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4장(3)

 

 

2021.09.14 옥스퍼드 세계사 4장(3)

⟪옥스퍼드 세계사⟫ 제4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번째 절이 조밀 정착지와 큰 국가의 확산 및 성장, 지난 번에 두번에 걸쳐서 이야기를 했다. 이것이 바로 제2천년기에 일어난 사건들이기 때문에 기원전 제2천년기 후반의 위기, 이것이 두번째를 읽는다. 이 부분 전체를 한 마디로 말하면 제2천년기에 등장했던 농민의 제국들, 이 농민의 제국들이라는 4장의 제목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농업 생산에 근거를 두고 제국을 만들었는데 그 제국들이 농업생산만 가지고는 유지가 안되니까 하나의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제2천년기 후반기에 나타났던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이 히타이트, 그리고 이집트는 누비아 지역으로 계속 식민지를 만들어서 농업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히타이트는 1500년경부터 문명의 전환 또는 붕괴의 위기가 닥쳤는데 농업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농업과 목축을 결합한 나라를 만든다. 이 농민제국들이 유지되는 방법이 뭐냐, 농업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이다. 농업만 가진 나라들은 망했고 그 다음에 이로 인한 교육을 얻었기 때문에 히타이트는 농업과 목축을 결합한다. 그 다음에 미노스 또는 크레타, 그리고 미케네 지역은 잘 조직된 농업과 해양 도시들이기 때문에 국가가 규제하는 교역을 결합한다. 교역도 일종의 목축이라고 생각한다면, 농업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뭔가를 결합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 다음 중국은 계속 농업인데 땅 자체가 확장가능성이 있는 곳이기었기 때문에 확장가능성에 바탕을 두고 농업이 더 나아가게 된다. 상나라가 주나라에 멸망당하는 과정을 보는 농업만이 아니었구나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집트는 누비아, 즉 나일강 상류의 폭포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이집트는 유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큰 그림으로 봐서 농업만 가지고 유지되지 않았다. 이 나라들이 제2천년기 후반기에 들어서 어떤 방식의 나라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문명이 일궈졌는가, 농업과 뭔가를 하나 덧붙였다. 

그러면 제2천년기에 농업과 다른 것을 결합한 나라들은 어떻게 망했는가, 이 문명은 어떻게 사라졌는가. 두 개의 축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이 문명은 한계에 달했는가. 결국 농업이라고 하는 것이 뭔가 문제가 생기면서 한계에 달했다. 그리고 농업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기후 변화이다. 급격한 기후변화가 있다. 기원전 제2천년기 후반의 위기라고 하는, 이 시대에 나타났던 히타이트, 인더스 유역의 하라파 문명, 그리고 크레타나 미케네 지역들이 급격하게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일종의 수수께끼라고 불린다. 그런데 수수께끼라고 말하는 것은 게으른 것이다. 왜냐 이집트는 누비아를 상실하고서도 살아남았고 상나라는 주나라에 패배했으나 살아남았다. 그러면 이집트와 주나라가 유지된 까닭을 가만히 살펴보면 히타이트나 크레테, 미케네 이런 곳이 사라진 까닭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수수께끼라고 말하는 것은 멸망한 문명만 보면 수수께끼일 수 있으나 같은 시기에 등장했던 제2천년기 후반에 등장했던 여러 문명들 중에서 사라지지 않은 문명들이 존속했던 원인을 살펴봤을 때 미케네가 크레타나 히타이트 지역은 이게 없었구나 그러기 때문에 갑자기 사라졌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기원전 제2천년기 후반의 위기, 이 절에는 메모를 해야 한다. 이 시기의 국가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농업과 다른 경제활동의 결합"에 있다. 몇몇 문명의 수수께끼 같은 소멸, 이 소멸의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중국이나 이집트의 존속에서 찾을 수 있다.  191페이지에 "큰 강 유역의 장대한 문명들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절은 문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기원전 제2천년기 후반의 위기"라는 절은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역사는 일회적이다. 그런데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로부터 뭔가를 알아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라는 것이, 우리 인간사는 흥망성쇠가 변화무쌍하지만 이 인간사가 벌어지는 지구라고 하는 환경은 인간사에 비하면 아주 지속적이고 안정적이고 법칙적이다. 따라서 기원전 제2천년기 후반의 문명들의 지속가능성을 말그대로 가능하게 했던 것과 불가능하게 했던 것을 각 문명의 차원에서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세계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는 것과 지속불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원인들에 대해서 추론해 낼 수 있다. 

그러면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 히타이트 지역이 있다. 히타이트는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문명을 이루었다. 바위가 엄청나게 솟아나와있는데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히타이트 문명이 등장했다. 히타이트의 주요 도시가 하투사이다. 192페이지에 "그런데 아나톨리아 중부와 같은 불리한 환경에서 어떻게 제국이 생겨났을까?" 중요한 물음이다. 이게 바로 히타이트 문명을 가능하게 했던 물음이다. 이런 것이 순수한 농민 제국에서는 멸망할 만한 조건이다. 바로 아래 답이 있다. "히타이트 왕국의 강점은 농민과 목축민을 단일한 국가와 경제 체제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히타이트 왕국이 4대강 유역도 아니고 바위산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유지되었는데 농민과 목축민이 결합된 하나의 복합체였다. 다시 말해서 "아나톨리아 중부에서 스스로를 하티(히타이트인)의 자손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동맹을 맺은 수백만 명을 하나의 생산과 분배 네트워크로 끌어들였다." 동맹이라는 단어와 하나의 생산과 분배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오로지 농사만 짓는다든가 오로지 목축만 한다든가 해서는 문명이 지속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제4장 191 기원전 약 1800년부터 1500년까지 아나톨리아 중부에서 스스로를 하티(히타이트인)의 자손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동맹을 맺은 수백만 명을 하나의 생산과 분배 네트워크로 끌어들였다.

제4장 192 그런데 아나톨리아 중부와 같은 불리한 환경에서 어떻게 제국이 생겨났을까?

제4장 192 히타이트 왕국의 강점은 농민과 목축민을 단일한 국가와 경제 체제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문명 멸망의 하나의 공식 같은 것이 있다. "성장은 역설적이다." 성장이라고 하는 것이 생존의 방도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성장은 움직일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친다. 히타이트의 경우 그 한계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변경이었다." 이 지역까지 가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타이트 다음에 등장한 메소포타미아의 강자인 아시리아이다. "상부 메소포타미아에서 팽창중인 국가[아시리아]와 치른 대규모 전투에서 적어도 한 번은 패했다." 그래서 195페이지 중간을 보면 "히타이트 이야기는 당대의 문제들을 요약해 보여준다. 다시 말해 농업 공동체들이 어떻게 국가로 결속하고 제국으로 팽창하고 (대개) 기원전 1000년 이후 존속하는 데 실패했는지 보여준다." 성장의 역설이 생기는 것이다. 

제4장 194 성장은 역설적이다. 많은 국가에 성장은 생존의 방도인 동시에 장애물이다. 성장은 움직일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친다. 히타이트의 경우 그 한계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변경이었다.

제4장 195 히타이트 이야기는 당대의 문제들을 요약해 보여준다. 다시 말해 농업 공동체들이 어떻게 국가로 결속하고 제국으로 팽창하고 (대개) 기원전 1000년 이후 존속하는 데 실패했는지 보여준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상나라가 망하면서 상에 대항했던 주나라가 등장한다. 주나라는 천명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킨 나라인데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봉건국가이다. 즉 한 나라 안에서 황제 한 사람이 모든 지역을 통치하지는 않았다. 각각의 지역에 지배자들이 연합된 나라이다. 그러니까 204페이지를 보면 "상을 정복한 이후 주가 상의 모든 전통을 이어갔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주는 경건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상의 가장 신성한 의례인 갑골 복점을 점차 그만두었다. 주는 기원전 8세기에 동주와 서주로 분리되기 전까지 중국의 문화적 변경을 넓혔지만, 주나라 지도자들은 상나라 유형의 보편적인 황제, 자신들에게 중요한 영역을 두루 다스리는 황제가 아니었다." 여기에 주나라가 하는 나라가 유지된 비법이 있다. 단일한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경쟁 국가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주나라의 권력은 서서히 기울고 조각나는 추세였다." 만약에 황제 한 사람이 모든 영역을 통치하는 나라였다고 하면 주나라도 멸망의 길을 갔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여러 나라의 혼합 또는 연맹체였던 것인데 얼핏 보기에는 주나라가 한 개의 나라로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중국의 통일성과 연속성이라는 신화로 포장이 된다. 그게 바로 "오늘날 서구의 표준적인 중국관 ━ 중국은 내구성이 유달리 강한 균일한 문화와 전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는 경향을 가진 거대하고 획인적인 국가라는 견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은 주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주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제4장 205 상을 정복한 이후 주가 상의 모든 전통을 이어갔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주는 경건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상의 가장 신성한 의례인 갑골 복점을 점차 그만두었다. 주는 기원전 8세기에 동주와 서주로 분리되기 전까지 중국의 문화적 변경을 넓혔지만, 주나라 지도자들은 상나라 유형의 보편적인 황제, 자신들에게 중요한 영역을 두루 다스리는 황제가 아니었다. 주변에서 경쟁 국가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주나라의 권력은 서서히 기울고 조각나는 추세였다. 

제4장 205 주나라는 중국인의 자기 인식을 좌우하게 된 효과적인 신화, 중국의 통일성과 연속성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 신화는 후대로 계속 전해졌으며, 오늘날 서구의 표준적인 중국관 ━ 중국은 내구성이 유달리 강한 균일한 문화와 전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는 경향을 가진 거대하고 획인적인 국가라는 견해━이기도 하다.


다시 195페이지로 와서 미노스 또는 크레타라고 부르는 문명이 있었다. 이 문명들도 앞서 히타이트와 마찬가지이다. 농업공동체와 국제 교역이라고 하는 것을 결합한 복합체이다.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4세기에 고전기 그리스 철학을 정식화했을 무렵, 미케네 최후의 도시들은 이미 폐허가 된 지 1000년이 지난 터였다. 크레타와 미케네는 신화의 주제였다 ━ 거의 우리에게만큼이나 고대 그리스인에게도 크레타와 미케네는 먼 과거의 신비한 문명이었다." 따라서 서기전 800년 무렵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내용이 그때보다 200년 전에 있었던 미케네 문명을 하고 있는 것인데, 호메로스의 서사시도 벌써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도 몇 백 년 전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도 자기보다 또 몇 백 년 전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미케네나 크레타 이런 나라들이 얼마나 오래 전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196페이지를 보면 "이 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식량 공급을 통제하는 두 가지 전제적인 방법에 의존했다. 하나는 히타이트처럼 농경과 목축을 모두 포함하는 조직된 농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규제하는 교역이었다."  여기서 히타이트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나온다. "국가가 규제하는 교역", 이것은 바다를 통한 것이니까 바다를 통해서 국가가 교역을 통제한다. "크레나인은 능숙한 뱃사람이었다." 이게 바로 이제 미케네의 전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크레타나 미케네 왕국만 교역을 한 것이다. 지중해의 섬들은 다 교역을 했을테니까 당연히 교역을 하는 나라들끼리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미케네나 크레타나 히타이트 모두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의 일이 된다. 그점을 199페이지를 보면 "관료들의 주 업무는 사치품 생산이 아니라 전쟁 대비였다. 미케네의 왕국들은 서로 싸웠을 뿐 아니라 배후지 야만족의 위협에도 시달렸다." 

제4장 195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4세기에 고전기 그리스 철학을 정식화했을 무렵, 미케네 최후의 도시들은 이미 폐허가 된 지 1000년이 지난 터였다. 크레타와 미케네는 신화의 주제였다 ━ 거의 우리에게만큼이나 고대 그리스인에게도 크레타와 미케네는 먼 과거의 신비한 문명이었다.

제4장 196 이 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식량 공급을 통제하는 두 가지 전제적인 방법에 의존했다. 하나는 히타이트처럼 농경과 목축을 모두 포함하는 조직된 농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규제하는 교역이었다. 

제4장 199 관료들의 주 업무는 사치품 생산이 아니라 전쟁 대비였다. 미케네의 왕국들은 서로 싸웠을 뿐 아니라 배후지 야만족의 위협에도 시달렸다.

그런데 이 문명이 결정적으로 사라진 원인이 뭘까를 생각해 보게된다. "크레타와 미케네, 히타이트의 멸망을 국지적인 정치적 실패 또는 생태적 재앙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긴 하지만, 지중해 동부의 전반적인 위기와 연관 짓는 것도 솔깃한 일이다." 솔깃하다는 말은 수수께끼와 연관된다. 사실 수수께끼라고 한 책이 있다. 에릭 클라인의 《고대 지중해 세계사》이다. 그런데 이 ⟪옥스퍼드 세계사⟫도 설명이 완벽하지는 않다.  《고대 지중해 세계사》에서는 이것을 "퍼펙트 스톰"이라고 말한다. 지중해 동부의 여러 도시와 국가를 멸망시킨 정체불명의 침입자들이라는 표현은 에릭 클라인의 책에 보면 나온다. 그리고 "기원전 1190년 경 이른바 '바다 민족'이 이집트를 급습한 사건"도 있다. 그런데 지금 《고대 지중해 세계사》는 수수께끼로 이 문제를 돌리지 않고 본인도 수수께끼로 보는 건 게으른 것이라고 본다. 그럼 뭐라고 얘기하는가. 201페이지 "당시 위기의 원인은 쇠퇴하거나 실패한 국가들이 공유한 구조적 문제, 즉 생태적 취약성과 불안정하고 경쟁적인 정치에 있었다." 생태적 취약성이라는 것은 "굶주림과 토지 부족에서 기인한 광범위한 불안정의 징후"이다. 다시말해서 이 시기에 지중해 동부 여러 국가와 도시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은 "퍼펙트 스톰"으로 생각하지 말고 "생태적 취약성과 불안정하고 경쟁적인 정치". 그런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넓은 땅,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이 없으면 바로 그 지역을 퍼펙트 스톰 단계로 몰고 간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한 지역이 이집트나 중국에는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면 "식량 분배 체제가 자원 기반을 넘어섰다." 이게 바로 생태적 취약성이다. 자원 기반은 간단히 말하면 땅과 목축지이다. 땅과 목축지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한정된 땅에서 식량이 생산되는데 한계가 있고 늘어난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었다. 그게 바로 식량 분배 체제가 자원 기반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 생태적 불안정을 극복하는 방법은 식량 분배 체제가 자원 기반을 넘어서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람 힘으로 되는가. 땅이 있어야 하니까 따라서 자원기반이 넓은 곳, 중국 같은 곳은 식량 분배 체제가 자원 기반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 자원 기반을 넓혔다. 그러면 아주 자연스럽게 생태적 취약성이 극복될 수 있다. 그때 이제 침입자들이 들이닥쳤는데 이 침입자들은 전쟁만 하면서 떠돌아다니는 사람이기 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유랑민이 된 사람들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침입자가 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제4장 200 크레타와 미케네, 히타이트의 멸망을 국지적인 정치적 실패 또는 생태적 재앙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긴 하지만, 지중해 동부의 전반적인 위기와 연관 짓는 것도 솔깃한 일이다.

제4장 201 굶주림과 토지 부족에서 기인한 광범위한 불안정의 징후

제4장 201 당시 위기의 원인은 쇠퇴하거나 실패한 국가들이 공유한 구조적 문제, 즉 생태적 취약성과 불안정하고 경쟁적인 정치에 있었다.

제4장 203 하라파 문명의 몰락은 기원전 제2천년기의 대규모 실패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경우였다. 그렇지만 넓게 보면 하라파 문명은 히타이트나 지중해 동부 문명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운명을 맞았다. 다시 말해 식량 분배 체제가 자원 기반을 넘어섰다. 



205페이지를 보면 주나라는 "우리 주의 작은 땅을 일으켜 새로운" 천명 이데올로기를 고안했다. 천명이라는 개념이 주나라에서 나왔다는 것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190페이지를 보면 "중국 변경의 확장은 통치자들의 야심을 자극했다." "하늘의 경계에 도달하는 국가는 일종의 '명백한 운명'을 완수할 터였다. 중국인들은 황제의 세계 통치를 신이 정한 과업으로 보게 되었다." 이게 바로 천명 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황제는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 천자라고 불렀다.

제4장 190 중국 변경의 확장은 통치자들의 야심을 자극했다.

제4장 190 하늘의 경계에 도달하는 국가는 일종의 '명백한 운명'을 완수할 터였다. 중국인들은 황제의 세계 통치를 신이 정한 과업으로 보게 되었다.

제4장 205 주나라는 "우리 주의 작은 땅을 일으켜 새로운" 천명 이데올로기를 고안했다.


그 다음 이집트. "기원전 1000년경 이집트 기록에서 누비아 ━ 오늘날 수단에 해당하는 나일강 상류의 폭포 지역 ━가 사라졌다." 누비아라는 지역은 그 전에는 식민지였는데 그 식민지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제4장 207 기원전 1000년경 이집트 기록에서 누비아 ━ 오늘날 수단에 해당하는 나일강 상류의 폭포 지역 ━가 사라졌다.

이 모든 얘기를 정리해서 208페이지 문단이 있다. "당대의 가장 야심 찬 국가들은 역설에 시달렸다. 그들은 인구 성장에 전념했지만, 정복한 영토가 중심지에서 점점 더 멀어짐에 따라 인구 성장은 지속 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그들은 집약적인 생산 방법을 채택했지만, 그 탓에 환경이 과잉 개발되었다. 또한 대규모 인구를 집중시켜 기근과 질병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주변의 적들은 그들의 부를 탐내고 그들의 권력에 분개했다. 그들은 배후지의 경쟁자와 모방자를 자극함으로써 적을 더 늘렸다. 그들의 식량 분배 계획이 실패하자 무질서한 이주가 뒤따랐다."

제4강 208 당대의 가장 야심 찬 국가들은 역설에 시달렸다. 그들은 인구 성장에 전념했지만, 정복한 영토가 중심지에서 점점 더 멀어짐에 따라 인구 성장은 지속 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그들은 집약적인 생산 방법을 채택했지만, 그 탓에 환경이 과잉 개발되었다. 또한 대규모 인구를 집중시켜 기근과 질병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주변의 적들은 그들의 부를 탐내고 그들의 권력에 분개했다. 그들은 배후지의 경쟁자와 모방자를 자극함으로써 적을 더 늘렸다. 그들의 식량 분배 계획이 실패하자 무질서한 이주가 뒤따랐다.

이렇게 해서 제4장의 설명을 마쳤는데 제1부가 "빙하의 자식들", 제2부가 "점토와 금속으로"이다. 이제 농업 제국들이 등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용된 도구들을 가지고 제2부의 제목을 달았다. 제4장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때부터 문명이라는 것이 등장하고 그 문명을 이루는 기반들에 대해서 설명이 나오고, 식량 분배 계획, 식량 분배 계획은 정체제가 세우는 것이다, 정치체제에 관한 아주 근본적인 사태들이 제4장에 있다. 다음번에는 제3부 제국들의 진동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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