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에서 제공하는 《몽유병자들》를 듣고 정리한다.
2022.08.08 몽유병자들(10) ━ 사라예보 살인사건, 암살과 사진처럼 기억된 순간들
《몽유병자들》 10번째 시간이다. 제3부는 사건의 경과가 나와있기 때문에 읽어나가기가 수월하다. 제3부 위기의 목차를 보면 7장 사라예보 살인사건, 8장 확산되는 파문, 9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프랑스인들, 10장 최후통첩, 11장 경고사격, 12장 마지막 날들이다. 사라예보 살인사건에서 오늘은 암살과 사진처럼 기억된 순간들 셕션을 읽는다. 부담없이 읽어나가면 된다. 사건이 사라예보에서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아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위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 조피 초테크 폰 초트코바 운트 보그닌이 열차편으로 사라예보에 도착해 자동차로 갈아타고 아펠 부두를 지나 시청으로 향했다." 이렇게 사건이 벌어진 날에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가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카드에 옮겨 적을만한 것들은 아니고, 상세한 풍경, 이런 것들이 나오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6월 28일이라는 것이다. 6월 28일, 그러니까 이런 것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다 프로토콜이고, 의전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정치인은 정치를 할 수 없고, 그런 것을 조언할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면 아예 정치판에 들어서지 말아야 한다. 570페이지를 보면 "오스트리아 측에서 고른 6월 28일은 사라예보를 방문하기에 불길한 날이었다." 참 감각없이 고른 것이다. 1389년, 1914년이면 참 얼마나 어이가 없는 아주 오래전에, "1389년 6월 28일, 성 비투스의 오스만군은 '검은 새들의 들판'(코소보)에서 세르비아가 이끈 연합군을 무찔러 세르비아제국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나머지 세르비아 영토를 장차 오스만제국에 통합할 여건을 마련했다." 그러니까 지금 세르비아로서는 6월 28일이라고 하는 날이 치욕스러운 날이다. 게다가 "1913년 2차 발칸전쟁 중에 코소보가 '해방'된 이후 처음 맞는 성 비투스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이제 세르비아의 초민족주의자들에게 어떤 기분이었을까, 초민족주의는 우리가 계속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571페이지를 보면 "세르비아 초민족주의자들은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하고많은 날 중에서 하필 이날에 사라예보를 방문하는 것을 상징적인 모욕주기로 여기고서 그에 대응하려 했다" 영웅심리를 가진 자들에게는 굉장히 강력한 승부욕을 불러일으키고 뭔가 자신들이 역사 속에 대단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마저 심어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573페이지를 보면 "무엇보다 중요했던 사실은 6월 28일 일요일이 프란츠와 조피의 결혼기념일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프란츠 대공과 조피는 결혼식을 한 이후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가지로 겹친 날이다. 그들이 결혼기념일에 죽었다는 것도 지금 우리가 생각해보면 참 그렇다. 그런데 이제 폭탄이 한 번 터졌다가 안되고 그랬다. 그러다가 "차량 행렬이 시청을 떠나 점점 더워지는 도시를 향해 이번에는 서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운전수들에게 일정이 바뀌었다고 말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시장 구역을 지날 때 선두 차량이 프란츠 요제프 거리 쪽으로 우회전을 하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를 태운 차량도 똑같이 방향을 틀었다. 포티오레크가 운전수를 나무랐다. "길을 잘못들었잖아! 아펠 강둑길로 가기로 했네!" 운전수는 페달에서 발을 떼고서 대로 쪽으로 천천히 핸들을 돌렸다." 이때는 차량에 후진기어가 없었다. 그래서 되돌아가려면 천천히 빙돌아야 한다. 그러니 차가 빠른 속도로 가다가 빙 도니까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얼마나 좋았겠는가. "권총을 꺼내 직사거리에서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그 총에 맞고 죽게 된 것이다. 사건의 경과가 그렇게 진행된다.
제7장 569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아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위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 조피 초테크 폰 초트코바 운트 보그닌이 열차편으로 사라예보에 도착해 자동차로 갈아타고 아펠 부두를 지나 시청으로 향했다.
제7장 570 오스트리아 측에서 고른 6월 28일은 사라예보를 방문하기에 불길한 날이었다. 1389년 6월 28일, 성 비투스의 오스만군은 '검은 새들의 들판'(코소보)에서 세르비아가 이끈 연합군을 무찔러 세르비아제국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나머지 세르비아 영토를 장차 오스만제국에 통합할 여건을 마련했다.
제7장 571 1913년 2차 발칸전쟁 중에 코소보가 '해방'된 이후 처음 맞는 성 비투스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제7장 571 세르비아 초민족주의자들은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하고많은 날 중에서 하필 이날에 사라예보를 방문하는 것을 상징적인 모욕주기로 여기고서 그에 대응하려 했다.
제7장 573 무엇보다 중요했던 사실은 6월 28일 일요일이 프란츠와 조피의 결혼기념일이었다는 것이다.
제7장 580 차량 행렬이 시청을 떠나 점점 더워지는 도시를 향해 이번에는 서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운전수들에게 일정이 바뀌었다고 말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시장 구역을 지날 때 선두 차량이 프란츠 요제프 거리 쪽으로 우회전을 하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를 태운 차량도 똑같이 방향을 틀었다. 포티오레크가 운전수를 나무랐다. "길을 잘못들었잖아! 아펠 강둑길로 가기로 했네!" 운전수는 페달에서 발을 떼고서 대로 쪽으로 천천히 핸들을 돌렸다.
두번째 섹션은 "사진처럼 기억된 순간들"이다. " 사라예보 암살은 1963년 댈러스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살해된 사건처럼 사람들과 그들이 있던 장소를 일순간 사진을 찍듯이 포착해 기억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그런 얘기들을 한다. 유명한 사람들의 기억을 여기에 얘기한다. 그리고 카를 크라우스가 말한 얘기. "사라예보에서 들려온 비보는 사라진 제국에 대한 문화적 상상 속에서 오랫동안 메아리 쳤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암살 당인 일기에 대공의 "끔찍한 비인기"를 회상했더니 살해의 "첫 충격"이 빠르게 가라앉았다고 적었다." 약간 비꼬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그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슬픔을 분출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왜 기록을 하는가를 알게 되는데, "이 사실은 6월 28일 암살이 언제나 희생자가 아닌 발생 장소의 이름으로 부려온 이유를 얼마간 설명해준다." 사라예보에서 암살 사건이 있었다고 얘기를 한다. 그것은 알아도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죽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쓴다. 희생자가 아닌 발생 장소의 이름으로 부려온 이유를 얼마간 설명해준다. "그에 반해 존F. 케네디 살해를 '댈러스 암살'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사실과는 조금 다르게 인기가 있었든 없었든 "제위계승자의 에너지와 개혁 열의는 널리 인정받았다." 그러니까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대공 암살은 단순히 그 개인의 죽음으로 그치지 않고 그가 상징하던 것, 즉 왕조의 미래와 제국의 미래, 그리고 둘을 통합한 '합스부르크 국가 이념'까지 타격을 받았다는 중요한 사실을 의미했다." 이 사건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제 합스부르크 제국의 민족들이 그들의 모든 희망과 모든 미래를 걸었던 사람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렇다해도 부다페스트에서 마자르왕국의 강적이 횡사했다는 소식에 이중제국의 하나인 헝가리왕국은 남몰래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다해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가장 내향적인 사람들만이 대중의 분위기가 응축되고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만이 대중 분위기가 대중의 분위기가 응축되고 어두워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사건 자체에 애초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말하는 것이 프라하의 프란츠 카프카이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프라하의 프란츠 카프카가 그런 경우였다. 암살 당일 일기에 그는 정치적 사태를 일정 언급하지 않은 채 순전히 사적인 불운들을 시간 순으로 길게 나열했다." 밀회 장소로 가다가 길을 잃었고, 노면전차를 잘못 탔고, 전화를 못받았다는 것을 길게 나열했다는 것이다. 이게 프란츠 카프카의 일기에 나온 것이다.
제7장 583 사라예보 암살은 1963년 댈러스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살해된 사건처럼 사람들과 그들이 있던 장소를 일순간 사진을 찍듯이 포착해 기억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제7장 585 사라예보에서 들려온 비보는 사라진 제국에 대한 문화적 상상 속에서 오랫동안 메아리 쳤다.
제7장 587 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암살 당인 일기에 대공의 "끔찍한 비인기"를 회상했더니 살해의 "첫 충격"이 빠르게 가라앉았다고 적었다.
제7장 587 이 사실은 6월 28일 암살이 언제나 희생자가 아닌 발생 장소의 이름으로 부려온 이유를 얼마간 설명해준다(그에 반해 존F. 케네디 살해를 '댈러스 암살'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7장 587 인기가 있었든 없었든, 제위계승자의 에너지와 개혁 열의는 널리 인정받았다.
제7장 587 대공 암살은 단순히 그 개인의 죽음으로 그치지 않고 그가 상징하던 것, 즉 왕조의 미래와 제국의 미래, 그리고 둘을 통합한 '합스부르크 국가 이념'까지 타격을 받았다는 중요한 사실을 의미했다.
제7장 589 "합스부르크 제국의 민족들이 그들의 모든 희망과 모든 미래를 걸었던" 사람을 잃었다고 말한다. 이런 말들은 물론 오스트리아 쪽 이야기였다. 부다페스트의 상황은 딴판이었다. 이 도시의 주민 다수는 마자르왕국의 강적이 횡사했다는 소식에 남몰래 안도감을 느꼈다.
제7장 589 가장 내향적인 사람들만이 대중의 분위기가 응축되고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것들은 《몽유병자》들과 관계된 카드가 아니라 그냥 별개의 카드로 만들어 두면 괜찮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 프란츠 카프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아주 좋은 사례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내향적인 사람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몽유병자들》에서 프란츠 카프카를 언급하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음을 언급한다"라고 카드 한 장에 간단하게 써놓으면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 거론할 수 있는 하나의 참조자료가 된다. 그러면 프란츠 카프카가 과연 그런 사람인가. 세상물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인가. 세상과 담쌓고 지내서 자기 안으로만 파고든 사람인가. 그렇게만 보기에는 그의 작품들이 굉장히 생동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 프란츠 카프카를 읽을 때 어떤 방식으로 읽을 것인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궁리를 많이 해봐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인용한 부분만을 국한해본다면 프란츠 카프카는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시대상울 우리가 망상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망상의 결과라도 치부하기에는 굉장히 생동적으로 보편적 시대정신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다시말해서 그가 시대를 예리하게 읽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프란츠 카프카를 읽을 때 이런 점, 가장 내향적 사람의 측면과 보편적 시대정신을 읽는 눈, 이것을 어떻게 조율해서 이해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제7장 590 프라하의 프란츠 카프카가 그런 경우였다. 암살 당일 일기에 그는 정치적 사태를 일정 언급하지 않은 채 순전히 사적인 불운들(밀회 장소로 가다가 길을 잃었고, 노면전차를 잘못 탔고, 전화를 못받았다)을 시간 순으로 길게 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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