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철학 고전 강의 — 36

 

⟪철학 고전 강의 -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 제40강

정신현상학 서문의 내용
1. “진리의 권역은 개념이며 그것의 참된 형태는 학적 체계이다”부터 “절대자는 주체이다, 그리고 이 주체는 무엇인가”

2. 절대자에 관한 “앎의 권역”과 “그러한 앎으로 올라섬이 정신현상학이다”
2.1 “표상된 것과 익숙한 것의 사상으로의 전환, 그리고 사상의 개념으로 전환”, “어느 정도까지 정신현상학은 부정적인 것 또는 거짓을 포함하는가”
2.2 “어느 정도까지 정신현상학은 부정적인 것 또는 거짓을 포함하는가”

3. 진리에 관한 논의들
3.1 “역사적 진리”, “수학적 진리”, “철학적 진리와 그 방법의 본성”
3.2 “도식화하는 형식주의”
3.3 “철학연구에서의 필요조건―논변적 사유의 부정적 태도, 그것의 긍정적 태도; 그것의 주제”

4. 철학에 관한 가장 흔한 태도 두 가지, 대중과 저자의 관계

 

2021.05.04 철학 고전 강의 — 36

⟪철학 고전 강의⟫ 제40강이다. 제40강은 헤겔 철학의 목적, 역사와 이념의 통일이다. 앞서 39강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헤겔 철학의 진리론, 진리주체론에 대해서 설명했다. 제40강은 《정신현상학》 서문 중 몇몇 단락을 읽어보는 것인데, 미리 애기하자면 《정신현상학》 서문이라고하는 이 문헌은 참 고통스러운 문헌이다. 여기서 진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를 함축적을 설명하고 있고, 똑같은 문장에 대해서도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굉장히 차이가 나오는 해석이 나올 정도로 문장이 난삽하다. 그리고 똑같은 단어인데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 경우가 있다. 하나의 단어 뜻을 정해놓고 쓴 것이 아니어서 읽다보면 제정신으로 썼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난해하다. 여러 번 읽어보고 번역을 해보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해보았는데 이럴 때마다 난감하다. 《정신현상학》 서문은 어떤 정도에 이른 사람이 자신이 진리의 기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를 상세히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본문은 38강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인간의 정신이 이런 저런 종류가 있다고 하는 것인데 서문과 본문이 내용과 초점이 많이 다르다. 왜냐하면 본문을 다 쓴 다음에 서문을 썼다. 

《정신현상학》 서문은 이 정도는 된 사람 또는 이 정도 수준을 갖춘 사람만이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아주 쉽겠다.  서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진리의 권역은 개념이며 그것의 참된 형태는 학적 체계이다”부터 “절대자는 주체이다, 그리고 이 주체는 무엇인가” 까지가 첫째 부분이다. 이 부분을 설명해보면 이 부분은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을 설명할 때 여러차례 말한 부분이다 진리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체계라고 하는 것은 감각적 앎부터 시작해서 절대적 진리 또는 신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규모있게 구축된 것, 이게 바로 진리의 권역, 영역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학문적인 체계를 갖추고서 절대자에 이른다. 그러면 그게 주체이다.  39강에서 진리주체론에 대해서 설명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내가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진리의 기준이야.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신이다. 다시말해서 “절대자는 주체이다, 그리고 이 주체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신이다.  신이 주체이다. 그러면 신학에 관한 책인가. 맞다. 신학에 관한 책인데 여러번 얘기했뜻이 헤겔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즉 신적인 입장에 올라설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여기서 “절대자는 주체이다” 이를 다르게 읽으며 절대적 존재가 된 인간이 주체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부분에 “앎의 권역 그러한 앎으로 올라섬이 정신현상학이다” 여기가 두번째 부분이다. 앎의 권역이라고 하는 것은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이다. 여기까지 가는 길이 《정신현상학》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면 사다리가 정신현상학이다.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곧바로 이렇게 철학적 앎으로 갈 수 없으니까 아무런 교양도 없는 청둥벌거숭이와 같은 인간 정신이 도대체 어떠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느 부분을 사용하면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이렇게 상세히 설명해두는것이 《정신현상학》이다. 정신 사용 설명서 또는 역사 속에서 정신이 사용된 사례들을 다룬 것이다. 그러니까 둘째 부분이 정신현상학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표상된 것과 익숙한 것의 사상으로의 전환, 그리고 사상의 개념으로 전환", "어느 정도까지 정신현상학은 부정적인 것 또는 거짓을 포함하는가" 이것이 둘째 부분의 두번째 묶음이다.  그래서 인간 정신에 다루는데 《정신현상학》 본문이 38강 설명하면서 정신의 여러 종류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을 서문의 둘째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둘째 부분의 세번째 부분(2-3)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것들이 뭐냐 하는 것들, 2-4는 《정신현상학》은 거짓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참과 거짓을 다룬다. 그 다음 서문의 셋째 부분에서는 진리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를 다룬다. 그런데 진리라고 하는 것이 성격이,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과연 이런 것들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겹치는 부분이 있고 이런 것들을 다루는 것이 서문의 셋째 부분이다. 진리주체론이라고 하는 것에서 하위로 다루어지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문 마지막 부분에서는 세상사람들이 철학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철학에 관한 가장 흔한 태도를 두 가지 얘기하고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대중과 철학책 저자의 관계에 대해서 다룬다. 우리 식으로 쉽게 얘기하면 내 책 읽고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다라는 얘기를 해놨다. 《정신현상학》 서문은 40강에 설명을 해놓기는 했는데 이것을 읽고 독자들이 다 이해를 했다고 한다면 설명을 엄청을 잘한 것이고, 달리말하면 헤겔을 잘못 이해해서 제멋대로 독자들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다보니 너무 제멋대로 쓴 것일수도 있다. 잘 이해되지 않았다고 해서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면 되겠다.

'마지막 시간'이 다섯페이지 정도이다. ⟪철학 고전 강의⟫ 이전에도 책을 쓰기도 했는데 책 제목에 철학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리고 철학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책을 쓴다면 반드시 형이상학을 다룬 책을 써야겠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철학과에서 전공을 분류할 때 다루고 있는 영역에 따라 인식론,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이런 식으로 분류한다. 본인은 형이상학이 전공이고, 형이상학 아래 플라톤 형이상학, 헤겔 형이상학 이렇게 하는데 억울하게도 나중의 철학자를 형이상학을 전공할수록 선행하는 철학자들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철학은 누적적 학문이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대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형이상학이라는 기본 학문 위에 구체적인 세부분야로는 역사 형이상학, 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규범성이 있다. 그 규범이라는 것이 있어야 제도도 움직여간다. 그런 사회 속의 규범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다루는 것이 사회철학인데, 사회 형이상학을 세부전공으로 가진다.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놓여있는 것은 그럼 무엇인가, 철학이라는 것을 도대체 왜 공부하는가. 지금 내가 옳다고 여기고 있는 것, 또는 틀림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과연 그러한가에 대해서 한번 되짚어 보는 것, 이것이 일단 철학이다. 철학자들은 그런 지점에서 우리의 뒤통수를 때리는 지점이 있다. 마지막 시간에 써놓은 것처럼 '근본에서 의심하기'이다. 의심하는 사유, 의심하는 사유가 남아 있다는 것이 철학 고전 읽기가 가져다준 소극적인 각성이라면, 맨날 의심만 하면 안된다. 그러면 사람이 자괴감에 빠지고 자멸하게 된다. 이렇게 의심하는 나도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갖고 우리의 사유의 대상으로 무엇을 삼을 것인가. 무한자이다. 무한자에 가닿으려는 이 유한한 인간의 사유의 힘, 그게 바로 형이상학이다. 사주명리학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주명리학을 왜 보는가. 사주는 우리의 생년월일 생시를 가지고 본다. 그런데 50살 먹은 사람이 사주를 본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사람의 50년 전에 정해진 생년월일 생시를 가지고 지금 50살가지가 어떻게 되는지를 맞춰보겠다는 것이다. 사주명리학에 밑바닥에 놓여있는 숨어있는 가정이 무엇인가. 인간은 생년월일 생시를 가지고 태어난 것을 죽을 때까지 유지한다는 것인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안변한다는 것이다. 사주명리학의 숨어있는 전제는 인간은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인간이 한 살에서 열 살 사이에 A라는 성품을 가지고 살고, 12살쯤에 변해서 전혀 다른 Z라는 꼴을 갖춰서 살고, 20,30대는 또 변해서 F라는 모습으로 살고 그러면 사주명리학은 무너진다. 우리는 쉽게 인간은 안변다고 말한다. 왜냐, 안변하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이다. 그런데 철학은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의심을 해야 하는다. 지금 내가 정말 틀림 없는가. 그러다보면 철학 공부를 계속 하면 사주에 따라서 안살게 된다. 결국 철학 공부를 해서 우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타고난 대로 살지 않는 것, 사주대로 살지 않는 것, 이게 철학 공부의 목표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 시간 455 인간은 앞으로도 변화된 상황 속에서 또 다른 문제들에 직면할 것이고, 그럴 때면 다시금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역사를 되짚어보아야 할 것이니, '근본에서 의심하기'라는 철학적 사색 본래의 요구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탐구 대상이 모두 다 사라져버릴지라도 철학에게는 바로 그러한 '의심'은 남아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간 455 의심하는 사유가 남아 있다는 것이 철학 고전 읽기가 가져다준 소극적인 각성이라면, 형이상학적 사유를 통하여 무한자와 유한자에 관하여 사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적극적인 성취라 하겠습니다.

마지막 시간 456 불행한 의식을 가진 인간은 불행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한한 것에 이르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에 이르지 못함을 한탄하는 존재입니다. 착하게 살고 싶지만 끊임없이 악한 일을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날마다 잘못을 저지르고 날마다 반성하면서 일상을 쌓아올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그러한 반성마저 없으면 인간은 악마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반성을 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은 인간 내면에 있는 무한자에 대한 갈망에서 생겨날 것입니다. 이러한 갈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철학함을 실천하는 인간이요, 진정한 교양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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