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18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13강

❧ 로마 제국의 성립과 ‘중세화’
“넓은 제국은 군대로써 지키지만, 계속되는 영토 확장으로 인해 ‘테크놀러지’(네크워크)의 한계에 직면하면 통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콘스탄티누스의 제국 분할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으나 제국에 대한 신민들의 충성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2021.09.18 역사 고전 강의 — 18

오늘은 《역사고전강의》 제13강을 읽는다. 제13강은 로마공화정이 로마제국으로 변화되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앞서 《로마공화정》이라는 책을 소개한 바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로 크리스토퍼 켈리의 《로마제국》이 출간되어 있다. 제1장 정복, 제2장 황제의 권력, 제3장 공모, 제4장 역사 전쟁, 제5장 사자에게 던져진 기독교도들, 제6장 로마인의 삶과 죽음, 제7장 다시 찾은 로마 이렇게 7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로마제국에 위대하다는 말을 쓰면 안된다. 서문에 "로마제국은 놀란만한 업적이었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 이런 식의 표현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제국을 건설한 것이 놀랄만한 업적인가. 가치있는 일인가. 역사 속에서 자꾸 땅을 넓히고 사람을 죽여가면서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일들이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과연 역사철학 연구자로서 좋은 태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런 문장들에서 습관적으로 얘기하는데 그리 좋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은《로마공화정》에 비해서는 밀도가 조금 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한권으로 로마제국 전체를 살펴보기에는 이 책만한 것이 없다. 

제13강은 "넓은 제국은 군대로써 지키지만, 계속되는 영토 확장으로 인해 ‘테크놀러지’(네크워크)의 한계에 직면하면 통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콘스탄티누스의 제국 분할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으나 제국에 대한 신민들의 충성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순전히 통치라고 하는, 권력론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정치사상은 권력론, 정의론, 국제관계론으로 나뉘는데, 그냥 권력론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콘스탄티누스는 상당히 탁월한 즉 권력을 유지하고 또 제국을 통치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굉장히 탁월한 사람이다. 과연 그 사람이 얼마나 올바름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는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권력론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굉장히 로마제국을 생명선을 연장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순전히 역사 그 자체, 히스토리컬 팩트만 가지고 공부를 한다고 하면 로마제국을 공부하는 것이든 로마공화정을 공부하는 것이든 차이가 없겠지만 역사로부터 뭔가를 이끌어내고 싶고 역사를 통해서 고루하지만 어떤 교훈을 얻고 싶고 또는 흥망성쇠에 대해서 깊이 있는 성찰을 하고 싶다면 당연히 로마공화정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제13강 177 넓은 제국은 군대로써 지키지만, 계속되는 영토 확장으로 인해 ‘테크놀러지’(네크워크)의 한계에 직면하면 통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콘스탄티누스의 제국 분할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었으나 제국에 대한 신민들의 충성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를 가리키는 말로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있다. 널리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ica',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같은 말이 있다. 그런데 팍스 브리타니카, 팍스 아메리카나 이런 표현들은 모두 다 긍정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힘에 의한 평화를 또는 다른 나라의 굴복을 강요했던 것이고 그런 가운데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표현을 '흔히 말하는' 전성기로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다. 로마공화정과는 다른 시기인데 팍스 로마나 시기를 지나면 군인 황제 시대이며, 그에 이어서 중요한 시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역시 군인황제 중의 한 사람이다. "팍스 로마나는 옥타비아누스가 '존엄한 자', 즉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원로원으로부터 받은 서기전 27년부터 ━ 이런 까닭에 팍스 로마나를 '팍스 아우구스타Pax Augusta'라고도 합니다 ━이른바 오현제 시대가 끝나는 서기 180년까지를 가리킵니다." 대체로 200년쯤 되겠다. 한 왕조가 지속되는 연대가 길어봐야 200~300년 정도이다. 조선도 마찬가지이다. 조선도 1392년 조선건국, 1592년 임진왜란, 200년이다. 그런데 조선이 1592년 이후에도 멸망하지 않고 500년을 간 것은 세계사에서도 유래없이 오래 지속된 왕조라고 할 수 있다. 그 왕조가 물론 건강했는가, 그 왕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했는가는 차치하고라도 왕조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여러가지 필연적인 우연적인 요소가 겹치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 근세사를 할 때 임진왜란이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만을 원인으로 삼지 않고 어떻게 해서 조선 침공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볼때, 어쨌든 이런 것들을 다 이겨냈던 나라가 조선이라는 나라이다. 

제13강 177 이때부터 로마는 흔히 말하는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이 시기를 가리키는 말로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있습니다. 이 말에서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ica',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팍스 로마나 시기를 지나면 군인 황제 시대이며, 그에 이어서 중요한 시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입니다.

제13강 177 팍스 로마나는 옥타비아누스가 '존엄한 자', 즉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원로원으로부터 받은 서기전 27년부터 ━ 이런 까닭에 팍스 로마나를 '팍스 아우구스타Pax Augusta'라고도 합니다 ━이른바 오현제 시대가 끝나는 서기 180년까지를 가리킵니다.

오현제 시대라고 하면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 시기의 다섯 황제, 모두 혈연 관계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로마 황제들은 아들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드물다. 군인황제 시대는 당연히 싸움 잘하는 사람이 황제가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팍스 로마나는 로마에 의한 평화라는 뜻인데 로마의 군사력에 의한 평화, 식민지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유지되는 체제이다. 트라야누스 황제 때 최대의 영토를 확보했고 이 국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팍스 로마나이다. 그리고 로마가 식민지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유지되었다고 해도 식민지 지배가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가 21년 카라칼라 황제인데, 이때쯤이면 로마라고 하는 땅덩어리 안에, 또는 국가라고 하는 것 안에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로마가 보여주는 통치자의 측면에서ㅡ 통치 권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나라가 유지하는가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로마에서 배울 점들이 몇 가지 생겨난다. 그 첫째가 만민법이다. 로마 시민권과 만민법, 그리고 중앙 정부의 성립, 조세 기구의 확립, 직업 군대의 운용 이게 로마라고 하는 제국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이다. 로마제국에서 간과하는 지점들이 있는데, 트라야누스, 하드리누스 이런 사람들은 이베리아 반도 출신이다. 오늘날 에스파냐 지역의 출신이다. 이런 사람들이 황제가 될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로마의 위대한 점의 출발점이다. 제국이 유지되려면 순혈주의만 가지고는 제국이 유지될 수 없다. 

제13강 178 팍스 로마나는 '로마에 의한 평화'라는 뜻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로마의 군사력에 의한 평화', 즉 식민지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유지되는 체제입니다. 로마는 트라야누스 황제 때 최대의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이 국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팍스 로마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는 이 넓은 영토를 통치할 테크놀로지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로마 통치의 근간이 되는 테크놀로지(네트워크)는 '로마 가도'였지만, 이것의 물리적 한계는 영토 확장과 비례해서 차츰 뚜렸해졌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권력론의 측면에서 탁월한 사람이다. 제국 통치의 효율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설정하고 새로운 원로원을 설치한다, 그리고 제국의 원로원을 동서로 나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서로마제국이라는 나라가 멸망한 것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기독교를 원인으로 거론한 점이 있는데 사실은 로마공화정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듯이 기독교보다는 보수적 지주들의 탓이 크다. 꼭 신경써서 봐야한다. 땅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이게 로마공화정을 쇠락하게 한 원인이기도 한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서로마제국까지 계속 이어져왔던 것이다. 그리고 동로마제국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갈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은 또한 비잔티움 제국에서의 기독교의 역할도 있었지만 관료제도가 뚜렷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로마제국의 원로원은 말이 원로원이지 출신이 관료이다 보니 거의 근대적인 의미의 관료 집단을 이루었습니다." 원로원 체제를 개편한 콘스탄티누스는 이어저 군대 체제를 바꾸어 기병대와 변경수비대로 나눈 것이고 이때 변경수비대에 게르만 용병이 고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14강에서 살펴볼텐데 게르만 용병들이 어느 날 갑자기 로마제국에 침입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로마화된 게르만인들이다. 이들이 로마제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이렇게 혁신을 거듭했다고는 해도 이른바 로마의 중세화까지는 막지 못했다. 로마제국은 대토지소유가 늘어나고 당연히 그 사람들은 세금을 잘 내지 않으려고 하고 또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지면서 제국을 유지하던 핵심적인 요소인 군대가 약해지고 그러다보니 국경방어가 힘들어진다. 그러면 변경수비대인 게르만 용병들을 고용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변경에서는 나라에서 그 사람들을 돌봐주지 못하니까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의 보호 아래 그 지역에 있던 농민들이 들어가게 되면서 그 안에 자체 작업장, 자체 군대, 자체 재정기구를 갖춘 독립적인 집단이 발달하게 된다. 그게 바로 5세기 서로마제국의 몰락 과정에서 생겨나게 된다. '중세화'라는 표현은 여러 시대에 걸쳐서 나타난 이런 현상들은 전형적으로 표현하는데 우리가 적용할 수 있다.

제13강 180 로마는 이 넓은 영토를 통치할 테크놀로지를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로마 통치의 근간이 되는 테크놀로지(네트워크)는 '로마 가도'였지만, 이것의 물리적 한계는 영토 확장과 비례해서 차츰 뚜렸해졌습니다.

제13강 180 이러한 현실에 직면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 통치의 효율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설정하고 새로운 원로원을 설치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제13강 180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으로 기독교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동로마제국이 오랫동안 지속된 점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것은 기독교보다는 보수적 지주들의 탓이 더 크다고 할 것입니다. 동로마제국의 원로원은 말이 원로원이지 출신이 관료이다 보니 거의 근대적인 의미의 관료 집단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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