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7장(2)

 

2021.11.09 옥스퍼드 세계사 7장(2)

《옥스퍼드 세계사》 제7장 두번째 부분이다. 기원전 1000년 세계 그리고 기원후 175년의 세계, 기원후 1350년의 세계, 이렇게 세 부분으로 시대 구분을 하고 있다. 이렇게 큰 추세로 살펴보는 것, 굉장히 재미있는 것이다. 기원후 175년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가 정치체제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부분이고, 기원전 1000년 세계는 고대 국가 이전의 세계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국가라고 얘기할 때 헬라스 세계의 폴리스, 이런 것은 기원전 1000년 세계에 해당하지 않고 그 이전의 세계에 해당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사에 해당하는 시기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보겠다.

323페이지에 있는 지도를 보면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1350년까지 이루어진 농업 확산의 주요 경로. 색칠한 부분은 기원전 1000년 세계의 농경 지대", 바로 이 지역에만 우리가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국가라기 보다는 읍 정도의 인간 정치제도가 있었던 곳이다. 이 지역에서 "농민들은 기원전 1000년경 이미 세계에서 경작에 알맞은 대부분의 토지에 자리잡고 있었고", 수렵채집 무리에 속한 사람들도 있었다. 목축민들은 "대개 수십 명에서 수백 명 규모인 친족 집단을 이루어 살았다." 씨족이나 부족이라고 불린 유목민들이 "낙타를 가축화하고 스텝 지대에서 장거리르 타고 갈 수 있을만큼 크고 강한 말을 육종함으로써 이동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이동성을 갖추자 유목민의 군사력이 엄청나게 증대되었다. 우리가 몽골 유목민을 생각하다 보니 기원전 1000년경 유목민들에 대해서도 강력함에 대해서 과잉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류의 95퍼센트 이상은 농민이었고 그중 절대다수는 폭력의 정당한 사용을 독점하는 중앙 집권 정부를 결여한 비교적 단순한 집단에 속해 있었다." 비교적 단순한 집단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상당히 평등주의적인 소규모 촌락들이 있었다." 아주 규모가 큰 집단이라고 해봐야 주민 수천 명 정도, 따라서 이때는 비국가 농경사회이다. 비국가라고 말하면 오늘날의 국가라기 보다는, 로마제국, 로마공화국 정도부터를 국가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라도 국가를 형성한 이들은 일단 자리가 "유라시아의 운 좋은 위도대"에 있었다. 

322 농민들은 기원전 1000년경 이미 세계에서 경작에 알맞은 대부분의 토지에 자리잡고 있었고, 기원후 1350년경 거의 모든 경작지에서 괭이나 쟁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322 기원전 1000년에 여전히 평등주의적 수렵채집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1퍼센트 이하였을 것이다.

323 이 목축 집단들은 기원전 1000년 이후 아라비아 낙타를 가축화하고 스텝 지대에서 장거리르 타고 갈 수 있을만큼 크고 강한 말을 육종함으로써 이동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324 인류의 95퍼센트 이상은 농민이었고 그중 절대다수는 폭력의 정당한 사용을 독점하는 중앙 집권 정부를 결여한 비교적 단순한 집단에 속해 있었다. 수렵채집민의 경우처럼 농경민의 조직도 각양각색이었다. 한쪽 극단에는 상당히 평등주의적인 소규모 촌락들이 있었다.

핵심적인 단어 하나를 체크해두자. 325페이지에 어니스트 겔러가 그린 도표를 설명하기 위해서 나온 말하자면 국가 모형이라는 것이 있는 '아그라리라Agraria'라고 불렀다. 326페이지 그림이 있다. 맨 위에 "군인, 행정가, 성직자, 때로는 상인 등으로 층층이 계층화된 통치계급"이 있고 그 아래에 "좌우로 격리된 농업 생산자 공동체들"이 있었다. 얼핏 보면 근세의 도쿠가와 막부처럼 보인다. 이런 형태를 가진다. 그러면 이런 아그라리라 형태의 국가들은 어떤 예들이 있는가. 일단 이집트가 있다. 그런데 "이집트는 당시 가장 크고 강한 국가였을 테지만" 이집트라고 해서 전국적인 규모의 법과 질서를 사람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저가' 국가였다. 고가 국가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국가이고, 돈을 많이 걷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많이 걷어서 많이 쓰는 나라가 고가 국가이다. 지금 기원전 1000년 경의 세계에서 그런 고가 국가는 없다는 말이다. 이집트는 전국적인 규모로 법과 질서를 강제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327페이지에 있는 주나라, 주나라는 "상나라를 무너뜨렸으나 정복지를 수비하고 통치할 역량이 없었고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주나라 왕은 예전 상나라 영토를 친족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을 제후로 임명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했다." 도시를 건설한 친족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주나라 왕은 통치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왕의 요구사항은 자신이 전쟁을 벌일 때 '많은 제후들'이 각 제후국의 분견대를 거느리고 참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전쟁을 마친 뒤 왕은 제후들에게 약탈품을 분배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적인 규모로 조세를 걷고 그것을 가지고 통치비용으로 사용하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저수입 저비용' 국가, 그래서 '저가' 국가이다. 

325 겔너는 이 이념형 초기 국가를 '아그라리라Agraria'라고 불렀고, 이 가상적이지만 전형적인 공동체에서 "통치 계급은 전체 인구 중 소수였으며 절대다수를 차지한 직접 농사짓는 농민들과 엄격히 분리되었다"라고 지적했다.

326 "국가는 세금을 걷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고 그 외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라고 겔너는 말한다.

327 기원전 1046년 주족은 황허 유역을 통치하던 상나라를 무너뜨렸으나 정복지를 수비하고 통치할 역량이 없었고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나라 왕은 예전 상나라 영토를 친족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을 제후로 임명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했다. 신임제후들은 왕에게서 받은 영토를 직접 다스리며 각자 원하는 대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왕의 요구사항은 자신이 전쟁을 벌일 때 '많은 제후들'이 각 제후국의 분견대를 거느리고 참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전쟁을 마친 뒤 왕은 제후들에게 약탈품을 분배했다.


땅을 일정한 정도로 점유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 이것은 넓은 의미의 지대라고 할 수 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기득권이다. "고가 국가에서는 조세가 지대보다 우위였으며, 기원후 1세기 중국처럼 반대로 지대가 조세보다 우위에 서는 순간, 국가는 다시 저가 국가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굉장히 시사점이 있는 말이다. 저가국가는 국가가 달리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국가가 약하다는 것은 농민들이 정부에 세금을 적게 내거나 전혀 안 낸다는 뜻이다." 세금을 덜 내니 좋은 것 같지만 그 대신에 태어난 곳에서 그냥 머물러 사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살던 나라들 중 생산성이 올라간 지역들이 다른 주변에 있는 여러 나라들을 약탈해서 자기 휘하로 오게 하겠지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인프라, 하부구조가 강력하게 있지도 않았을테고 그것을 통치할 수 있는 관료제도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을테니까 결국 저가 국가라고 하는 모델은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아시리아의 경우에도 왕실 금고로 들어오는 수입은 비교적 적었지만 나가는 비용도 적었다. 또한 싸우고 잔치를 베풀고 축제를 여는 것 말고는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그 외에 통치자가 꼭 해야 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이런 나라들이 저가국가이다. 

339 고가 국가에서는 조세가 지대보다 우위였으며, 기원후 1세기 중국처럼 반대로 지대가 조세보다 우위에 서는 순간, 국가는 다시 저가 국가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327 이 저가 국가의 통치자들은 수입을 많이 얻지 못했지만 비용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328 국가가 약하다는 것은 농민들이 정부에 세금을 적게 내거나 전혀 안 낸다는 뜻이다. 

329 아시리아의 경우에도 왕실 금고로 들어오는 수입은 비교적 적었지만 나가는 비용도 적었다. 또한 싸우고 잔치를 베풀고 축제를 여는 것 말고는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그 외에 통치자가 꼭 해야 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예를 들어보면, 현대 국가에는 이런 저가국가들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디에 있느냐. 그런 저가국가 개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수적 국가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가국가로 이행해버렸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다. 철저하게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을 차단해야 한다. 지금 아프리카는 거의 전 대륙이 저가국가로 무너져 가고 있다. 사실 심각한 문제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사하라 사막 이북으로는 맨 왼쪽에 모로코가 있고, 그 다음에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가 있다. 그 나라 중에 그나마 조금 고가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는 나라가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이다.  리비아는 카다피가 사망한 이후 지금 내전 중이다. 그 다음에 그 아래를 보면 서사하라, 모리타니와 독립 세력이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 내전이다. 모리타니는 황당하게도 아직 노예제도가 있다. 그리고 말리가 있다. 말리는 사막에 사는 종족과 내전 상태에 있는데 2020년 8월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말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니제르가 있다. 니제르는 보코하람이라는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있다. 보코하람은 니제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북부를 장악하고 있다. 그 다음 차드가 있는데, 6번 대통령을 연임했던 대통령이 2021년 4월에 폭탄을 맞고 죽었다. 그 오른쪽으로는 수단. 수단 2021년 10월 쿠데타가 발생했고, 수단의 오른쪽에는 에리트레아가 있는데 북한과 비슷하다. 바로 밑으로 에티오피아가 있고, 남수단이 있다. 남수단, 에티오피아는 내전중이다.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그리고 차드 아래쪽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중앙아프리카 공화국도 내전 중이다. 그리고 카메룬이 있는데, 카메룬은 이상 기후가 닥쳐서 눈이 왔다.  그 다음 나이지리아, 베냉, 토고가 있는데 그나마 조금 안정된 나라이다. 그 다음 가나, 가나와 토고 경계지역에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그 왼쪽 코트디부아르는 조금 조용하다. 그리고 라이베리아, 미합중국의 해방 노예들이 세웠던 나라, 실업률이 75%이다. 바로 왼쪽에 사에라리온은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해 있다. 그 위쪽으로 기니는 올해 9월 쿠데타가 일어났다. 기니 위에는 기니비사우가 있는데 마약 천국이다. 그 위에 감비아와 세네갈이 있다. 세네갈은 우리나라가 농업기술로 쌀을 재배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과 맞닿아서 있는 나라들이 카메룬 아래쪽으로 콩고 공화국, 가봉, 적도 기니 그런대로 괜찮은데, 콩도 민주공화국은 에볼라가 창궐하고 있다. 그 다음에 오른쪽으로 르완다, 그 유명한 르완다, 지금은 괜찮다. 그리고 부른디, 우간다, 케나, 탄자니아, 모잠비크 이런 나라는 그런대로 괜찮다. 앙골라는 지금 거의 경제가 파탄이 되었다. 짐바브웨도 마찬가지이다. 그 아래쪽으로 나미비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스와티니 이렇게 있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만만치 않다. 이런 나라들, 내전 중인 나라는 저가국가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면 군벌들이 다스리고 통치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런 나라로 가고 싶으면 세금 덜내고,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백신을 맞지 않고, 그냥 이익단체를 이루어서 살면된다. 그러면 지역경제가 낙후된다. 지금 대구 경북지역이 그렇다.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을 보수의 이념이라고 한국에서는 주장하고 있는데 기원전 1000년의 세계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인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미 고가국가로 이행한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런 보수 이념 또는 아주 원초적인 의미에서 리버벌은 어이가 없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 개인의 의사결정을 존중한다, 이런 것은 기원전 1000년 경의 세계로 되돌아가자고 하는 아주 황당하고도 어이없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이다. 

 

329페이지를 보면 기원전 1000년의 세계에서 예외가 있었는데 히브리 이스라엘 통일왕국이다. 이것은 체제연구를 하는데 있어 굉장히 주목해 볼만한 하나의 사례이다.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이념적인 출발점이 출애굽기에 나타난 모세이다. 종교가 발명되는 시기이도 하고 바로 출애굽기야 말로 유대교가 발명되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독특한 신정국가 체제를 만들어 내는 때이기도 한다. 출애굽기부터 시작해서 솔로몬 왕에 이르는 시기까지 거대한 관료제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고, "성서의 서술이 진실이라면,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앙 집권화된 국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체제 연구를 한다고 하면 헬라스 시대의 폴리스가 아니라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 신정국가를 살펴봐야 한다. 헬라스 시대의 폴리스도 아테나이는 굉장히 고비용 국가에 속한다. 나라에서 전쟁을 하면서 약탈경제를 유지하면서 해군을 유지했기 때문에 고비용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주 독특한 민주정이라는고 하는 체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사는 민주정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민주정이다. 본받기는 어렵다. 그런데 성서의 기록을 고고학의 증거에 따라서 불신하기 시작한다면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역량을 과장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양에서 나온 정치사상사에는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에 대한 연구가 없다. 오히려 성읍국가라고 할 수 있는 주나라의 정치사사상을 다루고 있는 고대중국의 정치사상을 살펴보는 것이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고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를 정치체제적으로 연구할 때는 오히려 고대중국의 정치사상에서 추출된 그런 이론 모형들이 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329 한 국가는 이런 일반화에서 예외로 둘 수 있다. 바로 이스라엘 통일 왕국(기원전 1050~930)이다.

330 성서의 서술이 진실이라면,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앙 집권화된 국가였다.


330페이지를 보면 "기원전 1000년경 국가들의 최대 약점은 군사적 승리에 의존해 존속했다는 것이다." 이게 전부이다. 책에 “이때의 경제시스템이 약탈경제"라고 적어두면 된다. 농업 생산이 있기는 했지만 그 생산성이 굉장히 대규모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생산성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약탈경제였다. "이 무렵까지 북중국과 이집트는 둘다 위태롭지만 통일된 아그라리아보다 도시국가들의 무리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기가 지나가면서 끝무렵에는 뚜렷한 장기추세가 나타났는데 "큰 국가들이 작은 국가들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330 기원전 1000년경 국가들의 최대 약점은 군사적 승리에 의존해 존속했다는 것이다.

330 이 무렵까지 북중국과 이집트는 둘다 위태롭지만 통일된 아그라리아보다 도시국가들의 무리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331 길게보면 도시 국가 무리는 한 도시 국가가 나머지를 정복해서든 모두가 외부 세력에 정복당해서든 더 큰 아그라리아로 통합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아그라리아가 깨져 수십 개의 도시 국가로 갈라지기도 했다. 이 양방향 운동은 기원전 제1천년기에 중요한 역학이었지만,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뚜렷한 장기추세는 큰 국가들이 작은 국가들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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