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20 제8강(1) 오뒷세이아

 

2023.05.16 문학 고전 강의 — 20 제8강(1) 오뒷세이아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8강(1)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5.223-224) 

“여보! 우리는 아직 모든 고난의 끝에 도달한 것이 아니오.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많고 힘들더라도 나는 그것을 모두 완수해야만 하오.
내가 전우들과 나 자신을 위해 귀향을 구하고자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가던 날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이 내게 그렇게 예언했소.”(23.248-253)

 

오늘부터는 문학 고전 강의 제8강 애타게 귀향을 원하는 오뒷세우스를 읽는다. 이 부분은 일단 문학 고전 강의에 있는 내용을 먼저 이야기하겠다. 이것에 관해서는 여러 번 다른 곳에서 이야기한 게 있기 때문에 그것을 포함하여 이야기한다. "오뒷세우스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칼륍소의 동굴'입니다. ··· '칼륍토'kalypto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는 '감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숨겨져 있는 것이다. 제5권부터 제12권까지가 오뒷세우스의 모험이고 제13권에 오면 이타케에 도착하다, 그러니까 13권부터는 이타케에 돌아온 이야기니까 귀향을 원하는 오뒷세우스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집에 가야지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난을 겪는 얘기이다. 그런데 꼭 고난을 겪어야 하나, 고통을 겪어야 하나 그것이 의문이기는 하다. 고난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지는 않을까. 인간 실존은 그것이 아닌 것 같다. 고난을 겪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 어쨌든 폭력에 맞서는 것 또는 환상 여행, 세이렌 자매의 유혹이 있고 그러니까 5권에서 12권 사이에 오뒷세우스가 겪게 되는 고난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고난은 꼭 겪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대결을 통해서 오뒷세우스는 자기에게 고유한 것을 가지게 됩니다." 문학 고전 강의에서는 단테 《신곡》 지옥편 제26곡에서 오뒷세우스에 대해서 서술한 것을 인용해두기도 하였다. 단테는 어떻게 보았는가, 궁금해서 적어두었다고 할 수 있다. "세상과 인간의 모든 악덕과 가치에 / 대해 완전히 알고 싶은 내 가슴속의 / 열망을 억누를 수는 없었노라." 그때도 썼지만 "단테는 오뒷세우스를 호기심에 가득 차 세상을 떠돌아다닌 인간"으로 보았는데 실제로 《오뒷세이아》를 읽어보면 그런 것은 아니다.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니다. 모든 모든 악덕과 가치에 대해 완전히 알고 싶은 열망 때문에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신들이 그렇게 하게끔 시켰다. 그랬으니까 그렇게 돌아다닌 것이지 세상 어느 누가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결코 그런게 아닌데 단테는 그렇게 본 것이다. 적어도 단테가 보기에 오뒷세우스는 지금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제5권을 보면 오뒷세우스는 칼륍소가 자기와 함께 있으면 좋다고 꼬드기더라고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한다.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않게 해주겠다, 얼마나 달콤한가. 달콤하고 좋은 것 같은데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안는다, 글쎄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은 때 이른 죽음이고 고통어린 죽음이다 라고 생각되는 것은 맞이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않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제8강 93 오뒷세우스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칼륍소의 동굴'입니다. 칼륍소는 요정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칼륍토'kalypto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는 '감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8강 93 이러한 대결을 통해서 오뒷세우스는 자기에게 고유한 것을 가지게 됩니다.

제8강 94 세상과 인간의 모든 악덕과 가치에 / 대해 완전히 알고 싶은 내 가슴속의 / 열망을 억누를 수는 없었노라. _《신곡》 지옥 편, 26곡, 97~99행

제8강 95 단테는 오뒷세우스를 호기심에 가득 차 세상을 떠돌아다닌 인간으로 본 것입니다.


오뒷세우스는 그런 말에 전혀 기울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바닷가에 앉아서 한탄만 하고 있다. 그게 5권의 151~158행에 나와있다. "눈물과 신음과 슬픔으로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고 / 눈물을 흘리며 추수할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필멸의 인간으로서 살겠다고 하면서 계속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런데 오뒷세우스는 이런 돌아가기가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다. 5권의 219~224행을 보면 오뒷세우스가 그것 자체로 훌륭한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날마다 집에 돌아가 / 귀향 날을 보기를 소망하고 열망한답니다. / 어떤 신이 검붉은 포도주빛 바다에 나를 난파시켜고 / 가슴속, 고통 견디는 용기를 갖고 참아낼 겁니다. /  나는 이미 엄청 많은 일 겪고 많이 고생했는데 / 파도와 전쟁에서죠. 여기에 이 고초가 더해지라 하지요." 천병희 교수님의 번역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집에 돌아가서 귀향을 날을 / 보기를 날마다 원하고 바란다오. 설혼 신들 중에 / 어떤 분이 또다시 포도줏빛 바다 위에 나를 난파시키더라도 / 나는 가슴속에 고통을 참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참을 것이오. /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여기서 포인트가 223행이다.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런데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이것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제껏 고생을 했는데 또 고난이 있으면 못견딜 것 같은 데가 아니라 고난이 더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겪어보겠다는 것이다. 더욱이나 오뒷세우스가 겪게 되는 고나는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종류의 고난이다. 이것은 그동안의 겪음을 통해서 뭔가 학습을 했다라든가 그런 것을 통해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분명희 새로운 종류의 고난이다. 그러니 지금 오뒷세우스가 본인이 어떤 고난을 겪을지 모르니 이렇게 굉장히 호기롭게 얘기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새로운 종류의 고난이 닥치면 이럴줄 몰랐어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정도의 고난이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데 오뒷세우스가집에 온 다음에 자기 아내 페넬로페에게 말을 한다. 23권 248~253행을 보면 "우리는 아직 모든 고난의 끝에 도달한 것이 아니오. /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 아무리 많고 힘들더라도 나는 그것을 모두 완수해야만 하오. / 내가 전우들과 나 자신을 위해 귀향을 구하고자 /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가던 날 /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이 내게 그렇게 예언했소." 지금 5권 223행과 23권 248행에 있는 것과 대조를 해보면 아직 고난이 시작되기 전에는 많은 고생을 했고 고난이 올테면 오라지 하고 호기롭게 얘기했는데 다 끝에 와서도 다시 얘기를 한다. 모든 고난의 끝에 도달한 것이 아니오. 이것은 거의 인생에 통달한 사람, 완전한 관상에 이른 사람이다. 그래서 오뒷세우스가 우리가 마지막에 읽게 되는 허먼 멜빌의 에이해브처럼, 에이해브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에이해브는 달관한 사람은 아니고 막가는 사람이고, 오뒷세우스는 거의 달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이 오뒷세우스의 일생은 휴식 없는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는 것이 오뒷세우스의 정체성이다. 여기까지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오뒷세우스는 자기가 트로이야의 전쟁터에서 겪었던 고난들이 예행연습이 되어서 지금 5권에서 12권 사이에 겪을 고난들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전혀 안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고난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다.  

(천병희 번역) 5.157-158 눈물과 신음과 슬픔으로 자신의 마음을 괴룁히고 있고 / 눈물을 흘리며 추수할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김기영 번역) 5.157-158 s눈물과 탄식과 고통에 제 마음을 찢고 있었고 / 눈물을 뿌리며 지침 없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천병희 번역) 5.219-224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집에 돌아가서 귀향을 날을 / 보기를 날마다 원하고 바란다오. 설혼 신들 중에 / 어떤 분이 또다시 포도줏빛 바다 위에 나를 난파시키더라도 / 나는 가슴속에 고통을 참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참을 것이오. /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김기영 번역) 5.219-224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날마다 집에 돌아가 / 귀향 날을 보기를 소망하고 열망한답니다. / 어떤 신이 검붉은 포도주빛 바다에 나를 난파시켜고 / 가슴속, 고통 견디는 용기를 갖고 참아낼 겁니다. /  나는 이미 엄청 많은 일 겪고 많이 고생했는데 / 파도와 전쟁에서죠. 여기에 이 고초가 더해지라 하지요. 

(천병희 번역) 23.248-253  여보! 우리는 아직 모든 고난의 끝에 도달한 것이 아니오. /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 아무리 많고 힘들더라도 나는 그것을 모두 완수해야만 하오. / 내가 전우들과 나 자신을 위해 귀향을 구하고자 /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가던 날 /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이 내게 그렇게 예언했소. 
(김기영 번역) 23.248-253 여보, 아직은 우리가 모든 시련의 끝에 도달한 게 / 아니니, 이후에도 측량할 수 없는 과업이 있을거요, / 그것은 많고 어려운 과업으로, 내가 반드시 이뤄야 하오. / 그렇게 테이레시아스의 혼령이 내게 예언했는데 / 내가 하데스의 집 안으로 내려가서 / 전우들과 나 자신의 귀향을 모색하려 했을 때요. 


예전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은 후 서사적 자아에 대해서 포스타입에 적어 둔 것이 있다. 2022년 10월 6일에 업로드 한 것인데 "세계와 자아의 지속적인 대면(Interaktivität)을 통해서 성립되는 잠정적 성과물로서의 자아"라는 부분이다. 오뒷세우스의 경우에는 "트로이아에서 얻은 명성은 귀환 과정에서 소실, 전리품 상실, 오귀기아Ōgygia 섬의 칼륍소Kalypsō에 붙잡힘으로써 완전한 무화無化 상태"에 이르게 됐다. 제로베이스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뗏목을 만들어서 새로운 자아를 구축하기 위해 준비하고 그러다가 고향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죽음과 마주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장면들이 5권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오뒷세이아》 제5권은 굉장히 많은 과거가 소실되고 새로운 곳으로 도전하고 나아가려고 하고 하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되어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일단 오늘은 오뒷세우스가 고난을 겪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고난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23권에서 또 이야기한다, 이것을 생각해 두고 그런데 5권부터 겪게된 고난의 과정에서는 이전에서 배웠던 것을 완전히 제로베이스로 돌려버리고 다시 출발하게 된다는 것, 여기까지 이야기하겠다.  

fromBtoB(https://frombtob.postype.com/post/13199576)
2022.10.06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통독 — 40 서사적 자아
세계와 자아의 지속적인 대면(Interaktivität)을 통해서 성립되는 잠정적 성과물로서의 자아

- 오뒷세우스의 경우
트로이아에서 얻은 명성은 귀환 과정에서 소실, 전리품 상실, 오귀기아Ōgygia 섬의 칼륍소Kalypsō에 붙잡힘으로써 완전한 무화無化 상태 —> ‘좋은 것’, 즉 ‘같은 마음’(homophrosynē)을 얻기 위해 고향으로 출발 —> 타자(폭력과 유혹)와의 대결 후 페넬로페Pēnelopē와 해우 —> 다시 집을 떠남(테이레시아스의 예언, 11.9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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