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옥스퍼드 세계사 5장(2)

 

 

2021.09.28 옥스퍼드 세계사 5장(2)

오늘은 《옥스퍼드 세계사》 제5장 두번째이다. 제3부 전체에서 제5장이 지리와 기후에 관한 것이고, 제6장이 문화사, 제6장이 정치사와 사회사를 다루고 있다고 정리했다. 우리가 대개 역사책에서 많이 보게 되는 것이 6장과 7장에 관한 부분이고, 사실 5장에 있는 내용은 지리와 기후에 관한 얘기들이어서 그렇게 많이 익숙하지 않다. 공부를 할 때 필요한데 역사책이라고 하면 인물들에 관해서 읽게 되는데 편식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6장이 지적 전통들이다. 7장은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이다. 이와 관련된 책들을 얼마나 많이 읽었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읽다보면 물질생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5장 물질생활에 대해서 취약하다. 기후의 역사 그런 책들을 일부러 읽어야 한다. 좋아하는 음식만 먹다보면 편식을 하게 되고 건강에 안좋다는 말을 한다. 여하튼 이런 부분에 익숙하지 않았던 분들은 이번 기회에 적어도 《옥스퍼드 세계사》에 있는 내용은 기본 중에 기본이니 꼼꼼하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난 번에 농업제국이 붕괴된 이후 어떻게 해서 청동기 시대의 위기가 생겨났고, 청동기 시대 후기부터 철기 시대 초기의 기후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오늘은 전염병과 유라시대 스텝지대, 철과 강의 시대로를 읽는다.

전염병과 유라시대 스텝지대는 앞의 절과 연결된다. 앞에서 "특정 왕조는 (상 왕조처럼) 계절풍(그리고 덕성)이 부족할 경우 천명을 잃을 수 있었다."라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기원전 1000년부터 700년까지 최고조에 달한 강우 피해는 복잡한 문화의 영속화를 방해했다." 비가 많이 왔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전염병 얘기가 바로 이어진다. "구세계의 증거는 이 위기의 수백 년간 환경이 혹독했으며", 이 위기라고 하는 것이 할슈타트 태양 극소기를 말한다, "청동기 시대 위기와 함께 틀림없이 전염병이 엄습했음을 시사한다." 환경이 혹독하고 전염병이 엄습했다. 페스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원전 12세기 트로이 전쟁,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라고 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특히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것이다. 그러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서기전 8세기에 나왔다고 대체로 추정된다. 그러면 언제 있었던 일을 서사시에서 다루고 있는가. 바로 서기전 12세기에 있었던 사건을 서기전 8세기에 다루고 있고, 8세기에 만들어진 호메로스 서사시가 서기전 5세기,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까지도 구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거의 700년에 가까운 시기이다. 단군 신화가 고려 시대에 집성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부터 천년도 전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전설들이 내려온다. 마찬가지로 호메로스의 시사시도 그렇다. 역사를 공부할 때는 이처럼 기나긴 시간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원전 14세기 히타이트, 기원전 12세기 트로이 전쟁과 이스라엘 12지파 시절의 기록이 현존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페스트였다. "청동기 시대 내내 스텝 지대에서 풍토병이었으며", 페스트라고 하는 것이 심각하다. 그런데 "페스트는 후기 청동기 시대에 지중해 동부 사람들을 긴밀히 연결한 상업 경로와 전쟁 경로를 따라 퍼져 나갔을 것이다." 전염병이라고 하는 것으로 상업 경로와 전쟁 경로를 따라간다. 오늘날의 코로나19도 상업 경로, 전쟁 경로, 여행경로를 따라 퍼져 나갔을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그 다음 문장 "위대한 문명들의 붕괴가 건강에 얼마간 이로웠을지도 모른다." 전염병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문명을 이루고 사는 밀집지역에 퍼진다. 그러니까 문명이 붕괴되면서 전염병이 덜 퍼졌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교역을 하지 않고 고립된 곳에 모여 살면 그만큼 전염병이 전파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로웠을 것이다라는 얘기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전염병이 전파되지 않았을지라고 전염병보다 더 심한 것이 기후위기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기후 위기와 전염병이 겹쳐서 온 시대이다. 가혹하다. 이렇게 보면 기원전 제1천년기의 가혹함을 막연하게라도 공감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제5장 215 구세계의 증거는 이 위기의 수백 년간 환경이 혹독했으며 청동기 시대 위기와 함께 틀림없이 전염병이 엄습했음을 시사한다. 기원전 14세기 히타이트, 기원전 12세기 트로이 전쟁과 이스라엘 12지파 시절의 기록이 현존한다. 한때 중세 후기에만 발병했다고 여겨진 페스트가 훨씬 더 이른 시점에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기장 이른 유전학적 증거는 기원전 2800년경 중앙아시아 알타이 지방의 공동묘지에서 나오는데, 페스트가 청동기 시대 내내 스텝 지대에서 풍토병이었으며 서쪽으로 유럽까지 이동한 인도유럽계 유목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페스트는 후기 청동기 시대에 지중해 동부 사람들을 긴밀히 연결한 상업 경로와 전쟁 경로를 따라 퍼져나갔을 것이다. 크레타 섬에서는 사람들이 혹독한 겨울에 대비해 언덕 꼭대기의 요새화된 촌락에 다닥다닥 붙어 살았다. 그러다 보니 사실 "철기 시대 매장지들에서 발굴한 유골들은 후기 청동기 시대 유골들보다 전반적으로 건강이 더 나쁘고 키가 더 작았음을 보여준다." "철기 시대에 상업이 쇠퇴하고 대규모 군대가 진군함에 따라 작고 억압받는 공동체들은 고립되었는데, 그 덕에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전염병을 피할 수 있었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제5장 215 이런 이유로 위대한 문명들의 붕괴가 건강에 얼마간 이로웠을지도 모른다.

제5장 216 철기 시대 매장지들에서 발굴한 유골들은 후기 청동기 시대 유골들보다 전반적으로 건강이 더 나쁘고 키가 더 작았음을 보여준다. 

제5장 216 철기 시대에 상업이 쇠퇴하고 대규모 군대가 진군함에 따라 작고 억압받는 공동체들은 고립되었는데, 그 덕에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전염병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 중요한 문장이 있다. "페스트는 스텝 기마 유목민의 발흥 및 확산과 함께 장차 근대 초까지 거의 4000년 동안 유라시아를 형성할 지정학적 구조의 핵심 요소들이 확립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항상 페스트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상업경로가 확장되었다 그러면 페스트가 따라가겠네, 조건반사처럼 떠올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페스트는 4000년 동안 영향을 주었다. 

제5장 216 페스트는 스텝 기마 유목민의 발흥 및 확산과 함께 장차 근대 초까지 거의 4000년 동안 유라시아를 형성할 지정학적 구조의 핵심 요소들이 확립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가장 이른 페스트 증거는 기원전 2800년경 초기 청동기 시대 알타이와 발트해의 원시 인도유럽어 사용자들의 무덤에서 나오며, 다음으로 기원전 2200년경 카스피해 북쪽 스텝 지대 신타쉬타 주민들의 무덤에서 나온다.

216페이지를 보면 "청동기 시대가 끝나갈 무렵 스텝 지대에서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스텝 전사가 말이 끄는 전차 전사에서 기마 전사로 바뀌었다." 그 위에 사진을 보면 기원전 700년경 니네베 소재 센나케리브 왕궁의 아시리아 기병 부조. 부조를 자세히 보면 첫째 말을 찬 채로 쏠 수 있는 짧은 복합궁을 휴대했다. 그 다음에 말을 타는 사람의 발을 보면 아직 등자가 사용하고 있지 않을 때이다. 등자가 없으면 말을 타는 것이 보통의 일이 아니다. 말을 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한 것이고 특정한 집단들만이 말을 탔다는 것, 오늘날로 보면 굉장히 엄청난 성능을 가진 전투기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몽골의 기병들이 고려를 침공할 수 있었던 힘도 말에서 나왔다. "둘째, 페스트의 독성이 강해지고 전염 경로가 늘어났다." 

제5장 216 청동기 시대가 끝나갈 무렵 스텝 지대에서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스텝 전사가 말이 끄는 전차 전사에서 기마 전사로 바뀌었다. 둘째, 페스트의 독성이 강해지고 전염 경로가 늘어났다.

"스텝 전사들과 계절풍이 부는 유라시아 가장자리의 통치자들 및 농민들은 하나의 상호 작용하는 세계 체제를 이루었다." 주의해서 봐야한다. 즉 스텝 전사들은 그냥 그 땅에만 머물러 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농경 민족은 가만히 있기만 했는가. 스텝 민족과 농경 민족은 복합된 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는 점을 연결해서 생각해두면 좋겠다. 유목 민족에 대해서 지나치게 고립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제5장 218 스텝 전사들과 계절풍이 부는 유라시아 가장자리의 통치자들 및 농민들은 하나의 상호 작용하는 세계 체제를 이루었다.

그 다음 "철과 강의 시대로"는 기술 혁명에 관한 부분이니까 주의해서 봐야한다. 처음 철기 시대 초기에 기후가 어떠했는가가 나와있다. 핵심은 "600~700년 동안 세계 대부분은 비교적 알맞은 기후를 누렸다." 기후가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느리지만 가속적인 과정에 뒤이어 구세계와 신세계에서 하나의 비슷한 궤도가 나타났지만," "중국과 이집트 사이 연계에" "두 지역을 잇는 거대한 원호 곳곳에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엄격히 위계화된 정치체들이 위기를 맞고 무너지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렸다." 이 부분 중국과 이집트 지역을 잇는 거대한 원호 지역 곳곳에서, 흔히 옛날 세계사책에서 4대문명의 발상지 다음에 배우는 시대이다. 이 시대를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고 불렀는데, 서기전 5세기 무렵이다. 
이 시기에 나타난 첫번째 특징이 "일신교적 세계종교 전통이 발전"했다. 다시말해서 원시종교에서 이제 고등종교로 나아가는 형이상학적인 이론적인 틀을 갖추는 일신교적 세계종교 전통이 발전했다. 그 중에서 가장 나중에 나온 것이 기독교이다. 

제5장 218 기원전 400년에서 300년 사이에 또다시 한랭한 기후가 찾아왔다. 그 다음 600~700년 동안 세계 대부분은 비교적 알맞은 기후를 누렸다.

제5장 219 이 느리지만 가속적인 과정에 뒤이어 구세계와 신세계에서 하나의 비슷한 궤도가 나타났지만, 우리는 유라시아 세계와 아프리카 세계의 연계에, 특히 핵심 인구 지역인 중국과 이집트 사이 연계에 초점을 맞춘다. 두 지역을 잇는 거대한 원호 곳곳에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엄격히 위계화된 정치체들이 위기를 맞고 무너지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렸다.


그 다음에 넘겨보면 220페이지 "기술분야에서는 야금술 혁신이 결정적이었다. 기원전 제1천년기에 구세계 전역에서 주요 금속이 청동에서 철로 바뀌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이에 연결해서 256페이지를 보면 "광범위한 자연의 힘에 맞서 인류는 한정된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인류의 유골은 정신이 번쩍 들게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장에서 다룬 2000년 내내 인류는 건강이 나빴고,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했으며, 수명이 짧았다. 이 기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기술 발전은 구세계가 철에 기반을 둔 야금술로 옮겨간 것이었다. 절대다수의 생활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과학 혁명을 기다려야 했다." 16세기가 되어야만 했는데 철에 기반을 둔 야금술로 옮겨간 것, 따라서 다시 220페이지로 가서 야금술 혁신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철에 기반을 둔 야금술의 혁신이 일어났는가.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일단 청동을 만드는 재료가 구리와 주석이다. 구리와 주석은 간단히 말하면 원자재가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 청동이 훨씬 비싸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 후기에 나타난 대규모의 재난으로 인하여 주석을 교역하는 교역망이 붕괴되었다. 주석은 전세계에서 골고루 나지 않는다. 야금술 혁신을 만들어 내는 첫번째 요인은 주석 교역망이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철 광상은 널리 분포했고, 철 생산에는 멀리서 구해야 하는 값비싼 구리와 주석 광석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구할 수 있는 나무와 칼슘만이 필요했다." 즉 생산비용이 저렴했고 원자재 수급이 원할했다. 책에 적어둘 것. 게다가 "철은 목탄으로 가열했다가 공기 중에서 냉각시키는 뜨임 처리를 통해, 또는 물에 담가 급랭하는 담금질과 다시 열을 가해 탄소를 스며들게 하는 침탄 처리를 통해 강의 등급으로 변형할 수 있었다." 뜨임처리, 담금질, 침탄처리를 통해 강으로 변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무기 생산이 대폭 확대되었지만,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농업용과 목공용, 철공용 도구가 강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의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야금술 혁신은 굉장한 기술 혁신이었다.

제5장 220 기술분야에서는 야금술 혁신이 결정적이었다. 기원전 제1천년기에 구세계 전역에서 주요 금속이 청동에서 철로 바뀌었다.

제5장 256 광범위한 자연의 힘에 맞서 인류는 한정된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인류의 유골은 정신이 번쩍 들게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장에서 다룬 2000년 내내 인류는 건강이 나빴고,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했으며, 수명이 짧았다. 이 기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기술 발전은 구세계가 철에 기반을 둔 야금술로 옮겨간 것이었다. 절대다수의 생활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과학 혁명을 기다려야 했다.

제5장 220 철 광상은 널리 분포했고, 철 생산에는 멀리서 구해야 하는 값비싼 구리와 주석 광석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구할 수 있는 나무와 칼슘만이 필요했다.

제5장 221 철은 목탄으로 가열했다가 공기 중에서 냉각시키는 뜨임 처리를 통해, 또는 물에 담가 급랭하는 담금질과 다시 열을 가해 탄소를 스며들게 하는 침탄 처리를 통해 강의 등급으로 변형할 수 있었다. 

제5장 222 그 결과 무기 생산이 대폭 확대되었지만,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농업용과 목공용, 철공용 도구가 강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문장은 철강 생산지역을 거론하면서 키프로스가 나온다. 아주 당연하게도 철강 생산지역들이 문명의 중심이 되어가는 이야기들. 그 다음에 철강이 생산되려면 뭐가 있어야 하는가. "철광산과 견목재 삼림의 조합은 경제적 생존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제 문명은 철광산이 있어야 하고 목재가 있어야 한다. "이집트는 기원전 500년경 뒤늦게 철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철광산도 없고 견목재 산림도 없었던 것이 쇠퇴의 한 원인이었다." 그 다음을 보면 "이집트는 기원전 1100년경 신왕국이 붕괴된 뒤 실제로 회복된 적이 없으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철광산과 견목재 삼림의 조합은 경제적 생존을 결정하는 요인" 이 부분이 핵심이다.

제5장 222 철광산과 견목재 삼림의 조합은 경제적 생존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집트는 기원전 500년경 뒤늦게 철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철광산도 없고 견목재 산림도 없었던 것이 쇠퇴의 한 원인이었다. 이집트는 기원전 1100년경 신왕국이 붕괴된 뒤 실제로 회복된 적이 없으며, 그후 수백 년에 걸쳐 나일강 상류 누비아 지방의 쿠시 왕국으로 권력이 이동했다. 

224 페이지를 보면 상업과 제국. 여기에는 "초기 철기 시대의 교역"이라고 적어둘 것. 철광석이 있는 곳과 산림이 있는 곳에서 문명이 생겨나고, 상당 부분 해상 교역을 하게 되는데 자율적인 정치체들이 지중해 연안에 생겨나게 된다. 

지중해 지역은 대규모의 제국이 형성될 수 있는 땅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로마제국이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225페이지를 보면 "세계 체제의 초기 형태"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세계 체제가 형성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서남아시아 지역 또는 오리엔트 지역에서 나온다. 그런 세계 체제를 형성하는 나라들은 이 책에서는 "포식성 제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 페르시아전쟁은 지중해의 도시국가연합과 포식성 제국간의 쟁투가 되겠다.

그 다음 넘겨보면 226페이지에 "중국의 진나라와 한나라, 그리고 지중해 일대의 로마제국" 이런 나라들이 포식성 제국, 그런 나라들을 통치하려면 "위계화된 관료들이 지방 총독들과 함께 제국의 평화를 조정하는 체제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로마의 속주 체제, 진나라와 한나라이다. 진나라는 군현제이고 한나라는 황제 직할지가 있고 군현제가 있는 통합체제이다. 진나라의 조직체제를 물려받으면서 조금 개량한 것. 로마의 속주 체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런 포식성 제국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조직은 위계화된 관료와 지방 총독 직할 체제가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겠다.

제5장 226 물론 당대의 제국들 중 가장 크고 안정적이었던 것은 기원전 제1천년기 말에 유라시아 동부와 서부에서 부상한 신흥 세력들, 즉 중국의 진나라와 한나라, 그리고 지중해 일대의 로마제국이었다.

제5장 226 이 위대한 고전기 제국들은 관료제적 통치의 초기 형태, 즉 위계화된 관료들이 지방 총독들과 함께 제국의 평화를 조정하는 체제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 다음 227페이지는 남아메리카 지역. 엘리뇨의 영향이 있었다. 남아메리카 지역은 엘리뇨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 다음 228페이지 마지막 문단을 보면 중요한 얘기가 나온다. "고전기 제국들은 커다란 역설에 의존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변경 사회들을 제압함으로써 정부와 신민을 통치하기 위한 경제 여건을 안정화하고 가능하다면 개선한다는 역설이었다." 군사력으로 변경사회들을 제압한다. 억압을 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억압을 가해야만 경제 여건이 안정화되고 개선된다는 점이 역설이다. 그 역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제국 통치는 예측과 안보 유지를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하는 여건을 창출함으로써 인구의 성장을, 더 나아가 집중을 자극했다." 이것은 철기 시대 초기에 등장한 제국 통치의 역설인데 사실은 꼭 그때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특정한 국가 통치의 기본조건이다. 어느 정도 무력으로 안정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제5장 228 고전기 제국들은 커다란 역설에 의존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변경 사회들을 제압함으로써 정부와 신민을 통치하기 위한 경제 여건을 안정화하고 가능하다면 개선한다는 역설이었다. 제국 통치는 예측과 안보 유지를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하는 여건을 창출함으로써 인구의 성장을, 더 나아가 집중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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