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17 / 제12강(2)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12강(2)

❧ 원정기의 주요 내용
- 갈리아 지역의 인구학적 구성
- 카이사르의 10군단
- 로마 군대의 구성과 전투 방식: ‘비인간 행위자’(non-human actor)의 중요성


❧ 식민지배의 전형적 방식
- 정복지 주민 처리
- 살육과 노예화에 의한 “평화”

 

2021.09.14 역사 고전 강의 — 17

지난 번에 《갈리아 원정기》가 가지고 있는 넓은 의미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commentarius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로마화 romanize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른바 투철한 문체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인구집단이 농경지역에서 모여살게 되고, 인구가 늘어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이 먹어야 하는 식량의 요구가 늘어난다. 그러면 자원 생산기반, 즉 토지가 늘어나야 하니까 토지를 늘리기 위해서 정복전쟁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또 정복전쟁에 나서게 되면 그 땅을 관리하는 것이 사실은 만만치 않다. 그런 관리를 위해서는 로마제국도 기본적으로 농경제국인데, 농경제국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농경제국이 아무리 목축하는 지역과 복합체가 되고 또는 농경제국이 국제교역에 나서서 농업과 상업의 복합체가 된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테크놀로지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면 통치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 얘기를 13강에서 할 예정인데 이게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나라가 부강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과는 다르다. 역사를 볼 때 오늘날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과거 산업혁명 이전에 농경제국이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르다. 그럼 점에서 몽골은 조금 예외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한 비법이 있지 않나 해서 연구를 하는 것 같다. 오늘날 땅이 넓다고 해서 무조건 강대국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땅을 관리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해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를 읽을 때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면 로마가 포에니 전쟁을 통해서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로 만들었으니까 이제는 육지에 영토를 넓히는 것이 좋은게 아니냐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데, 땅이 넓어지고 바다가 넓어지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무조건 많은 것, 넓은 것, 그런게 그것이 정말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인지, 과연 그렇게 해서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인지, 그것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기술, 아주 넓은 의미에서 통치 기술, 그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아주 많다. 그래서 《갈리아 원정기》를 읽을 때 카이사르가 땅을 넓혔으니 잘했다는 단순한 생각만을 가지고 읽으면 안된다. 역사는 지리적인 여건, 기후적인 요소들, 그 다음에 그 위에서 사람들이 움직여가는 행태들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또는 여러가지 층차에서 골고루 종합해서 이해하는 종합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갈리아 원정기》의 제1권을 펴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탐구의 순서를 알려 준다. 먼저 갈리아의 지리와 인종, 즉 인구학적 구성을 서술한다. 어느 지역을 볼 때는 인구학적 구성부터 봐야한다. 여기서 인종이라는 것은 종족이다. 지리와 종족구성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먼저 해봐야할 일이다. 그것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 1권 1절에 나와있다. "갈리아는 전체가 세 지역으로 나뉜다. 그중 한 지역에는 벨가이 족이, 다른 지역에는 아퀴타니 족이, 세 번째 지역에는 그들 자신의 말로는 켈타이 족이라 부르지만 우리말로는 갈리 족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책들은 서술 이유부터 이야기하는데, 갈리아 지역에 가서 식민지로 만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곧바로 주저없이 이 지역의 인구학적 구성과 지리적인 특징부터 이야기한다. 

제12강 164 카이사르의 서술 방식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종의 탐구 순서를 알려 줍니다. 카이사르는 먼저 갈리아의 지리와 인종, 즉 인구학적 구성을 서술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특정 지역을 탐구할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바로 이 인구학적 구성일 것입니다.

제12강 164 갈리아는 전체가 세 지역으로 나뉜다. 그중 한 지역에는 벨가이 족이, 다른 지역에는 아퀴타니 족이, 세 번째 지역에는 그들 자신의 말로는 켈타이 족이라 부르지만 우리말로는 갈리 족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살고 있다. ━ 《갈리아 원정기》, 1권 1절

무엇보다도 이것은 식민지를 만들어가는 군사작전이기 때문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여기서 군사적인 측면들, 카이사르가 군사를 어떻게 통솔했는가를 그 다음 순서로 봐야한다. 이 부분에 관한 얘기는 165~166페이지에 설명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제 카이사르가 어떻게 통솔했는가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은, 이때가 '일인자 시대'이다. 간단히 말하면 로마라는 나라의 국군을 가지고 움직이기 보다는 군벌, 그런 사람들이 득세하던 시대이니까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자기 휘하의 자기말만을 잘듣는 군대를 조직해서 그들을 어떻게 통솔하고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가를 《갈리아 원정기》를 읽을 때 주목해서 봐야하는 지점이다. 그게 바로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10군단이다. 이 부분을 왜 유심히 봐야하는가.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해야한다. 넓은 의미로 도구의 측면들인데 그런 도구의 측면들을 살펴봐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실행하는 문제이다. 치밀한 도구와 계획. 

그러면 세번째로 우리가 봐야할 것은 어떤 방식으로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에 임하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그게 바로 《갈리아 원정기》 2권 19절에 나온다. 로마의 군대의 특징은 바로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지를 구축하고 체계적인 전투를 하려면 직업적으로 훈련된 병사들이 있어야 한다. "갈리아 인이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이렇게 조직적으로 훈련된 로마 군대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로마 군대는 더러 패하는 일이 있다 해도 곧바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시스템을 갖춘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농경제국인데 이 정도의 시스템을 갖추려면 일년 내내 전쟁에 몰두하는 직업 군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면 농사는 누가 짓는가의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서 이제 땅을 넓히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고, 군대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민들을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틈이 없다. 그러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노예를 수입하여 경작을 하는데 그 경작지를 귀족들이 가지게 되고, 나라가 골병이 들기 시작하는 이런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로마가 군사 국가가 되었다는 것은 국가의 흥망이 군대의 훈련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군대를 끊임없이 훈련시키지 않으면 국가가 유지되지 않으며, 거의 모든 것이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체제가 된 것입니다." 이게 나중에 서로마제국 멸망에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로 작용하게 되는데, 서로마제국은 사실은 싸움 잘하는 사람이 황제가 되었다. 군인황제의 시대이다. 이른바 오현제 시대가 지나고 나면 아주 철저하게 군인황제 시대인데 따지고 보면 오현제 시대라고 해도 전쟁과는 무관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 오현제 중 한 사람이 명상록을 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도 당연히 전쟁, 전쟁이 심각한 문제였다. 어쨌든 《갈리아 원정기》 시대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것은 몰랐다. 자신의 파토스, 격정에 충실하게 움직여 갔더니 자기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되고 그 결과들이 역사를 움직여 간다. 미묘한 지점이 있다. 그래서 헤겔이 역사철학강의에서 세계사적 영웅이다, 이성의 계략이다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제12강 168 갈리아 인이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이렇게 조직적으로 훈련된 로마 군대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로마 군대는 더러 패하는 일이 있다 해도 곧바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시스템을 갖춘 것입니다.

제12강 169 로마가 군사 국가가 되었다는 것은 국가의 흥망이 군대의 훈련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군대를 끊임없이 훈련시키지 않으면 국가가 유지되지 않으며, 거의 모든 것이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체제가 된 것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로마군대가 싸움하는 장면이 169페이지에 있다. 이런 장면을 잘 봐야한다. 로마 군대가 어떻게 싸우는가는 동영상 자료가 많이 있다. 비인간행위자,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축으로 도구, 그리고 카를로 치폴라가 쓴 《대포, 범선, 제국》, 이 책은 꼭 읽어봐야한다. 그 다음 171페이지를 보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정복지 주민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했는지 나온다. 첫째, 바로 항복한 주민은 모두 살려주고 말 잘 듣는 지도자에게 율리우스(씨족)라는 성을 내려 주었다. 둘째, 뒤늦게 항복한 주민은 노예로 만들었다. 그리고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주민은 처형하였다. 이것이 로마나이즈 과정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하나의 사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명한 베르킹게토릭스는 로마로 압송되어 처형당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 175페이지를 보면 "카이사르는 아이두이 족과 아르베니 족을 각별히 챙겼습니다. 이것은 카이사르의 식민지 지배 전략이었습니다." 소수민족을 통치자로 삼는 것, 이 방법은 정말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서도 그런 것을 알 수 있었다.

제12강 171 카이사르는 정복지 주민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으로 처리했습니다. 첫째, 바로 항복한 주민은 모두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말 잘 듣는 지도자에게 율리우스(씨족)라는 성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것도 로마화의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둘째, 뒤늦게 항복한 주민은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위 인용문에서 "매입자"는 노예 상인을 가리킵니다. 셋째,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주민은 처형하였습니다. 로마 군대가 움직이면 노예 상인, 매춘부, 대장장이 등이 따라다녔습니다. 오늘날 전쟁 지역에서 민간업자가 활동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입니다.

제12강 175 카이사르는 아이두이 족과 아르베니 족을 각별히 챙겼습니다. 이것은 카이사르의 식민지 지배 전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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