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23 제10강(1) 오뒷세이아

 

2023.05.30 문학 고전 강의 — 23 제10강(1) 오뒷세이아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10강(1) 
“아버지! 제 마음이 어떠한지는 아버지께서도 나중에 아시게 / 되겠지요. 저는 생각하는 것이 결코 경솔하지 않으니까요.”(16.309-310) Soon enough, father you’ll sense the courage, inside me, that I know. 

 

《문학 고전 강의》 제10강, 오뒷세우스 강의로는 이 부분이 마지막이다. "이야기로써 ‘같은 마음’을 갖게 된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 이 부분은 106~122페이지까지 얘기가 길다. 어떤 부분은 길고 어떤 부분은 짧은데 강의는 항상 2시간씩 했는데 구성을 하다보니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니까 강의를 그대로 녹취를 해서 책으로 할 수 있을만큼 강의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또 책을 썼다고 해도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문학 고전 강의》를 출간한 일이 2017년 5월 15일인데 꽤 오래 전은 아니지만 제법 오래 전이다. 《오뒷세이아》를 그 뒤로도 여러 번 읽었고 강의도 여러 번 했다. 어떤 부분이 《오뒷세이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읽을 때마다 달라지기도 하고 그랬다. 이것은 해석의 문제이다. 정확하게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내일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인문고전 읽기의 실제라고 하는 큰 주제 아래에 첫번째가 《오뒷세이아》이다.  지금 문학 고전 강의 해설을 하면서도 하고 또 다시 내일 강의를 하는데 내일은 내용보다도 고전 텍스트인 서사시라는 장르를 어떤 방법으로 읽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일종의 테크니컬한 것들, 스킬에 관한 얘기들을 하게 될 것 같다. 문학 고전 강의를 강의할 때는 “이야기로써 ‘같은 마음’을 갖게 된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다음에 오뒷세우스가 페넬로페를 만난 다음에 다시 또 떠난다. 요즘 보니까 그때와 다르게 그 부분이 진짜인 것 같기도 하다. 왜 그 부분 얘기에 대해서 안썼을까 생각도 드는데 그 부분은 제10강에 이어서 욥기를 읽어야 하는데 욥기를 들어가기 전에 덧붙여서 해보려고 한다. 처음에 문학 고전 강의를 시작하면서 책에 없는 애기도 하겠다고 했는데 책에 없는 얘기를 보충해서 개정판을 내기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그때 그때 선택해서 하는 것이니까. 이 부분이 책에는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오뒷세우스가 페넬로페와 이야기를 해서 같은 마음을 확인한 다음에 또 떠나는 부분은 책에 없으니까 여기서 보충하려고 한다.  

 

제13권이 "오뒷세우스가 파이아케스족의 나라를 떠나 이타케에 도착하다"이다. 이타케가 고향이다. 고향에 왔으니 다 왔네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니다. 진짜 고난은 거기에서 시작한다. 진정한 고난은 바로 온 다음, 이게 모진 일이다. 자기가 잘 안다고 여겼던 것들, 이미 전쟁터에 갔다가 돌아왔으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금의환향을 기대했던 곳에서 가보니까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진짜 고난이고 지옥이다. 그런데 일단 도착했을 때부터 오뒷세우스가 심란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테네에게 묻는다.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정말로 사랑하는 고향에 온 것입니까?" 오뒷세우스는 모르고 있지만 아직 텔레마코스가 라케다이몬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테나가 찾으러 간다. 그런데 오뒷세우스가 고향에 온 것이 제13권인데, 4제14권이 오뒷세우스가 에우마이오스를 찾아가다, 제15권이 텔레마코스가 에우마이오스에게 가다, 적어도 목차적으로만 보면 에우마이오스를 거쳐야 제16권에서 텔레마코스가 오뒷세우스를 알아보다로 되어있다. 오뒷세우스가 텔레마코스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텔레마코스가 오뒷세우스를 알아보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본 것이나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를 알아보았다. 텔레마코스가 오뒷세우스를 알아보다로 되어있는데 이 부분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미묘한 관계에 관한 얘기인데 오뒷세우스는 사실 객지에 나가서 떠돌아다니고 하는 사이에 자기 아들 텔레마코스를 꽤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훌쩍 컸어도 얼마나 컸는지 못 알아봤을 것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텔레마코스도 자기 아버지 얼굴을 쉽게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늘 같이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 부분을 보면 16권 11~22행 사이이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뒷세우스의 사랑하는 아들이 / 문간에 서 있었다. 그러자 돼지치기가 깜짝 놀라 벌떡 / 일어서더니 반짝이는 포도주에 열심히 물을 타던 / 그릇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포도주에 물 타서 먹는 것이 이 당시에 말하자면 희석용 물항아리, "자기 주인에게 다가가", 돼지치기는 어쨌든 텔레마코스를 알아볼 수 있었겠다. 떠난지 얼마 안되었으니까, 그래서 "그의 머리와 아름다운 두 눈과 두 손에 / 입 맞추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 마치 사랑하는 아버지가 십 년 만에 먼 나라에서 /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의 속깨나 썩이던 / 귀영둥이 외아들을 반기듯이 / 꼭 그처럼 고귀한 돼지치기는 신과 같은 텔레마코스를  / 마치 죽음에서 벗어난 사람인 양 얼싸안고 입 맞추었고 / 울면서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것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십 년 만에 아들을 만난 것처럼”이라고 얘기를 해놓았다. 이 부분에서 예고편처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돼지치기가 텔레마코스를 만난 장면이 그 다음에 오뒷세우스와 텔레마코스가 만나는 장면. 그런 다음에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니까 108페이지에 쓴 것처럼 죽음에서 벗어난 것인양, "돼지치기가 죽음에서 벗어난 것처럼 여겼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텔레마코스가 그동안 겪었던 여행이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처럼 강력한 고난의 사건들이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고난들이 텔레마코스를 성장시켰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말을 더 보면 "도련님이 배를 타고 퓔로스에 가셨을 때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지요." 그러니까 오자마자 텔레마코스가 돼지치기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천병희 교수의 번역본은 "텔레마코스가 오뒷세우스를 알아보다"로 되어 있는데 로버트 페이글의 번역본은 권제목을, 역자가 알아서 다는 것인데 "Father and Son"이다. 그러니까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혈연관계라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 둘은 확인하기가 쉽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의 만남 장면과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의 만남 장면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이것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는 뭔가 중간에 아주 많은 보증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보증물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니까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는 것이 쉽지 않다. 거의 신과 인간의 관계에 버금가는 어떤 신의가 없으면 어렵지 않겠나 그렇게 볼 수 있다. 어쨌든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가 만나는 지점에 다시 얘기하기로 한다.  

(천병희 번역) 13.328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정말로 사랑하는 고향에 온 것입니까?"

(천병희 번역) 16.11-22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뒷세우스의 사랑하는 아들이 / 문간에 서 있었다. 그러자 돼지치기가 깜짝 놀라 벌떡 / 일어서더니 반짝이는 포도주에 열심히 물을 타던 / 그릇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자기 주인에게 다가가 / 그의 머리와 아름다운 두 눈과 두 손에 / 입 맞추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 마치 사랑하는 아버지가 십 년 만에 먼 나라에서 /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의 속깨나 썩이던 / 귀영둥이 외아들을 반기듯이 / 꼭 그처럼 고귀한 돼지치기는 신과 같은 텔레마코스를  / 마치 죽음에서 벗어난 사람인 양 얼싸안고 입 맞추었고 / 울면서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제10강 108 돼지치기가 "죽음에서 벗어난" 것처럼 여겼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텔레마코스가 그동안 겪었던 여행이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처럼 강력한 고난의 사건들이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동시에 그것은 그런 고난들이 텔레마코스를 성장시켰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병희 번역) 16.24 도련님이 배를 타고 퓔로스에 가셨을 때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지요.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가 만나는 장면을 다시 보면 텔레마코스는 아직 자기 앞에 앉아 있는 나그네가 자기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데 그래서 스스로의 힘을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을 돼지치기에게 말을 한다. "나는 아직 젋고 누가 먼저 내게 행패를 부려도 / 그 사람을 제지할 수 있을 만큼 아직은 내 완력을 믿지 못하니 말예요. 나의 어머니께서도 마음 속으로 망설이고 계세요. / 남편의 침상과 백성들의 평판을 존중하여 이곳에 나와 함께 / 머물며 집을 돌보실 것인지, 아니면 궁전에서 구혼하는 아카이오이 족 중에서 누구든지 가장 훌륭하고 / 선물을 가장 많이 주는 남자를 따라가실 것인지 말예요." 이 얘기를 지금 에우마이오스에게 한다. 그러면 오뒷세우스는 듣고 있다. 그러니까 텔레마코스가 생각하기에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을 때 92~99행 사이에서 오뒷세우스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얘기한다. 실제로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실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소이다." 아직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는 서로 확인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고, 자신이 아버지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떠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테네가 나타나서 오뒷세우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라고 재촉을 하는 것이다. 황금지팡이를 이용해서 오뒷세우스를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준다. 그러니까 텔레마코스가 보기에 '아 양반이 우리 아버지구나'라는 것을 개연성이 높은 모습으로 바꾸어 준다. 그렇게 바꾸어 주니까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슬피울게 된다. 110페이지에 적어두었듯이 너무 허망할 정도로 간단하게 아테네가 뚝딱 정말 신데렐라에게 마차가 생기고 그러듯이 나온다. 그런데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가 서로를 확인하는 이야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합니다." 책에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205행을 보면 "내가 보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 천신만고 끝에 이십 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온 것이다. / 이것은 전리품을 가져다주시는 아테네의 작품이니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그가 다시 앉자 텔레마코스는 / 훌륭하신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슬피 울었다. / 그러자 두 사람 모두에게 비탄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지금 문학 고전 강의를 해설하기 위해서 다시 읽어보니까 "두 사람 모두에게 비탄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그 다음에 216행부터 호메로스의 서술이 이렇다. "그래서 그들은 새들보다도, 이를테면 아직 깃털도 나기 전에 / 농부들이 그 새끼들을 보금자리에서 채 간 바다독수리들이나 / 발톱이 굽은 독수리들보다도 더 하염없이 엉엉 울었다." 독수리들이 어떻게 울었을까를 상상도 못해봤는데 여기서 호메로스는 비유를 하고 있다. 자기 새끼들을 농부들이 보금자리에서 채가니까 독수리들이 울었다는 것이다. 상상이 안되는데 그 당시 아테나이 사람들은 이것을 들으면서 독수리들이 우는 것을 상상했을까. 자기가 조금이라도 겪어보지 못한 것은 상상을 못하는데, 예전에는 그냥 읽었는데 지금 보니까 오바스럽기는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했을지는, 비유라고 하는 것이 조금 그렇다.  

(천병희 번역) 16.71-77 나는 아직 젋고 누가 먼저 내게 행패를 부려도 / 그 사람을 제지할 수 있을 만큼 아직은 내 완력을 믿지 못하니 말예요. 나의 어머니께서도 마음 속으로 망설이고 계세요. / 남편의 침상과 백성들의 평판을 존중하여 이곳에 나와 함께 / 머물며 집을 돌보실 것인지, 아니면 궁전에서 구혼하는 아카이오이 족 중에서 누구든지 가장 훌륭하고 / 선물을 가장 많이 주는 남자를 따라가실 것인지 말예요. 

(천병희 번역) 16.94 나는 실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소이다. 

제10강 110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슬피 울게 됩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임을 확인하는 장면은 허망할 정도로 간단합니다. 이에 비해 나중에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가 서로를 확인하는 이야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합니다. 

(천병희 번역) 16.205-207 내가 보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 천신만고 끝에 이십 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온 것이다. / 이것은 전리품을 가져다주시는 아테네의 작품이니라. 

(천병희 번역) 16.213-215 이렇게 말하고 그가 다시 앉자 텔레마코스는 / 훌륭하신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슬피 울었다. / 그러자 두 사람 모두에게 비탄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천병희 번역) 16.216 그래서 그들은 새들보다도, 이를테면 아직 깃털도 나기 전에 / 농부들이 그 새끼들을 보금자리에서 채 간 바다독수리들이나 / 발톱이 굽은 독수리들보다도 더 하염없이 엉엉 울었다. 


그 다음에 110페이지를 보면 오뒷세우스가 304행에서 말한다. "오직 너와 나, 우리 둘만이 여인들의 의도를 알아내도록 하자꾸나"하면서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공동의 전선을 형성하는 작업에 들어섭니다. 그것이 304행부터의 얘기인데, 방금 전의 독수리 얘기가 나오는 부분이 220행 부분인데 거기서 공동 전선 형성 얘기가 나온기 전에 225행부터 300행 무렵의 약 두 페이지에 걸쳐 있는 부분을 유심히 봤다. 텔레마코스가 묻는다. 어떻게 이타케로 어떤 식으로 돌아왔는지 물어본다. 그러니까 "너에게 사실대로 다 털어놓겠다. / 이름난 선원들인 파이아케스족이 나를 데려다주었다.",  "나는 지금 우리 둘이서 적군을 도륙할 일에 관해 / 의논하라는 아테네의 지시를 받고 이리로 오는 길이다.", "우리 두 사람으로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지, 아니면 남들의 / 도움을 구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고 심사숙고해 볼 것이다." 우리 둘만으로 가능한지 아니면 알될 것인지 생각보는 중이라고 얘기한 다음에 이제 "우리 둘만이 여인들의 의도를 알아내도록 하자꾸나."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둘만이라고 결정하기 전에 좀 다른 생각을 해본 것이다. 왜냐하면 아카이오이족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려고 와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그런 일이 꽤 숫자가 많으니까. 그리고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가 그들을 죽이는 장면이 굉장히 잔혹하게 묘사되어 있고 그 부분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들이 꽤 있기도 하다. 그 부분은 다음 번에 읽기로 하고. 그 그 다음에 300행을 보면 "내가 진실로 내 아들이고 우리 핏줄이라면 /어느 누구도 오뒷세우스가 집에 와 있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 라에르테스도, 돼지치기도, 하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 아니, 페넬로페 자신도 그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If you are my own true son, born of my blood," 로버트 페이글의 번역에 나오는데 "You and I alone will assess the women’s mood" 그러니까 이럴 때 아들은 일반적으로 클리셰가 있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 제 마음이 어떠한지는 아버지께서도 나중에 아시게 / 되겠지요. 저는 생각하는 것이 결코 경솔하지 않으니까요." 서로를 인정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주고받을만한 대화이다. 사실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로버트 페이글의 번역을 보면 "Soon enough, father you’ll sense the courage, inside me, that I know."  그러니까 용기가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courage라고 옮긴 것이 뭘까, 튀모스thymos(격정)가 아닐까 라고 막연히 짐작해본다. 대체로 용기로 번역하는 헬라스어가 thymos이다. 이것은 단순한 용기 정도가 아니라 뿜어져 나오는, 공격적인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지금 의기투합을 하는 장면이다. 이런 의기투합을 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은 일인데 "아버지께서도 나중에 아시게 / 되겠지요. 저는 생각하는 것이 결코 경솔하지 않으니까요." 이 부분여, 그러니까 영어판을 하나 사서 읽어보는 것이 굉장히 함축된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다음 시간에는 310행 이후부터 읽는다.  

(천병희 번역) 16.304 오직 너와 나, 우리 둘만이 여인들의 의도를 알아내도록 하자꾸나.

제10강 110 어쨌든 서로를 확인한 아버지와 아들은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공동의 전선을 형성하는 작업에 들어섭니다. 

(천병희 번역) 16.226-227 내 아들아! 너에게 사실대로 다 털어놓겠다. / 이름난 선원들인 파이아케스족이 나를 데려다주었다.  

(천병희 번역) 16.233-234 나는 지금 우리 둘이서 적군을 도륙할 일에 관해 / 의논하라는 아테네의 지시를 받고 이리로 오는 길이다. 

(천병희 번역) 16.238-239 우리 두 사람으로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지, 아니면 남들의 / 도움을 구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고 심사숙고해 볼 것이다. 

(천병희 번역) 16.300-303 내가 진실로 내 아들이고 우리 핏줄이라면 /어느 누구도 오뒷세우스가 집에 와 있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 라에르테스도, 돼지치기도, 하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 아니, 페넬로페 자신도 그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천병희 번역) 16.309-310 아버지! 제 마음이 어떠한지는 아버지께서도 나중에 아시게 / 되겠지요. 저는 생각하는 것이 결코 경솔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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