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37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22강(4)

❧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의 주권체 이론
⟪리바이어던, 또는 교회 공화국과 시민 공화국의 재료, 형태, 그리고 권력⟫에 담긴 근대적, 자연과학적 주권체 논변

 

 

2021.11.27 역사 고전 강의 — 37

⟪역사 고전 강의⟫ 제22강 네번째이다. 중요하니까 그만큼, 고대세계에 대해서 길게 말하는 것보다도 근대세계에 대해서 길게 말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만들어 놓은, '시대를 만든 시대'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정치와 어떻게 관련되어 들어가는가 부분들은 잘 살펴봐야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정보통신과학기술부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홉스가 살았던 시기인 1650년대 17세기만 해도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은 275페이지부터 읽는다.

"과학적 이념이 당대 유럽 인에게 어떻게 작동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표지 그림을 살펴봅시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표지 그림을 제대로 읽으면 《리바이어던》이 제시하는 원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홉스는 이 그림을 통해서 앞서 말한 근본 범주, 이론적 체계, 자연-인간-인간조직에 관해 새로운 이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그 다음에 바로 나온다. "그는 이 요소들을 자연과학에서 이끌어 낸 하나의 원리로써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저작들은 일관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있는 《물체론》, 《인간론》, 《리바이어던》 이런 책들이 하나의 원리로 설명되고 있는데, "자연과학에서 이끌어 낸 하나의 원리", 자연과학에서 이끌어 원리이기는 한데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을 보고 홉스가 이것을 일관성 있게 적용해서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주의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것에 적당한 용어가 하나 있는데 '유물론적 형이상학'이라고 말한다. 유물론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르크스주의 유물론, 유물론적 변증법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텐데 본래의 유물론Materialism이라는 말은 과학과학으로 파악할 수 있는 물질세계를 그 어떤 다른 것보다도 더 근본적인 원리라고 생각하는 것, 물질세계가 근본이 된다고 생각하는 태도, 그게 바로 유물론이다. 유물론의 시작은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신플라톤주의 같은 사람들이 배척한 것이 유물론이다. 인간은 육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정신이 있고, 그 정신과 아래를 연결하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고, 우리 인간의 육체가 있는 3단계가 있다. 그런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의 영혼이다.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신적인 정신을 알아차린 사람, 그런 사람들을 sophos 현자, 지혜로운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이끈다고 할때 마스터들이다. 그런데 이때쯤 오면 그게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이든, 인간 조직이든 모두다 물질적인 것들이 원리가 되어 사람들을 움직여간다고 하는 것이 형이상학적 유물론 또는 유물론적 형이상학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유물론은, 물질이 자연적인 물질이 아니라 인간이 경제활동을 통해서 생산한 재화, 이것을 물질이라고 부른다. 마르크스 당시에는 서비스 산업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니까 대부분의 것을 경제적인 것, 물질적인 재화만을 가리켰다. 그런 것을 중요하다고 여기고 사는 것을 물신숭배라고 말한다. 그냥 유물론Materialism이다, 물질주의다 하는 것은 일단 두 종류가 있다고 보면 된다. 앞에 있는 것, 즉 형이상학적 유물론이 하나 있고,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은 경제학적 유물론이라고 하면 되겠다. "자연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는 《물체론De Corpore》(1655), 인간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는 《인간론De Homine》(1658), 인간들의 사회적 조직에 관한 《리바이어던》(1651)", 그런데 《리바이어던》은 폭이 좀 넓다. 사회조직만 다룬 것이 아니라, 사실 홉스의 3부작은 《물체론》, 《인간론》, 《시민론》이고 《리바이어던》은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리바이어던》 뒤쪽을 보면 기독교가 얼마나 사람들을 암울하게 하고 힘들게 했는가의 내용도 담겨 있다. 인간을 이렇게까지 비하해서 말할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홉스도 과연 이 부분을 과연 믿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학문적인 저작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원리를 세우면 그것을 가지고 끝까지 가보는 전형적인 텍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

제22강 275 과학적 이념이 당대 유럽 인에게 어떻게 작동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표지 그림을 살펴봅시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표지 그림을 제대로 읽으면 《리바이어던》이 제시하는 원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홉스는 이 그림을 통해서 앞서 말한 근본 범주, 이론적 체계, 자연-인간-인간조직에 관해 새로운 이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 요소들을 자연과학에서 이끌어 낸 하나의 원리로써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저작들은 일관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연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는 《물체론De Corpore》(1655), 인간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는 《인간론De Homine》(1658), 인간들의 사회적 조직에 관한 《리바이어던》(1651) 모두에는 자연과학에서 이끌어 낸 하나의 원리가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홉스는 17세기를 대표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리바이어던》의 표지 그림 맨 위를 보면 라틴 어 문장이 있는데 《구약성서》 <욥기> 41장 25절의 구절입니다." "땅 위에 그와 같은 것이 없으니 그것은 무서움을 모르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왕을 가리키는 것이다. 왕이라고 하면 한 사람의 인간을 생각하면 안되고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 땅위에서 거의 신과 다름없는, 신을 닮은, 신을 닮기는 했는데 신은 불멸의 존재지만 불멸은 아닌, 불멸이라는 것만 빼면 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 사람을 생각하면 안되고, 주권체이다. 주권을 가진 하나의 덩어리. 주권체라는 개념이 이때부터 생겨난다. 주식회사를 생각하면 된다. 회사 생활을 한다고 하면 회사를 위해서 일을 한다. 그런데 그 회사는 이사회가 결정하고, 회사의 존폐와 흥망을 좌지우지하는 그 위력, virtually의 뜻은 첫째 뜻은 가상의, 실제가 아닌,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힘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라는 뜻도 있다. virtually한 파워를 가리키는 것이 왕이다. 그러니까 이때는 국가가 주권체일수도 있고, 예를 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주권체는 국민에게 있는데, 내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주권체를 무력을 가지고 뒤집어 엎어서 자기가 좌지우지하겠다고 하면 주권침탈이 되는 것이다. 헌법에 어떤 정해진 절차가 아닌 불법의 방법으로 주권을 침탈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쿠데타라고 한다. 

"그의 몸은 그가 다스리는 사람들로 덮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권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주권체라는 집단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시민이건 신민이건 간에 어쨌든 주권체를 구성하고 있다. "오른손은 칼을 쥐고 있고 왼손은 종교 지도자가 사용하는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칼은 인민의 주권을 왕이 구현한다는 뜻이고, 지팡이는 왕에게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집중된다는 뜻입니다." 종교권력까지도 국가가 쥐고 있어야 한다는, 국가교회 개념이다. 토마스 홉스가 내놓은 국가 교회, 이런 개념들도 주목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도시가 보이는데,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있다. 자연, 산, 들, 교회, 관공서 등이 모여서 "리바이어던 왕국을 이루는데 이것을 정치제Body Politic"이라고 한다. 이 문단은 근대 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설명이다. 내 몸뚱아리는 자연적인 몸뚱아리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내 몸은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의 몸뚱아리이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민의 권리 또는 의무, 이런 것 들을 내 몸에 담고 있다. 그러면 강유원은 두 개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two bodies of king이라는 이론인데 현대 국가의 시민들에게는 다 있다. 자연인으로서의 강유원이 있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이 바로 두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제22강 275 《리바이어던》의 표지 그림 맨 위를 보면 라틴 어 문장이 있는데 《구약성서》 <욥기> 41장 25절의 구절입니다. "땅 위에 그와 같은 것이 없으니 그것은 무서움을 모르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이 말은 그림 속 왕이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표지 가운데에 있는 왕의 모습을 봅시다. 그의 몸은 그가 다스리는 사람들로 덮여 있습니다. 오른손은 칼을 쥐고 있고 왼손은 종교 지도자가 사용하는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칼은 인민의 주권을 왕이 구현한다는 뜻이고, 지팡이는 왕에게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집중된다는 뜻입니다. 왕 밑으로는 도시가 보이는데 그 안에는 산, 들, 교회, 관공서 등이 있습니다. 이 요소들이 모두 모여서 리바이어던 왕국을 이루는데 이것을 정치제Body Politic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정치를 이루는 몸뚱아리'인 것입니다.

256페이지를 보면 "이 그림은 홉스가 생각한 정치체의 구성 요소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이 그림에 그려진 요소들이 한 사람에게 전부 주어지면 그는 절대군주가 되고 그때 비로소 이 정치체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한 사람을 독재자라고만 생각하면 안되고, 그 사람은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한 사람이든 열 사람이든 국가state라고 하는 주권체에게 이런 것들이 다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지역은 귀족들이 여기서 땅을 갈라서 싸우는 내란시기이다. 그 내란시기에 대해서 홉스가 생각하면서 이 내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고 이 정치체라고 하는 것을 구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한 정치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이며,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평화의 비전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홉스 정치철학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내란이 없는 사회, 평화로운 사회이다. 그러면 홉스는 평화주의자인 것이다. 그 사람이 지향하는 목적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제22강 276 이 그림은 홉스가 생각한 정치체의 구성 요소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이 그림에 그려진 요소들이 한 사람에게 전부 주어지면 그는 절대군주가 되고 그때 비로소 이 정치체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홉스는 잉글랜드 내전과 30년전쟁을 모두 겪었습니다. 그가 생각한 정치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이며,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평화의 비전을 내놓은 것입니다.

"표지 그림 아랫 부분에는 책의 제목이 적혀 있는데, 그것은 "라비어던, 또는 교회 공화국과 시민 공화국의 재료, 형태, 그리고 권력"입니다."  책제목은 길지만 홉스의 야망이 느껴지는 것이 있다. "휘장 좌우로는 서로 다른 요소가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지팡이 밑에 있고 왼쪽 그림은 칼 밑에 있습니다." 지팡이 밑에 있는 것은 종교적인 것들,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면 되고,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이념, 문화를 생각하면 된다. 왼쪽은 국가인데 이것은 정부government를 생각하면 된다. state와 government는 다르다. state는 오늘날에는 주권체를 가리키는 것이고, 주권을 담고 있는 덩어리는 꼭 국가가 아닐 수 있다. 지방영주도 있을 수 있다. government는 그 주권체의 명령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아직까지 홉스는 state와 government를 구별해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른쪽 맨 아래 그림은 종교재판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바로 위에 그려진 창을 가지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 창들 중에서 맨 왼쪽에 그려진 창은 '삼단논법syllogism'입니다. 가운데 있는 창은 '영적인 것spiritual'과 '세속적인 것temporal'으로, 이는 중세 시대의 중요한 논쟁점들입니다." 그리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창은 '직접적인 것direct'과 '간접적인 것indirect'이고, 맨 오른쪽에 있는 창은 '실제적인real' 것과 '지향적인intentional' 것입니다. 이것들은 중세 시대에 사용된 사유 범주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뿔처럼 생긴 사물은 '딜레마dilemma'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싸움을 하는 놈들이 주교이다. 이것이 리바이어던 국가에 의해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전쟁에 나선 사람들이 대표, 총, 칼, 그리고 왕관, 성 이런 것들, 이런 것들이 국가 아래에 포함된다. 이런 것들을 다 묶으면 비인간행위자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그림은 17세기 유럽 인들이 새로운 이념을 마련하고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고려하고 폐기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자연과학이 있었습니다." 물론 홉스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과학이라고 하는 개념의 합당한 자연과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종교적인 것만 가지고는 이 세계의 평화가 올 수는 없다는 것을 뚜렷하게 알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홉스가 정치사상가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과학자이기도 하다. 홉스와 보일 논쟁도 있고 그렇다. 

제22강 276 표지 그림 아랫 부분에는 책의 제목이 적혀 있는데, 그것은 "라비어던, 또는 교회 공화국과 시민 공화국의 재료, 형태, 그리고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입니다. 휘장 좌우로는 서로 다른 요소가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지팡이 밑에 있고 왼쪽 그림은 칼 밑에 있습니다. 그것들 각각은 종교와 국가를 가리킵니다. 오른쪽 맨 아래 그림은 종교재판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바로 위에 그려진 창을 가지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 창들 중에서 맨 왼쪽에 그려진 창은 '삼단논법syllogism'입니다. 가운데 있는 창은 '영적인 것spiritual'과 '세속적인 것temporal'으로, 이는 중세 시대의 중요한 논쟁점들입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창은 '직접적인 것direct'과 '간접적인 것indirect'이고, 맨 오른쪽에 있는 창은 '실제적인real' 것과 '지향적인intentional' 것입니다. 이것들은 중세 시대에 사용된 사유 범주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뿔처럼 생긴 사물은 '딜레마dilemma'입니다. 이 그림 위에 있는 그림들은 차례로 말싸움, 주교관, 교회를 가리킵니다.

제22강 277 다시 말해서 이 그림은 17세기 유럽 인들이 새로운 이념을 마련하고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고려하고 폐기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자연과학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자연과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을 살펴볼 때는 기본적으로 과학에 관한 세 가지 관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과학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생겨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연과학이라고 하는 것들이 17세기 유럽에서 왜 생겨났는가, 17세기 유럽이라고 하는 역사적 맥락은 무엇인가. "과학자 역시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행위자"이다. 즉 과학자들의 연구가 사회적으로 권장되고 사회적으로 저지되고 하는 그런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도 물론 맥락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눠지는 부분이 되겠다. 그 다음 "셋째, 과학과 기술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유념해야 합니다. 과학은 원리적인 것이고 기술은 실천적인 것입니다." 이제 과학과 기술이 서로 결합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른바 원리적인 것을 탐구하는 과학과 구체적으로 그것을 실현하는 제작적인 영역에 속하는 기술, 이 두개가 서로 결합되서 움직여간다. 이것이 17세기 이후의 근대과학의 중요한 성과이다. 또는 성과라기 보다는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의 경계는 불분명하며 오히려 그 둘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문 활동의 방향전환, 그게 바로 프란시스 베이컨을 읽어봐야 하는 이유가 된다. 

제22강 277 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을 살펴볼 때는 기본적으로 과학에 관한 세 가지 관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과학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생겨납니다. 

제22강 277 둘째, 과학자 역시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행위자임을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제22강 278 셋째, 과학과 기술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유념해야 합니다. 과학은 원리적인 것이고 기술은 실천적인 것입니다.

제22강 278 과학과 기술의 경계는 불분명하며 오히려 그 둘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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