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에서 제공하는 《몽유병자들》를 듣고 정리한다.
2022.10.04 몽유병자들(17) ━ 마지막 날들, 러시아의 총동원령
지난번에 《몽유병자들》 11장 경고사격을 읽었다.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대외적 위협, 불가피한 사태, 정책의 수단으로 평화를 보호할 필요성이라든가 또는 담론적 차이라든가 이런 것은 사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구도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담론들보다는 구체적으로 행동들을 만들어 내는 것들, 그런 행동들이 어떤 식으로 생겨났는가를 보는 지점인데 첫번째가 "낯선 빛이 유럽 지도로 내려오다"이다. 이 부분은 윗스턴 처칠이 쓴 글에서 인용한 것. 그 다음 두번째로는 "푸앵카레, 파리로 돌아오다", 푸앵카레는 프랑스 대통령이니까 프랑스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가, 그리고 세번째 섹션은 "러시아, 군대를 동원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그 다음이 "어둠 속으로 뛰어들기"에서 독일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11장 746 독일 문서들은 전쟁을 대외적 위협, 불가피한 사태, 정책의 수단으로 더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영국에서는 어떠했는가. 영국은 지금, 《몽유병자들》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그전에는 이것을 연결지어서 생각하지 못했다. "1914년 7월 위기 거의 내내 런던 의사결정자들의 시선은 아일랜드 북부 얼스터의 9개 카운티에 고정되어 있었다." 영국은 아일랜드의 가톨릭 교도 민족주의자들과 개신교도 연합주의자들 사이에 강력한 대립이 있었고, 그것이 Great Britain 쪽에 있는, 그러니까 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연합주의자는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연합이다, 그 부분에 사건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영국은 초미의 관심사가 얼스터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영국만큼 국내 상황이 최상급 지휘관들의 정치적 전망을 직접 압박한 나라는 없었"고, "사라예보 소식이 알려졌을 때도 영국 정부는 얼스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영국 국내 정치에 국제 정치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전혀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영국의 내각에서도 회의가 있으면 이 문제, '7월 위기'라고 하는 것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국 수상이 애스퀴스인데 그러했지만 외무부의 에드워드 그레이는 이 사태의 위기의 심각성을 즉각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차례 이 책에서 거론되고 있듯이 유럽의 네 개의 강국이 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그들은 사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과 세르비아의 분쟁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그러니까 영국은 영국 국민들이, 이때는 국민들의 의견도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니까, 분쟁 개입을 지지하는 여론을 전혀 만들어 내지 않았던 상황이다. 영국은 더군다나 대륙의 세력 균형을 늘 지켜보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독일 동맹과 프랑스-러시아 동맹, 어느 한 쪽도 일방적으로 다른 쪽을 제압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국의 이익이 어떤 것이냐를 두고 그런 세력 균형의 붕괴를 항상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제 상황을, 여기서 역설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때는 영국은 보수당과 자유당, 자유당에는 애스퀴스와 홀데인, 처칠 이런 사람들이 주요한 구성원들 중 하나였는데 이들은 제국주의자들이었다. 제국주의자라고 하면 우리는 안좋게 생각하는 반면에 제국주의자들은 또 국제 정세에 굉장히 민감한 그리고 예의주시하면서 국가와의, 한 나라의 관계, 자기 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다. 사실 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이런 나라들은 당시에 강대국인데, 지금 제1차세계대정이 발발하기 전에 그런 상황을 보면, 그런 나라들은 강대국인데 이런 강대국들도 사실은 국제 정세에 민감하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보면 군주들이 최종적으로 동원령이라든가 선전포고라든가 영국을 제외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와 도이칠란드 빌헬름2세는 사촌지간이었다. 그러니까 군주들의 의사결정이 어떤가도 굉장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미 내각의 결정을 대표하는 사람들에 불과했으니까 여튼 군주들도 국제 정세에 민감하고, 내각도 굉장히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국제 정세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기가 이때부터 되었다. 다시말해서 강대국이라도 국제 정세에 민감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것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 어쨌든 한국의 정치 지도자는 국제 정세에 민감한 사람, 외교 문제에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 국가의 안위를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영국은 비개입주의를 확고히 고수하고 있었고 제국주의자들만이 개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영국의 상화이다.
12장 748 1914년 7월 위기 거의 내내 런던 의사결정자들의 시선은 아일랜드 북부 얼스터의 9개 카운티에 고정되어 있었다.
12장 750 유럽에서 영국만큼 국내 상황이 최상급 지휘관들의 정치적 전망을 직접 압박한 나라는 없었다.
12장 750 사라예보 소식이 알려졌을 때도 영국 정부는 얼스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12장 750 애스쿼스와 달리 그레이는 남동유럽에서 끓어오르는 위기의 심각성을 즉각 알아차렸다.
12장 753 그레이는 여론이야말로 영국 행동의 궁극적 결정요인이라고 자주 말했는데, 당시 분쟁 개입을 지지하는 여론은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이런 강대국들이 뭔가를 행동한다 하고 또는 그들 사이에 약속을 한다고 해도 심각한 문제는 "어떤 협약이 체결되든 오스트리아-헝가리와 국제체제는 그것의 준수를 보장할 수단을 결여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여러 차례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의 준수를 보장할 수단, 물론 그렇기 때문에 제1차세계대전이 종전 이후에 국제연맹이 출범하고, 국제연맹이 유명무실했다는 판단에 제2차세계대전 이후 국제연합, 즉 UN이 출범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뭔가 협약이 체결되어도 그것의 준수를 보장할 수단이라는 것이 국제적으로 마련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국제적인 평화를 위한 노력들, 국제기구 이런 것은 멋있는 말로 제시할 수 있지만 막연히 칸트의 영국평화론과 같은 철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오고가는 이상론으로써 제시될 수 있지만 그것은 거의 절대적으로 쓸모가 없다. 군사적인 성패를 가르는 요인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국제적인 압력 이런 것들도 군사적인 것들이 수반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그런 점에서는 절대적 위력을 가진 어느 나라도 함부로 맞설 수 없는 최소한 착한 마음을 가진 강대국이 있는 것이 이 지구 평화를 위해서는 좋은게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제1차세계대전을 다루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조금 더 강하게 굳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발칸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분쟁을 누가 시작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끼어들고, 독일이 끌려 들어가고, 프랑스가 '불가피하게' 맹방 편에서 개입할 것이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맹방이니까 그리고 세르비아와도 무기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동맹 차원이 있었다. 그래서 "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독일이 프랑스를 짓밟는 광경을 뒷짐 지고 지켜볼 수 없을 것이다." 이게 일종의 인계철선처럼 연쇄가 개입의 연쇄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 독일이 만약에 오스트리아를 방어하기 위해서 개입한다고 하면 프랑스는 어쩔 수 없이 동원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서 대륙 전쟁이 촉발된다. 그런데 그렇게 될 경우에 독일이 군사적으로 명백하게 우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 영국은 그것을 뒷짐 지고 지켜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인계철선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철선이 그냥 바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확고한 조처들이 취해졌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게 부족하다는 것을 이 기록들 또는 이 서술이 보여준다.
12장 758 어떤 협약이 체결되든 오스트리아-헝가리와 국제체제는 그것의 준수를 보장할 수단을 결여하고 있었다.
12장 762 발칸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분쟁을 누가 시작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끼어들고, 독일이 끌려 들어가고, 프랑스가 '불가피하게' 맹방 편에서 개입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독일이 프랑스를 짓밟는 광경을 뒷짐 지고 지켜볼 수 없을 것이다.
프랑스는 가운데 끼어서 아주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었다. 프랑스는 러시아와 동맹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의무를 짊어져야 했고, 그 다음 영국과는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러시아의 태도가 시사하는 지점이 있다. 러시아는 차르의 명령에 따라 부분동원을 계획했는데 이 과정에서 776페이지를 보면 "분위기는 침울했다." 러시아는 아주 호언장담하면서 세르비아를 지킨다, 슬라브민족주의다 이런 것을 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전쟁을 굉장히 열광적으로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리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사실 러시아 이외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는 침울했다.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부분동원령을 내리면 오히려 곤란하고 총동원령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내리면 그러면 러시아는 굉장히 우울한 상태가 된다. 전쟁을 치를 준비가 별로 안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총동원령이라고 하는 것은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보기에 7월 위기의 가장 중대한 결정 중 하나였다. 그것이 바로 제1차세계대전의 첫번째 동원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먼저 속된 말로 설레발을 치고 나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전쟁의 위급상황을 선포하지 않았던 독일도 그것에 밀려들게 된다. 그런데 러시아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거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통지를 하게되는 것을 보고 러시아는 약간의 망상을 하게 되었다. 독일이 반드시 뒤를 봐주고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7월 위기 내내 하나의 섬이었다. 러시아에서 오판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 황제와 독일 호아제는 서로 친척간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듯한데 러시아는 상황을 그릇되게 해석하고 피해망상으로 가득한 환경에서 실제 위협수준을 냉정하게 평가하지 못한 채 이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7월 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 러시아,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실질적으로는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로 적대하는 나라니까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적어도 그들이 정확하게 상대방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그런 국가간 채널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이뤄내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 읽은 부분은 마지막 날을 향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굉장히 급박한 상황을 보여준다. 다음에는 독일은 어떠했는가를 읽어나가기로 한다.
12장 776 분위기는 침울했다.
12장 778 7월 29일에 공포된 부분동원은 실질적인 계획이 아니었다. 부분동원 조치에 러시아 참모들은 극복하기 힘든 난관에 봉착했는데, 추후 총동원 계획이 혼란에 빠질 판국이었기 때문이다.
12장 780 러시아의 총동원은 7월 위기의 가장 중대한 결정 중 하나였다. 이것이 1차 세계대전의 첫 번째 총동원이었다. 이 시점에 독일 정부는 러시아가 7월 26일부터 시행중이던 '전쟁 대비기간'에 상응하는 '전쟁 위급상황'을 아직 선포하기도 전이었다.
12장 788 피해망상으로 가득한 환경에서 실제 위협 수준을 냉정하게 평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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