 '아비달마'로 일컬어지는 방대한 논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 하기도 한다. 불타 교법에 대한 정리 해석은 이미 경장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부파분열 이후 그것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 마침내 경장 속에 도저히 포함시킬 수 없을 만큼 되었을 때 그것으로부터 독립하여 아비달마 논장이라고 하는 불교성전의 새로운 장르가 성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218 《대비바사론》에 따르면, 경이란 아직 정법에 들지 못한 초입자에게 선근을 심고 정법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근기에 따라 설해진 잡설이라면, 아비달마는 이미 정법에 들어 계율을 수지한 자로 하여금 세계존재의 실상을 통달하게 하기 위해 설해진 것이다. 그래서 아비달마는 경전 상에 설해지고 있는 수많은 개념들을 정리 해석하고, 그것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밝히고 있어 외견상 번잡한 이론적 체계를 띠게 되었지만, 아비달마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인간과 세계에 관한 통찰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였다.


7장 대승불교의 성립

238 불타 입멸 시 장례 의식이나 사리의 분배, 불탑의 조성 등은 모두 재가신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불탑은 불타의 유골, 즉 사리를 봉안한 무덤으로, '쌓다'는 뜻의 스투파(stupa)에서 비롯된 말이다. 초기불교 이래 불타는 구원자가 아니라 진리로 인도하는 스승 즉 도사일 뿐이었기 때문에 법을 떠난 불신(佛身)의 숭배는 무의미한 것이었으며, 불상이나 불탑의 숭배 역시 그러하였다. 또한 불타는 쿠시나라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었기 때문에 진리 자체[法性]로서는 실재할지라도 인격으로서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불사리에 대한 공양 예배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불타 역시 《대반열반경》에서 출가수행자들은 사리에 대해 공양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열반이라는 최고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239 성문의 출가자들이 불타의 교법과 계율을 기본으로 하여 교단을 지켜온 데 반해 불탑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 그룹에 있어서는 가르침의 내용보다 불타에 대한 동경이 신앙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경과 찬탄은 대중부와 마찬가지로 불타를 점차 초월적 존재로 신격화하기에 이르렀다. 즉 세속의 사업에 종사하는 재가자로서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킬 수가 없고, 선정도 충분히 실천할 수 없으며, 그것을 통해 증득되는 교법의 참다운 이해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구원을 바랐다면, 그것은 오로지 불타의 자비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종교적 욕구에 따라 불타는 마침내 '중생을 구제하는 이'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예컨대 아미타불이나 아촉불은 구원의 불타이며, '삼계는 마치 불타고 있는 집과 같고, 그곳의 중생은 모두 나의 아들이다'고 설한 《법화경》의 석가모니불도 역시 그러하다.


241 이러한 새로운 불교운동이 세력을 얻음에 따라 그들의 독자적 인 사상을 나타내기 위해 새로운 경전을 편찬하면서 스스로의 도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기존의 부파불교 혹은 아비달마불교를 소승(小乘)이라고 폄칭하였다. 즉 대승은 남녀노소, 배운 자, 못 배운 자 할 것 없이 모두를 피안으로 인도하는 커다란 수레라는 뜻이다. 이에 반해 소승의 '히나'는 역어로서는 '작다'이지만, '마땅히 버려야 할' '저열한' '천한'의 뜻으로, 소수의 출가수행자들만을 위한 저열한 도라는 뜻이다. 즉 그들은 이타(利他)를 지향하는 보살의 도와 자리(自利)만을 구하는 성문의 도를 엄격히 구분하였던 것이다.


254 대승보살의 자비행은 모든 존재는 공(空)이 반야의 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개별적 존재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면 너와 나는 절대적으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한 몸의 다른 면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일체의 사물이 차별되지 않고 절대적으로 공이라면, 모든 사물은 공이라고 하는 점에서 동등한 일체이며, 대비(大悲)는 이 같은 경지에서 실현될 수 있다.


256 보살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반야의 지혜를 통해 이곳(此岸)과 저곳(彼岸)의 분별에서 벗어난다. 여기서 보면 저기가 피안이지만, 저기서 보면 여기가 피안이다. 피안은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인식의 전환을 통해 본다면 여기가 바로 피안이다. 따라서 파라미타에서의 '도달'이나 '완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도달이고 완성할 수 없는 완성이다 즉 바라밀은 무차별 · 공에 입각한 실천이기 때문에 특정한 지점의 도달이나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결과에 집착함이 없이 닦아가야 하는 것이 바라밀의 참뜻이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보시 등의 세속의 윤리 도덕적 덕목이 종교적 덕목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259 아비달마교가 분별의 철학이라면, 대승은 무분별의 철학이다. 전자가 불타의 교법을 중심으로 하였다면, 후자는 불타(깨달음)의 본질인 반야바라밀다를 중심으로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은 각기 아라한과 보살이라는 이상적 존재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즉 기존의 불교가 교법 중심의 불교였다면, 대승불교는 불타중심의 불교였다.


8장 중관

261 중관에서는 아비달마와 같은 세부적인 철학체계의 구성보다는 서로 대립하는 일체의 철학적 개념에 대한 비판과 부정을 일차적 과제로 삼는데, 그 같은 비판과 부정의 가설적 개념이 바로 공(空)이었다. '공'이란 '부풀어 오른' '팅 빈' '공허한'이라는 뜻의 순야(sunya)의 역어로서, 뭔가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263 용수는 말한다. "이 같은 형이상학적 딜레마는 인간이성에 의해 조작된 언어적 가구(假構)일 뿐 세계의 실상이 아니다." 세계의 실상은 존재[有〕와 비존재〔無〕, 영과 허무, 혹은 동일성과 차별성 등의 대립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으로, 이를 중도(中道)라고 하며, 중도로써 세계를 관하는 것을 중관(中觀)이라고 한다 윤의 《중론》을 계승하는 그룹을 중관학파라고 이름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70 우리는 밝음과 어둠을 각기 서로 대립하는 독립된 세계로 생각하며, 세상의 거의 모든 철학과 종교도 이 같은 이원의 구도에서 출발한다. 동굴안과 동굴 밖(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육체와 정신, 지상과 천국, 세속과 열반 등이 바로 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용수에 의하는 한 그것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인간의 언어적 분별일 뿐이다. 어둠이란 밝음이 결여된 상태이며, 밝음은 어둠이 해소된 상태이다. 곧 용수는 우리의 실체화된 언어적 고정관념의 허구성을 폭로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모두 무자성 · 공으로, 타자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장 유식

287 업에 속박되어 있는 한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미망의 인간은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 온 업으로 인해 그 같은 관념의 소산인 나에 집착하고 세계에 집착한다. 그럼으로써 다시금 끝없는 생사윤회를 되풀이한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허망분별일 따름이며, '오로지 의식만이 존재한다'는 유식성(唯識性)을 관조하는 요가의 실천을 통해 윤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유식학파를 유가행파 즉 '요가를 실천 수행하는 이들'로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유식학파는 중관학파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학파를 형성한다. 이 학파의 개조는 미륵으로 전해진다.


294 유식이라 할 때 '식'은 단순히 식별 인식하는 작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 혹은 그러한 작용이 가능하게끔 구체적인 의미내용을 지니고서 나타난 의식상의 형상을 말한다. 이는 아비달마불교에서 밖으로 드러난 언어적 신체적 행위를 표업(表業)이라고 하 것과 같은 용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식'이라 함은 오로지 의식이 변화하여 나타난 형상만이 존재할 뿐 일반적으로 인식의 조건으로 알려지는 외계대상도 주관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296 말한 대로 이숙식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일상의 표충의식에 의해 인식될 수 없기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과거세에 행한 행위의 여력이 저장된 의식이라는 뜻에서 아뢰야식이라고도 하고, 종자에서 싹이나 꽃 등 어떤 한 식물의 모든 것이 낳아지듯이 일체의 세계를 낳을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뜻에서 일체종자식이라고도 하며, 개인의 중 심에서 심신의 상속을 유지시키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아타나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보통온 아뢰야식으로 불리는데, 이는 유식사상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개념이다. 아뢰야란 히말라야에서 보듯이 곳간의 뜻이다. 그래서 장식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심층의식이나 잠재의식 혹온 근원적인 마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296 앞서 언급하였듯이 무아의 입장을 취하는 불교에 있어 마음이나 행위의 인과상속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은 중요한 철학적 문제 중의 하나였다. 즉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나 기억 혹은 행위의 상속을 해명함으로써 자기 동일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지은 선악의 행위에 대해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도덕적 요청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유식학파에서는 경량부의 종자설과 같은 이론을 받아들여 아뢰야식에 관한 방대한 이론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10장 여래장

314 마음에는 미혹의 마음도 있지만 깨달음의 마음도 있다. 미혹한 마음이 범부라면, 깨달음의 마음은 부처이다. 여기서 두 가지 사상이 낳아지게 되었다. 하나는 마음의 현실적 기능의 분석에서 출발한 유식사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이상적 측면에서 고찰한 여래장 사상이었다. 여래장이란 '여래의 태아' 혹은 '여래의 탯집'이라는 정도의 의미로서, '모든 중생은 여래의 태아로서 여래 안에 포용되어 있다'거나 '모든 중생은 자신 안에 여래의 가능성, 여래의 씨알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후자가 보다 일반적인 의미이다. 즉 밖으로 드러난 모습은 미망의 범부이지만, 그러한 미망 속에 여래라는 태아가 감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314 이 같은 의미에서 여래장을 여래의 토대라 하기도 하고, 여래의 종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대승열반경〉에서는 이를 불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중생은 바로 부처로서의 본성을 갖고 있다, 부처로서의 토대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316 일찍이 영원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일체는 무상이고 무아라는 관점에서 출발한 불교는 유식사상을 거치면서 여기에 이르러 마침내 '불변의 존재'와 만나게 되었다. 물론 여래장 역시 유식과 마찬가지로 공관에 의해 드러나는 진리성으로, 말하자면 진공묘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우파니샤드》에서의 아트만과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초기불교로부터 시간적 거리만큼이나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어쩌면 어떤 한 사상이 겪어야 할 필연적인 운명(변증법적 귀결)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320 초기불교 이래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이라 여기고,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나 혹은 나의 것이 아닌 것을 나 혹은 나의 것으로, 부정한 것을 청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전도된 견해였다. 그러나 불교는 여기에 이르러 영원과 무상, 자아와 무아를 넘어선 영원한 자아를 찾게 되었고, 마침내 무아를 설하는 불교에 절대적 자아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아비달마나 유식에서 말하는 관념의 대상으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법신으로서 실재하는 자아이다.


321 어떠한 사상도 정지되어 있지 않다. 사상은 흐르는 물과도 같다. 불타의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된 불교 또한 결국은 인간이성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부정과 긍정을 통해 서로 대립하기도 하였고 종합하기도 하였으며 지양하기도 하였다. 불교는 결코 단일보편의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전개된 온갖 상이한 학적 체계가 모여 이루어진 매우 복합적이고도 유기적인 체계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타의 말씀이 그의 자내증을 근거로 한 가설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깨달았던 것인가? 2500년에 걸친 불교사상사는 바로 무엇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에 대한 탐구와 해석의 도정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323 《대승기신론》(이하 《기신론》)의 요지를 한 마디로 말하면, 제목이 지시하듯이 '대승'의 의미를 밝힘으로써 그것으로의 믿음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이다. 대승의 다른 불교도 그러하지만 여래장의 불교는 믿음의 불교라고 할 수 있다. 범부에게 있어 여래장은 보여지지도 생각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를 믿고 닦아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믿음은 대승의 깊은 뜻이 이해되면 저절로 일어나기 때문에 대승의 의미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345 비록 중국인의 사유방식이 인도인의 그것과는 달리 현세에서의 삶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할지라도 그 같은 불교(진리)인식은 어쩌면 역사와 현실에 대한 현혹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주어진 현실에 절대(종교)적으로 순응하려는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 자체가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생각)을 바꾸려 하였기 때문이다. 불교사상사에서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바로 세계였기 때문에 마음만 그렇게 바뀌면 세계 또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11장 천태

346 《법화경》의 완전한 명칭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다. 여기서 '묘법'은 불타가 설한 최고의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진흙탕에서 피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 흰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법화경》이란 말하자면 '회 연꽃과도 같은 정법을 설한경'이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346 곧 《법화경》에서 말하려는 정법이란 일승의 사상을 말한다. 일승이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수행자들을 그들의 근기에 따라 성문 · 독각 · 보살이라는 세 그룹 즉 3승(乘)으로 나누어 왔다. 성문이란 4성제의 법문을 듣고 그에 따라 번뇌와 업을 소멸하여 열반에 들려는 이들을 말하며, 독각은 스승 없이 홀로 12연기를 관찰하여 깨달음을 얻고 그대로 열반에 든 이를, 보살은 대승공관에 입각하여 6바라밀을 닦아 깨달음을 얻으려는 이를 말한다.


346 앞의 두 그룹이 이른바 소승(小乘)이라면, 보살승은 대승이다. 대승 흥기 당시, 대승과 소승의 갈등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였다. 대승은 기존의 전통적인 성문의 불교를 오로지 자신만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리(自利)의 불교, '천한' '저열한' '마땅히 버려야 할 불교'라는 뜻의 '소승(hinayana)'이라 폄칭하였으며, 성문들은 대승을 불설(佛說)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였다.


346 그들은 애당초 불타의 경지를 엿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불타가 남긴 교법을 결집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여 스승이 지나갔던 자취를 따르고자 하였을 뿐이었다. 이에 반해 대승의 보살들은 불타가 남긴 교법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불타를 해석하였다. 그들이 해석한 불타는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불타가 아닌 영원한 진리 법신(法身)으로서의 불타였으며, 이를 통해 지금 여기서 무상정등각을 성취하려는 이상을 능동적으로 표방하였던 것이다.


348 우리는 다들 석가족 출신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하여 6년 수행 끝에 보리수나무 밀에서 위없이 높은 깨달음을 얻고 가르침을 펴다가 쿠시나라에서 입멸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방편으로 일시 그렇게 행한 것일 뿐 실상은 시작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이미 깨달음의 상태였다. 이른바 구원실성, 이것이 바로 불타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352 열반종의 축도생도, 성실종의 법운도, 삼론종의 길장도, 법상종의 규기도 이에 대한 주석서를 남기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도 특히 지의가 강설하고 그의 제자 관정이 받아 적은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은 《법화경 》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새로운 종파, 천태종(天台宗)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천태종이라는 종파 명칭은 지의가 오래 머물렀던 오늘날 절강성 천태산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358 지의가 이해한 불교는 공 · 가 · 중의 세 단계였다. 소승의 성문들은 니힐니즘에 빠져 세속의 현실을 버리고 열반만을 추구하였으며, 대승의 보살은 세속의 현실로 되돌아왔지만 성문과 정면으로 차별 대립하게 되었다. 따라서 진정한 보살은 양자를 지양하여 중(中)에 머문다. 그러나 이때 '중'은 양자와 차별되는 '중'이 아니라 양자 안에서 구현되는 '중'이다. 이를 원융삼제라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일승을 설하는 《법화경》의 궁극적 취지라고 지의는 생각하였다.


368 절대보편의 진리란 차별의 현상세계와는 다른 특별한 것인가, 통일적 것인가? 이에 대해 지의는 절대보편의 진리인 일승묘법이 바로 구체적 현실이라고 주장하였다. 온갖 차별의 현상세계는 일승묘법으로 통일된다. 이것이 이른바 '성구설'이었다.


12장 화엄

375 《화엄경》의 완전한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으로 티베트역과 한역이 현존한다. 한역에는 다시 동진의 불타발타라(359~429)가 번역한 것과 당나라 때 실차난타(652~710)가 번역한 것이 있는데, 각기 60권과 80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60화엄》 <80화엄》이라고 한다.


375 '방광(vaipulya)'이란 초기불교 이래 불타의 법문양식의 하나로 중충적인 교리문답을 의미하였으나 대승에서는 대개 심오한 뜻을 널리 설한 대승경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불화암에서 '화엄 (avatamsaka)'은 귀고리나 꽃다발과 같은 장식품을 의미한다. 곧 불화엄이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부처의 공덕을 온갖 장식에 비유한 말로서, 《화엄경 》에서는 무한 광대한 불타 깨달음의 세계, 혹은 백천억 화신이라 하듯이 이 루 헤아릴 수 없는 부처로 충만된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376 《화엄경》은 궁극적으로 '불화엄'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깨달음으로 통해 나타난 세계는 실로 경의 명칭처럼 화려하고 장엄하다. 불타(석가불)께서 깨달음을 얻어 해인삼매에 들었을 때 비로자나불로서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비로자나불이란 Vairocana의 음역으로 마치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이 일체 만물을 비추며 일체를 포괄하는 우주에 충만한 빛이다.


380 불타발타라에 의해 《60화엄〉이 한역되면서 수많은 이들이 이를 연구하였는데, 현수법장(643~712)이 그의 스승 지엄의 학설을 계승하여 이를 일승원교, 특히 별교(別敎) 일승으로 해석함으로써 하나의 종파로 형성시켰다. 그래서 화엄종을 현수종이라고도 한다.


380 중국 화엄종의 학통은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 ― 종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종밀은 선종(하택종)의 대사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선교(禪敎)일치를 주장하였으며, 이는 고려의 의천과 지눌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391 인도철학과 불교에서 개인과 사회에 해당하는 개념은 숲(vana)과 마을(grama)이었다. 마을이 차별적 현상세계라면 숲은 단일한 실재의 세계로서 언제나 열반의 상징이었다. 인도의 철학온 본질적으로 숲의 철학이다. 그곳은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이다. 그럴 때 숲과 마을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 인도철학의 궁극적 관심사는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91 불교사상사에서 볼 때 초기불교와 아비달마불교는 숲을 지향하였다. 곧 그들은 현상세계를 해체(분석)하여 이른바 제법(諸法)이라 일컬어지는 개별적 요소로 환원시켜 버렸다. 실재하는 것은 개별적인 요소뿐이다. 거기서는 더 이상 탐욕세계도, 미움의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언제나 마을에서 숲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13장 선

401 선(禪)이란 범어 드야나(dhyana, 팔리어 jhnana)의 음역인 선나에서 '나'가 탈락한 말로서, '고요히 생각하다'는 정도의 의미이다. 그래서 정려 사유수로 번역하기도 한다. 보통 선은 정이라는 말과 짝을 이루어 '선정'이라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정'은 사마파티의 역어로서, 어지러운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평등하게 된 상태이며, 그래서 등지(等至)로 번역하기도 한다.


401 곧 선 혹은 선정이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 전념하는 명상이나 정신통일을 말한다. 인도철학이나 불교에 있어 명상을 의미하는 술어는 이것만이 아니다. 삼매나 요가도 명상의 일종이며, 마음의 작용을 멈춘다는 뜻의 사마타(samatha)도 역시 같은 뜻이다.


402 초기불교에서의 통찰의 대상은 무상과 무아였다. 욕망 등에 의해 조작된 세계를 영원하다거나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괴로움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무상과 무아는 다만 개념적 이해일 뿐이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욕망 등의 번뇌를 끊을 수 없다. 어떠한 언어적 매개도 통하지 않고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으로 통찰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어떠한 심적 동요도 없는 명상의 상태에 이르러야 하는데, 그들온 그러한 명상을 네 단계로 나누어 4정려라고 하였다.


403 존재본성 내지 실상은 언제나 언어적 개념적 이해를 초월해 있다. 그것은 명상을 통한 통찰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그 같은 실상에 대한 언어적 교설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만 가설로서 방편이다. 말이 바로 피안은 아니다. 말은 피안으로 건너가기 위한 펫목과 같은 것이다. 말이 바로 달은 아니다. 말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다.


404 중국에는 일찍부터 여러 삼매경전들이 전해져 관법이나 관불의 선법이 유행하였지만, 이른바 선종이라 함은 보리달마를 초조로 삼아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표방하는 종파를 말한다.


414 중국의 불교는 사실상 인도의 불교와는 다른 새로운 불교였다. 특히 선종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여 완전히 중국화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 설명한대로 보리달마가 전래한 인도선의 색채를 완전히 벗어버리는 6조 혜능, 엄격히 말하면 조사선이 성립되는 마조도일로부터였다.


415 그렇다면 조사선은 무엇인가? 조사(祖師)란 원래 어떤 한 학파의 창시자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선종의 계보(예컨대 《보림전》)가 확립되는 9세기 이후가 되면 구체적인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심전심으로 스승과 제자가 상통계합함으로써 이어지는 계통상의 스승을 말한다. 그러므로 조사선이란 이른바 이심전심 교외별전으로서의 선을 말한다.


415 그래서 그들은 그들만의 계보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교외별전은 가깝게는 홍인과 혜능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멀리는 불타와 가섭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였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염화시중의 미소가 그 중 하나이다.


416 조사선에서는 조사들의 일상의 행동거지, 그의 말 하나 하나가 텍스트가 된다. 그리하여 이른바 등사로 일컬어지는 《경덕전등록》이나 《조당집》과 같은 선종계보와 함께 그들의 언행을 적은 수많은 어록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 때 어록은 더 이상 경론에 관한 문자적 주석이 아니라 그 정신을 일상의 삶에서 구현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선을 수행하는 행자는, 교종에서 경론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듯이 어록을 통해 조사와 조우한다.


416 곧 선수행자는 이 같은 화두를 마음의 눈으로 간파하여 일찍이 그 화두를 던졌던 조사와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계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사선을 간화선이라고도 한다. 앞서 조주가 말한 '뜰 앞의 잣나무'도 화두의 하나이다.


423 이러한 선종의 사상은 필경 인도의 불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으며, 기존의 중국불교, 엘리트 학승들에 의해 이루어진 법상의 유식사상이나 화엄의 법계연기사상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이론은 현실 즉 진실을 반영하지 않으며, 도리어 왜곡한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423 선종에 의하는 한 선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마조의 스승 남악회양은 마음을 닦기 위해 좌선하는 것은 마치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거기에서는 진리에 관한 불타의 말씀(경전)도 그에 대한 깨달음도 의미가 없다. 선종에서의 경전은 조사가 내뱉은 일상의 언사와 행동거지였고, 깨달음의 대상도 목적도 거기에 있었다. 현실의 삶이 진실이고 불법이었으며 종교였다.


14장 정토

434 괴로움이 그러하듯이 그로부터 벗어나는 해탈 열반 역시 본질적으로 주체적인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로지 자신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다른 이에 의해서도 구원될 수 있다는 대단히 특이한 경전과 사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토사상이 바로 그것으로, 이른바 정토삼부경이라 일컬어지는 《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이 대표적인 경전이다.


435 정토라는 말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범어에는 없는 말이다. 인도에서는 다만 여러 부처와 보살둘이 머무는 세계, 즉 불국토라는 말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시대에는 오로지 한 분의 불타만이 있었을 뿐이다(시간적으로는 7불이었지만). 그러나 점차 불교의 우주관이 확대되고 보살사상이 발전함에 따라 대중부 등의 진보적인 부파에서는 다른 세계의 부처를 주장하게 되었고, 마침내 대승불교에 이르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부처가 출현하게 되었다.


435 각각의 세계에는 각각의 부처가 존재한다. 이를 타방불(他方佛)이라 하는데, 부처가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 이곳 사바세계의 중생들로서 타방불을 염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대승이 일어나려고 할 무렵 일단의 불교도들은 생천이나 멀고 먼 열반(아라한)으로의 길보다는 지금 바로 부처를 친견하여 그의 법을 듣고서 불과를 성취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435 동방의 아촉불, 남방의 보상불, 서방의 아미타불, 북방의 미묘음불이 대표적인 타방세계의 부처였다. 이 중에서 특히 아촉불의 묘회세계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가 유력하였으며, 초기불교 이래 미래세의 부처로 거명된 미륵불의 도솔천도 정토의 하나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곳들은 이곳과는 다른 세계이기에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들 각각의 부처에 의해 인도되어야 하는 세계이다.


444 선도는 칭명염불을 중심으로 삼는 정토교를 대성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말법의 시대를 사는 이로서, 어리석고 더러운 몸을 지닌 이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정토교밖에 없다. 그는 《관무량수경》에서 설하는 16종의 관법중 앞의 13가지만 인정하여 정선이라 하고 상 · 중 · 하배 등 뒤의 세 가지는 산선이라 하였는데, 일념의 정선과 악을 버리고 선을 닦는 산선에 의해 왕생을 원하고 구하는 것이 정토교라고 하였다.


445 혹은 일심으로 정토를 관찰하고, 아미타불께 예배하고 명호를 부르고 찬탄공양하는 등의 정행과 그 밖의 선을 행하는 잡행의 실천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에필로그 - 숲과 마을

483 인도의 우주관에서 볼 때 신과 인간역사의 홍망성쇠는 윤리(다르마)의 실현과 그 괘를 같이한다. 윤리와 역사는 시간의 필연적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궁극적인 실재가 아니다. 그것을 실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미망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신기루나 토끼뿔과도 같은 비실재라는 말은 아니다. 꿈은 언제나 깨어난 자에게 있어서 꿈일 뿐이다. 깨어나지 못한 자에게 있어 그것은 생생한 현실이다. 새끼줄에 대한 인식이 없는 못한 자에게 있어 뱀은 실재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든 또 다른 지식에 의해 파기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역사와 윤리 역시 언제나 또 다른 힘에 의해 파기될 가능성을 지닌다.


484 대승불교나 샹카라에 의하는 한 마을은 숲과 대립되는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숲의 또 다른 모습으로, 숲이 실재라면 마을은 이차적 실재이다. 우리 인간은 마을에 살기에 해탈과 자유로의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그 희망의 선행조건은 도덕률이며, 그것의 홍망성쇠의 과정이 역사이다. 따라서 마을은 언제나 숲으로의 통로가 되는 곳이다. 아니 차별의 근원인 무지 혹은 언어의 베일만 걷어낸다면 그 자체가 숲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피상적이고 덧없는 차별상만 극복된다면, 나와 남은 우리 내면의 자아(혹은 공) 속에서 하나가 되며,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도덕률의 구현이다. 숲과 마을은 궁극적으로 양립된 두 세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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