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6장(2)

 

2021.10.18 옥스퍼드 세계사 6장(2)

《옥스퍼드 세계사》 제6장 지적전통들을 읽는다. 제6장은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1350년까지 철학과 과학과 종교와 예술을 다루고 있다. 지난번에 인트로덕션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었다. 오늘은 축의 시대라고 하는 것, 축의 시대는 "독일의 다작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고대 후기의 특별한 '축의 시대' ━종교와 철학을 포함하는 사유의 근본적인 범주들이 태동한 시대━라는 개념을 대중화했다." 축의 시대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물음이 있다. "무엇이 이 시대의 중요한 사상가들을 낳았을까?" 다시말해서 축의 시대가 가능했던 사회적인 조건들을 살펴보자는 애기이다. 첫째가 "비슷한 철학적 원리나 종교적 통찰을 공유했다". 그 다음 줄을 보면 "문해력, 제국, 주화 역시 확산"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문화교류가 있었다는 말이다. 공유와 확산이라는 말을 한 단어로 묶어보면 문화교류이다. 그리고 가장 널리 제시되는 원인으로 "사변적 이념을 추구할 만한 여가"가 있었다.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골방에서 혼자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축의 시대 사상사가들,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중국의 공자와 노자,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유대교 예언자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깊은 산 속에서 혼자 도 닦은 사람들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곳에서 있었던 사람이다. 자기만의 진리를 추구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260페이지에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그들의 가르침이 유지된 핵심 이유는 글로 적혔다."  "그들의 말을 기록한 것은 추종자들이었다." 글로 적어서 남기는 것,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리 어마어마한 통찰이 있다해도 추종자가 없는 사람은 자기 혼자 안고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추종자들이 있으면 글로 기록해서 남기겠다. 반드시 써서 남겨야 한다. "그 창시자들과 초기 추종자들이 당대의 믿음과 관습, 추세도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놓치지 쉽다. 굉장히 새롭고도 그 당시 사람들은 도대체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한 것을 제시한 것 같지만 사실은 축의 시대 위대한 사상가들은 자신이 처한 시대에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아주 근본으로까지 내려가서 고민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사상이 시대의 요구에 굉장히 밀접하게 응답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6장 260 무엇이 이 시대의 중요한 사상가들을 낳았을까? 일부 학자들은 이 시대의 지적 전통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기원하기는 했으나 비슷한 철학적 원리나 종교적 통찰을 공유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은 위대한 현인들이 등장한 시기에 문해력, 제국, 주화 역시 확산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제6장 260 축의 시대의 특출한 개인들은 지적·영적 통찰을 인정받을 자격이 있지만, 그들의 가르침이 유지된 핵심 이유는 글로 적혔다는 데 있다. 

제6장 260 그들의 말을 기록한 것은 추종자들이었다.

제6장 260 지적 전통들을 이성이나 신의 계시의 산물, 또는 둘의 혼합의 산물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역사는 그 창시자들과 초기 추종자들이 당대의 믿음과 관습, 추세도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261페이지에 불교 얘기가 나온다. 역사책에서 사상에 관하여 설명할 때 유심히 봐둬야 하는 이유는 딱 필요한 만큼 최소한의 설명을 한다. 그래서 그것이 생겨나게 된 시대적인 배경이나 그런 것을 포함해서 최소한의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그런 종교들에 대해서 또는 사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사실은 처음 생겨날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것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오늘날 한국 땅에서 천주교 교회나 개신교 교회에 가서 볼 때 초창기 기독교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원형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고자 한다면 역사가들이 쓴 것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아두는 것이 지금 현재 우리가 그것을 보고 있는 역사적 산물로서의 종교의 모습을 좀 더 잘 아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이고 오늘날의 모습은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종교라는 것은 영원불멸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종교가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해서 지금까지 유지되었다. 시대적인 요구에 잘 부응한 것일수록 그 종교의 힘이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261페이지를 보면 불교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 나온다. "다의 통찰은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뜻하는 사성제(四聖諦)로 요약할 수 있다. 1) 삶은 고통이다. 2) 고통은 갈망과 집착에서 생겨난다. 3) 고통의 해결책은 갈애(渴愛)를 멸하는 것이다. 4) 붓다의 길을 따른다면 갈애를 멸할 수 있다." 진단과 처방이 나온다. 그것이 팔정도이다. "붓다의 길은 팔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바르게 보기), 정사유正思惟(바르게 생각하기), 정어正語(바르게 말하기), 정업正業(바르게 행동하기), 정명正命(바르게 생활하기), 정정진正精進(바르게 정진하기), 정념正念(바르게 깨어있기), 정정正定(바르게 집중하기)을 말한다. 이 여덟 가지 길은 서로 다르고 조금씩 겹치는 세 범주 또는 기둥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이게 사성제, 팔정도 이게 뼈대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열반에 든다. 부처님의 말씀은 이게 전부이다. 그것에 뭔가가 덧붙여지고 전파되는 과정에서 지역에 따라서 그 지역에 어울리는, 현지화되는 믿음들이 생겨난다. 그 다음에 공자, 도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가 나온다. 이런 것들은 지금 너무나 상식적으로 잘알고 있기 때문에 읽고 넘어가면 된다.

제6장 260 붓다의 통찰은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뜻하는 사성제(四聖諦)로 요약할 수 있다. 1) 삶은 고통이다. 2) 고통은 갈망과 집착에서 생겨난다. 3) 고통의 해결책은 갈애(渴愛)를 멸하는 것이다. 4) 붓다의 길을 따른다면 갈애를 멸할 수 있다. 붓다의 길은 팔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바르게 보기), 정사유正思惟(바르게 생각하기), 정어正語(바르게 말하기), 정업正業(바르게 행동하기), 정명正命(바르게 생활하기), 정정진正精進(바르게 정진하기), 정념正念(바르게 깨어있기), 정정正定(바르게 집중하기)을 말한다. 이 여덟 가지 길은 서로 다르고 조금씩 겹치는 세 범주 또는 기둥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과학의 토대"는 유심히 봐야한다. 우리가 축의 시대에 어떤 사상만 있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축의 시대 발전한 과학이다. "달력을 고안하고, 금속을 정련하고, 합금을 만들고, 동식물을 순화하고, 약초의 비밀" 그 다음에 보면 수학, 천문학, 의학, 생물학, 물리학 이런 것이 있다. 그런데 267페이지를 보면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적인 설명과 초자연적인 설명을 불필요하게 뒤섞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것이 사실은 축의 시대부터 계속해서 문제되어 왔던 것들이다. 그런데 "합리적인 원인과 초자연적 원인을 분리하는 것은 과학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고 잘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제6장 266 그들의 탐구 기반은 일찍이 세계 각지에서 달력을 고안하고, 금속을 정련하고, 합금을 만들고, 동식물을 순화하고, 약초의 비밀을 알아낸 선대인들의 실천적·이론적 성취였다.

제6장 267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적인 설명과 초자연적인 설명을 불필요하게 뒤섞지 않도록 주의했다.

제6장 267 합리적인 원인과 초자연적 원인을 분리하는 것은 과학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세계종교: 기독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말할 것이 없는데 "독교와 이슬람교의 모태가 유대교이므로 우선 유대 전통이 세계종교가 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편이 좋겠다." 다시말해서 한스 큉 신부님이 쓴 책이 있다. 아브라함의 종교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철천지 원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뿌리에서 나왔고 교리상으로도 그렇게 충돌이 날 것이 없다. 이슬람교는 교리라고 할 게 없다. 샤리아라는 법이 있는데 그것은 교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샤리아가 지역마다 다르다. 교리는 아주 간단하다. 278페이지를 보면 "무슬림의 신앙고백은 "알라 외에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예언자입니다"로 단순하다. 전반적으로 이슬람은 바른 교리보다 바른 실천을 더 강조했다. 훌륭한 무슬림이라면 알라의 명대로 정해진 시간에 꼬박 꼬박 기도하고, 자선을 베풀고 신성한 달린 라마단 기간에 금식하고, 술을 삼가고, 옷을 수수하게 입고, 가능하다면 메카로 순례를 다녀와야 했다." 어찌보면 이슬람은 굉장히 순정한 종교이다. 편견을 버리는 것이 좋다. 다시 유대교 얘기로 돌아와서 유대교는 "야훼와 특별한 관계인 민족"이 지나치게 강조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 종교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유대교의 일신교와 신이 이 세계에 대해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섭리, 이 두가지를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받아들이면서 이스라엘 민족과의 신성한 계약 관계를 해제하고 누구에게나 연결되어 있다고 함으로써 기독교와 이슬람은 세계종교가 되었고 유대교는 세계종교가 되지 못했다. 

제6장 268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모태가 유대교이므로 우선 유대 전통이 세계종교가 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편이 좋겠다.

제6장 268 유대인은 자신들이 다른 모든 민족을 제치고 야훼의 선택을 받은, 야훼와 특별한 관계인 민족이라고 설명했다.

제6장 268 초기 기독교와 무슬림은 유대인의 일신교에 대한 헌신과 신성한 계획에 대한 의식을 공유하면서도, 각각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어려운 걸음을 내딛으려 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전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설명이 되어 있다. "예수는 아람어로 말했지만 신약성서의 모든 책은 그리스어로 적혔다." "당시 그리스어는 코이네Koine 그리스어 또는 알렉산드로스 그리스어로 불리는 공통어로서 훗날 그리스 정교회의 전례 언어가 되었고, 중세 그리스어를 거쳐 현대 그리스어로 진화했다. 기원전 3세기 중엽 히브리 성서(구약성서)마저 코이네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이 정도로 중요했다. 즉 지중해 세계에서 널리 통용되던 언어가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 초기 기도굑가 "세가지 심각한 난제에도 직면했다. 바로 로마의 박해, 헬레니즘 철학의 도전, 신학 논쟁이었다." 로마의 박해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헬레니즘 철학의 도전, 신학 논쟁, 이렇게 세가지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역사책에서 간명하게 짚어주는 것을 잘 기억해두고 이것을 토대로 기독교의 역사도 읽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기독교의 신학도 읽어보고 하는 것이다. 

제6장 270 예수는 아람어로 말했지만 신약성서의 모든 책은 그리스어로 적혔다. 

제6장 270 당시 그리스어는 코이네Koine 그리스어 또는 알렉산드로스 그리스어로 불리는 공통어로서 훗날 그리스 정교회의 전례 언어가 되었고, 중세 그리스어를 거쳐 현대 그리스어로 진화했다. 기원전 3세기 중엽 히브리 성서(구약성서)마저 코이네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제6장 270 정치적·문화적 통일성 덕분에 더 수월하게 퍼져 나가긴 했지만, 초기 기독교는 세가지 심각한 난제에도 직면했다. 바로 로마의 박해, 헬레니즘 철학의 도전, 신학 논쟁이었다.

"헬레니즘의 지적 도전은 로마의 박해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다."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헬래니즘의 지적 도전에 대해서 대항한 사람들이 초창기 기독교 신학자들이다.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는 아테나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말을 했다. 그 다음에 "높은 학식을 갖춘 최초의 기독교도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이런 사람들이, 다시 말해서 아테나이 고전철학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기독교가 되면서 강력한 논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별나지만 탁월한 사상가 오리게네스", 오리게네스는 나중에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파문을 당했기 때문에 성인이 아니다. 거기보면 "그리스 철학을 얼마나 성실하고 끈기있게 연구했던지 기독교를 맹렬히 반박한 포르피리오스가 "오리게네스는 기독교로서 살았지만 그리스인으로서 사유했다"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여기서 포르피리오스는 헬레니즘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다. 그 다음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초기 교회에서 신앙과 철학을 종합한 가장 위대한 저작을 썼다." 헬레니즘 철학의 도전이 최종적으로 일단락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주의의 형상론을 원용해 장차 1000년간 라틴 교회를 지배할 신학의 틀"을 세웠다. 즉 헬레니즘 철학이 기독교 신학의 바탕에 놓여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제6장 271 헬레니즘의 지적 도전은 로마의 박해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다. 

제6장 271 위대한 기독교 호교론자인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155경~220경)는 아테나(고전 학식)과 예루살렘(유대교-기독교 계시)이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제6장 271 오리게네스가 그리스 철학을 얼마나 성실하고 끈기있게 연구했던지 기독교를 맹렬히 반박한 포르피리오스가 "오리게네스는 기독교로서 살았지만 그리스인으로서 사유했다"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제6장 271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초기 교회에서 신앙과 철학을 종합한 가장 위대한 저작을 썼다.

그 다음 "초기 교회가 맞닥뜨린 세번째 난제는 기독교 신앙 내부의 긴장"이다. 초장기 니카이아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에서 마무리가 된 삼위일체 논쟁이라든가 신성 인성 논쟁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 꼭 유념해야 할 문장이 있다. "개성, 경쟁 관계, 종족적·지역적 정체성 또한 신학 논쟁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 이런 것은 놓치면 안된다. 신학 논쟁이라는 것은 오로지 이론적인 것만을 가지고 했던 것은 아니고 이런 것들도 서로 영향을 미쳤다. 그런 다음에 1054년의 대분열, 거기까지 기독교의 역사를 아주 간명하게 다루었다. 

제6장 272 초기 교회가 맞닥뜨린 세번째 난제는 기독교 신앙 내부의 긴장이었다. 

제6장 272 개성, 경쟁 관계, 종족적·지역적 정체성 또한 신학 논쟁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


274페이지부터는 이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 『쿠란』의 내용은 일신교, 종말론, 예언을 강조한다." 이 세가지가 쿠란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의 신(아랍어 알라Allah)의 다스림을 받는다."가 일신교, "머지 않아 세계가 종말을 맞고 알라께서 최후의 심판을 할 것이다(초기 기독교와 공유하는 믿음)."가 종말론, "무함마드는 유대교의 예언자들과 예수를 포함해 알라의 말씀을 전해온 전령들 중 마지막 전령이다."가 예언이다. 그 다음 "이 신흥 종교의 이름인 이슬람은 복종을 의미하며 신자인 무슬림은 복종하는 자를 뜻한다." 그 이후 이슬람의 역사가 간단하게 나와있다. 중요한 것은 "아랍과 비아랍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추세는 이슬람교가 다문화적 세계종교로 발돋움하는 데 이바지했다." 이슬람은 초창기 굉장히 관용적이었다. 개종하지 않더라도 관용과 보호를 보장받았고 "무슬림은 기독교도와 유대인을 장구한 계시 전통을 공유하는 같은 '성경의 백성'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이것도 잠깐이다. 나중에는 금지를 했고,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나면 마음을 돌려먹을 수 없었으며, 때로는 관용이 엇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무슬림의 신앙고백이 있다. "알라 외에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예언자입니다." 그 다음에 이란이라든가 이런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와 수니파가 있는데 이런 것은 어떤 것인가. "무함마드에 이어 누가 아랍 제국의 차기 칼리프 또는 통치자가 될 것인지를 놓고 벌어진 계승 분쟁으로 인해 이슬람은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졌다." 교리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로 생긴 것이다.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는 소수파이기는 한데 무함마드 가계 내에서 칼리프 세습을 지지했다.  수니파는 칼리프를 선출해야 한다고 얘기했던 것이다. 

제6장 274 간단히 말하면 『쿠란』의 내용은 일신교, 종말론, 예언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의 신(아랍어 알라Allah)의 다스림을 받는다. 머지 않아 세계가 종말을 맞고 알라께서 최후의 심판을 할 것이다(초기 기독교와 공유하는 믿음). 무함마드는 유대교의 예언자들과 예수를 포함해 알라의 말씀을 전해온 전령들 중 마지막 전령이다. 

제6장 275 이 신흥 종교의 이름인 이슬람은 복종을 의미하며 신자인 무슬림은 복종하는 자를 뜻한다.

제6장 275 아랍과 비아랍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추세는 이슬람교가 다문화적 세계종교로 발돋움하는 데 이바지했다.

제6장 275 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할 경우 환영을 받았지만, 개종하지 않더라도 보통 관용과 보호를 보장받았다. 무슬림은 기독교도와 유대인을 장구한 계시 전통을 공유하는 같은 '성경의 백성'으로 인정했다.

제6장 278 기독교 교회를 짓거나 보수하는 일이 대체로 금지되었고,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나면 마음을 돌려먹을 수 없었으며, 때로는 관용이 엇나갔기 때문이다.

제6장 278 무슬림의 신앙고백은 "알라 외에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예언자입니다"로 단순하다. 전반적으로 이슬람은 바른 교리보다 바른 실천을 더 강조했다. 훌륭한 무슬림이라면 알라의 명대로 정해진 시간에 꼬박 꼬박 기도하고, 자선을 베풀고 신성한 달린 라마단 기간에 금식하고, 술을 삼가고, 옷을 수수하게 입고, 가능하다면 메카로 순례를 다녀와야 했다.

제6장 278 7세기 중엽 무함마드에 이어 누가 아랍 제국의 차기 칼리프 또는 통치자가 될 것인지를 놓고 벌어진 계승 분쟁으로 인해 이슬람은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졌다.


그 다음 279페이지를 보면 대승불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두 가지 새로운 믿음을 내세웠다. 첫째, 붓다를 단순히 크게 깨달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세상 만물에 편재하는 진리로서 경외했다." 그게 바로 붓다의 불상을 제작하게 되고 경전도 붓다의 말씀이니까 믿음의 대상이 되는, 법신, 색신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경전이 중요하니까 교학 연구를 장려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왜 불교가 쇠퇴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는데 280페이지를 보면 "쇠퇴의 한 원인은 힌두교가 신도와 정치적 지지 세력을 놓고 불교와 경쟁하며 힘을 키웠다는 데 있다. 불교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이슬람군이었다. 북인도를 정복한 이슬람군은 승원과 도서관을 허물고 1197년 날란다 학문사를 파괴했다. 승려들은 처형되거나 살해되거나 추방되었다. 불교는 탄생지인 인도에서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에 "막대한 인구를 보유한데다 문화적 위신까지 누리는 중국에서 주요 종교로 자리매김한 것은 불교가 거둔 특히 중요한 성공이었다." 중국불교와 인도불교는 많이 다르다.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불교가 세계 종교로 되는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다.

제6장 279 대승불교는 두 가지 새로운 믿음을 내세웠다. 첫째, 붓다를 단순히 크게 깨달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세상 만물에 편재하는 진리로서 경외했다.

제6장 280 쇠퇴의 한 원인은 힌두교가 신도와 정치적 지지 세력을 놓고 불교와 경쟁하며 힘을 키웠다는 데 있다. 불교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이슬람군이었다. 북인도를 정복한 이슬람군은 승원과 도서관을 허물고 1197년 날란다 학문사를 파괴했다. 승려들은 처형되거나 살해되거나 추방되었다. 불교는 탄생지인 인도에서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제6장 280 막대한 인구를 보유한데다 문화적 위신까지 누리는 중국에서 주요 종교로 자리매김한 것은 불교가 거둔 특히 중요한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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