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몽유병자들(16) ━ 전쟁 발발 직전 프랑스, 러시아, 여러 행위자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것들

 

2022.09.20 몽유병자들(15)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후통첩과 그 특징

《몽유병자들》 제3부는 11장, 12장까지 있고, 결론이 있다. 오늘은 11장을 읽는다. 지금 《몽유병자들》를 읽는 것이 어떤 것이 중요한 지 짚어주는 점도 있고 그러니까 11장 경고사격은 723페이지부터 747페이지까지이다. 20페이지 정도 되는데 여기서 봐야하는 지점이 무엇인가, 큰 흐름이 무엇인가. 12장 마지막 날들은 내용이 조금 복잡한데 경고사격 부분에서는 사건이 완전히 무르익기 직전에 프랑스, 러시아, 여러 행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태에 대처해 나갔는가 그리고 사태를 대처해 나가는데 작용한 멘탈맵은 무엇인가를 추려서 볼 필요가 있다. 역사책을 읽을 때 사건의 경과를 기록하는, 역사적 사건의 기록부분과 그런 사건들을 저자가 설명하는 약간의 관점 부분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것을 추려내는 것이 어렵다. 예전에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면서 심각하게 느낀 지점이다. 투키디데스가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지는 그 경과를 서술하는 것 같지만 그 경과를 서술하는 듯한데 사실은 객관적인 서술 안에 어떤 가치평가 또는 사건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우리가 역사학자라면 얼마나 정확하게 서술했는가, 앞뒤가 맞는가 이런 것을 보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역사책을 읽을 때는 그런 것을 추려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726페이지를 보면, 러시아가와 독일의 관계문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게 최후통첩을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러시아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또는 어떻게 대응했는가가 경고사격 첫번째 부분에 서술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러시아는 독일의 도전에 한결같은 온건책과 관용으로 대처했지만, 이런 양보는 "공격적 방법"을 사용하도록 독일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다시말해서 러시아는 온건책과 관용으로 대처했다. 그런데 독일은 항상 그것에 대해서 러시아의 온건책과 관용을 무시하고 그냥 공격적 방법을 일관성 있게 사용해왔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보기에 그 당시 각료평의회 회의가 진행될 당시의 각료들의 말하자면 분위기가 그러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2시간 동안 진행된 각료평의회 회의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지 실제로 독일이 그러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때 각료평의회 회의가 어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는가, 그 회의에 참석했던 각료들은 "베오그라드가 최후통첩을 수락한다면 세르비아는 사실상 두 나라의 피보호국이 될 것이다. 슬라브 민족들의 독립을 지키는 "역사적 사명"을 포기할 경우 러시아는 "타락한 국가로 간주" 되고, "모든 권위"와 "발칸에서의 위신"을 박탈당하고, "앞으로 열강 중 2등 자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고 되어있다. 사조노프가 이런 경고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당시의 러시아 각료들에게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 러시아가 각료들과 전쟁 직전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던 것은 독일에 대한, 독일은 어쨌든 우리 러시아를 업신여겨왔다고 하는 것, 그리고 러시아가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조금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해본다면 이 당시의 러시아 각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독일에 대한 적대감, 난외에 메모를 해둘 수 있다. 러시아 각료들을 지배하던 분위기는 독일에 대한 적대감과 슬라브 민족 독립에 대한 러시아의 역사적 사명감, 이 두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몽유병자들》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러시아는 독일에 대한 지속적인 적대감, 그리고 슬라브 민족 독립에 대한 러시아의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말해서 두가지이다. 하나는 실제적인 위협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독일은 항상 러시아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신적인 암시 또는 그들이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생각. 전쟁 발발 직전 러시아 각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것들, 이렇게 정리를 해둘 수 있을 것 같다.

11장 726 지난 10년간 러시아는 독일의 도전에 한결같은 온건책과 관용으로 대처했지만, 이런 양보는 "공격적 방법"을 사용하도록 독일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11장 726 베오그라드가 최후통첩을 수락한다면 세르비아는 사실상 두 나라의 피보호국이 될 것이다. 슬라브 민족들의 독립을 지키는 "역사적 사명"을 포기할 경우 러시아는 "타락한 국가로 간주" 되고, "모든 권위"와 "발칸에서의 위신"을 박탈당하고, "앞으로 열강 중 2등 자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 전쟁이 진행이 되는데 "7월 24일과 25일 회의의 역사적 중요성은 과장하기 어려울 정도다."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려하고 있던 조치들은 본질적으로 선제적 조치였고,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 위협에서 기인하지 않았으며, 위기를 고조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것으로 이어진다. 앞에서의 생각이 어떻게 사건의 연쇄로 가는가. 선제적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 위협에 기인하지도 않았는데도 선제적 조치를 하고 바로 그것이 위기를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어떤 조처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떠한 의식 상태에 있는가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몽유병자들》을 읽으면서 역사적인 사건이 이렇게 흘러갔구나 라고 읽어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위에서 오버뷰로 본다. 그러니까 이 흐름을, 전쟁 직전의 러시아의 조치들이 전개된 과정이 실제적인 조치들과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난 것들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된다는 것과 선제적으로 전쟁을 개시한다는 것과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된다 라는 것에 개입되는 의식과 그 다음에 선제적으로 전쟁을 개시한다 라는 것에 개입되는 의식은 다른 것이다. 그러면 선제적으로 전쟁을 개시한다는 것이 러시아의 생각이었고, 그것에 개입된 의식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보면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이렇게 말한다. "부분적 성격의 동원을 통해 책략을 구사할 여지를 만든다는 생각은 대체로 보아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즉 부분동원이라고 해도 부분동원은 순전히 비현실적이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조치였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부분동원은 이미 전면적으로 갈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전면전으로 갈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읽으면서 정리해야 한다. 그러면 이 책의 제목이 《몽유병자들》인데 이 제목이 왜 지어졌는지 짐작이 가게 된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부분동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사실은 전면전으로 갈 가능성을 아주 거의 백퍼센트 함축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부분동원일 뿐이라는 현실적인 조처들을 내놨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것의 명분으로, 아주 강하게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명분들을 내놓는 것이다. 독일이 지속적으로 위협해왔고 슬라브 민족의 독립을 위한 역사적 사명이다. 실제로 이런 것들은 의식에 불과할 뿐이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737페이지를 보면 "상술한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사조노프와 그의 동료들은 위기를 고조시키고 유럽 전면전의 가능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이렇게 되었을 때 민족주의 언론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던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한 묶음이 된다. 

11장 730 7월 24일과 25일 회의의 역사적 중요성은 과장하기 어려울 정도다.

11장 731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려하고 있던 조치들은 본질적으로 선제적 조치였고,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 위협에서 기인하지 않았으며, 위기를 고조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11장 731 부분적 성격의 동원을 통해 책략을 구사할 여지를 만든다는 생각은 대체로 보아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11장 737 상술한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사조노프와 그의 동료들은 위기를 고조시키고 유럽 전면전의 가능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여기서 제1차 세계대전의 구체적인 경과도 궁금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공식을 카드 한장으로 쓸 수 있다. 그게 바로 의식이다. 어떤 의식이 부분조치로 가는가.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에서 유사한 구조들을 읽은 기억이 있다. 다시말해서 헬라스 지역의 다른 폴리스 사람들이 아테나이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있다. 쟤네들은 경박해, 무조건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 같아 라는 약간의 적대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테나이는 사실 코린토스가 주적인데도 불구하고 자잘한 섬을 건드린다. 그렇게 되면 코린토스의 사절단이 라케다이몬에 와서 이것을 좌시하다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라케다이몬이나 동맹이 업신여김을 당할 것이다. 그러니 가만히 있지말고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태의 추이를 보자고 하는 이런 사절단의 대화들이 오고가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여기서 그대로 전쟁 국면을 앞두고 재현되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좀 더 잘 읽을 수 있는 방법, 제1차세계대전의 《몽유병자들》을 읽으면서 찾아냈다. 그런데 이것을 하면서 당연히 오스트리아와 독일에도 압력이 가해졌는데 그 압력은 "러시아의 조치로 독일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때까지 군사대비를 삼갔던 독일은 여전히 오스트리아-세르비아 분쟁의 국지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면 말이 엉키는 것이다. 독일은 러시아에 공격적인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유사하게 의식과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적인 조치들, 이런 것들이 결국 대규모의 정변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사조노프는 "세르비아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군사적 조치가 러시아의 반격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시대에 뒤진 다종족 구조물인 이중군주국의 앞날이 여하튼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러시아도 그랬다는 것이다. "다종족 전제국가이며 오스트리아-헝가리보다 소수민족과의 관계가 더 나쁜 상태였던 러시아제국의 앞날 역시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다. 이것에서 한 묶음을 볼 수 있다. 이 사태들이 전면적으로 가는 사전 경로들이 이런 식으로 짜여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던 와중에 주요행위자들의 연쇄가 742페이지에 나온다. "사조노프가 베오그라드 측에 영국의 중재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명시적으로 권고했다." 그러면 이제 러시아와 베오그라드측은 테러를 차단한 셈이고, "위기가 고조되도록 내버려두는 동안에도 러시아로서는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었다. 프랑스는 개입이 필요한 정확한 상황이 어떻든 간에 러시아의 발칸 개입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러면 세르비아, 영국, 러시아, 프랑스가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의 여론을 달래고 독일의 행동을 최대한 늦추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다."  독일, 러시아 이런 주요행위자들이 어떻게 급박하게 움직였는가를 여기서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그 부분이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에도 나타난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 전쟁을 향해 가기 위해서 그런 여러가지 일종의 망상에 가까운 것들도 작동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얘기할 때 이 사태를 설명하는 담론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 담론이 어떤 용어를 가지고 그 사태를 설명한다고 해도 사실은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 말이 가지고 있는 것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라는 것을 아주 냉정하게 저자는 지적한다. "독일 문서들은 전쟁을 대외적 위협, 불가피한 사태, 정책의 수단으로 더 직접적으로 언급"하는데, 프랑스와 러시아에서는 "평화를 보호할 필요성"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 독일은 차라리 사태를 가리키는 직접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면 러시아와 프랑스는 "평화를 보호할 필요성" 막연한 얘기를 한다. 우리는 그런 말들이 외교문서 또는 역사적인 문헌에서 나왔을 때 그 말이 사실은 전쟁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유의해서 봐야한다. 그런데 독일의 전쟁언어는 《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을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도구로, 언제나 정치의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사용해야 하는 최후의 순단으로 묘사했다." 이는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명제이다. 그런데 그 명제의 참 뜻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 정치를 우선하라는 것이 클라우제비츠의 현명한 명령이다. "그에 반해 러시아와 프랑스 의사결정자들의 언어에는, 전쟁과 평화는 극명한 존재론적 양자택일이라는 전제가 반영되어 있었다." 전쟁이라는 존재가 있고 평화라는 존재가 있을 때 그 둘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여기서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를 깊이 새겼어야 하는 시점이었다. "정치를 우선하라는 클라우제비츠의 현명한 명령도, 인간의 최고선은 평화라는 진심 어린 호소도 1914년 7월 유럽을 전쟁으로 끌고 간 의사결정자들을 전혀 억제하지 못했다." 핵심적인 지점은, 의식이, 이들은 아직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전쟁을 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담론들을 교묘하게 하면서 의식을 교묘하게 지배해가면서 실제로는 전면전으로 갈 조치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전면전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자기최면을 걸면서 전쟁이라고 하는 사태를 향해 걸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역사 속에서 계속 되풀이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다음에는 12장과 결론을 읽어서 3부를 마치려고 한다.

11장 737 오스트리아에서는 경종이 울렸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러시아의 조치로 독일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때까지 군사대비를 삼갔던 독일은 여전히 오스트리아-세르비아 분쟁의 국지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11장 738 사조노프는 처음부터 세르비아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군사적 조치가 러시아의 반격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11장 738 시대에 뒤진 다종족 구조물인 이중군주국의 앞날이 여하튼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았다.

11장 738 다종족 전제국가이며 오스트리아-헝가리보다 소수민족과의 관계가 더 나쁜 상태였던 러시아제국의 앞날 역시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1장 742 사조노프가 베오그라드 측에 영국의 중재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명시적으로 권고했다.

11장 742 위기가 고조되도록 내버려두는 동안에도 러시아로서는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었다. 프랑스는 개입이 필요한 정확한 상황이 어떻든 간에 러시아의 발칸 개입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의 여론을 달래고 독일의 행동을 최대한 늦추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다.

11장 746 독일 문서들은 전쟁을 대외적 위협, 불가피한 사태, 정책의 수단으로 더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11장 747 그의 섬세한 저술은 탁월하게도 전쟁을 정치의 도구로, 언제나 정치의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사용해야 하는 최후의 순단으로 묘사했다.

11장 747 그에 반해 러시아와 프랑스 의사결정자들의 언어에는, 전쟁과 평화는 극명한 존재론적 양자택일이라는 전제가 반영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정치를 우선하라는 클라우제비츠의 현명한 명령도, 인간의 최고선은 평화라는 진심 어린 호소도 1914년 7월 유럽을 전쟁으로 끌고 간 의사결정자들을 전혀 억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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