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7장(4)

 

2021.11.22 옥스퍼드 세계사 7장(4)

《옥스퍼드 세계사》 제7장 네 번째 시간이다. 네 번째가 "기원후 1350년의 세계"이다. 지난 번에 마지막으로 읽은 부분의 내용을 보면 "유라시아의 고전기 제국들은 그 이전의 성취와 당대 다른 지역들의 성취를 무색하게 하는 비범한 조직적 성취였다. 로마 제국은 순전한 농업 세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상한에 실제로 도달했을 것이다. 다른 사회 ━ 송나라 ━가 기원후 2세기 로마제국의 발전 수준에 근접하기까지 1000년이 걸렸고, 그후로 18세기 영국이 산업 혁명 직전에 이를 때까지 어떤 사회도 그 상한을 넘지 못했다." 기원후 1350년의 세계는, 1350년에 무슨 일이 세계에서 일어났는가. 그 세계는 중국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시대이다. 그래서 1350년의 유럽은 어떠했는가부터 보겠다. 기원후 175년 이후에도 인구가 증가했고, 344페이지 "오세아니아의 대부분처럼 대체할 수렵 채집민이 없었던 지역들에서는 농경이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고 "아메리카 본토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진행"되었다. 북아메리카의 이런 원형적 국가들도 어느 정도 문명사회를 이룩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 다음에 "10세기에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인 상인들이 늘어나며 저가국가들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북유럽과 동유럽도 저가국가들로 가득 찼다. 말하자면 10세기 무렵의 북유럽과 동유럽도 적어도 기독교로 개종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제7장 343 유라시아의 고전기 제국들은 그 이전의 성취와 당대 다른 지역들의 성취를 무색하게 하는 비범한 조직적 성취였다. 로마 제국은 순전한 농업 세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상한에 실제로 도달했을 것이다. 다른 사회 ━ 송나라 ━가 기원후 2세기 로마제국의 발전 수준에 근접하기까지 1000년이 걸렸고, 그후로 18세기 영국이 산업 혁명 직전에 이를 때까지 어떤 사회도 그 상한을 넘지 못했다.

제7장 344 오세아니아의 대부분처럼 대체할 수렵 채집민이 없었던 지역들에서는 농경이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다. 

제7장 344 북아메리카 본토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7장 345 10세기에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인 상인들이 늘어나며 저가국가들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현지 군장들이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이용해 왕으로 변모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제7장 345 북유럽과 동유럽도 비슷한 경로를 따랐다.

그 다음에 주목해서 봐야할 지점이 346페이지이다.  "잉글랜드부터 이란까지의 영역에서는 기존의 고가 제국들이 붕괴하면서 저가 국가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기원후 175년에 이미 위기였던 고대의 대제국들은 뒤 이은 500년 동안 더 작은 단위들로 쪼개졌다." 그러면 기원후 600년이면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이다. 이때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유럽 같은 경우는 중세로 들어가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된 이유는 고대사의 큰 물음 중 하나다." 물음이 있다. 고대사의 큰 물음이 뭐냐하면 흔히 말하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이다. 흔히 읽어온 역사책에서는 로마제국 이후의 역사가 위기다, 175년에서 500년 사이가 위기였다는 것을 대체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글로벌 히스토리의 측면에서 보면 이때가 위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의 용어로 말하면 '장기지속'은 아닌데, 장기지속은 이런 인간사를 다루고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아닌데, 어쨌든 장기적으로 볼 때는 기원후 500년까지는 대체로 봐서 끊임없이 쇠퇴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몇 가지 원인을 찾아보면 "이렇게 된 한 가지 원인은 유목민이 종전보다 더 폭력을 마구 휘두른 데 있었다." 유럽 세계로 게르만족의 침입과 그러면서 중세가 시작이 되는데, 중세는 어쨌든 저가 국가이다. 국가가 모든 지역을 통제하거나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유목민들과 함께 온 병균이다. "새로운 미생물들은 다른 인구 집단들에는 완전히 낯선 병균이었다." 이 두가지가 말하자면 고대 사회의 큰 물음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즉 고대제국들이 멸망한 것은 그 두가지가 아닌가 한다. 348페이지에 "한나라, 쿠샨 제국, 페르시아 제국, 서로마 제국은 모두 200년에서 700년 사이에 멸망했고 대부분 저가 아그라리아의 무리에 의해 대체되었다." 이 문단은 네모를 쳐두면 좋겠다. 일단 일어난 현상은 이렇다. 700년으로 해서 고대사가 끝난다. 헬레니즘 이후에도 고전 시대는 계속되는데 고전 시대는 이때 끝났다. 따라서 이 시기 " 200년에서 700년 사이에 멸망"했는데 사실 로마라고 하는 것은, 로마사에 국한해서 설명을 해보면, 로마공화정 말기에서 200년 정도의 로마 내전기, 즉 로마 혁명기를 거치고 서로마제국이 성립했는데, 서로마제국의 정치제제 딱 하고 나서는 더 이상 할게 없다. 정치체제의 관점에서는 700년까지 그대로 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오현제 시대라고 해도 그들이 군인이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로마공화정과 로마제국을 놓고 볼 때 200년에 걸친 로마혁명기는 정체를 연구할 때도 딱 그만큼이다. 그 다음에 한나라가 200년에서 700년 사이에 멸망했다고 했는데, 한나라도 고가국가이다. 그런데 진나라 이전의 중국의 정치체제는 그냥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고 해도 정치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동일하고, 진한제국이 성립되었는데 진나라, 한나라가 성립된 다음에 송나라에 이를 때까지는 여기 나온 것처럼 "저가 아그라리아의 무리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러니까 진나라 성립 이전의 정치체제의 유형이 하나 있고, 그 다음에 진한제국에 의한 정치체제의 유형이 있고, 그 뒤로는 저가 아그라리아의 무리들이 있다가 송나라에서 새로운 정치체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현대이다.  대체로 봐서 세가지 정도의 정치체제를 우리가 식별해 낼 수 있다. 그 다음 "550년 영국에서는 80킬로미터를 통제할 수 있는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자리를 파고든 것이 종교단체이다. "이런 혼돈의 공간으로 들어가 국가의 실패로 생긴 공백을 메우고 방어와 식량 공급을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아온 세계가 끝나가는 이유를 설명하기까지 했다." 종교가 파고든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고 또 이 사실은 바로 이어지는 것처럼 "기독교와 대승불교가 어떻게 기원후 1세기부터 5세기까지 각각 신도 수천만 명을 얻었는지" 설명해준다. 기독교와 대승불교라는 종교가 국가가 멸망한 자리에서 성장했다.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국가를 등에 업고 성장했다고 그랬는데 지금 지구사의 관점에서 보면 1세기부터 5세기까지신도 수천만 명을 얻은 것이 사실은 서로마제국이나 쿠샨 제국이나 이런데가 멸망했기 때문에 국가와 종교의 그런 동시 발전은 생각하기 어렵겠다. 따라서 이 시기의 정체를 공부할 때는 종교가 가진 역할을 생각해볼 필요가 없다. 

제7장 346 잉글랜드부터 이란까지의 영역에서는 기존의 고가 제국들이 붕괴하면서 저가 국가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기원후 175년에 이미 위기였던 고대의 대제국들은 뒤이은 500년 동안 더 작은 단위들로 쪼개졌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고대사의 큰 물음 중 하나다.

제7장 347 이렇게 된 한 가지 원인은 유목민이 종전보다 더 폭력을 마구 휘두른 데 있었다. 

제7장 347 유목민은 아주 먼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면서 기원전 제1천년기 이전에 고립 상태에서 진화한 동부와 서부의 질별들을 뒤섞어 가져왔다. 그들이 풀어놓은 새로운 미생물들은 다른 인구 집단들에는 완전히 낯선 병균이었다.

제7장 348 한나라, 쿠샨 제국, 페르시아 제국, 서로마 제국은 모두 200년에서 700년 사이에 멸망했고 대부분 저가 아그라리아의 무리에 의해 대체되었다. 쇠퇴의 규모는 때로 믿기 힘들 정도였다. 예컨대 550년 영국에서는 80킬로미터를 통제할 수 있는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종교 단체들은 이런 혼돈의 공간으로 들어가 국가의 실패로 생긴 공백을 메우고 방어와 식량 공급을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아온 세계가 끝나가는 이유를 설명하기까지 했다.

제7장 348 이 사실은 기독교와 대승불교가 어떻게 기원후 1세기부터 5세기까지 각각 신도 수천만 명을 얻었는지 얼마간 설명해주지만, 또다른 종교적 대성공을 거둔 이슬람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그 다음에 "이 어지로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유라시아의 동부와 서부가 현저히 대비되기 때문이다. 기원후 6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을 재정복하려던 시도와 800년경 카롤루스 대제가 프랑스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제국을 창건하려던 시도를 포함해 서방을 재통합하려던 일련의 노력은 알마문의 노력만큼이나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콘스탄티노플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을 재정복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따라서 아주 명백하게 지구사의 관점에서 보면 유라시아의 서쪽은 황폐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래 문단을 보면 수나라 문제는, 즉 수나라와 당나라 이후의 중국은 1350년의 세계를 향해갈 때 중국 쪽은 발전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11세기의 중국은 왜 발전했는가, 이런 것들도 역사가의 물음이 될 수 있다. 그러다가도 중국은 수나라, 당나라 이런 나라들이 어느정도 발전했는데 다시 쇠락했는가. 바로 이어서 몽골이라는 나라가 나온다. "송나라 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북부의 주요 도시들 및 탄전들과 남부의 곡창지대가 분리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부와 군사력이 쇠퇴하자 유목민이 더욱 공세를 취했고, 1206년 칭기스 칸이 몽골 부족들을 규합해 가장 무시무시한 목축 제국을 창건했다." 이때 이제 팍스몽골리카가 등장했다고 얘기한다.

제7장 349 이 어지로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유라시아의 동부와 서부가 현저히 대비되기 때문이다. 기원후 6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을 재정복하려던 시도와 800년경 카롤루스 대제가 프랑스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제국을 창건하려던 시도를 포함해 서방을 재통합하려던 일련의 노력은 알마문의 노력만큼이나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제7장 350 송나라 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북부의 주요 도시들 및 탄전들과 남부의 곡창지대가 분리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부와 군사력이 쇠퇴하자 유목민이 더욱 공세를 취했고, 1206년 칭기스 칸이 몽골 부족들을 규합해 가장 무시무시한 목축 제국을 창건했다.

그 다음에 이 시기를 굉장히 크게 보면 송나라가 있다고 하지만 대체로 봐서 쇠퇴의 시기이다. 따라서 쇠퇴의 시기에 352페이지의 결론에 있는 것처럼 도시, 국가, 종교 집단, 교역의 규모가 쇠퇴했다고 생각하면 안되고, 이 시기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유념해 두어야 한다.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1350년까지 도시, 국가, 종교 집단, 교역의 규모는 열 배 증가했다. 이 변화가 없었더라면 스텝 지대를 닫을 수 없었을 것이고, 대양들을 열 수 없었을 것이며, 근대 세계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기원후 1350년에는 적어도 열 명 중 아홉 명이 정부의 통치를 받았고,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살고 있는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을 만들어 낼 무대가 마련되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제4부이다. 1350년~1815년, 이 때가 본견적으로 흔히 세계사에서 말하는 근대 세계가 된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의 기원이다. 

제7장 352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1350년까지 도시, 국가, 종교 집단, 교역의 규모는 열 배 증가했다. 이 변화가 없었더라면 스텝 지대를 닫을 수 없었을 것이고, 대양들을 열 수 없었을 것이며, 근대 세계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7장 353 기원전 1000년에는 열 명 중 한 명만이 정부 치하에서 살았던 반면, 기원후 1350년에는 적어도 열 명 중 아홉 명이 정부의 통치를 받았고,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살고 있는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을 만들어 낼 무대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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