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8장(1)
- 강의노트/강유원의 북리스트 2021-23
- 2021. 12. 3.
「강유원의 북리스트」에서 제공하는 《옥스퍼드 세계사》를 듣고 정리한다.
2021.11.30 옥스퍼드 세계사 8장(1)
오늘은 제8장을 읽기 시작하겠다. 제8장은 제4부의 첫 장이다. 지난 번에 제3부 "기원전 제1천년기 초반의 ‘암흑시대’부터 기원후 14세기 중엽까지"였고, 제4부가 기후의 반전이다. 이때부터 좀 추워졌다는 뜻이다. 제5부가 "온난해지는 세계에서 빨라지는 변화"이다. 제4부는 "전염병과 추위 속에서의 확산과 혁신", 《옥스퍼드 세계사》는 우리가 이제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시작을 경제적인 것을 하고 또 그 이전에 전염병이나 기후를 다루면서 하고 있고 제5부가 그것에 해당한다. 어느덧 《옥스퍼드 세계사》도 절반에 들어섰다. 제4부는 "14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 《역사 고전 강의》를 읽고 있는데 22강, 23강가 시기가 겹친다. 요즘에 17세기를 하고 있는데 지금 "14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이니까 대체로 근대라고 하는 것, 중세말, 근대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본인은 제1차세계대전부터를 대체로 현대로 잡는다. 그러면 1815년에서 100년 지나면 1915년 제1차세계대전 무렵이다.
크게 봐서 제8장 "수렴하는 세계"가 경제적인 생태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있고, 두번째가 지성적인 것과 예술, "르네상스, 종교 개혁, 정신 혁명", 그리고 제10장이 "감정과 경험을 통한 연결", 근대 초 세계의 군주, 상인, 용병, 이주민, 정치 사회적인 측면들을 다루고 있다. "수렴하는 세계"의 발문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겠다. 내용이 적어도 8장 전체를 다루고 있으니까 천천히 보면 된다. 이런 부분을 잘 이해해야 8장을 읽을 때도 도움이 된다.
"1350년 이후 세계는 해상 교역로를 통해 집단 사이 연계가 긴밀해지고 물동량이 늘어감에 따라 갈수록 작아졌다." 세계가 작아졌다. 그런데 세계를 작아지게 만든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해상교역로"이다. 이전 세계에서, 그러니까 제3부 "기원전 제1천년기 초반의 ‘암흑시대’부터 기원후 14세기 중엽까지"에서는 스텝 지역 유목민들의 교류가 있었다. 따라서 이른바 실크로드 시대와 대비되는 네트워크가 이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 "실크로드 시대와 대비되는 네트워크"라고 적어두면 되겠다. "사상 처음으로 선박이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를 주기적으로 왕복하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질렀다."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지구상에 있는 넓은 바다는 다 가로질렀다는 말이다. 선박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선박이 큰 바다를 가로지르게 되니까 이제는 선박을 따라서 뭔가가 퍼져나가는데 "물자 및 인간과 함께 미생물과 동식물도 지구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옥수수, 감자, 차, 커피 같은 한 지역의 식물들은 머나먼 장소에서 새로운 소비자를 찾았다." 이게 바로 1350년에서 1815년의 세계에서 만들어져 지금 2021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신세계의 담배가 전세계적으로 퍼져갔고, 신세계는 아메리카 대륙을 말한다, 그리고 "구세계의 소와 양, 말은 아메리카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 다음에 "아시아의 향신료와 작물은 대서양 대륙들에서 시장을 찾았고,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은 유럽에서 누구나 소비하는 설탕을 생산했다." 중요한 장소들이 다 나온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 대서양 노예무역, 이것에 관한 것은 책도 많고 그러니까 완전히 주목을 해야 한다. 1350년이라고 했는데 중요하다. 1492년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도달, 100년 전이다. 콜롬버스는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여기서 필자들이 의논해서 1350년으로 잡은 것이다.
제8장 357 1350년 이후 세계는 해상 교역로를 통해 집단 사이 연계가 긴밀해지고 물동량이 늘어감에 따라 갈수록 작아졌다. 사상 처음으로 선박이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를 주기적으로 왕복하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질렀다. 물자 및 인간과 함께 미생물과 동식물도 지구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새로운 지역으로 확산된 질병들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옥수수, 감자, 차, 커피 같은 한 지역의 식물들은 머나먼 장소에서 새로운 소비자를 찾았다.
제8장 357 구세계의 소와 양, 말은 아메리카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의 발전을 촉진했다. 아시아의 향신료와 작물은 대서양 대륙들에서 시장을 찾았고,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은 유럽에서 누구나 소비하는 설탕을 생산했다.
그런데 이 챕터에서 특정 지역을 강조하는데 중국, 인도, 유럽이다.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세 지역은 중국, 인도, 유럽이었다." 이렇게 높은 인구밀도는 "세 지역에 더 주목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된다." 중국과 인도와 유럽의 교류가 특히 인도양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인도양이 아주 중요한 바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서양 무역도 굉장히 중요하기는 한데, 5장의 네번재 부분이 대서양이다, 대서양은 아메리카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와도 관련이 된다. 그래서 이렇게 높은 인구밀도는 중국, 인도, 유럽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고 대서양도 중요하다. 그 다음에 "세 차례 인구 재앙도 있었다. 15세기 후반에 당시까지 최악의 팬데믹이 구세계 대륙을 덮쳤다." 이것을 생각해두어야 한다.
제8장 358 세계를 수렴시키는 힘들은 매우 억제되어 있다가 1350년 이후 흔해졌고, 1815년까지 좋든 나쁜든 멈출 수 없어 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8장 358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세 지역은 중국, 인도, 유럽이었다.
제8장 358 인구밀도는 세 지역에 더 주목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된다.
제8장 358 세 차례 인구 재앙도 있었다. 15세기 후반에 당시까지 최악의 팬데믹이 구세계 대륙을 덮쳤다.
"중국은 14세기 중엽 이후 서쪽으로 향한 두 차례 대규모 이동의 근원지였다. 첫번째 이동은 우연이었고, 두번째 이동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첫번째로 이동한 것은 서양에서 흑사병으로 알려진 가래톳 페스트였다." "1347년 흑해 크림반도의 항구 도시 카파의 주민들 사이에서 흑사병이 발병했다." 이 부분만 기억해두면 되겠다. 그런데 흑사병이라는 것이 발병했다. 그러면 그 영향은 무엇인가를 봐야한다. 361페이지에 있다. 일단 "유럽 인구는 흑사병이 닥치기 직전 약 8000만 명에서 1400년 대략 2000만 명으로 줄었다." 그 다음에 좀 회복이 되었다.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노동력 부족을 초래해 일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 중요한 부분이 있다. "농노제는 거의 사라졌다." "시골의 숙련 노동자들은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즉 이 시대부터 이를테면 잉글랜드에서 1381년 와트 타일러가 이끈 농민 봉기 이런 것이 있다. 이때부터 흑사병으로 인구가 감소함으로 해서 잉글랜드나 유럽지역에 봉건제, 즉 봉건제라고 하는 경제적 사회구성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8장 359 중국은 14세기 중엽 이후 서쪽으로 향한 두 차례 대규모 이동의 근원지였다. 첫번째 이동은 우연이었고, 두번째 이동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첫번째로 이동한 것은 서양에서 흑사병으로 알려진 가래톳 페스트였다.
제8장 359 1347년 흑해 크림반도의 항구 도시 카파의 주민들 사이에서 흑사병이 발병했다.
제8장 361 보수적인 추정에 의하면 유럽 인구는 흑사병이 닥치기 직전 약 8000만 명에서 1400년 대략 2000만 명으로 줄었다.
제8장 361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노동력 부족을 초래해 일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농노제는 거의 사라졌는데, 시골에서 농노제에 매여 살던 노동자들이 쉽게 달아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골의 숙련 노동자들(대장장이, 제분업자, 목수)은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서쪽으로 두번째로 이동한 것은 1405년에서 1433년까지 감행한 일련의 장대한 해양 원정이었다. " 명나라 영락제 시대에 이른바 정화의 남해 대원정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원정의 주목적은 중국의 부와 권세를 외부 세계에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즉 국력과시에 있었다. 원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는데 그냥 남해 항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뒷받침하는 말이 363페이지에 있다. "선단이 들른 다른 장소들에서도 중국과의 교역이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업적 교환을 늘리는 것이 원정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정 관료들은 중국에서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난 것으로 과연 선단에 들인 막대한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선단의 출항은 수년간 보류되었다가 1432~1433년 제7차 원정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선단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막기 위함이었는지 원정 기록은 대부분 폐기되었다." 그런데 정화의 남해 원정은 원정 기록이 폐기되었다. 수수께끼이다. 많은 연구서들이 있다. 그런데 일단 《옥스퍼드 세계사》는 개론서이니까 중국 명나라에 있었던 정화의 남해 대원정은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기억해두면 되겠다. 그 다음의 바로 "인도양의 전형적인 항해"가 나온다. 기억해 두어야 한다. "상업적 목적을 위해 독립적인 항구 도시들 사이의 항해"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다. 이 항해가 바닷길을 통한 동서 무역을 촉진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7세기경 영국에 전해진 고급 자기 그릇은 그 이전에 페르시아와 인도에서 썼던 용어대로 그저 '차이나'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의외로 명나라 때는 인도양을 통한 교역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8장 362 중국에서 서쪽으로 두번째로 이동한 것은 1405년에서 1433년까지 감행한 일련의 장대한 해양 원정이었다.
제8장 362 원정의 주목적은 중국의 부와 권세를 외부 세계에 각인시키는 것이었던 듯하다.
제8장 363 선단이 들른 다른 장소들에서도 중국과의 교역이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업적 교환을 늘리는 것이 원정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정 관료들은 중국에서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난 것으로 과연 선단에 들인 막대한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선단의 출항은 수년간 보류되었다가 1432~1433년 제7차 원정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선단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막기 위함이었는지 원정 기록은 대부분 폐기되었다.
제8장 364 정화의 항해는 인도양의 전형적인 항해와 사뭇 달랐다. 인도양에서는 왕실이 외교적 목적을 위해 항해를 후원했던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상인들이 상업적 목적을 위해 독립적인 항구 도시들 사이의 항해를 후원했다.
제8장 363 17세기경 영국에 전해진 고급 자기 그릇은 그 이전에 페르시아와 인도에서 썼던 용어대로 그저 '차이나'라고 불렀다.
그리고 365페이지에 오면 지역적 교역망이 있는데, 읽어보면 인도양과 동인도양에서 중국으로 가는 자연적 항로, 동남아시아 항로 이런 것들이 지금 1400년대에 다 개발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개발이 되었기 때문에 네덜란드라든가 이런데 있는 상인들이 나중에 인도네시아에 가서 동인도 회사를 세우는데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367페이지를 보면 말레이반도에 위치한 말라카 해협, 정말 중요하다. 말라카 해협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지역이다. "말라카 해협은 중국과 인도의 각종 상품뿐 아니라 말라카 제도의 향신료, 버마의 루비와 사향과 주석, 수마트라의 황금까지 교역하기에 좋은 장소가 되었다. 1500년 직후에 방문한 사람에 따르면 말라카의 상인 공동체들은 84개의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정말 엄청나다. 다른 어디보다도 말라카가 눈에 들어온다. 지중해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뒤 베네치아는 바다와 육지를 통한 전략적 연계를 바탕으로 돈을 더 많이 벌어들였다. 15세기 중엽 대운하를 따라 상점이 줄지어 선 유명한 리알토 시장은 베네치아 상거래의 심장이었다." 이때 베네치아가 발전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것이 나왔고, 샤일록 같은 유대인 상인도 있었던 것이다. 그게 가능했던 것이 상업 중심의 법질서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니스의 상인》에서 보면 샤일록이 이따위로 법이 적용된다니 하면서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굉장히 법역사학적으로 볼만한 부분이다. 나중에 특강을 한번 할 예정이다. 여하튼 말라카 해협이 그런 곳이다. "왁자지껄한 언어의 소란 속에서 말라카 관리 네 명이 질서를 유지했다. 한 명은 수많은 구라자트 상인을 담당했고, 한 명은 나머지 인도와 버마 상인들을, 한 명은 동남 아시아 상인들을, 나머지 한 명은 중국과 일본 상인들을 담당했다." 나라 이름이 나온다. 구자라트, 인도와 버마, 동남 아시아, 중국과 일본, 뭔가 머리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제8장 366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뒤 베네치아는 바다와 육지를 통한 전략적 연계를 바탕으로 돈을 더 많이 벌어들였다. 15세기 중엽 대운하를 따라 상점이 줄지어 선 유명한 리알토 시장은 베네치아 상거래의 심장이었다.
제8장 367 말라카 해협은 중국과 인도의 각종 상품뿐 아니라 말라카 제도의 향신료, 버마의 루비와 사향과 주석, 수마트라의 황금까지 교역하기에 좋은 장소가 되었다. 1500년 직후에 방문한 사람에 따르면 말라카의 상인 공동체들은 84개의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왁자지껄한 언어의 소란 속에서 말라카 관리 네 명이 질서를 유지했다. 한 명은 수많은 구라자트 상인을 담당했고, 한 명은 나머지 인도와 버마 상인들을, 한 명은 동남 아시아 상인들을, 나머지 한 명은 중국과 일본 상인들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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