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29 / 제20강(1)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20강(1)

❧ 인간이 만든 역사가 진리
“신의 섭리를 폐기하지는 못했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자각은 비코에서 뚜렷하게 그 원리를 드러낸다. 진리 역시 태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인간이 만든 역사가 진리인 것이다.”

❧ ‘팍툼factum’, ‘케르툼certum’, ‘베룸verum’
팍툼은 인간의 활동, 케르툼은 각 시대의 특징적인 면모, 베룸은 활동과 특징의 복합체
“진리는 만들어진 것Verum ipsum factum”

 

 

2021.10.30 역사 고전 강의 — 29

⟪역사 고전 강의⟫ 제20강에서 비코가 시도하고자 하는 또는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역사 고전 강의⟫에서 비코를 다룬 것이 《새로운 학문》 전체를 다룬 것은 아니다. 《새로운 학문》 텍스트 하나 하나를 모두 주해를 하면서 읽는 것은 말그대로 '새로운 학문 읽기'를 시도해야 가능하다. 그러면 왜 이것을 다루는가. ⟪역사 고전 강의⟫에서는 비코의 책이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점이 중요한가를 드러내 보여주고 그것이 이어지는 텍스트들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얘기하는 데에 있다. ⟪역사 고전 강의⟫는 사상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텍스트들, 특히 역사적 측면들을 다룬 텍스들이 앞뒤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런 것들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텍스트 하나 하나를 주해하지는 못했다. 

먼저 20강의 발문부터 설명하겠다. "신의 섭리를 폐기하지는 못했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자각은 비코에서 뚜렷하게 그 원리를 드러낸다. 진리 역시 태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인간이 만든 역사가 진리인 것이다." "신의 섭리를 폐기하지는 못했지만", 간단한 얘기는 아니다. 비코가 문명신학을 의도했다. 그리고 그 문명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역사철학이라고 불리는 영역과 가깝다. 철학이라는 말이 뒤에 붙어있으니까 철학은 순전히 인간이 하는 학문이다, 인간에 관한 학문이다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서양 사상에 있어서 신학과 철학, 특히 철학에서도 형이상학, 비코가 앞선 그림에서 여성이 형이상학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런 형이상학은 신학과 완전히 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비코는 기독교도이다. 비코는 신의 섭리를 폐기하지는 못했지만, 제일원리는 기독교 신학에 바탕에 두고 있다. 그렇다해도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자각, 이것이 중요하다. 비코의 시대에 신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신을 떨쳐버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가라고 해도 시대의 아들이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254페이지에서 정리하였듯이 오늘날로 치면 인문학, 아주 좁게 말하면 역사학을 정초하는 것, 근대적인 의미에서 역사학을 정초하는, 토대를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진리 역시 태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인간이 만든 역사가 진리인 것이다." 이런 생각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서 헬라스 세계에서 인간이 뭔가 활동을 하고, 그것이 헬라스적 인문주의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들은 끊임없이 신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신이 인간사회에 개입을 한다. 신이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아주 겸손한 태도일 수 있다. 신에게 그것을 투사한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냥 막연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신이 관장하는 영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자각은 바로 인간이 역사가 진리라는 생각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제20강 247 신의 섭리를 폐기하지는 못했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자각은 비코에서 뚜렷하게 그 원리를 드러낸다. 진리 역시 태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인간이 만든 역사가 진리인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하기 위해서 비코가 사용한 용어를 보겠다. ‘팍툼factum’, ‘케르툼certum’, ‘베룸verum’. 팍툼은 인간이 만든 역사를 가리킨다. 인간의 활동을 통해서 역사가 만들어지는데 어떤 시대나 똑같지는 않다. 그런 것을 잘 보여주는, 문화의 측면에서 잘 보여주는 것이 부르크하르트의 세계사적 고찰(《세계 역사의 관찰》), 이 책은 비코와 무관하지 않다. 비코가 세워놓은 전통 위에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역사가들도 그렇다. 비코가 얼마나 강력한, 역사를 파악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만들어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세계사적 고찰이라고 하는 부르크하르트의 통찰들이 구체적인 작업의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이 책에서 부르크하르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이러저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들이 바로 비코 용어로 말하면 ‘케르툼certum’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라는 역사적인 사태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신이 개입되어 만든 것이 아니다. 성서 이런 것과는 다른 종류의 문헌이다.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려 온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이다. 그러면 그것은 ‘팍툼factum’이 아니다. 인공물로서의 국가라고 하는 것이 케르툼이다. 그리고 그 케르툼을 보면 그 시대가 신의 시대인지 영웅이 주인공인 시대인지 보통사사람들이 주인공인 시대인지 알 수 있다. 베룸은 팍툼이 케르툼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베룸은 팍툼과 케르툼의 상위에 있는 것이다. 베룸이라고 하는 말은 진리라는 뜻이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팍툼과 케르툼의 복합체이다. 팍툼은 인간의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고, 인간의 활동에서도 특징적인 면모가 케르툼이니까 일종의 케르툼이라고 하는 것은 팍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비코의 사상을 “진리는 만들어진 것Verum ipsum factum”이라고 한다. factum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Verum ipsum factum라는 말은 비코의 역사철학을 가리킬 때 아주 격언처럼 쓰이는 말이다. 이것만 기억하면 안되고 케르툼이라는 말도 반드시 함께 기억해야 한다. 팍툼과 케르툼의 복합체로서의 진리(베룸). 인간의 활동과 그 활동의 특진적인 면모들을 합하면 베룸이다. 팍툼은 그냥 행위를 기록하면 팍툼이다. 그런데 케르툼은 일종의 추상적인 사유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케르툼은 추상적 사유의 산물이다. 케르툼은 어떻게 보면 철학이 관여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활동을 그냥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팍툼이라고 국한한다면 팍툼은 역사고, 케르툼은 추상적 사유의 산물이다. 그래서 인간활동의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그 역사에 대한 추상적 사유로서의 철학이 기록되면 베룸, 즉 진리가 된다. 그러면 여기서 역사철학이라는 말이 있는데, 단순히 역사와 철학을 그냥 단순 총합한 것이 아니라 비코의 역사철학은 베룸과 케르툼의 총체성Totalität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제20강 247 비코의 사상에서는 ‘팍툼factum’, ‘케르툼certum’, ‘베룸verum’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팍툼은 인간이 만든 역사를 가리킵니다. 비코의 역사관에 따르면 역사의 주인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활동을 통해서 역사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케르툼은 이처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각 시대의 특징적인 면모를 가리킵니다. 이 케르툼을 통해 지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신, 영웅, 인간 중 누구의 시대인지가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베룸은 팍툼이 케르툼으로 드러나는 것 ━ 우리의 활동을 통해서 하나의 특징적인 시대가 만들어진다는 것 ━ 전체를 가리킵니다. 베룸은 팍툼과 케르툼의 상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태초부터 그냥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비코의 사상에서는 "진리는 만들어진 것Verum ipsum factum"이라는 말이 기본적인 원리가 됩니다. 

베룸은 팍툼과 케르툼의 상위에 있다, 다시말해서 진리는 역사와 철학의 (이 말은 안쓰고 싶은데) 변증법적으로 통일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활동을 하면서도 잠깐 잠깐씩 멈추어 서서 이 활동이 가지고 있는 원리가 무엇인가, 즉 특징적인 면모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케르툼이다. 그리고 그런 연대적인 또는 시간순서에 따른 사실 기록들과 그것에 대한 추상적인 통찰인 케르툼 이것을 다 알고 있어야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코의 역사철학은 정말 새로운 학문이다. 철학이 가진 한계,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역사적 국면에서 과연 이 철학적인 원리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을 늘 의문시해왔다. 그래서 역사책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추상적인 원리도 알아 둘 필요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추상적인 원리는 말그대로 추상적이기만 하기 때문에 그것만 알아서는 안되고 역사를 읽어야 한다. 역사와 철학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해서 안다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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