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1417년, 근대의 탄생 - 10점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이혜원 옮김/까치


서문

1 책 사냥꾼

2 발견의 순간

3 루크레티우스를 찾아서

4 시간의 이빨

5 탄생과 재생

6 거짓말 공작소에서

7 여우 잡는 함정

8 사물의 길

9 귀환

10 일탈

11 사후세계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역자 후기 및 역자의 저자 인터뷰






서문

13 루크레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지구와 그 거주민이 우주의 중심을 점하고 있다고 믿을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인간이 신에게 뇌물을 바치거나 신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고 종교적 광신이 들어설 여지도 없다. 금욕적인 자기 부인은 불필요하고, 전지전능한 힘이나 완벽한 구원에 대한 환상은 근거가 없다. 정복욕이나 자기 과시욕도 불합리하다. 그 어떤 것도 자연에 맞서 이길 수 없으며 생성과 파괴, 그리고 재생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안전에 대한 거짓 환상을 팔거나 죽음에 대한 비논리적인 공포를 선동하는 자들에게 분노하는 한편, 루크레티우스는 일종의 해방감과 함께 이전에는 너무나 위협적으로 보였던 것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루크레티우스는 인류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죽음을 극복하고 우리 자신도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도 덧없는 것임을 인정하면서 세상의 이름다움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고 썼다.


20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에 문제의 변화가 일어났을 때, 결정적인 순간은 한 외딴 장소의 벽 뒤에 처박혀 가만히 숨죽인 채 거의 눈에 띄지도 않게 지나갔다. 어떤 영웅적인 행위도, 이 위대한 변화의 현장을 후세에 증언해줄 영민한 관찰자도 없었다. 천지개벽할 변화의 순간이면 으레 나타나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상냥하지만 약삭빠르고 기민해 보이는 인상의 한 30 대 후반의 덩치가 작은 사내가 한 도서관의 서가를 둘러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매우 오래된 필사본 하나를 발견하고 꺼내들었다. 책을 살펴보고 그는 매우 흥분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책을 필사하도록 지시했다. 이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했다.


21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는 이 책의 발견이야말로 포조가 한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보이지만, 그 자신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발견도 아니었으며 또한 발견이라는 표현을 쓸 만한 우연한 사건도 아니었다. 포조 브라촐리니는 책 사냥꾼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고대 세계의 유산을 이 잡듯 찾아내어 되살려내는 데에 중독되어 있던 그 시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책 사냥꾼이었을 것이다.


1 책 사냥꾼

25 가족과 친족관계, 길드와 조합 이것들이 당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구성요소였다. 당시 사회는 독자성과 자립심을 높이 사지 않았으며, 사실 거의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누구에게나 자명하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명령과 복종의 연결 고리 안에서 결정되었다.


25 이 연결 고리를 끊고 나오려는 시도는 한마디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무례한 행동 ― 마땅히 예를 갖춰야 할 사람 앞에서 허리를 숙이지 않는다든지 무릎을 꿇지 않는 것, 혹은 모자를 벗지 않는 것과 같은 행동은 코가 잘리거나 목이 부러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사회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랐을까? 교회든, 재판소든, 과두정체 도시의 지배가문이든 간에 그들이 명확하게 규정한 어떤 일관성 있는 행동양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은 그저 겸허하게 운명이 자신에게 부과한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28 포조는 자신이 찾아낸 필사본이 최대한 충실하고 정확하게 더 오래된 다른 필사본을 베낀 것이기를 바랐고, 또 그 필사본은 마찬가지로 더 오래된 양피지의 내용을 최대한 충실하고 정확하게 옮긴 것이기를 바랐다. 필사가 자체는 포조와 같은 책 사냥꾼에게는 책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무관한 존재였다. 기적에 가까운 행운이 거듭된다면 먼지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던 귀한 원고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필사되고, 또 그 필사본이 다른 누군가의 손을 거쳐 필사되는 식으로 필사가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포조가 흥미로운 사냥감의 존재를 포착하면 책 사냥꾼의 심장은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2 발견의 순간

34 이탈리아인들은 100여 년간 책 사냥에 몰두해왔다. 그 시작은 시인이자 학자인 페트라르카가 흩어져 있던 고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의 기념비적인 저작 『로마 건국사』를 발견하여 집대성하고, 키케로 프로페르티우스 등 잊혔던 고대의 걸작을 찾아내어 명성을 얻은 1330년경의 일이었다. 페트라르카가 거둔 성공은 수세기 동안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은 채 묻혀 있는 잃어버린 고전들을 찾아내도록 사람들을 고무시켰다. 이런 열정으로 재발견된 고전들은 필사, 편집, 주해 과정을 거쳐 활발히 교환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서 발견자들은 명예를 얻었으며, 이른바 '인문학' 이라고 알려진 학문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54 고대의 책은 대부분 두루마리 형태였다. 오늘날에도 유대인은 예배를 드릴 때 고대부터 이어진 두루마리 형태의 『토라(Torah)』를 사용한다. 그러나 4세기경의 기독교인은 새로운 형태인 코덱스(codex) 라는 책자 형태로 거의 완전히 돌아서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형태의 책은 바로 이 코덱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코덱스에는 문헌에 쪽수를 매기고 색인을 달 수 있으며 책장을 넘겨서 원하는 부분까지 쉽게 갈 수 있었으므로 독자가 찾으려고 하는 내용을 전보다 훨씬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아주 큰 장점이 있다. 우수한 검색 기능을 갖춘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코덱스의 단순하면서도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훌륭한 구성방식에 대적할 만한 대안이 없었다.


57 그들은 오직 펜을 잘못 다뤄 생긴 자신의 실수만을 고칠 수 있었다.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먼저 지워야 하는 잉크를 조심스럽게 면도칼로 긁어낸 뒤에 그 자리를 우유, 치즈, 라임의 혼합물을 이용하여 채워넣었다. 이를테면 중세 버전의 수정액인 셈이다. 실수를 했다고 해서 양피지를 버리고 새것으로 다시 시작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설령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양피지로 만드는 과정은 엄청난 노동을 요하는 일이었다. 양질의 양피지는 대단히 귀했으며 이를 버리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수도원이 애초에 고대 문헌을 수집하고 그것이 쓰레기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이유들 중 하나도 바로 양피지 자체의 가치였다.


66 포조는 루크레티우스라는 이름을 틀림없이 알아보았을 것이다. 루크레티우스는 그가 동료 인문주의자들과 함께 열심히 읽었던 오비디우스, 키케로 등 여러 다른 고대 작가들의 작품에 언급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조나 그의 동료들 중 누구도 실제로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작품에 인용된 한두 줄의 토막글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때까지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은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3 루크레티우스를 찾아서

95 에피쿠로스의 설명에 따르면, 원자들은 부단히 움직이며 서로 충돌하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서로 결합하여 더 큰 물체를 이루기도 한다. 관찰할 수 있는 가장 큰 물체는 해와 달인데, 인간이나 물가의 날벌레, 모래알과 마찬가지로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질에는 상위 범주도 없으며 원자 간의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체도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성한 존재가 아니며 진공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움직임도 신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다. 


96 에피쿠로스의 계몽활동에는 지속적인 과학적 연구는 필요하지 않았다. 물리적 우주의 실제 법칙을 상세하게 파악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모든 것에는 당신을 두렵게 만들거나 혹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감춰진 자연의 설명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고만이었다. 그 감춰진 자연의 설명은 자연스럽게 원자라는 개념으로 이끌어진다. 


97 만약 당선이 이 단순한 존재에 관한 사실을 자신에게 반복해서 말하며 그에 대해 신념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삶은 바뀔 것이다. 그러니까 말해보자. 이 세상에는 원자와 진공이 있을 뿐이다. 원자와 진공, 오직 원자와 진공.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큰 천둥소리를 듣고도 유피테르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고, 독감이 퍼질 때마다 누군가가 아폴론을 화나게 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햄릿이 "죽음 후에 있는 것은 두렵나니/경계가 알려지지 않은 발견되지 않은 나라가 있어/어떤 여행자도 돌아온 적이 없노라"라고 표현한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101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쾌락이라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적인 주장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여타 이교도나 그들의 대척점에 있던 유대인은 물론이고 후일의 기독교인 모두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충격을 받았다. 쾌락이 최고의 선이라고? 신과 조상들에 대한 경배는 어쩌고? 가족과 도시, 나아가가서는 국가에 대한 봉사는? 성실하게 법과 명령을 따르는 것은? 덕이나 신을 따르는 것은?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대립하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금욕적인 자기부정, 자기희생, 심지어 자기혐오의 형태를 수반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쾌락의 추구를 최고의 선으로 보는 에피쿠로스 사상과는 양립할 수 없었다. 에피쿠로스가 직접 자신의 사상을 가르쳤던 때로부터 2,0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의 사상이 던진 충격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존슨의 작품과 같은 졸렬한 모조품 안에서 비틀린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아남았다.


4 시간의 이빨

105 이렇게 책의 소실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원자론이라는 뛰어난 개념을 창안한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둘의 작품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사라졌으며 그들의 지적인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에피쿠로스의 작품도 대부분 소실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사실 에피쿠로스는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썼다. 에피쿠로스는 그의 주요 철학적 경쟁자였던 스토아 학파의 크리시포스와 서로의 사상에 대해서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 양이 책으로 1,000권 이상의 분량이었다고 전해진다. 비록 그 수가 과장되었거나 수필이나 편지에 불과한 것까지 책으로 헤아렸다고 해도 에피쿠로스가 남긴 글의 양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의 저작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125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성육신 등의 개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며 실소를 터뜨렸을 것이다. 왜 인간은 자신이 벌, 코끼리, 개미 혹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종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이나 앞으로 닥칠 억겁의 세월 동안 신이 다른 종의 형태가 아닌 인간의 모습을 취해야만 하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그리고 많고 많은 인간들 중에서 왜 하필 유대인의 형상을 취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신의 섭리라니! 합리적인 성인이라면 경험이나 관찰과 모순되는 그 같은 유치한 생각을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은 우물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개구리 떼 같았다. 그들은 소리 높여 개골개골 울어댄다. "세계는 우리를 위해서 창조되었다!"


129 기독교의 논객들은 에피쿠로스와 그 선봉자들에 대항하여 조롱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이 경우에 이교 선들의 희화화는 쓸모가 없었다. 그들은 신에게 희생 제의를 바치는 신앙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모든 고대 신화를 부정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상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재정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더 이상 합리적인 쾌락을 추구하며 절제하는 삶을 사는 사도의 모습이 아니라 시끌벅적하고 자제라고는 모르는 팔스타프 같은 인물이어야만 했다.


129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가 멍청하고 수돼지처럼 방탕한 데다가 제정신이 아니며 결정적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명성을 온전히 더럽히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작품을 읽지 못하게 억압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모욕하며, 사본이 제작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세계가 오직 원자와 진공(void)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보다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윤리적 가치관이었다. 즉 최고의 선은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경감에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주된 문제였다.


5 탄생과 재생

150 페트라르카는 자신이 살아야만 하는 현재라는 시대를 한없이 혐오했다. 그는 자신이 거칠고 무지하며 인간의 기억에서 곧 사라지고 말 하찬고 추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가 내뱉은 모욕적인 언사는 오히려 그의 카리스마와 명성을 드높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명성은 꾸준히 높아졌고 더불어 과거에 대한 그의 집착이 가진 문화적인 중요성도 점점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페트라르카의 집착은 후대에 부분적으로 관습화 과정을 거치면서 강력한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른바 '인문학', 즉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이들 언어로 된 문헌의 습득을 강조하고 수사학에 초점을 맞춘 학문이 탄생한 것이다.


151 초기의 인문주의지들은 자신들이 신기원을 이루는 운동에 관여하고 있음을 느꼈고, 여기에 자부심과 함께 경이로움,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운동의 일정 부분은 지금껏 살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194 언제나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이탈리아가 유독 그 혼란의 정도가 극심해질 때, 교황청에 대소동이 벌어졌을 때, 개인적 야망이 좌절되었을 때, 그리고 아마도 야망이 좌절된 것 못지않게 야망이 이루어졌을 때면, 포조는 이 자유의 느낌에 젖어들곤 했다. 1410 년경 어느 시점에선가 그를 특별히 강력하게 사로잡은 느낌도 이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인문주의자 필사가이자 교양 있는 작가, 동시에 교황청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내부인으로서 그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명예로우면서도 가장 위험한 직책을 받아들였다. 교황으로 막 선출된 사악하고 교활하고 무자비한 인물, 발다사레 코사의 비서 자리를 수락한 것이었다.


7 여우 잡는 함정

226 포조처럼 빈틈없고 매우 숙련된 관료로서 이제 나이도 거의 마흔에 달한 자라면 뭔가 안정을 취할 수 있을 든든한 수단을 강구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포조는 그런 종류의 행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성 갈렌 수도원에서 돌아온 지 몇 달 만에 이번에는 동행인 하나 없이 콘스탄츠를 떠났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숭고한 작품을 찾아내서 그 끔찍한 감옥에서 꺼내 다시 세상 빛을 보게 해주어야겠다는 포조의 열망은 이런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더 강렬해지기만 한 것 같았다. 자선이 무엇을 찾게 될지에 대해서는 포조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그것이 우아한 고전 라틴어로 쓰였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구해내야 한다는 확신이 있을 뿐이었다. 포조가 보기에는 저 무지하고 나태한 수도사들은 지난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류가 알게 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위대한 옛 문명의 자취를 가둬두고 있었다.


8 사물의 길

229 포조와 그의 학식 있는 친구들은 이 런 어려움 앞에 동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라틴어 실력은 훌륭했고, 수수께 끼 같은 원문을 파헤치는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종종 훨씬 더 의 미를 파악하기 힘든 교부 산학의 덤불 속을 헤매면서도 쾌락과 흥미를 잃지 않았다. 따라서 포조는 손에 든 사본을 처음 몇 장만 대충 넘겨보고도, 자신 이 뭔가 매우 비범한 것을 발견했음을 즉각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232 무신론—보다 엄밀하게는 신의 무관심—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문제점이 아니었다. 정작 가장 주요한 쟁점이자 대단히 불온한 논쟁의 시발점이 된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이 물질계였다. 이 논쟁의 가공할 만한 위력은 수많은 이들 ━마키아벨리, 브루노, 갈릴레오 등—을 매료시켜서 기묘한 일련의 사상적 조류를 형성했다. 일찍이 이것은 포조의 발견의 결과로서 그 사상이 되살아난 바로 그 지역에서 열정적으로 탐구된 바 있었다. 그러나 1,000여 넌 동안 이어져온 실질적인 침묵의 세월은 이 조류를 매우 위태로운 지경으로 까지 몰고갔다.


250 루크레티우스는 영혼은 이 세상에 잠시 머물 뿐이며 궁극적으로 다른 곳으로 간다는 신앙은 인간 존재에 독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신앙은 자신의 단 한번뿐인 삶을 살고 있는 이 세상과 파괴적인 관계를 맺게 할 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물과 서로 연계되어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이 세계를 포함한 사물은 결국은 붕괴되어 그 구성요소인 원자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원자로부터 영원한 물질들의 군무 속에서 다시 다른 사물이 형성된다. 그러나 최소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최고의 쾌락을 즐겨야 하는 법이니, 우리 또한 루크레티우스가 본래 관능적인 것이라고 칭송한 이 세상을 창조하는 장대한 과정의 한 일부이기 때문이다.


9 귀환

255 니콜리의 우아한 손글씨로 탄생한 사본은 포조가 고용한 독일인 필사가가 만든 사본과 함께 이후에 만들어진 때 여 개의 필사본━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진 것만 50권이 넘는다━과, 15세기와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모든 인쇄용 판본의 기초가 되었다. 포조의 발견이 1,000년 넘게 잠들어 있던 한 편의 고대 시가 세상에서 다시 읽히게 되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262 그리하여 드디어 포조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정확한 날짜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마침내 니콜리의 방에서 풀려나와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거의 1,000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책이 다시 세상에 나와 천천히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세상에 돌아온 이 시에 대해 포조 자신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말해주는 흔적은 없다. 니콜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책이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조용히 읽히기 시작했음을 암시하는 흔적들 ―필사본 제작, 인용,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글귀, 미묘하게 그 영향력을 드러내는 표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반향은 먼저 피렌체에서 나타났으나 곧 피렌체를 넘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갔다.


10 일탈

276 사보나롤라가 청중을 향해 그 멍청한 원자론자들을 조롱하라고 말하던 바로 그때, 한 젊은 피렌체인은 한쪽에서 조용히 손수 『시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필사하고 있었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이 젊은 피렌체인에게 끼친 영향을 굳이 추적하자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쓴 여러 유명한 책들에서 이 작품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하기에는 그는 너무도 영리했다. 그러나 1961년, 해당 필사본에 남아 있는 손글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 정체가 결국 밝혀졌다. 필적 감정을 통해서 밝혀진 그 피렌체인의 이름은 바로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283 포조의 재발견으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후인 1516년 12월, 피렌체 종교회의에 모인 고위 성직자로 구성된 영향력 있는 집단이 학교에서 루크레티우스를 읽는 것을 금했다. 교시들은 이 우아한 옛 라틴어 작품을 학생들에게 독서 과제로 내주고 싶은 욕망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음탕하고 사악하며 영혼이 사멸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온갖 궤변으로 점철된" 작품이라며 학생들이 읽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포고를 어긴 자들은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며 10두카트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내려졌다.


11 사후세계

321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을 심미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라틴어 실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비교적 소수의 엘리트만이 시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시를 글을 읽을 줄 아는 대중에게 널리 전하고자 한다면, 당국의 깊은 의혹과 잔혹한 처벌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1417년 포조의 재발견 이후 2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도 감히 나서서 작품의 대중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328 사실 제퍼슨은 시의 저자인 루크레티우스가 기대했을 법한 방식이 아니라 16세기 초의 토머스 모어가 꿈꿨을 만한 방식으로 이 고대 유산을 받아들였다. 알다시피 제퍼슨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공적 생활로 인한 격렬한 경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새로운 공화국의 초석이 되는 중대한 정치적 문서를 작성하는 데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 문서의 내용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만든 또 하나의 뜻밖의 전환이었다. 이 문서로 탄생하는 정부의 사명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복의 추구"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루크레티우스를 이루던 원자들은 이렇게 미국 독립선언서에도 그 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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