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20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15강(1)

❧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제국 말기를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할 운명에 놓인 것들이다. 진정한 나라는 신의 나라이다. 그의 ⟪신국론⟫은 무너지는 ‘영원한 로마’를 대신할 ‘영원한 신의 도시’를 설파한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의 철학적 전망을 연다.”


❧ “하느님의 도성”
“거룩한 산 위에 세워진 그 터전, 주님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니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스러운 일들이 일컬어지는구나.”(시편, 87장 1~3절)

 

2021.09.28 역사 고전 강의 — 20

《역사 고전 강의》 제15강은 두 번에 나누어서 설명하겠다. 《역사 고전 강의》라고 할 때 대체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이런 책들은 말그대로 역사의 1차사료에 해당하는 문헌들이다. 그런데 15강에서 다루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은 역사책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 철학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역사 철학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역사 신학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은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또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인 의미에서 역사 철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사 철학이라고 하는 분야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발문을 가지고 설명하겠다. 문장이 네 개로 되어있다. "제국 말기를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할 운명에 놓인 것들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처해있던 시대적인 상황을 이야기한다. 로마제국 말기.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제국 말기에 살았다. 로마라고 하는 나라가 서구인들에게는 엄청난 것이다. 동로마제국을 포함하면 천년을 넘어간다. 로마가 이를테면 지중해를 정복하고 '우리의 바다'를 정복하고 어떻게 대제국을 이루었는가 하는 이 과정에 대해서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로마가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이다. 근대에서도 어떤 근대인가. 각 나라가 어수선하고 내란에 휩싸이고 이럴 때 이 로마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로마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명저 중의 명저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이다. 제목을 보면 로마제국 '쇠망사'이다. 로마에 대한 관심은 사실 그 부분에 좀 더 집중되어 있다. 저 거대한 제국이 어떻게 멸망했는가. 《로마제국 쇠망사》이 나오게 된 학문적인 배경이나 시대적인 배경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어수선하고 언제 망할지 걱정스럽다. 그러면 자기네 역사에서 서구문명의 역사 속에서 멸망의 대표적인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다. 아테나이 멸망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멸망은 로마의 멸망인 것인다. 로마 같은 나라도 멸망했는데 우리 같은 짜잘한 나라가 명망하지 않겠나 걱정된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다. 로마는 융성해진 과정도 사람들에게 주목을 끌었지만 사실 더욱 로마제국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이목을 집중시킨 부분은 쇠망에 대한 부분이다. 그런 쇠망에 집중하게 된 데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제국 말기를 살았다. 영원한 제국이라고 여겨졌던 로마도 멸망하는데 세상이 끝이구나 라는 종말론적인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종말론적인 생각이 《신국론》에 있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최근에 「기독교의 역사」에서 루터를 다루면서 종교개혁의 시작을 했었다. 루터가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 수도회 소속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는 중세 전성기에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중세 전성기를 함께 했던 수도회는 베네딕투스 수도회이다. 그리고 중세가 약간 쇠락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을 때 등장한 것이 프란치스코 수도회, 도미니쿠스 수도회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는 중세 후기에 등장한 것이다. 사실 프로테스탄트들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열심히 안읽는 것 같은데 선한용 교수가 번역한 《고백록》이 있었고, 성염 교수가 번역한 《고백록》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세워놓은 기독교의 신학, 이것이 중세 가톨릭의 기본 뼈대가 되고, 프로테스탄트의 핵심 교리도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나왔다. 예정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칼빈과 같은 정도로 아주 강력한 예정설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 가톨릭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교리의 뼈대를 내놓은 사람이라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은 로마 카톨릭 교회나 개신교 모두에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은 누구에게 오는가, 누가 구원받은가, 그리고 하느님에게 구원받은 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하느님의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에 관한 생각을 기본적으로 틀지운 것이다. 따라서 《신국론》은 세속적인 역사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든 로마 가톨릭교도가 되었건 프로테스탄트가 되었건 꼭 읽어봐야 한다.

진정한 나라는 신의 나라이다. 로마라고 하는 세속국가가 멸망하니까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나라에다가 미래를 투사시킨다. "그의 ⟪신국론⟫은 무너지는 ‘영원한 로마’를 대신할 ‘영원한 신의 도시’를 설파한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의 철학적 전망을 연다." 역사의 철학적 전망을 연다고 썼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신학적 전망이다. 철학이라는 것도 형이상학의 영역에 들어가면 신학적 전망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서양 철학은 신학과 그렇게 많이 구별되는 영역이, 물론 논리학이나 현대철학에서는 구별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데 고전기의 철학도 그렇고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유일신을 얘기하지 않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대륙철학으로 일컫는 부분들은 신학과 그렇게 구별되는 영역은 별로 없다.

제15강 187 제국 말기를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할 운명에 놓인 것들이다. 진정한 나라는 신의 나라이다. 그의 ⟪신국론⟫은 무너지는 ‘영원한 로마’를 대신할 ‘영원한 신의 도시’를 설파한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의 철학적 전망을 연다.

로마제국 말기와 중세를 설명할 때 반드시 논의해야만 하는 요소가 기독교인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중심으로 기독교를 살펴본다는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의 영역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신국론》를 읽어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준거틀이 하느님의 나라이다. 세속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출발점은 사도 바울의 빌립보서,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3:20) 

제15강 187 로마제국 말기와 중세를 설명할 때 반드시 논의해야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책들은 188페이지에 적어두었는데 일단 새물결에서 나온 《기독교 세계의 등장》 이것은 피터 브라운 책이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다. 헨리 채드웍의 《초대교회사》도 읽어야 한다. 서던의 《중세교회사》는 명저 중의 명저이다. 

"중세는 '기독교 공화국 respublica christiana'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레스푸블리카라는 말이 어떤 것인가. 정치적 측면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에 크리스티아나라는 종교적 용어가 붙어서 레스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는 "레그눔regnum과 사케르도티움sacerdotium의 결합". 중세가 가지고 있는 정교일치는 아니다, 정교일치라고 하면 교황이 대장이거나 황제가 대장이거나 하는 것인데, 이럴 때는 복합체라고 부른다. 반대물의 복합체, 또는 종교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이 복합적으로 권위가 두 개이다. 이게 조금 복잡하다. 정치적 가톨릭주의자들은 교황이 무력을 가지고 통치해야 한다고 나오게 된다. 그 생각을 이어받아서 종교적인 것들이 정치적인 것들을 지배하는 세계가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시대착오적으로 가지고 있던 사람이 칼 슈미트이다. 칼 슈미트의 정치적 가톨릭주의를 이해하려면 레스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의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하고, 교황황제주의도 알아야 한다.

제15강 189 중세는 '기독교 공화국 respublica christiana'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레스res는 '일', 푸블리카publica는 '공공의'라는 뜻입니다. 희랍방식으로 말하자면 '폴리스polis의 일'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나므로 레스푸블리카respublica는 정치적(세속적) 측면, 크리스티아나christiana는 종교적 측면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레스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는 레그눔regnum과 사케르도티움sacerdotium의 결합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레그눔은 정치적 권위, 사케르도티움은 종교적 권위를 가리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니까 현재 지상에 있는 나라에서도 교황이 다스려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에 지상이라고 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다시말해서 정치 영역을 허수아비로 여기는 것 이게 바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시도했던 것이다. 다시말해서 지상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실체성을 제거해버린 것이 바로 《신국론》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 다음 190페이지의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해는 313년입니다"부터 191페이지, 192페이지에 있는 내용까지는 로마제국 말기에서 중세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상황과 기독교가 어떻게 그 상황에 대해서 적응하고 세속세계에 대해서 영향력을 갖게 되었는가를 정말 간략하게 정리했다. 간략하게 정리했다는 말은 적어도 이것만큼은 꼭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신국론》에 관한 본격적인 얘기가 192페이지부터 시작한다.

"《신국론》 1~3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눈으로 로마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헤로도토스가 신화적 역사를 썼고, 투퀴디데스가 사회과학적 통찰을 담은 정치적 역사학의 시작을 열었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적 역사'라는 새로운 차원을 도입한 것입니다." 그러면 실증주의라고 하는 역사, 근대 역사의 새로운 차원인데, 이런 역사를 쓴 사람이 에드워드 기번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들도 신학적인 눈에서 막 벗어나 있지 않다. 랑케와 같은 사람들이 철저하게 실증주의는 아니다. 기본적인 생각이 지상의 역사는 신의 뜻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상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잘 살펴보면 거기서 신의 뜻을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랑케의 실증주의라는 것도 완벽하게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생각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물론 다른 점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상의 역사라는 것이 헛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랑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래도 지상의 역사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투퀴디데스는 인간사를 서술한다, 이것이 자신의 영원한 자산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상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적어도 새로운 차원을 도입했다. 그리고 역사를 보는 관념이 아우구스티누스를 기점으로 해서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설명 틀은 지상의 나라와 천상의 나라, 인간의 도시와 신의 도시라고 하는 설명틀을 갖게 된다. "아무리 넓은 땅을 다스리고 그 역사가 길다고 해도 로마는 지상의 나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독교를 표방한다 해도 하늘의 예루살렘에 견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로마는 지배욕 위에 건설된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나라는 "거룩한 산 위에 세워진 그 터전, 주님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니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스러운 일들이 일컬어지는구나." 시편에 나오는 절인데 "하느님의 도성"이라는 이 개념을 가지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제15강 192 《신국론》 1~3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눈으로 로마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헤로도토스가 신화적 역사를 썼고, 투퀴디데스가 사회과학적 통찰을 담은 정치적 역사학의 시작을 열었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적 역사'라는 새로운 차원을 도입한 것입니다.

제15강 193 이틀에 입각하여, 아무리 넓은 땅을 다스리고 그 역사가 길다고 해도 로마는 지상의 나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독교를 표방한다 해도 하늘의 예루살렘에 견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로마는 지배욕 위에 건설된 나라입니다.

제15강 193 거룩한 산 위에 세워진 그 터전, 주님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니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스러운 일들이 일컬어지는구나. ━ 《시편》 87장 1~3절

하느님이 다스린다고 말하는 것이니까 경세론이다. 하느님이 다스리는 세상. 하느님이 다스린다고 말하니까 200페이지를 보면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는 희랍어가 있는데 흔히 경제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만 섭리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코노미칼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경제학적이다라고 말하면 안되고 섭리적이다 또는 경세론적이다라고 번역을 하는 적이 적절하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나라가 진짜이고 지상의 나라는 진짜가 아니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은 기억해두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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