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39 / 제23강(1)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23강(1)

“과학의 성과는 계몽주의자들의 노력을 거쳐 대중화된다. 이렇게 해서 ‘이성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 이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미래는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는 낙관적 진보주의가 그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다.”

 

 

2021.12.04 역사 고전 강의 — 39

⟪역사 고전 강의⟫ 제23강을 읽는다. 제23강은 284~291페이지로 몇페이지 안되는데 그렇다고 한번에 끝낼 수 있을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발문을 보면 계몽주의자들, 이성의 시대, 낙관적 진보주의가 굵은 글씨로 되어있다. "과학의 성과는 계몽주의자들의 노력을 거쳐 대중화된다. 이렇게 해서 ‘이성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 이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미래는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는 낙관적 진보주의가 그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다." 계몽주의와 이성의 시대, 낙관적 진보주의 이런 말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는 쌍생아처럼 함께 붙어다니는 단어인데, 계몽주의는 과학보다도 범위가 넓다. 과학혁명은 17세기만을 가리키는 말인데, 계몽주의는 오늘날에도 쓸 수 있는 말이다. 가장 밑바닥에 과학과 계몽주의, 그런 객관적 증거의 힘, 이런 것들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는 있다. 17세기 이후 21세이다. 300년이 지났다. 17세기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믿는다. 그런 것들을 경험주의자들의 노력에 대중화되었다는 것, 대중화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조엘 모키르라는 사람이 쓴 《성장의 문화》라는 책도 계몽주의와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이렇게 해서 ‘이성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성은 너무나도 많은 뜻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맥락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대표적으로는 독일관념론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칸트에서 이성 개념, 피히테에서의 이성 개념, 셸링에서 이성 개념, 헤겔에서 이성 개념이 다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이성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 증거로서 눈에 보이는 현상을 해명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들도 언젠가는 우리가 그러한 증거를 모아서, 베이컨 이런 사람들이 얘기한 것처럼,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명료하게 해명하고 그런 것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공통의 언어로서 또는 수학적 기호로서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 그러한 것이 이성의 시대이다. 그러니 여기서 이성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차려 이사람아' 이렇게 말할 때의 정신보다도 훨씬 더 좁은 의미에서 규정되는 것이겠다. 그래서 이런 것을 적용하면 "미래는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는 낙관적 진보주의", 낙관적 진보주의는 심성과 관련된 곳, 심성의 문제이다.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을 것이다.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23강 284 과학의 성과는 계몽주의자들의 노력을 거쳐 대중화된다. 이렇게 해서 ‘이성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 이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미래는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는 낙관적 진보주의가 그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다.

본문을 읽겠다. "과학혁명과 그것의 전개로서의 계몽주의라는 것을 논의할 때 새삼스럽게 떠올려 보아야 하는 것은 중세의 교회가 가진 위력입니다. 서구에서는 1천 년 가까이 가톨릭 교회가 세계를 '지배'하였습니다." 여기서 '지배'라는 단어에 홑따옴표를 붙여놓았다. 지배라는 말이 무엇인가를 생가해야 한다. 오늘은 지배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자세히 설명하겠다. 왜 설명을 해야 하는가. 가톨릭 세계가 중세의 서구세계를 지배하였다고 할 때 어떤 요소들이 지배를 가능하게 했는가를 알아야 계몽주의자들의 노력을 거쳐서 과학의 성과가 대중화되고 그것이 근대 세계를 지배하려면 어떤 요소들이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역사 고전 강의⟫가 정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다 읽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교양이라고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지배라는 것을 나쁜 의미로 생각하지 말고 '주도적인 담론'으로서 사회 여러 영역에 스며들게 하려면, 삶의 모든 영역의 계몽의 정신을 불어넣으려면, 이렇게 되는 것이 지배이다. "이 '지배'는 단순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이전 시대의 문명이었던 로마제국을 계승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을 계승하였다는 것은 간단한 말이 아니다. 로마법이라고 하는 것, 로마에서는 도그마라는 말을 쓴다, 교회에서는 교의라는 말을 쓰는데, 로그마는 독단이라는 뜻도 있지만 '의견'이라는 뜻이다. 긍정적으로는 도그마는 고유의 의견을 말한다. 기독교가 가진 도그마가 뭐지라고 할 때는 기독교는 어떤 이론으로 다른 종교들과 구별되고 있는가, 이것이 교의이다. 그리스도론, 그리스도가 우리의 메시아이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론과 구원론. 그리고 그 구원은 어떤 것을 통해서 얻는가, 가톨릭은 교회를 통해서 얻는다. 그래서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 이것을 묶어서 교의학이 된다. 그것이 도그마이다. 교회를 나간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마음 속에 구원의 씨앗이 있다고 말하면 프로테스탄트가 된다. 프로테스탄트와 중세 로마 가톨릭과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가이다. 어떻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구원의 방법이 다르니까 다른 종파이다. 교파가 다른 것이 아니라 종파가 다르다고 할 수 있으니, 다른 종교라고 할 수도 있다. 이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자로만 인정하니까 다른 종파이다. 그런 것처럼 교의라고 하는 것, 도그마가 무엇인가. 도그마의 의미가 여러가지 뜻이 있는데 이론이라는 뜻도 있고, 중세에 들어오면 교회의 교의(도그마)가 실질적인 의미에서 법으로까지, 교회법이 성립한다. 교회법이다 하는 것을 세속에도 적용하려면, 도그마가 실정법의 영역으로까지 작동하게 된다. 그러면 무세운 세상이다. 중세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러니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겠는가. 사제가 임종에서 종부성사를 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없는 시대이니까 우리는 지금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과학, 의학이다. 로마제국을 계승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로마 가톨릭이니까 로마 제국 계승 이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이 가지고 있던 로마법을 중세에서는 교회법으로 계승했고, 그 교회법을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하려고 했다. 그것이 로마제국을 계승했다고 하는 점이다. 그 다음에 동시에 현실세계의 실정법을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사람들의 영혼을 파고드는 종교적 희망과 두려움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실과 영혼을 지배하고 지배하는 것이니까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로마 가톨릭의 지배력이다. 그 다음에 "수도원 등을 통하여 문명과 교육의 수단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교육, 라틴어라고 하는 보편 언어를 통하여 이것이 실현되었다.  

제23강 284 과학혁명과 그것의 전개로서의 계몽주의라는 것을 논의할 때 새삼스럽게 떠올려 보아야 하는 것은 중세의 교회가 가진 위력입니다. 서구에서는 1천 년 가까이 가톨릭 교회가 세계를 '지배'하였습니다. 이 '지배'는 단순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이전 시대의 문명이었던 로마제국을 계승하였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의 영혼을 파고드는 종교적 희망과 두려움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로만 가톨릭Roman Catholic'이라는 말은 이러한 두 가지를 결합한 것이기에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혼을 파고들면서도 수도원 등을 통하여 문명과 교육의 수단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라틴 어라는 보편적 언어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총괄하는 사람이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이다. 교황은 "부패한 자들뿐인 듯하여도 만만히 볼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혈연에 의한 세습이 불가능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든 실력을 갖춘 자들이어야만 했으니 대다수의 교황들은 최고 수준의 학문과 통치력을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단 이것을 기본 값으로 봐야만 한다. "비인격적인 지속성을 가진 교화라는 조직의 뒷받침까지 있었으므로 그 위력이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 이것은 바로 어떤 점에서는 근대 자본주의 시대의 법인체의 시작이다. 교회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황을 비롯한 수많은 사제들이 끝임없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있지 않은 비인격적인 조직에 몸을 담고 조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을 위해 충성하고, 그러니까 이게 회사이다. 그런 것들을 보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공부를 해서 그런 측면들을 간취해 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제23강 285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부패한 자들뿐인 듯하여도 만만히 볼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교황의 자리는 혈연에 의한 세습이 불가능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든 실력을 갖춘 자들이어야만 했으니 대다수의 교황들은 최고 수준의 학문과 통치력을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교황은 비인격적인 지속성을 가진 교화라는 조직의 뒷받침까지 있었으므로 그 위력이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중세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세력인 게르만 족 전사 집단", 무력을 가진 집단이다. 그런데 "교회에 비하면 그 세력이 강력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게르만 전사 집단이 이제 교회의 지배를 벗어나서 센 힘을 가져보자고 하게되면 그것이 30년전쟁 이런 것들이다. "중을 휘어잡는 선전선동 능력"도 떨어지고 그런데, 이 게르만 족 전사 집단이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는 주역이 되고, 그러면서 프로테스탄트들과 결합을 하여 국가교회를 만든다. 그러면서 지역언어로 통치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당연히 라틴어에 대한 반발이 있는 것이고, "루터가 종교개혁을 진행하면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독일의 지배자들과 힘을 합할 수 있었던 것은 프로테스탄트와 지역 정치 세력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나쁘게 생각하면 안된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상업 세력과 손을 잡은 것, 그것은 르네상스 이후에 등장한 아주 독특한 현상이다. 그때 이전에는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와 종교는 항상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가 정교유착이다라고 말하면 안된다. 유착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어쨌든 그런 것들은 필요하다. "전통적인 교회의 지배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게 뿌리채 흔들리게 된 사건이 무엇인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단계를 거치면서"이다. 과학혁명의 주역들 중에는 아주 독실한 신자들도 많았지만 계몽주의의 선도자들은 아주 투철한 반종교주의자들이다. 그래서 계몽주의를 얘기할 때 첫번째로 거론하는 계몽주의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반종교주의, 특히 반기독교주의이다. 그것을 생각해두면 되겠다.

제23강 285 중세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세력인 게르만 족 전사 집단은 교회에 비하면 그 세력이 강력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장악하는 능력━이것은 대중을 휘어잡는 선전선동 능력이기도 할 것입니다━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23강 285 루터가 종교개혁을 진행하면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독일의 지배자들과 힘을 합할 수 있었던 것은 프로테스탄트와 지역 정치 세력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가 되어도 전통적인 교회의 지배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단계를 거치면서 비로소 교회 지배의 폐기를 논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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