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2023.06.10 문학 고전 강의 — 25 제10강(3) 오뒷세이아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10강(3)
(23.207-208)
Robert Fagles
“She dissolved in tears, rushed to Odysseus, flung her arms / around his neck and kissed his head and cried out.”
Emily Wilson
“She burst out crying and ran straight towards him / and threw her arms around him, kissed his face”
“오디세우스 신화는 행동 변화의 중요한 부분을 보여준다.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 경험에 숙달할 수 있다.”(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오늘은 《문학 고전 강의》 제10강을 마저 다 읽는다. 제10강을 마저 다 읽고 《문학 고전 강의》에서 거론되어 있지 않은,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프의 만남 이후에 다시 또 오뒷세우스가 어디로 간다. 그것이 제11권 138행에서 149행에서 테이레시아스가 예언했던 바, 그냥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해주는 부분은 다음 시간에 하려고 한다.
우선 제23권이 "페넬로페가 오뒷세우스를 알아보다"이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고 그러는데, 그럴 때 심리학 책을 보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 어떻게 하면 저 사람하고 나하고 친해질 수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것에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는 과학적인 것은 아닌데 이렇게 여기 담겨 있는 내용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보면 친밀감 형성, 어떤 친교 관계를 맺는 방법 그런 것이 있다. 깊은 관계deep relation, 돈독한 관계 그런 걸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것들이 잘 들어 있다. 제23권의 제목이 Robert Fagles의 번역을 보면 "The great Rooted Bed"이다. 거대하게 뿌리 내린 침대, 이거는 원래 《오뒷세이아》를 읽어보면 원래 나무에다가 대놓고 침대를 만든다. 그런데 페넬로페와 어디세우스가 부부니까, 부부라는 게 법적으로 부부 그런 얘기가 아니라, 서로 더 이상 친밀해질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 그게 이들의 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그들을 식별하는 결정적인 물건이 침대다. 굉장히 에로틱하면서도 동시에 아가멤논을 여러 번 얘기했는데, 아가멤논과 클뤼타이메스트라의 관계를 보면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들은 결국 거대하게 뿌리 내린 침대로써 서로를 식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올리브 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거기에 침상을 덧대어 만든 것인데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불가능하고 침대 자체가 나무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니까 이게 자연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 페넬로페는 구원자들을 죽인 오뒷세우스를 만나러 가는데 거기서 이상한 분이다 라고 하면서 이제 도발적인 발언을 하나 한다. 하녀인 에우뤼클레이아에게 명령을 한다. "그이가 손수 지으신 우리의 훌륭한 / 신방 밖으로 튼튼한 침상을 내다 놓으시오." 이건 이건 불가능하다. "그대들은 튼튼한 침상을 내다 놓고 그 위에다 / 모피와 외투와 번쩍이는 담요 같은 침구들을 펴드리세요."
(천병희 번역) 23.173-180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에게 대답했다. / "이상한 분이여! 나는 잘난 체하지도 않고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 크게 놀라지도 않아요. 노가 긴 배를 타고 그대가 이타케를 / 떠나실 때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똑똑히 알고 있으니까요. / 에우뤼클레이아! 그이가 손수 지으신 우리의 훌륭한 / 신방 밖으로 튼튼한 침상을 내다 놓으시오. / 그대들은 튼튼한 침상을 내다 놓고 그 위에다 / 모피와 외투와 번쩍이는 담요 같은 침구들을 펴드리세요.
그 침대는 움직일 수 없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남편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뒷세우스가 당장 그렇게 말을 한다. 그러면서 침상을 만들었던 과정을 자세하게 말한다. 23권 190행부터 204행. 아니 침대 만든 일이 이렇게 자세하게 얘기할 일인가, 이건 좀 생색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있다. 아주 자세하게 얘기를, 이 과정을 모르면, 결과는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집 침대는 나무에다가 덧대어서 다 만들었다더군,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 건 굉장히, 여기서 예전에 읽을 때는 침상을 만든 과정과 모습을 발견한 것이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증거다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징표, 심볼론. 그런데 여기에 침상을 만들어낸 과정이 두 사람이 함께 일구었던 삶 전체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결과는 우리가 알 수 있다.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한 동네 살면 그 집 침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진 경과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 경과를 함께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삶을 공유하고 있기 어렵다. 제23권 190-204행을 찬찬히 읽어보면 이게 바로 그 과정, 프로세스 전체, 이 침대라고 하는 것과 이것이 만들어진 과정이 서로 도대체 분리될 수 없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천병희 번역) 23.190-204 우리 안마당에는 잎사귀가 긴 올리브 나무 / 한 그루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데 그 줄기가 기둥처럼 / 굵었소. 그 나무 둘레에다 나는 돌들을 서로 밀착시키며 방을 / 들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것이 다 완성되자 그 위에 훌륭하게 / 지붕을 씌우고 튼튼하게 짜 맞춘 단단한 문짝들을 달았소. / 그러고 나서 나는 잎사귀가 긴 올리브 나무의 우듬지를 자르고 / 밑동을 뿌리에서부터 위로 대충 다듬은 다음 청동으로 그것을 / 훌륭하고 솜씨 좋게 두루 깎고 먹줄을 치고 똑바르게 말라 / 침대 기둥으로 만들었지요. 이어서 나는 송곳으로 그것에 요소요소 / 구멍을 뚫었어요. 그 침대 기둥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는 침상을 / 만들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것이 다 완성되자 금과 은과 상아로 / 정교하게 장식하고 그 안에 자줏빛 찬란한 소가죽 끈을 / 졸라맸지요.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제시하는 우리 침상의 특징이오. / 그러나 여보! 그 침상이 아직도 그대로인지 아니면 벌써 / 누군가 올리브 나무 밑동을 베어 다른 데로 옮겼는지 모르겠소.
김기영씨의 번역보다는 천병희 교수의 번역이 훨씬, 가령 천병희 교수의 번역은 "우리 안마당에는 잎사귀가 긴 올리브 나무 / 한 그루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데 그 줄기가 기둥처럼 / 굵었소." 이걸 이제 김기영 씨는 "올리브 나무의 기다란 몸통이 영지 내에 있었는데 / 잘 자라서 울창했오. 그 나무는 기둥만큼이나 두꺼웠지." 희랍어 원문하고 대조해 보지는 않았는데 일단 문장 자체가 약간 반말이다. 부부 사이에 그러니까 그들이 나이 차이가 있건 없건 서로 마음을 공유하는 사람 사이에는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을 않는다. "두꺼웠오"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가 한다. "두꺼웠지"는 선생이 학생에게 하는 말투 스타일이다.
문학 작품은 이런 미묘한 느낌들이 차이를 가져온다. 평서문으로 "우리 안마당에는 잎사귀가 긴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데 그 줄기가 기둥처럼 굵었다"는 아니다. 굵었다 처럼 평서문으로 서술하는 게 아니다.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나무 둘레에다 나는 돌들을 서로 밀착시키며 방을 / 들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것이 다 완성되자 그 위에 훌륭하게 / 지붕을 씌우고 튼튼하게 짜 맞춘 단단한 문짝들을 달았소." 그런 다음에 침대 기둥을 만들고, 그 다음에 구멍을 뚫고 기둥부터 시작해서 침상을 만들고 완성이 되자 금과 은과 상아로 장식하고 소가죽 끈을 졸라매고 그래서 완성을 했다. 이게 이제 삶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하면 긴 올리브 나무한 그루가 있었다. 그러면 이거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거기에 가서 올리브 나무를 베어내고 어떻게 한 게 아니라 거기에 말하자면 곁에 서는 것이다. 거기서 이제 인공물을 만들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과 자신이 만든 인공물을 결합해서 집을 일단, 방을 만들고 방을 만든 다음에 그 안에 큰 얼개를 짠 다음에 그 안에 뭐를 집어넣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제 뭔가를 할 때는 일단 침대부터 만들면 안 되고, 그 침대가 들어갈 방부터 만들어야 된다는 거. 이 부분도 굉장한 우리의 정동(情動) emotion에 떨림을 엄청나게 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 자체가 굉장히 담담한 서술이면서도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릎과 심장이 풀렸으니 / 오뒷세우스가 말한 확실한 특징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래서 그녀는 울면서 오뒷세우스에게 곧장 달려가 /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머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이제 Robert Fagles의 번역은 "Living proof — Penelope felt her knees go slack, her heart surrender, recognizing the strong clear signs Odysseus offered. "
(천병희 번역) 23.205-208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릎과 심장이 풀렸으니 / 오뒷세우스가 말한 확실한 특징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래서 그녀는 울면서 오뒷세우스에게 곧장 달려가 /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머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그 다음에 보면 Robert Fagles의 번역은 "She dissolved in tears, rushed to Odysseus, flung her arms around his neck and kissed his head and cried out" , Emily Wilson의 번역은 "She burst out crying and ran straight towards him / and threw her arms around him, kissed his face"이다. 이들은 그러고 나서 엄청난 얘기를 계속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런데 재밌는 건 이런 생각이 문득 든다. 이제 일단 이쯤에 오면 고통은 끝 행복 시작 그렇게 말을 하는데, 오뒷세우스는 고통이 끝났는데도 왜 또 떠날까, 이 사람이 약간 고통 중독이 아닌가, 자기가 고통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인가.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이 있다. 2022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되기도 한 책인데 흐름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의 마약 중독에 대해서, 왜 사람들이 마약 중독에 빠져드는가 중독에 들어가는가. 저자가 애나 렘키, 예일대학교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했다. 여기 보면 그런 얘기가 있다. 고통이 너무 심하거나 너무 강력한 형태를 띌 경우 고통에 중독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훈련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는 것이다. 훈련량이 너무 과한 나머지 한 때는 넘쳐났던 엔돌핀이 더 이상 안 나온 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 책을 보면 오뒷세우스 얘기가 많이 나온다. 저는 어디 무슨 책을 읽다가 오뒷세우스 얘기만 나오면 일단 딱 유심히 보고 메모를 하고 중요하다 싶은 것은 카드에 적는다. 여기 이 책도 읽고 그런 몇몇 부분은 카드에 적어놓은 게 있다. 오뒷세우스가 기둥에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들었던 거 부분, 어떻게 피했는가 이런 것들이 정신의학자로서 굉장히 주목해볼 만한 부분이다 라고 얘기를 한다. "오디세우스 신화는 행동 변화의 중요한 부분을 보여준다.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 경험에 숙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페넬로페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쭉 얘기하는 것, 그러니까 이 얘기를 처음에 오뒷세우스가 고통 중독자가 아닌가, 고통을 겪지 않으면 삶의 어떤 동기, 원동력 자체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고통을 찾아나서는건 아닌가 라고 했는데 여기에 보면 그렇게 쓰여 있다. 자신의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 경험에 숙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자신이 말로 하면 그 경험은 이제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그 경험을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로 하는 것도 일종의 경험이니까 신체로 하지 않고, 그래서 몸을 망가뜨리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고요하게 관조할 수 있게 되는 것 이게 바로 고통 중독을 치유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경험을 계속 말로 하는 것, 그런데 아무한테나 말하면 안 된다. 아무한테나 말하면 생색내는 것이고, 자아비대증이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태도에 불과한데 deep rooted bed를 공유한 사람하고 이야기하면 괜찮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얼핏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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