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 10점
진 쿠퍼 지음, 이윤기 옮김/까치



서문

세계문화상징사전

용어집

참고문헌

역자후기

우리말 표제어 색인




서문

상칭 체계의 공부는 단순한 공부가 아니다. 상정체계의 공부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인류의 앎과 연관된다. 상정체계는 앎의 도구이자, 가장 유서 깊고 가장 근본되는 표현 방식이다. 이 표현 방식은 다른 표현 양식을 통해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측면을 드러내는 것까지 기능하게 한다.


상칭이 지니는 풍부하고 경이로운 의미는 백과사전이나 문자 언어 갈은 한정된 공간에는 싸잡힐 수도 갇힐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징에는, 온 시대를 뛰어넘으면서 인류의 보편적인 전통이 되어왔고, 여느 소통 방법의 한계를 초월해서 국제적인 언어를 구성하는 거대한 상징 체계가 들어 있다. 상징을 어떤 의미나 정의로 묶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상징을 통해서 마음과 정신의 영역을 향한, 내재적인 동시에 초월적이고, 수평적인 동시에 수직적인 차원인 내면의 심연과 외면의 절정을 향한, 탐색의 왕복 여행, 혹은 원정의 순간을 암시하거나 드러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상징의 매개체이기도 한 상징적인 어법을 이용하면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에 바로, 그리고 반듯하게 이르는 것도 가능해진다.


상징 체계는 국가는 물론이고 시대도 뛰어넘는다. "상징에는, 몇줄의 상투적인 표현에 통시대적인 사상과 인류의 꿈을 싸잡아내는 힘이 있다. 상징은 우리 상상력에 불을 붙이고, 언어롤 초월해 있는 생각의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각은 개인의 에고가 아니다. 상징은 인위적으로 창조될 수도 없는 것이고, 순전히 개인적인 해석이나 종작없는 생각을 동해서 고안될 수도 없는 것이다. 상징은 개인을 뛰어넘어 보편을 지향하는 것, 정신의 삶에서 고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징은 상징화한 고급한 의미의 외면적인, 혹은 저급한 표현이다. 상징은 상징이 아니고는 언어의 한계 때문에 그 의미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거나, 적당한 표현법을 찾아내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한 어떤 실재의 모습을 소통시키는 수단이다. 따라서 상징은 기호처럼 단순한 형태를 취할 수도 없는 것이고, 상징의 토양이 되는 종교적인, 문화적인, 혹은 형이상학적인 배경이라고 하는 문맥을 통하지 않고는 이해될 수도 없는 것이다. 상징은 상징 자체보다 크고 깊은 영역, 상징을 사용하는 인간 자체보다도 더 크고 깊은 영역으로 들어가는 열쇠이다. 콜리지의 말마따나, "상징은……항상 그 상징을 통해서 드러나는 〈실재 〉와 함께 한다. 상징은 그 상징이 드러내는 〈개체〉의 살아있는 수족 노릇을 하는 동시에 그 〈개체〉의 전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상징은 사물의 단순한 등식만은 아니다. 상징은 반드시, 그 사물의 이해에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본질적인 부분을 드러내야 한다. 상징은 끊임없이 확장하는 광범위한 가능성의 가능성의 영역을 안고 있어야 하는 동시에, 표면적으로는 그 형태나 외양이 달라보이는 것들의 본질적인 관계의 이해를 가능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엠블렘과 알레고리(비유)도 삶과 진실의 어떤 측면 혹은 경험을 드러내거나 구체화시킴으로써 그 드러나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상징은 엠블렘과 알레고리와는 다르다. 서로 가깝게 이웃해 있는 상징과 엠블렘 및 알레고리가 지배하는 점이 영역의 변경은 제대로 정의되어 있지 않아서 사람들은 이 둘을 혼동하기도 하고, 이 둘을 건너다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다리 같은 것을 상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둘은 같지않다. 상징은 객체의 추상성을 파악하여 그 의미를 통합시킨 연후에 이것을 효과적인 문맥 안에 배치한다. 상징은 한 가지 이상의 차원에서 동시에 유효할 수도 있다. 엠블렘, 혹은 어트리뷰트는 구체적인 것을 그려낸다. 그러나 이런 것들 역시 상징적인 특질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신성의 엠블렘이나 어트리뷰트 역시 우주와, 우주의 법칙과 기능의 상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설의 통합으로 인한 정의상의 혼란이 발생한다.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어느 한 원천에서만 솟아오를 필요는 없다. 상징은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종교, 서로 다른 제식, 서로 다른 문화를 옹용하기도 하고 거기에 반응하기도 한다. 배타성이라고 하는 것은 원시성과 미성숙의 특징인데, 상징은 배타적이지도 원시적이지도 않다. 상징은 포괄적이고 개방적이다. 상징의 세계에서는 같은 상징이 여러 가지로 적용될 수도 있고, 상반되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부차적인 관계에 따라서 똑같은 상징이 양면적으로 혹은 다의적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다. 상징은 또 내재적인 동시에 외재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따라서 상징의 자의적인 해석, 통상적 해석이 왁변한 최종적 해석일 수는 없다. 해석은 진실의 반을 드러낼 뿐이다. 상징은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기도 하는 것이다.


상징 체계의 대부분은 이원론적인 표상계의 서로 대립하는 세력의 극적인 상호작용에 직접적인 관심을 표명한다. 상징 체계는 또한 이원론적인 표상계의 상호 갈등하는 동시에 상호 보충하고 보상하는 특징에 관심을 두고, 남녀추니와 성혼으로 암시하는 종국적인 통합의 원리에 관심을 표명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문화 전통이 지니는 상징 체계의 으뜸가는 의미인, 삶의 통합 원리의 표현이다. 우리 삶의 축이 되고, 우리 삶을 통합하며, 늘 푸른 동시에 끊임없이 재생되는 〈생명의 나무〉가 낙원의 중심에 서고, 그 뿌리에서 솟는 샘이 〈생명의 강〉을 지어내듯이, 신화와 상징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생각이나 열망 역시 통합과 삶을 그 중심으로 삼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의 전통적인 상징 체계는, 천상계는 원초적인 것이고, 지상계는 천상계의 반영 아니면 그 그림자임을 암시하며 높은 것이 낮은 것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천상계는 원초적일 뿐만 아니라 영원한 것이기도 하다. 천상계는 상징에 영원불멸하는 어떤 힘을 부여하는데, 초시대적으로 유효했던 이 힘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유효해서 마침내 성성에 대한 느낌을 촉발시키고, 그 너머의 어떤 힘의 존재를 상정하게 만들기에 이른다.


상칭체계는 인류가 공유하는 마음의 바탕이다. 이것을 부인하면 심각한 장애가 온다. 상징 체계는 사유의 바탕이고, 완벽한 상징은, 가령 정신과 지성과 감정 같은, 인간의 모든 측면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종교의 의례에는 나름의 상징적인 의미와 특질이 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종교 의례는 공허하고 '미신적인' 굿판이 되고 만다. 〈무드라〉가 그런 것처럼, 모든 의례에는 광범위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의 상징 체계가 있다. 여기에는 기도와 예배를 통한, 소리와 동작을 통한 탄원과 복종의 마음가짐이 스며 있다. 이 모든 상징의 형식은 지극히 의미 심장한 것으로서, 인간의 본성과 필요라고 하는 섬유로 정교하게 상호 교직되어 있다. 영국의 수석사제 잉의 말마따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상징에 대한 무관심은 개화의 증좌도 아니요, 정신성의 징표도 아니다. 사실 상징에 대한 무관심은 불건강의 징후일 뿐'인 것이다.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상징 체계의 회복을, '문화적인 국지주의, 특히 역사적, 실존적 상대주의로부터 현대인을 구원하는' 기회로 파악한다.


이 사전은, 먼저 상징 해석이 일반적으로 혹은 보편적으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를 살피고, 그 다음으로는 상징 해석이 문화적으로 지리적으로 다양한 문화 전통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을 본보기로 좇는다. 문화 전통의 주체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는 특정 상징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미를 나타낸다.


어차피 완벽한 상징 체계 사전의 완성은 불가능하다.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것,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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