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8장(3)

 

2021.12.13 옥스퍼드 세계사 8장(3)

《옥스퍼드 세계사》 8장 세번째 시간이다. 세번째는 "대서양 세계의 인구와 식물, 플랜테이션"이다. 여기서는 대서양 세계라는 말을 아프리카 지역, 유럽, 북아메리카 지역, 서인도 제도를 포괄한다. 그 지역에서의 교역과 인구 증가, 감소, 그리고 콜럼버스의 교환에 해당하는 내용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북아메리카로 갔던 노예 무역 이런 것들에 대해서 다룬다. 분량이 많지는 않은데 자잘한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그 역사적 사실들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에 대해서만 짚어보고 결론을 읽겠다.

제8장 수렴하는 세계는 어떻게 해서 이 시기에, 지금 읽는 제4부 1350년∼1815년 사이에 전세계적으로 어떤 교역들이 일어났는가를 다루고 있다. 제일 처음에는 서양의 환경과 경제 확장을 얘기했고 그 다음에는 인도양의 교역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다음에는 대서양의 교역이다. 인도양의 교역과 대서양의 교역은 그 교역의 내용들이 다르다. 인도양의 교역은 노예 무역이라든가 이런 것은 없었고, 설탕, 담배, 플랜테이션은 없었다. 그런데 대서양의 세계에서는 있었다. 그런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신대륙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대륙의 북부지역의 인구가 어느 정도 유럽에서 이주해갔는가의 차이가 있다. 인도양과 비교해 볼 때는 유럽인들이 인도양으로 갈 때 상인으로서 갔다. 그런데 북아메리카 신대륙에는 상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이주민으로 갔다는 것, 그런데 그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노예 무역을 둘러싼 몇가지 역사적 허위들을 살펴본다.

"1800년 이후 서양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진보한 원인이 유럽 내부에 있다는 유럽중심주의적 가정에 도전해왔다." 이게 바로 왜 유럽인가라는 주제이다. 유럽이 아주 쉽게 말하면, 지들이 잘나서 외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없이 유럽내부에서의 기술 발전과 제도의 완비 그리고 역동적인 사람들의 정신 문화로 인해서 발전했다는 것이 유럽 중심주의의 가정이다. 그것에 도전한 대표적인 사람이 케네스 포메란츠이다.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일단 전통적인 견해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진보한 원인이 유럽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반박은 당연히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대분기 논쟁'이라고 부른다.

제8장 385 세계사가들은 1800년 이후 서양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진보한 원인이 유럽 내부에 있다는 유럽중심주의적 가정에 도전해왔다.

 


"포메란츠는 1800년 이후 유럽이 분기한 주된 원인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 해외에서 들여온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유럽은 아시아에서 은화를 수출하면서도 사업을 펼쳐 어느 정도 수익을 거두었다. 더 나아가 포메란츠는 서양의 분기가 아메리카에서 얻은 보너스 효과의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아메리카에 유럽인이 탐험할 광대한 영토가 있었거니와, 이내 대서양 경제가 대아시아 교역보다도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감자와 담배, 설탕 이런 것들, 그리고 "유럽의 부족분을 채워줄 밀과 목재까지 제공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유럽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유럽중심주의적 가정을 논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네스 포메란츠 같은 사람들의 "이런 재해석은 비록 결정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세계적 논제를 탐구하기에 유용한 얼개를 제공한다."하면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한랭기가 지속되고 악화되었고, 둘째로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새로운 식용 작물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덜어주었으며, " 대표적인 작물이 감자이다. "중부 유럽과 아일랜드의 빈민들은 곡물 대신 감자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에까지 감자가 왔던 것이다. 이런 교류들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셋째로 새로운 생산과 분배 체계 덕에 식량 공급이 대폭 늘어났다."

제8장 385 포메란츠는 1800년 이후 유럽이 분기한 주된 원인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장에서 서술한대로, 유럽은 아시아에서 은화를 수출하면서도 사업을 펼쳐 어느 정도 수익을 거두었다. 더 나아가 포메란츠는 서양의 분기가 아메리카에서 얻은 보너스 효과의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아메리카에 유럽인이 탐험할 광대한 영토가 있었거니와, 이내 대서양 경제가 대아시아 교역보다도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제8장 385 이런 재해석은 비록 결정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세계적 논제를 탐구하기에 유용한 얼개를 제공한다.

제8장 386 1400년 이후 유라시아 북부의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들은 서로 겹치는 세 가지 사건을 거쳤다. 첫째로 한랭기가 지속되고 악화되었고, 둘째로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새로운 식용 작물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덜어주었으며, 셋째로 새로운 생산과 분배 체계 덕에 식량 공급이 대폭 늘어났다.

제8장 387 중부 유럽과 아일랜드의 빈민들은 곡물 대신 감자를 먹기 시작했다.


388페이지를 보면 피터르 브뤼헐의 유명한 그림인 <눈속의 사냥꾼>가 있다. 소빙하기 시기를 겪은 화가의 그림이 아닌가 그렇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신윤복의 <월화정인>이 있다. 이 그림에 달이 그려져 있는데 보통의 정상적인 초승달이 아니라고 한다. 왜 달을 그렇게 그렸나 하고 추적을 해보니 신육복이 그 그림의 배경을 삼은 날에 부분월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그림을 그린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것처럼 <눈속의 사냥꾼>은 "소빙하기 동안 유달리 매서운 겨울이 지난 뒤인 1565년에 겨울 풍경화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그림의 배경에 나오는 달 모양이라든가 유럽의 현상들을 가지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제8장 388 소빙하기 동안 유달리 매서운 겨울이 지난 뒤인 1565년에 겨울 풍경화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다음에 389페이지를 보면 그 유명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나온다. 콜럼버스가 아메리가 대륙을 탐험하면서 크게 일어난 현상 중 하나는 "바이러스성 질병 등이 아메리카 인디언 공동체의 50~90퍼센트를 앗아갔다."는 것, 그렇게 했음에도 "아메리카 인디언은 18세기 중엽까지 아메리카 전체에서 다수를 차지했다. 19세기 들어 한참 후까지도 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인의 수는 노예가 되어 강제로 끌려온 아프리카인의 수보다 적었다." 390페이지를 보면 중요한 말이 있다. "인구 변화는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의 한 부분일 뿐이다." 앨프리드 크로스비라는 사람이 쓴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것이 있다. 영어판 원서의 제목이 The Columbian Exchange이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이 바로 여기에 설명된 것인데 설탕, 옥수수, 감자, 토마토, 고구마 이런 것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것들이 전세계로 퍼져나게 되었다. 그런 교환들에 대해서 다룬 책들이 바로 이 책이다. 플랜테이션에서 설탕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8장 390 바이러스성 질병 등이 아메리카 인디언 공동체의 50~90퍼센트를 앗아갔다.

제8장 390 아메리카 인디언은 18세기 중엽까지 아메리카 전체에서 다수를 차지했다. 19세기 들어 한참 후까지도 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인의 수는 노예가 되어 강제로 끌려온 아프리카인의 수보다 적었다.

제8장 390 인구 변화는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 다음 노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노예가 아주 값싼 노동력이니까 이 노동력을 가지고 면화를 재배하고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서부터 한가지씩, 북아메리카 대륙의 노예, 즉 아프리카에서 끌고 간 노예들에 대해서 생각을 바꿔야 할 증거들을 내놓고 있다. 노예의 값이 비쌌다는 것, 그럼에도 굉장히 많았다. 비용이 적게 들은 것이 아닌데, 플랜테이션이 발전하니까 고용해야 할 노예의 값도 올라갔다. 따라서 값싼 노예 노동력이라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이다. 서아프리카 지역과 북아메리카 지역, 그리고 유럽 이 지역, 대서양을 가운데 두고 활발하게 교역이 일어났다. 그리고 노예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아프리카의 사회적·경제적 손실과 관련해 한 때 흔했던 다른 믿음들도 그릇된 것으로 밝혀졌다."

제8장 400 아프리카의 사회적·경제적 손실과 관련해 한 때 흔했던 다른 믿음들도 그릇된 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을 보면 "1350년부터 1815년까지 세계는 얼마나 바뀌었는가?" 지리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콜럼버스의 교환으로 인해서 어떤 변화가 인도양과 유럽, 그리고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유럽 사이의 변화들이 무엇이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8장의 목표였다. "전 세계적 접촉과 교환은 더 잦아지고 격렬해졌다." 중요하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1815년까지 무역에서 손을 떼고 인도 영토를 통치하는데 집중했다." 이런 것들을 기억해 두면 되겠다. 그런데 꼭 기억해 두어야 하는 것이 "동양과 서양 사이 경제적 균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서 그때부터 엄청난 착취가 있고 곧바로 유럽이 전세계로 우위로 우뚝 올라섰는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시아인은 여전히 세계 최대 상품 생산자였고, 대서양까지 아시아산 상품이 유통되었다." 그 다음에 아무리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고 해도 여전히 "인구 구성면에서나 문화 면에서나 1815년 아메리카의 큰 지역들은 여전히 아메리카 인디언의 땅이었거나, 새로운 아프리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1815년의 아메리카 지역들은 아직은 유럽인들이 뭘 주장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아시아는 더욱이나 그랬다.

제8장 401 1350년부터 1815년까지 세계는 얼마나 바뀌었는가? 그 이전 시대보다는 많이 바뀌었을 테지만, 그 이후 200년보다는 적게 바뀌었을 것이다. 전 세계적 접촉과 교환은 더 잦아지고 격렬해졌다.

제8장 402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1790년대에 사업을 중단했고, 영국 동인도회사는 1815년까지 무역에서 손을 떼고 인도 영토를 통치하는데 집중했다.

제8장 402 동양과 서양 사이 경제적 균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시아인은 여전히 세계 최대 상품 생산자였고, 대서양까지 아시아산 상품이 유통되었다.

제8장 402 인구 구성면에서나 문화 면에서나 1815년 아메리카의 큰 지역들은 여전히 아메리카 인디언의 땅이었거나, 새로운 아프리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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