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몽유병자들(18) ━ 마지막 날들, 어둠속으로 뛰어들기

 

2022.10.11 몽유병자들(18) ━ 마지막 날들, 어둠속으로 뛰어들기

《몽유병자들》 3부 12장을 읽고 있다. 자잘한 것들이 많다. 이 사건의 연쇄를 따라가면서 읽어야하나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1914년에 일어났던 일들을 따라가면서 읽어야 하나, 읽으라고 권하고 있으면서도 아이구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다. 이런 부분들은 큰 그림도 없고, 자잘한 사건들이 지금의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이런 사건의 연쇄를 따라가면서 사람들이 그것에 따라 어떻게 움직여가는가를 관찰하는 힘, 힘까지는 아니어도 인내력을 기른다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책을 읽는 것은 어떤 때는 따분한 지점이 있다. 철학책은 상징이 있고 해석이 요구되니까 긴장하면서 단어 하나 하나를 찾아가면서 읽는다. 그런데 역사책은 사실 상징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일어난 사건들의 나열에 불과하니까 긴장이 떨어지고 답답할 때가 있다. 어떤 때 보면 이런 것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이 나날이 묶이면 역사다. 이렇게 지리한 것들이 묶여서 하나의 거대한 의미있는 사건으로 집약되는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읽는 것이다. 이렇게 자잘하고 지리하고 따분한 것들이 묶여서 이렇게 의미있는 사건, 즉 1914년 7월 위기라고 부르는 거대한 사건이 이루어진다.


오늘 12장의 어둠속으로 뛰어들기 섹션이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788페이지를 보면 "러시아의 그릇된 해석은 정보 수신자가 약간의 개략적인 고위급 정보에 이끌려 새로 들어오는 자료를 맥락에 맞지 않고 이미 낡았을지 모르는 패턴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 고전적 사례다." 이런 문장을 건져보자고 이런 두꺼운 책을 읽는 것이다. 이런 문장은 보편화된 명제로 만들어서 되새겨 둘 명제라고 하겠다. 어떤 경우에 그릇된 해석이 일어나는가. 정보 수신자가 개략적인 고위급 정보에 이끌려, 개략적이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정리해보면 어떤 특정한 특정한 프레임을 고집하고 있다가 새로 들어오는 자료를, 기존 프레임은 맥락에 맞지 않고 이미 낡았을지 모르는 패턴인데, 이 패턴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 고전적 사례다. 이렇게 해서 사태를 그르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어떤 경우에 그러하는지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떠올려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짧은 인생에서도 고집스럽게 지키는 프레임들이 있다. 그런데 그 프레임들이 일종의 레벨이 있다. 어떤 정보가 들어와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 있다. 가령 마약을 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어도 해서는 안되는 것들.

12장 788 러시아의 그릇된 해석은 정보 수신자가 약간의 개략적인 고위급 정보에 이끌려 새로 들어오는 자료를 맥락에 맞지 않고 이미 낡았을지 모르는 패턴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 고전적 사례다. 피해망상으로 가득한 환경에서 실제 위협 수준을 냉정하게 평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러시아는 피해망상으로 가득한 환경이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도 심각한 상황에 있었다는 것, 그러면서 러시아는 7월말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그것에 대해서 도이칠란트도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내리게 되면서 러시아인도 물러설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도이칠란트의 의사결정을 다룬 부분이 "어둠속으로 뛰어들기"이다. 어둠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이 정보 불균형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상당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을 읽으면 전쟁이라고 하는 이 어마어마한 사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들 지나치게 뭘 모르고 억울한 마음에 또는 어찌되겠지라는 것들이 작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그릇된 해석을 유발했던 그런 패턴들을 계속 고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도이칠란트는 분쟁 국지화 정책을 악착같이 고집했었고, 분쟁확대를 촉발할 수 있는 어떤 조치이든 피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대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 생각했던 이유는 러시아가 피보호국, "러시아가 모든 것에 개의치 않고 피보호국을 위해 개입하기로 결정하여 발생하는 전쟁은 독일이 통제할 수 없는 사태, 공격적인 러시아와 삼국협상 파트너들이 동맹국에게 지우는 운명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즉 외교적 우선사항이 전략적 고려사항보다 더 중시되었다. 이 섹션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러시아 정부가 총동원령 철회를 거두하자 독일은 1914년 8월 1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우리가 흔히 7월 위기라고 얘기하는 것이 이제 도이칠란트가 1914년 8월 1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7월 위기는 끝난 셈이다. 이제 전쟁으로 갔던 것이다. 아주 심각한 것이 프로이센의 왕자 하인리히, 이때 독일의 빌헬름 황제의 어머니가 영국사람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빅토리아 여왕이다. 그리고 영국 국왕 조지5세는 빌헬름의 외삼촌이다. 그런데 영국에 있던 카이저의 동생 프로이센의 왕자 하인리히가 7월 28일에 영국에서 프로이센으로 돌아오면서 전보를 보낸다. 조지5세가 전쟁에 관여하지 않을 의도임을 시사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런데 8월 1일에 독일이 선전포고를 한다. 그러니까 그 짧은 사이에 사건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내정이 심각한 위기에 있었고 전쟁에 관심이 없었는데 "영국 정책 수립자들은 세르비아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거나 공감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영국 정부가 별로 개의치 않는 문제들 때문에 동방에서 일어나는 전쟁이었다."라고 생각했다. 이제 독일이 전쟁 위급상황 선포 소식을 듣고 영국에서는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모든 것이 영국에 달려있다고 하는 독일의 빌헬름 생각도 그렇고 프랑스 생각도 그렇고 "평화와 전쟁 양단간에 결정하는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한 경우였다." 이때 영국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이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827페이지를 보면 "영국 내각에서 주도권 균형은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 대륙 개입에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7월 29일 내각은 함대의 예비동원을 승인해달라는 처칠 해군장관의 요청에 동의했다." 영국에서는 반개입파를 주도한 사람들과 처칠을 중심으로 하는 개입해야 한다는 사람 사이에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

12장 794 러시아가 모든 것에 개의치 않고 피보호국을 위해 개입하기로 결정하여 발생하는 전쟁은 독일이 통제할 수 없는 사태, 공격적인 러시아와 삼국협상 파트너들이 동맹국에게 지우는 운명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12장 806 러시아 정부가 총동원령 철회를 거두하자 독일은 1914년 8월 1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12장 819 영국 정책 수립자들은 세르비아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거나 공감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영국 정부가 별로 개의치 않는 문제들 때문에 동방에서 일어나는 전쟁이었다.

12장 821 평화와 전쟁 양단간에 결정하는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한 경우였다.

12장 827 영국 내각에서 주도권 균형은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 대륙 개입에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7월 29일 내각은 함대의 예비동원을 승인해달라는 처칠 해군장관의 요청에 동의했다.



"1900년경부터 러시아의 위협을 물리칠 필요성은 영국 정책수립 과정의 주요 논제 중 하나였다." 이게 바로 중앙아시아에서는 그레이트 게임으로 나왔다. "1902년 영국은 영국-일본 동맹을 이용해 극동에서 러시아를 견제했다. 1904년 영국-프랑스 협정은 적어도 영국의 적으로서의 러시아를 더욱 약화시켰으며, 1907년 러시아와 체결한 협약은 이론적으로는 영국이 더 이상 효과적으로 수비할 수 없는 제국 주변부에서의 긴장을 관리할 수단을 제공했다." 영국은 사실 이 문제에 깊숙하게 개입하여 들어간 것이 대륙문제에 관여한다 라고 하는 것은 대러시아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륙의 세력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영국은 이 당시에 전세계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도이칠란트라든가, 여기서 이제 세르비아는 손을 떠나버린 것, 사실 세르비아에서 암살을 저지르면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총동원, 최후통첩, 선전포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 책에서 말하려한 이야기는 끝이 난다. 8월 1일 토요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조노프를 마지막으로 만난 푸르탈레스 대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와락 울음을 터뜨리고, 더듬거리며 "결국 이게 내 임무의 결과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방에서 뛰쳐나갔다." 그 다음에 843페이지를 보면 "외교의 시간이 끝나고 군인의 시간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그 다음에 844페이지에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보인다. 일반 병사들. 그 다음에 8월 2일 부뤼셀에서 어느 미국 외교관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며칠전만 해도 이 사건에서 세르비아가 주연이었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세르비아는 무대 뒤로 사라진 듯하다." "다가오는 싸움에 열광하는 쇼비니즘적 표현들이 드문드문 있기는 했지만 이는 예외적이었다. 유럽 남자들이 증오스러운 적을 물리칠 기회를 덥석 붙잡았다는 신화는 그동안 철저히 타파되었다. 대부분의 장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원 소식은 엄청난 충격,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항상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12장 833 1900년경부터 러시아의 위협을 물리칠 필요성은 영국 정책수립 과정의 주요 논제 중 하나였다. 1902년 영국은 영국-일본 동맹을 이용해 극동에서 러시아를 견제했다. 1904년 영국-프랑스 협정은 적어도 영국의 적으로서의 러시아를 더욱 약화시켰으며, 1907년 러시아와 체결한 협약은 이론적으로는 영국이 더 이상 효과적으로 수비할 수 없는 제국 주변부에서의 긴장을 관리할 수단을 제공했다.

12장 843 총동원, 최후통첩, 선전포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 책에서 말하려한 이야기는 끝이 난다. 8월 1일 토요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조노프를 마지막으로 만난 푸르탈레스 대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와락 울음을 터뜨리고, 더듬거리며 "결국 이게 내 임무의 결과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방에서 뛰쳐나갔다.

12장 843 외교의 시간이 끝나고 군인의 시간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12장 845 8월 2일 부뤼셀에서 어느 미국 외교관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며칠전만 해도 이 사건에서 세르비아가 주연이었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세르비아는 무대 뒤로 사라진 듯하다."

12장 845 다가오는 싸움에 열광하는 쇼비니즘적 표현들이 드문드문 있기는 했지만 이는 예외적이었다. 유럽 남자들이 증오스러운 적을 물리칠 기회를 덥석 붙잡았다는 신화는 그동안 철저히 타파되었다. 대부분의 장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원 소식은 엄청난 충격,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마지막 날들의 이 부분은 외교라고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각각의 국가들마다 처한 입장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결론은 맨 나중에 읽기로 하고, 다음부터는 제2부 분열된 대륙, 큰 그림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읽어나가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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