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6장(3)

 

2021.10.22 옥스퍼드 세계사 6장(3)

《옥스퍼드 세계사》 제6장 지적전통들 세번째 시간이다. 개종전략을 보면 종교가 어떻게 해서 자기의 선교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인데, 종교가 전파된 경로가 동시에 세계가 교류한 경로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개종전략은 종교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세계 문명 교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불교나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모두 비슷한 개종전략을 구사했는데 "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다. 상인 네트워크야말고 가장 문명 교류의 전선에 나와있는 것이다. 둘째가 "강력한 정치당국과 동맹을 맺고 경우에 띠라 군사 정복에 관여하는 것"이다. 16세기 이후의 유럽의 기독교가 주로 구사했던 것이다. "셋째 전략은 대개 규율 잡힌 교단에 속한 비범한 개인들이 경건함의 모범을 보이거나 직접 포교하는 방법으로 개종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사례가 나온기는 하는데 말그대로 비범한 개인들이다.  "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예비 개종자의 문화에 맞추어 종교적 개념과 관행을 조정했다." 중요한 부분이다. 개념과 관행을 조정하는 것, 가령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선교를 하면서 천주교라는 말을 쓸 떄, 천주라는 말을 마테오 리치가 만들었다. 천주라는 말은 가톨릭에서 쓰는 말, 주님의 주라는 말도도 마테오 리치가 쓰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첫번째 전략, 즉 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 머리속에 당연히 실크로드가 떠오른다. "네스토리우스파가 기독교 교파 중 처음으로 이 루트를 따라 확산되었다. 불교도들은 특히 동아시아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훗날 무슬림들은 중앙아시아에서 교세를 넓혔다." 실크로드를 이용한 것은 이슬람이 가장 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축의 시대에 아무리 뛰어난 사상들이 생겨났다고 해도 그 이후에 그 사상들이 세계적으로 퍼져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사유를 규정하는 근본 범주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실크로드가 아니었으면 그저 그 지역의 사상으로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상의 전파라고 하는 것이 그만큼 우연한 요소겠는데, 실크로드가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사상 지도가 그려졌을까 의문을 가져본다. 

제6장 280 1350년 이전 1000년간 세계종교들은 저마다 고유한 궤적을 그리며 광범하게 퍼져나가면서도 서로 비슷한 전력을 구사했다. 첫째 전력은 같은 시기에 육로와 해로를 통해 확대된 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둘째 전략은 강력한 정치당국과 동맹을 맺고 경우에 따라 군사 정복에 관여하는 것이었다. 셋째 전략은 대개 규율 잡힌 교단에 속한 비범한 개인들이 경건함의 모범을 보이거나 직접 포교하는 방법으로 개종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제6장 281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 모두 자신들의 핵심 가치관과 지역별 문화를 조화시키려는 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예비 개종자의 문화에 맞추어 종교적 개념과 관행을 조정했다.

제6장 281 세 종교 모두 중앙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극동까지 뻗은 육상 교역망인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되었다. 네스토리우스파가 기독교 교파 중 처음으로 이 루트를 따라 확산되었다. 불교도들은 특히 동아시아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훗날 무슬림들은 중앙아시아에서 교세를 넓혔다.


그 다음에 283페이지를 보면 "인도양의 해상 루트 역시 세계종교들의 전파를 촉진했다. 3세기까지 기독교인들이 남인도에 도착해 성 토마스 공동체를 세웠다." 그 다음에 "이슬람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주민들에게도 전파되었다." 그리고 285페이지를 보면 "통치자를 개종시키는 것은 다른 종교들도 구사한 전력이다." 이것이 둘째 전력이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많이 나온 부분이다. "파트리키우스는 아일랜드의 지역 군장들을 개종시키는데 매진했다." "5세기 말에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가 세례를 받은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그로써 강력한 메로베우스 왕조와 카롤루스 왕조가 로마 교황의 든든한 동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 이 사람들이 슬라브족의 선교, 중요하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이 키예프 루시를 통치한 블라디미르 1세를 개종시켰다.

제6장 283 인도양의 해상 루트 역시 세계종교들의 전파를 촉진했다. 3세기까지 기독교인들이 남인도에 도착해 성 토마스 공동체를 세웠다.

제6장 284 이슬람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주민들에게도 전파되었다.

제6장 285 통치자를 개종시키는 것은 다른 종교들도 구사한 전력이다. 

제6장 285 5세기 초에 성 파트리키우스는 아일랜드의 지역 군장들을 개종시키는데 매진했다. 5세기 말에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가 세례를 받은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그로써 강력한 메로베우스 왕조와 카롤루스 왕조가 로마 교황의 든든한 동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불교,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 역시 통치자를 개종시키는 전략으로 들어왔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5세기 초 이전에 들어왔는데 어쨌든 5세기에 중국의 많은 후원자들을 얻게 되고 그러면서 중국 불교가 굉장히 중요해졌다. 명 태조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면서 불교를 굉장히 탄압했다. 그리고 세번째 전략이 비범한 개인이다. "쿠마라지바Kumarajiva(344~413)는 후진의 수도 장안(오늘날의 시안)에서 수백 명의 승려를 감독해가며 수백 권의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이 사람이 중국식으로 읽으면 구마라집이다. 《구마라집 평전》이 있다.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기존에 익숙했던 단어로 새로운 종교의 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도교를 믿던 사람도 또 유교의 정신을 갖고 있던 사람도 낯설지 않게 하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 

제6장 286 쿠마라지바Kumarajiva(344~413)는 후진의 수도 장안(오늘날의 시안)에서 수백 명의 승려를 감독해가며 수백 권의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그 다음에 기독교 수도회에 관한 얘기가 287페이지에 있다. "기독교 수도회들도 포교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6장 287 기독교 수도회들도 포교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슬람은 그런 것이 없나. 그렇지 않다. "시아파의 분파인 이스마일파는 급진적인 선교 활동을 벌였다." 또 이스라엘에는 다수파인 수니파가 "수피Sufi라고 알려진 종교 운동이 비슷한 역할을 했다." 수피는 이슬람 신비주의다. 자기 내면의 의미와 알라의 의지와의 합의를 추구했던 사람들이다.

제6장 288 시아파의 분파인 이스마일파는 급진적인 선교 활동을 벌였다.

제6장 288 수니파에서는 수피Sufi라고 알려진 종교 운동이 비슷한 역할을 했다.


"무슬림과 기독교 지식인들 사이에서 개화한 지적 르네상스를 살펴보기에 앞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평범한 서민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논하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민중의 깊은 내면까지 기독교화하는 데에는 몇 세대가 걸렸다."

제6장 289 무슬림과 기독교 지식인들 사이에서 개화한 지적 르네상스를 살펴보기에 앞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평범한 서민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논하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통치자들은 보통 세심한 신앙 교육을 받았지만, 민중의 개종은 금방 대충대충 처리하곤 했다. 민중 개개인을 세심하게 교육할 시간(때로는 공통언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민중의 깊은 내면까지 기독교화하는 데에는 몇 세대가 걸렸다.


이제 290페이지를 보면 지적 르네상스가 있다. 첫재 이븐시나라고 하는 무슬림의 학자가 있다. "바그다드에서 동쪽으로 1600킬로미터 떨어진, 중국으로 향하는 대상의 교역로상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의 페르시아인 관료 가정에서 태어나 이스마일파 선생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이븐시나는 무슬림이라고는 하지만 아랍인은 아니다. "페르시아인 관료 가정에서 태어나" 요즘으로 치면 이란 사람이다. "그는 이슬람 교리와 율법에 통찰했을 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지리학으로 유명한 그리스계 이집트인 클라우디오스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문학 논고를 공부했다." 이븐 시나는 50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이 사람의 책이 1200년경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븐시나의 무슬림 정체성에 대한 기독교측의 거부감을 줄이고자 라틴 이름처럼 들리는 아비센나Avicenna라는 저자명을 붙였다." 또 한 사람의 12세기 서방 라틴에서 유명한 이븐루시드가 있다. 아베로에스주의라고 하는 것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중세 철학자이다. "라틴 서방에는 아베로에스Averrose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븐루시드Ibn Rushd(1126~1198)는 또다른 수혜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석으로 유명했다." 이븐시나나 아베로에스가 "이슬람이 되살린 학예는 이윽고 에스파냐 남부를 거쳐 라틴 서방에 전해졌다." 에스파냐 남부를 거쳤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아래를 보면 12세기 르네상스가 나온다. 《기독교의 역사》에도 나온다. 해스킨스가 쓴 《12세기 르네상스》라는 책이 있는데 정말 좋은 책이다. 12세기 르네상스에서 시작된 유럽에서 중요한 것이 파리대학과 옥스퍼드 캐임브릿지대학이다. 이 대학에서 교재를 쓸려면 에스파냐 유대인들이 압바스조, 즉 무슬림들의 성과를 라틴어로 옮긴 번역본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에스파냐 유대인이 유럽의 대학에 팔았다. 그래서 아비첸나 이런 사람들을 연구하게 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집약해서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한다. 그러니까 아베로에스주의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때 바로 파리 대학에 두 명의 교수가 임명된다. 한 사람은 프란체스코회 교수에 임명된 보나벤투라이고, 다른 사람은 도미니쿠스회 교수에 임명된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아퀴나스가 학문적으로 비할바 없이 탁월한 사람인데 보나벤투라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반세기 후에 교황 요한 22세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성인으로 시성했다(프란체스코회의 보나벤투라는 150년 후에야 이 영예를 안았다)."

제6장 291 이븐시나Ibn Sina(980~1037)는 바그다드에서 동쪽으로 1600킬로미터 떨어진, 중국으로 향하는 대상의 교역로상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의 페르시아인 관료 가정에서 태어나 이스마일파 선생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슬람 교리와 율법에 통찰했을 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지리학으로 유명한 그리스계 이집트인 클라우디오스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문학 논고를 공부했다.

제6장 292 1200년경 세상에 나온 라틴어 번역본들은 이븐시나의 무슬림 정체성에 대한 기독교측의 거부감을 줄이고자 라틴 이름처럼 들리는 아비센나Avicenna라는 저자명을 붙였다.

제6장 292 이슬람령 에스파냐에서 태어났고 라틴 서방에는 아베로에스Averrose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븐루시드Ibn Rushd(1126~1198)는 또다른 수혜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석으로 유명했다.

제6장 292 이슬람이 되살린 학예는 이윽고 에스파냐 남부를 거쳐 라틴 서방에 전해졌다.

제6장 293 반세기 후에 교황 요한 22세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성인으로 시성했다(프란체스코회의 보나벤투라는 150년 후에야 이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송나라, 송명이학, 즉 주희, 송나라가 960~1279이니까 이 시기에 유학이 부흥했고 동시에 "송대와 원대 중국 학자들은 과학과 수학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입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이 297페이지에 1300년 불교의 전파 지도가 있는데 정말 어마어마하다.

제6장 293 수백 년간 쇠락의 길을 걷던 유교가 송대(960~1279)에 되살아나고 재해석되었다.

제6장 295 송대와 원대 중국 학자들은 과학과 수학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입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결론에서 핵심적인 것은 "종교들은 생존하기 위해 자주 진화해야 했으며, 무엇보다 종교를 전파하면서 각 지역의 상황에 지적·문화적으로 적응해야 했다." 이 점을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 "12세기에 샤르트르의 베르나르는 당대 학자들이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거인들, 즉 고대 학자들의 어깨에 올라선 난쟁이들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난쟁이들은 더 멀리 볼 수 있다고 해서 과거의 거인들보다 더 현명하거나 영리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제6장 299 동시에 이 종교들은 생존하기 위해 자주 진화해야 했으며, 무엇보다 종교를 전파하면서 각 지역의 상황에 지적·문화적으로 적응해야 했다.

제6장 299 12세기에 샤르트르의 베르나르는 당대 학자들이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거인들, 즉 고대 학자들의 어깨에 올라선 난쟁이들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난쟁이들은 더 멀리 볼 수 있다고 해서 과거의 거인들보다 더 현명하거나 영리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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