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철학 고전 강의 — 27
- 강의노트/라티오의 책들 2021-24
- 2021. 10. 25.
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철학 고전 강의 -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 제32강
❧ 판단력
하위에 있는 종을 상위의 유와 결합시키는 힘
미감적 판단력이나 도덕적 판단력에 관해서는 논리적 필연성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논박을 할 수 없고, 논쟁만 가능하다.
❧ 도덕감정
세련, 도덕감 등의 개념을 아담 스미스가 ‘도덕 감정’(Moral Sentments)으로 집약
자연 현상과 사회 현상을 통합하는 학문을 정립
공감(sympathy), 공통감각(Sensus communis), 상상력(imagination), 구상력(Einbildungskraft) 등의 개념이 활용
이후 칸트에 와서 자연과 자유의 영역을 종합하는 미감적 판단력과 목적론적 판단력으로 정리
2021.05.04 철학 고전 강의 — 27
오늘은 ⟪철학 고전 강의⟫ 제32강 판단력의 연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의 제목에서 판단력이라는 개념이 어떤 것인가. 칸트가 창안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선행하는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이 내놓은 것들을 잘 가다듬어서 거기에 새로운 규정을 덧붙여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은 일상어에서 그런 식으로 가기도 하는데 그렇 경우가 더 많다. 철학이라고 하는 학문 자체가 순순하게 방구석에 앉아 세상에 교류하지 않고 하는 학문이 아니고 좀 넓게 말할 때 사상이라고 한다면 시대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들어가게 되면 시대문제를 직면해서 그것에 대해서 깊이 궁리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들어가면 대개 사상이라고 한다. 사상이라고 말하면 시대배경이 있다, 철학이라고 말하면 시대와는 무관하게 책만 읽어서 한다고 거칠게 구별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는 다른 사람의 책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말이 나온 시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사실 철학이라고 하는 것도 사상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칸트의 판단력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판단력이라고 하면 판단하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우리말로 번역된 단어만 분석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Urteilskraft에서 Urteil이 독일어로 판단인데 판단이라는 것을 우리말로 옮겨버리면 우리는 판단한다고 하면 딱 잘라서 말해버린다는 것이 강하다. 그것보다는 칸트가 내놓은 규정처럼 '특수들을 비교하여 그것들을 포섭하는 보편을 상정하고 연결시키는 힘'이다. 간단히 말하면 바나나, 딸기, 토마토는 식물이다. 그러면 식물은 상위에 있는 일종의 유이고, 그 아래는 종이다. 종류에 속한다고 할 때 종류는 종과 유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 있는 것과 위에 있는 것을 연결시키는 것 이것이 판단력이다. 따라서 판단력은 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사람들이 살다보니 이렇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을 보면 어떤 경우에는 같이 속할 수도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일단 분류에서 뺄 수도 있다. 책이라는 것이 놓여있는데 책이 처음부터 출간할 때부터 이 책은 절대로 반드시 이런 분류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나온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단테신곡강의, 세계종교사 책이 있다. 다 책이라고 분류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단테신곡강의는 일본어로 된 책이니 일본어 책, 세계종교사는 번역된 책, 이렇게 책 바깥에서 책들에게 분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면 책은 그 분류에 따라서 여기에 속하기도 하고 저기에 속하기도 한다. 다시말해서 어떤 종류에 속하는지, 즉 어떤 유에 속하는지는 어떤 보편 아래로 그 특수가 포섭되는지는 보편이라고 하는 것이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특수의 의지에 따라서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개입된 보편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단테신곡강의, 세계종교사, 마르틴루터의 신학이 있는데 세계종교사, 마르틴루터의 신학은 번역본, 단테신곡강의는 일본어 원서 이렇게 분류하고, 왜 이렇게 분류했는가 하면 원서와 번역본을 구별하기 위해서, 보편이라고 하는 것을 목적이라고 한다면, 목적이 개입된다. 목적, 즉 의도가 달라지면 세계종교사, 마르틴루터의 신학을 하나로 묶지 않고 세계종교사와 단테신곡강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종교일반에 대한 것을 설명하는 책들과 좀 더 세부적인 것을 설명하는 책으로 묶을 수도 있다. 다시말해서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각각의 사물들은 또는 자연사물들은, 책들은 모두 각각 다르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분류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에 포섭되는 상위의 유가, 즉 보편이 달라진다. 그것을 철학적인 용어로는 외적목적론이다, 외부에서 개입된 목적론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반드시 이 책은 여기에 속해야 한다라는 원래 최초의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된 것이다. 그것을 지금 외부에서 개입된 목적을 만들어 내는 것을 칸트에서는 판단력이라고 말한다.
제32강 349 판단력(Urteilskraft)은 '특수들을 비교하여 그것들을 포섭하는 보편을 상정하고 연결시키는 힘'입니다.
그런데 판단력이라고 하는 것은 각각의 특수한 사물들과 그것을 분류할 때 목적에 따라서 유로 포섭시킬 때 사용하는 보편의 관계는 필연적 관계가 아니니까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이다. 나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에 따라서 나뉜다. 그것을 칸트는 '취미' Geschmack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의 뜻과는 다르지만 번역어가 이렇게 통용된다. 또는 책을 분류할 때 사람들마다 '일급의 학자'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럴 때는 '취향'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취향이나 분류기준은 살아오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마르틴 헹엘과 토니 주트을 같이 일급이라고 놓을 수 있나고 할 때 누군가 그 둘 다 일급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면, 틀렸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건 나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르다라는 말을 쓰는 자리와 틀렸다라는 말을 쓰는 자리가 '구분'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필연적인 세계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우리가 '논박'한다고 하는 것이고, 취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논쟁'이다. 이런 것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어떤 미적인 감각과 또는 개인의 쓸모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이 바로 취미 판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조금 확장을 해보면 나쁘다, 옳다, 그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도덕판단이다. 상종 못할 인간 또는 상종할 수 인간 이런 감각이라는 것이 사실은 미적인 감각과는 비슷한 데가 있다. 칸트는 그래서 미적감각과 도적감각이 그런 판단력 아래서 작동한다고 본다.
제32강 356 판단력, 취미, 상상력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따져서 논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그것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반박이나 논박하는 것(disputieren)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논쟁(Streiten)일뿐입니다.
미적 감각, 역사적 감각, 사회적 감각을 한마디로 말해서 공통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생활하면서 얻게 된 것. 이것을 칸트에서는 판단력이라는 말로 포괄한다. 그래서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는 미적인 판단, 그것이 취미판단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또 《판단력 비판》은 외적목적론에 대해서서 다룬다. 외부에서 보편이 주어진다.
제32강 355 아담 스미스 등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서는 '공통감'이 '공통감각'(Sensus communis)이라는 말로 되살아났습니다. 이것은 미적 감각과 역사적 사회적 감각으로 구성되는데, 아름다움과 좋음에 대한 공감을 가리킵니다. 달리 말할 때는 '취향', '취미'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그저 개인의 취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적절함이라고 해야 그 의미에 부합할 것입니다. 이 말을 독일어로 옮기면 공통감각(Gemeinsinn)이나 건전한 인간오성(gesunder Menschenverstand)입니다. 이러한 공통감각(또는 건건한 인간오성)에 의한 판단을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는 '취미판단'이라고 합니다.
판단력이라고 하는 것은 칸트의 독창적이라기 보다는 어디서 가져온 것이다. 최초의 개념을 사용한 철학자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일반적 철학계에서는 잉글랜드의 미학자 샤프츠베리가 쓴 세련이라는 개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또 세련이라는 개념을 스코틀랜드 사람 프란시스 허치슨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도덕에 적용하여 도덕감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아담 스미스에서 '도덕 감정'(Moral Sentments)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에서 도덕감각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도덕감정론》이나 《국부론》이나 여기에 칸트가 시도하는 판단력 비판에서 시도하는 자연세계와 도덕세계, 이 두개를 아우르는 일종의 자연과 자유의 통합의 시도들이 보인다. 그래서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공부하기 전에 《도덕감정론》, 《국부론》을 읽어봐야 한다. 그러면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공감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들어가서 나와 같은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 세계, 사회적 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갖게되는 공통적 생각 또는 굉장히 칼 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 포괄적이고 대충 만들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주변의 경계선이 뚜렷하진 않아도 융통성 있게 고려해 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것, 이것을 판단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판단력이라는 개념을 미적인 것 또는 취미에 관한 것, 도덕에 관한 것, 정치에 관한 것, 사회적인 사태 이런 것에 우리는 공통적을오 적용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서 까탈스럽게 논의해 본 책이 《판단력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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