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7장(3)

 

2021.11.16 옥스퍼드 세계사 7장(3)

《옥스퍼드 세계사》 제7장 세번째이다. 세번째는 기원후 175년의 세계이다. 기원후 175년의 세계라고 하면 이른바 고전 시대라고 불리는 시대. 축의 시대라고 했던 시대가 대체로 봐서 지금 우리가 다루는 기원후 175년의 세계의 시대이다. 축의 시대를 잠깐 보면 이를테면 중국의 공자가 서기전 5551년~479년이니까 기원후 175년의 세계와 다르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 현재 우리가 18, 19세기 산업혁명에서 지금까지 온 것을 보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급격하게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런데 이때에는 그렇게까지 급격하게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체로 같은 시대라고 말해도 무방하겠다. 기원후 175년의 세계는 지난 시간에 호모 수페란스, 성장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었다. 성장하는 인간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는 저가국가에서 고가국가로 국가체제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때 국가라고 하는 말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국가 이후 등장하고 있는 국가체제를 생각하면 안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체제가 어떤 특징이 있는가, 과거와는 어떻게 다른가, 가장 뚜렷하게 우리가 식별해 낼 수 있는 것을 정해서 말해보면 사람들 모두 다 국적이 있다는 것이다. 즉 특정한 영토 안에 살고 있는, 또 특정한 영토 안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해도 그 사람이 외국에 재외동포로 살고 있다고 해도, 그 지역에 국적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영주권을 갖고 있거나 누구나 다 손에 여권을 가지고 있다. 여권을 가지고 있는 세계가 지금 현대 국가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것은 이런 세계가 등장하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여권 없는 국가에서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가국가, 고가국가를 말할 때 국가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국가 형태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저가국가, 고가국가라는 말은 국가를 유지하는데, 국가라고 하면 큰 규모의 정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것을 유지하는데 많은 비용이 드는가 적은 비용이 드는가의 차이가 있다.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하면 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만큼의 비용을 거둬들여야 한다. 거둬들이려면 명령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명령을 하고 그 명령이 먹힐 수 있도록 장치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 장치를 국가기구라고 말한다. 그런 것들이 갖춰지는 시기, 그런 것들이 갖춰져서 정치 공동체가 형성되는 시기가 바로 기원후 175년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331페이지를 보면 "세계 인구가 대략 두 배가 되었고, 국가에 사는 사람의 수가 열 배로 늘어났다." 이게 특징이다. 국가에 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이는 즉 농업생산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의미한다. 즉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땅의 능력이 늘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그 다음 유라시아 스텝 목축민들에 대해서 나와있고 그 스텝 목축민들의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이 농경제국들과 나란히 성장했다는 말이 있다. 이때 본격적으로 기원전 제1천년기에도 유라시아 스텝 목축들이 있는 했으나 말그대로 그 사람들은 고만고만했다. 그런데 기원후 175년의 시기쯤 오면 유라시아 스텝 목축민들도 하나의 정치조직과 사회조직을 갖추고 본격적인 유목민족국가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7장 331 우리가 다루는 기간의 중간점인 기원후 175년까지 많은 것이 변했다. 무엇보다 세계 인구가 대략 두 배가 되었고(1억 2000만 명에서 2억 5000만 명으로), 국가에 사는 사람의 수가 열 배로 늘어났다(2000만 명 이하에서 2억 명으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332페이지 사진자료가 있는데 거기에 "기원전 제1천년기 초에 시베리아 남부 아르잔에 쓴 거대한 봉분들에는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을 장식한 이 그릇과 같은 금제품을 숱하게 집어넣었다."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은 전세계 어디에나 공통적으로 드러나 있다. 꼭 시베리아 남부 아르잔에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헬라스 어로 우로보로스라고 하는데, 꼬리를 물고 있다는 것은 시작이 곧 끝이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르게 말하면 시작은 탄생이고, 끝은 죽음이니까 탄생과 죽음은 결합되어 있다. 즉 삶과 죽음이 이어져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다르게는 죽는 순간 다시 태어나는 것이까 부활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시작과 끝 사이에 있는 것이 시간인데, 우로보로스는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로보로스는 뱀인데, 사실 뱀이 안좋은 짐승이라는 것이 기독교에서 많이 얘기하는데 사실 이는 정설은 아니다. 나중에 생겨난 얘기이다. 영지주의파 기독교가 있었다. 기독교 초창기에 정통세력의 가장 강력한 저항자들이 바로 영지주의파 기독교인데 영지주의야말로 기독교에서 최대 이단이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평등을 주장한 사람이다. "26.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3:28) 즉 예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대세계는 어쨌든 타고난 불평등을 인정한 세계였다. 그게 퓌시스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보편적인 평등을 주장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신앙이 구원의 매개체이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은 지식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 그 지식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니까 보편적 평등을 주장하는 기독교에서는 이런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라고 하면 굉장한 이단이겠다. 그런데 이 영지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할 때 이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을 쓰기도 했다. 모든 영지주의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뱀을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삼았떤 영지주의자들을 물리치면서 뱀도 함께 물린 친 경향이 있었다. 

제7장 332 기원전 제1천년기 초에 시베리아 남부 아르잔에 쓴 거대한 봉분들에는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을 장식한 이 그릇과 같은 금제품을 숱하게 집어넣었다.


스텝 유목민들이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태는 334페이지에 나온 것처럼 농경국가가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에 신세계는 아메리카 대륙을 말하고 와 구세계는 유라시아 대륙을 말한다. 이때 두 지역 모두 기원전 175년의 세계에서는 국가가 형성되었는데 형성과정이 조금 달랐다. "신세계와 구세계는 서로 거의 접촉하지 않았으므로, 두 곳을 '자연 실험'의 독립적인 두 사례로 삼아 비교함으로써 호모 수페란스 개념을 검증해볼 수 있다." 성장하는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는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가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자연 실험'이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환경을 만들어서 비교군을 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일어난 사태들을 보고서 나중에 데이터를 살펴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기원전 175년에는 우리가 '고전 고대'라고 부르는 그런 국가가 확실하게 등장했다. 그 특징은 무엇인가. 336페이지에 나와있는 것처럼 "관료제를 창안해 세금을 거두고 병력을 직접 고용함으로써 전리품을 모두 국가 소유로 두었다." 이러려면 비용이 당연히 많이 들어간다. "이런 '고가' 국가는 저가 조직보다 운영비가 훨씬 많이 들었지만 동시에 수익도 훨씬 많이 벌어들였거니와 확장 가능성도 훨씬 큰 것으로 입증되었다. 당시까지 가장 큰 저가 국가였던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와 9세기 아시리아는 각각 면적이 1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인구가 300~400만 명이었지만, 기원후 175년경 로마와 중국은 각각 면적인 5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인구가 500만 명이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나라가 그 다음 문단에 아시리아, 그리고 페르시아, 그리고 동쪽의 거대 제국들, 그게 바로 인더스 유역을 정복했던 페르시아, 338페이지로 넘어오면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 중국. 중국을 보면 춘추 전국시대를 가리킨다. "700년경 기록상 148개였던 도시 국가가 기원전 450년까지 불과 열내 개의 아그라리아로 줄어들었고, 기원전 221년 결국 단 하나의 제국만 남았다." 그러면 770년에서 221년 사이 이때가 춘추전국시대이다. "열내 개의 아그라리아"가 춘추시대일테고, 그것에 이어지는 시기가 전국시대이다. 그리고 이어서 한나라. 그런데 그 다음 문단을 보면 "가장 광대한 제국은 유라시아의 서쪽 끝에 있었다." 로마이다. 그런데 로마로 가기 전에 도시국가인 폴리스들이 있고, 발칸 지역에서는 땅이 척박하고 거대한 나라로 더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 폴리스가 무너진다. 그리고 로마도 마찬가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공화정 도시 국가 제도는 세계 최대 제국을 운영하기에 부적합한 것으로 입증되었고, 결국 처참한 내전을 거치며 해체되었다." 그게 이제 옥타비아누스, 즉 아우구스투스가 등장할 때의 얘기이다. 로마공화정이 해체되고 제국으로 이행한 과정, 로마사에서는 '로마혁명기'라고 부른다.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고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어간다. 이런 것들이 이제 지구사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딱 한문단으로 정리가 된다. 로마혁명기를 다른 책들은 굉장히 많다. 어떻게 로마공화정이 해체되어서 제국으로 이행했는가. 그리고 공화정이 제국으로 간다는 것을 안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하면 공화정을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제국으로 가지 않겠는가,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테면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와 같은 책들이 그런 것을 연구하는데 기여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이 어떤 입각점에서 보는가,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서술의 밀도가 달라진다고 하겠다.

제7장 335 신세계와 구세계는 서로 거의 접촉하지 않았으므로, 두 곳을 '자연 실험'의 독립적인 두 사례로 삼아 비교함으로써 호모 수페란스 개념을 검증해볼 수 있다.

제7장 336 그들에게 병력을 요청한 뒤 약탈품을 나누는 대신, 티글라트펠레세르는 관료제를 창안해 세금을 거두고 병력을 직접 고용함으로써 전리품을 모두 국가 소유로 두었다.

제7장 337 이런 '고가' 국가는 저가 조직보다 운영비가 훨씬 많이 들었지만 동시에 수익도 훨씬 많이 벌어들였거니와 확장 가능성도 훨씬 큰 것으로 입증되었다. 당시까지 가장 큰 저가 국가였던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와 9세기 아시리아는 각각 면적이 1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인구가 300~400만 명이었지만, 기원후 175년경 로마와 중국은 각각 면적인 5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인구가 500만 명이었다.

제7장 338 중국은 그 나름의 공고화 및 성장 과정을 겪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700년경 기록상 148개였던 도시 국가가 기원전 450년까지 불과 열내 개의 아그라리아로 줄어들었고, 기원전 221년 결국 단 하나의 제국[진나라 - 옮긴이]만 남았다. 

제7장 338 가장 광대한 제국은 유라시아의 서쪽 끝에 있었다.

제7장 339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공화정 도시 국가 제도는 세계 최대 제국을 운영하기에 부적합한 것으로 입증되었고, 결국 처참한 내전을 거치며 해체되었다.


그 다음에 고가 국가 모델로 향해 나아가는 나라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를 다루고 있다. 340페이지는 구체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즉 "고가 국가는 모든 종류의 조직을 재편했다. 큰 제국은 모든 종류의 서비스가 집중되는 큰 도시를 필요로 했다." 식량, 문자, 교역을 위한 교환 수단들, 그 다음에 교육 이런 것까지.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제정일치 사회와는 다르게 왕이 다른 종류의 특징을 보이면서 혁신이 일어났다는 것을 촘촘하게 설명하고 있다. 유라시아 '축의 시대' 사상 혁명은 어느 정도는 이런 전개에 대한 지적 대응이었다. 다시 말해 왕이 우주적 원리로서의 권력을 잃어가는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제공한 대응이었다. 유교, 불교, 유대교, 플라톤주의(그리고 훗날 스토아주의, 기독교, 이슬람교)는 제각기 개인들에게 이 더럽혀진 세계를 어떻게 초월할 것인지, 그리고 이제 더는 왕이 진리를 대신 발견해줄 수 없는 마당에 어떻게 그들의 내면에서 진리를 발견할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이 부분은 사상사에서 중요한 초점이다. 이 시대는 고가 국가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면 정치공동체라는 것이 각각의 개인의 삶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이를테면 고대 헬라스의 폴리스, 폴리스를 흔히 직접 민주주의라고 표현한다. 어이없는 표현이기는 한데 일단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자신의 의사결정과정이 눈에 환히 보이는 투명한 그러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넓어진 고가 국가의 시대가 되면 자기가 나라의 어떤 정치적인 결정이나 이런 데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결코 실감할 수 없다. 그러면서 각각의 개인들은 조세를 많이 바쳐야 하고 시달리는 살아간다. 그러다보니까 개인이 힘들어진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 "불교, 유대교, 플라톤주의(그리고 훗날 스토아주의, 기독교, 이슬람교)는 제각기 개인들에게 더럽혀진 세계를" 어떻게 살아갈지를 알려주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당시 등장했던 종교라는 것은, 그리고 훗날의 세계종교로 발전해간 것들은 개인의 마음속에 뭔가를 하려고 하는 그런 장치로서 신념체계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반국가적인 것이다. 나라가 어찌되든 나는 내 마음 속에 편안함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의 단적인 예가 석가모니이다. 대체로 종교의 창시자들은 지배 엘리트계급에서 나오기보다는 하층에 속했다. "대부분 주변부 출신인 각 사상의 창시자들은 엘리트층의 하층에 속했고, 대제국의 수도가 아니라 지방의 벽지나 독립적인 도시 국가에서 좋은 소식을 설파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국가도 결국 그것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수용하게 된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다. 그게 바로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이다. 불교의 창시자야말로 세속적인 성취와 부귀영화를 진정으로 버린 사람이다. 그러므로 불교야말로 정말 탈속적인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와 멀리 떨어진 종교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불교가 가장 탈속적이다. 세상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종교이다. 

제7장 340 고가 국가는 모든 종류의 조직을 재편했다. 큰 제국은 모든 종류의 서비스가 집중되는 큰 도시를 필요로 했다. 

제7장 341 유라시아 '축의 시대' 사상 혁명은 어느 정도는 이런 전개에 대한 지적 대응이었다. 다시 말해 왕이 우주적 원리로서의 권력을 잃어가는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제공한 대응이었다. 유교, 불교, 유대교, 플라톤주의(그리고 훗날 스토아주의, 기독교, 이슬람교)는 제각기 개인들에게 이 더럽혀진 세계를 어떻게 초월할 것인지, 그리고 이제 더는 왕이 진리를 대신 발견해줄 수 없는 마당에 어떻게 그들의 내면에서 진리를 발견할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제7장 343 축의 시대 사상가들은 대개 규범에 도전하고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반문화 운동으로 출발했다. 대부분 주변부 출신인 각 사상의 창시자들은 엘리트층의 하층에 속했고, 대제국의 수도가 아니라 지방의 벽지나 독립적인 도시 국가에서 좋은 소식을 설파했다.

그 다음에 "유라시아의 고전기 제국들은 그 이전의 성취와 당대 다른 지역들의 성취를 무색하게 하는 비범한 조직적 성취였다. 로마 제국은 순전한 농업 세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상한에 실제로 도달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로마 제국이 고전기에 도달할 수 있는 최정점에까지 올라간 나라이다. 그리고 송나라가 그 단계에 이르는데 천 년이 걸렸다. 고전기에서 다시 말해서 "18세기 영국이 산업 혁명 직전에 이를 때까지", 딱 두 나라가 농업세계가 도달할 수 있는 상한에 도달했는데 그게 바로 로마 제국과 송나라였다. 따라서 우리가 정치체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로마 제국이 성취한 것과 송나라가 성취한 것이 정치체제에서도 최상한선이다. 그것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제7장 343 유라시아의 고전기 제국들은 그 이전의 성취와 당대 다른 지역들의 성취를 무색하게 하는 비범한 조직적 성취였다. 로마 제국은 순전한 농업 세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상한에 실제로 도달했을 것이다. 다른 사회 ━ 송나라 ━가 기원후 2세기 로마제국의 발전 수준에 근접하기까지 1000년이 걸렸고, 그후로 18세기 영국이 산업 혁명 직전에 이를 때까지 어떤 사회도 그 상한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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