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40 / 제23강(2)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23강(2)

❧ 계몽주의의 주요 주장
- 인간의 이성이 작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추론 모형으로서의 수학
- 자연법칙을 발견하여 그것을 정신학과 연결
- 자연법칙을 발견하여 미래의 사건들을 예측하려 함

 

 

2021.12.07 역사 고전 강의 — 40

⟪역사 고전 강의⟫ 제23강 두번째를 이야기하겠다. 23강은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과학혁명에 이어서 계몽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좀 도식적으로 보면 과학혁명은 영국에서 그리고 계몽주의는 프랑스에서, 17세기 과학혁명, 18세기 계몽주의. 이렇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 북리스트에서 말한 것이 17세기 과학혁명과 관련된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 잉글랜드 그리고 영국 이런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다루었다. 그런 것에 이어서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은 사실 프랑스 혁명 사건 이전부터 있던 것이다. 계몽주의는 관념적인 영역에 속한다. 다시 말해서 지식에 대해서, 자식 자체를 탐구하고 그런 것들과 관련이 된다. 절차적 지식 또는 원리적 지식이라든가의 구별들이 계몽주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고, 칸트, 계몽주의 완성자, 계몽주의를 완성했다기보다는 계몽주의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를 완성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다.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 이렇게 4명의 철학자를 묶어서 도이치 관념론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묶는 것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칸트는 계몽주의에 속하는 사람이고, 나머지는 도이치 낭만주의에 해당하는 사람인데 사실 낭만주의와 계몽주의는 공통지점이 별로 없다. 그리고 칸트는 낭만주의와 단호하게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예전에 번역했던 《낭만주의의 뿌리》에서 칸트가 계몽주의의 아버지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글쎄 그 뒤로 공부를 하다보니 이사야 벌린 책을 읽지 않는다.

285페이지를 보면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것은 그것의 이론적 바탕입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과학혁명의 최종적인 성과는 '뉴턴주의newtonianism'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뉴턴의 과학적 성과를 계승하려 한다고 생각하면 안되고 뉴턴주의라고 했으니까 뉴턴에 의해서 성취된 과학적 사고방식, 과학의 성과를 놓고 그런 과학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뉴턴주의에는 수학적 형이상학적 실험적 주장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었습니다." 다시말해서 "뉴턴은 물론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연구와 사상이 혼합된 잡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과학주의이다. 오늘날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쓰는데 4차산업혁명라는 말이 꼭 사물인터넷, 모바일 기술 이런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판타지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4차산업혁명이 정체불명의 것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그 말이 가져다주는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몹쓸 말은 아니라도 생각한다. 몹쓸 말도 아니고 못쓸 말도 아니다. 그런 관념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것이고 미래를 항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만들어내서 유포하는 사람들은 정치가들인데 정치가들이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정치가들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환상을 조직하고 그 환상을 자기이익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하는 기득권 옹호자들을 물리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쪽으로 환상을 물꼬를 트는 역할이 정치가들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4차산업혁명 이런 말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문학이라는 말도 경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몽주의라든가 뉴턴주의라든가 이런 말들도 그 당시에 진지한 학자들은 경멸했을지는 몰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저게 미래로 가는 방향이구나, 저런 식으로 해서 낡고 오래된 관습들을 버려야 겠구하 하는 역할을 했다면 충분히 받아들일만하고 장려해서 사용할만한 그런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뉴턴주의가 18세기 계몽주의라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밑바탕에 놓인 원리가 되었는데 이 뉴턴주의를 바탕으로 프랑스 계몽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서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들이 영국으로부터 뉴턴주의와 자유주의를 도입하면서 계몽주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제23강 285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그것의 이론적 바탕입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과학혁명의 최종적인 성과는 '뉴턴주의newtonianism'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제23강 286 뉴턴주의에는 수학적 형이상학적 실험적 주장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었습니다. 뉴턴은 물론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연구와 사상이 혼합된 잡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23강 286 이것은 18세기 계몽주의라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밑바탕에 놓인 원리가 되었는데, 이 뉴턴주의를 바탕으로 프랑스 계몽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들이 영국으로부터 뉴턴주의와 자유주의를 도입하면서 계몽주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17세기 과학혁명의 이성이 자연의 제1원리를 탐구하는 과학적 이성이었다면, 18세기 계몽주의 이성은 사회적 처방을 내놓는 '사회운동의 원리로서의 이성'이었습니다." 이런 말들을 정치가들이 사용해야 한다. 이런 말들을 사용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쪽으로 향해가도록 하는 것이 정치가 하는 일이다. "영어로 인라이튼먼트Enlightenment이고 독일어로 아우프클래룽Aufklärung", 전자는 '빛을 비춘다'는 뜻이고, 후자는 '명확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내놓은 성과가 바로 백과사전이다. 디드로, 달랑베르와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가리킬 때 '필로조프philosophe'라는 말을 사용한다. 계몽철학자. 이 사람들이 달랑베르나 콩도르세와 같은 사람들은 수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었고, 그런 사람들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달랑베르의 글을 길게 인용했는데 찬찬히 읽어 보면 좋겠다. 이게 달랑베르가 쓴 《문학·역사·철학 논문집》에 들어있는 일종의 계몽주의 선언문으로 알려진 문장이다. 이것에 대한 설명이 바로 사실 칸트가 말하는 계몽주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는 즐겨 이 시대를 '철학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여기서 "철학"은 좁은 의미의 철학이 아닌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이성적으로 파악하려는 학문적 노력을 가리킨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바탕이 된다. 달랑베르의 설명을 읽어보면 얼마나 18세기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가간다고 하는, 그런 약간의 뿌듯함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달랑베르에 따르면, 관념의 변혁은 이성적 사색의 변혁입니다. 이것은 자연과학에 변혁을 일으켜서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을 늘려갑니다. 또한 시대정신이 형성되고 발효되어 체계적인 정신학의 영역에 도달합니다." 엄청나게 놀라운 야망이다. 즉 자연과학과 정신학을 다 아우르는 시대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성적 사색을 통한 자연과학과 정신학의 결합, 이게 바로 계몽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야망이고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백과전서라는 구체적인 작업물로서 등장하게 된다. 여기서 에른스트 카시러의 《계몽주의 철학》을 재인용했다. 계몽주의에 대해서 궁금하다 하면 이 책만큼 좋은 책이 없다. 

제23강 286 17세기 과학혁명의 이성이 자연의 제1원리를 탐구하는 과학적 이성이었다면, 18세기 계몽주의 이성은 사회적 처방을 내놓는 '사회운동의 원리로서의 이성'이었습니다.

제23강 286 계몽주의는 영어로 인라이튼먼트Enlightenment이고 독일어로 아우프클래룽Aufklärung입니다. 전자는 '빛을 비춘다'는 뜻이고, 후자는 '명확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제23강 289 "우리는 즐겨 이 시대를 '철학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여기서 "철학"은 좁은 의미의 철학이 아닌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이성적으로 파악하려는 학문적 노력을 가리킵니다.

제23강 290 달랑베르에 따르면, 관념의 변혁은 이성적 사색의 변혁입니다. 이것은 자연과학에 변혁을 일으켜서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을 늘려갑니다. 또한 시대정신이 형성되고 발효되어 체계적인 정신학의 영역에 도달합니다.

"이상학적 문제들에 관한 철학자들의 꿈 같은 이야기는 확실한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눈앞에 보이는 현상세계에 머무르면서 이 세계를 관통하는 과학적인 질서만 밝히겠다는 말입니다. 달랑베르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지現像知'에 만족해야 확실한 토대 위에 학문을 세울 수 있습니다." 형이상학은 배제해야 한다고 말을 해놓았다. 가만히 보면 사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했던 주장이다. 달랑베르의 《문학·역사·철학 논문집》은 1753년에 나온 것인데, 칸트가 내놓은 《순수이성비판》보다 앞서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을 별거 아니다 라고 배제하고 지나갈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생각해 두어야 한다.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냥 철학적인 의미는 별로 없고 사회 이데올로기이고 반종교주의이고 별거 아닌 것처럼 다루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달랑베르라든가 이런 사람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소홀하게 다뤄져야 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계몽주의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정도로 이야기 해두고 싶다. 그리고 현상지에 만족해야 확실한 토대 위에 학문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를 하느냐. 첫째, 수학이라는 토대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수학은 인간의 이성이 작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추론 모형을 가리킵니다." 그 다음에 "인간의 이성적 사색을 이렇게 수학으로 상징화했습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도 수학과 물리학의 확실한 토대를 자기가 마련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둘째, 계몽주의는 자연법칙을 발견해서 그것과 정신학과 연결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도덕법칙의 토대가 된다고 말한다. 이게 좀 사실 무서운 것이다. 이미 계몽주의 시대에 도덕이라는 것이 따로 없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연법칙을 연구하면 인간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가도 여기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칸트는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없으니 뭔가 따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적으로는 정초할 수 없으니 실천이성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는데 사실 그것은 칸트의 희망사항이다. 학문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 "자연의 형상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발견해서 미래의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측하려고 했습니다." 이부분은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과학에 근거를 두고 역사적인 통찰을 시도했음을 말해 줍니다." 즉 역사를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당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묶으면 긍정적인 의미에서 '과학주의'가 된다. 그럼 나쁜 의미에서 '과학주의'는 무엇인가.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와 세계를 뭐든지 과학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면 나쁜 의미의 과학주의이다. "이처럼 계몽철학자들은, 이성적 사색을 통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방법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면 편협한 신앙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점차로 확대되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기본적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진보주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계몽주의의 아주 주요한 성과이다. 지나치게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낙관을 갖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몽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태도들 마저도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제23강 290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관한 철학자들의 꿈 같은 이야기는 확실한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인간 정신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확실한 지식만을 담으려는 저술 속에서는 그러한 꿈 같은 이야기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지 않을 수 없다. _《문학·역사·철학 논문집》[《계몽주의 철학》(에른스트 카리서, 민음사, 1995)에서 재인용]

제23강 291 "이상학적 문제들에 관한 철학자들의 꿈 같은 이야기는 확실한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눈앞에 보이는 현상세계에 머무르면서 이 세계를 관통하는 과학적인 질서만 밝히겠다는 말입니다. 달랑베르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지現像知'에 만족해야 확실한 토대 위에 학문을 세울 수 있습니다.

제23강 291 수학자 달랑베르의 언급들을 고려하면서 계몽주의를 정리해보면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특징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첫째, 계몽주의는 수학이라는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학은 인간의 이성이 작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추론 모형을 가리킵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적 사색을 이렇게 수학으로 상징화했습니다. 둘째, 계몽주의는 자연법칙을 발견해서 그것과 정신학과 연결했습니다. [...] 셋째, 계몽주의는 자연의 형상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발견해서 미래의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측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계몽주의가 과학에 근거를 두고 역사적인 통찰을 시도했음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계몽철학자들은, 이성적 사색을 통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방법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면 편협한 신앙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점차로 확대되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기본적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진보주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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