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34 제14강(1) 구약 성서 〈욥기〉

 

2023.07.11 문학 고전 강의 — 34 제14강(1) 구약 성서 〈욥기〉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14강(1) 
3~11장: 세 친구들과의 첫째 대화
12~20장: 세 친구들과의 둘째 대화
21~31장: 세 친구들과의 셋째 대화
32~37장: 엘리후의 일방적인 연설
38~42장 6절: 야훼와 욥의 대화

3장: 욥의 저주와 한탄
4~5장: 인과응보에 대한 엘리바즈의 일반적 논의
6~7장: 욥의 저주와 한탄 심화, 욥이 자기 파괴를 요구함
8장: 인과응보에 대한 빌닷의 논의
9~10장: 이 신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확신함
11장: 신의 불가지성에 대한 소바르의 논의

 

욥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경건함이다. 경건함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가지고 우리는 경건함을 판단한다.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는데 평생 착한 일만 하다 죽었다고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그 행위에 근거해서 착한 사람이다 라고 판단을 하지 않겠는가. 내면의 선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행위를 통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심리학이라고 하는 학문도 내면심리학 이런 것은 없다.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행위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니까 행동심리학이다. 심리학이라고 하면 그 앞에 괄호하고 행동이라고 하는 말이 적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전에는 심리학도 철학의 한 분과인 정신철학의 한 영역으로 들어 있었다. 해결의 엔치클로페디Enzyklopädie을 보면 주관적 정신의 철학, 객관적 정신의 철학, 절대적 정신의 철학 이렇게 해서 정신 철학이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주관적 정신의 철학에서 첫 번째 부분이 영혼에 대해 다루는 것이고, 두 번째 부분이 정신의 현상학, 그다음에 세 번째가 심리학이다. 《제국》이라는 책을 쓴 헤어프리트 뮌클러Herfried Munkler의 스승이 이링 페처Iring Fetscher라고 하는 사람인데 이링 페처가 쓴 책 중에 해결 정신철학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는 결코 지나가서는 안 되는 책이 있다. 어쨌든 이제 셋째 부분이 심리학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그것이 바로 객관적 정신의 철학인데 객관적 정신의 철학이라고 하는 건 우리가 정신의 사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제도라든가 이런 법, 역사 이런 것들을 다루는 부분이다. 그래서 흔히 알려져 있는 법철학이라고 하는 부분, 또 역사 철학과 법철학이 객관적 정신의 철학의 영역에 있다. 어쨌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그런 것들이기 때문에, 정신의 외적인 형태의 현상 형태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경건함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것인데 마음은 굉장히 경건한 사람이에요 라고 말할 때 그것은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명제는 아니다. 

 

오늘 읽는 제14강의 제목이 "자신을 저주하다가 신에게 반항하는 욥"이다. 이제 그 경건함이라는 게 한계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3장부터 31장까지는 욥과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이고, 그다음에 처음에는 오지도 않았던 엘리후가 느닷없이 32장에 나타나서 일방적으로 연설을 하게 된다. 욥기는 대화체인데 엘리후의 일방적인 연설 부분은 대화가 아니다. 엘리후 혼자만 이렇게 떠드는데 이게 왜 이렇게 되어 있을까. 《욥기와 만나다》를 보면 이런 것들에 대한 문헌학적인 해명들이 있다. 《욥기와 만나다》는 욥기를 읽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욥기를 읽은 다음에 의문나는 점들을 좀 더 추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읽는 참고서이다. 이런 것들이 참고서이다. 입문서와 참고서의 차이점이 그런 것이다. 참고서는 일단 읽은 다음에 읽은 것이고, 입문서는 읽기 전에 읽는 것이다. 그런데 입문서만 한없이 읽다 보면 영원히 못 읽는 수가 생기니까 저는 입문서를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3장부터 31장까지가 세 친구들과의 대화, 세개의 대화가 있다. 대체로 봐서 10개 정도 챕터를 각각 하나의 대화에 할당하고 있다. 분량도 적당히 필요하다. 고전 텍스트들은 분량이라든가 이런 형식적인 측면에 굉장히 비중을 두고 신경써서 작업을 한다. 이제 친구들이 오니까 이야기를 하면서 입술로 죄를 짓기 시작한다. 혼자 계속 있었으면 독실하게 경건함을 지켰을 텐데 이걸 못 지켜버린 게 이게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그다음에 어쨌든 32장에서 37장까지가 엘리후의 일방적인 연설이고, 그다음에 38장에서 42장 6절까지가 야훼와 욥의 대화이다. 야훼와 욥이 대화한 건 딱 이때 뿐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을 저주하다가 신에게 반항을 했는데 자기가 잘못한 걸 회개하고서 신에게 무릎을 꿇는 부분이 38장부터 나온다. 이 부분이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그런 대화이다. 제가 읽으면서 욥기의 가장 어려운 부분, 이건 도대체 나는 모르겠다, 그냥 읽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 그냥 읽는다 하는 게 38장에서 42장 6절까지의 대화이다. 이건 해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인생에서 영원히 해명되지 않은 상태로, 이건 결단resolution에 의해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성찰reflection로는 안 되고 resolution으로만 되는 그런 영역인 것 같다. 친구들과의 대화 세계는 그런 저런 읽어지고, 엘리후의 일방적인 연설은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한 번 들어줄 만은 하다. 어쨌든 3장부터 42장 6절까지의 이 구조는 알아두어야 되겠다.  

 

3장에는 욥의 연설, 저주와 한탄이 있다. 첫째 대화에서는 일반적인 인과응보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가 어떤 고난을 당했을 때 이걸 어떻게 이해를 할 것인가, 일반적인 인과응보에 관한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것을 안 하고 남탓 하면 나르시시스트이다. 아주 심각한 악의 하나이다. 악의 속성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걸 악이라고 한다 하는 게 심리학에서 정해놓은 게 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센 게 나르시시스트이다.  다시 인과응보 얘기가 있다가 그다음을 보면 11장에서 소바르가 우리는 신이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 없고 신의 자비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라고 말하며 끝난다. 그래서 3장부터 11장까지 첫째 대화를 살펴보면, 인과응보에 관한 얘기 부분이 가장 읽어볼 만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다음에 이제 둘째 대화는 지나가고, 셋째 대화가 말하자면 신정론, 악에 관한 문제이다. 그래서 14강은 이 분야에 관한 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일반적인 설명인 인과응보부터 시작해서 신정론까지 골고루 있기 때문에 욥기를 읽어서 내가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14강을 일단 좀 촘촘하게 읽고, 그다음에 욥기를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 제가 지금 제안하는 방법이다.  

 

욥과 세 친구의 첫째 대화를 도식으로 만들어 보면 욥의 저주와 한탄이 있고, 그다음에 인과응보에 대한 엘리바즈의 일반적인 논의, 욥의 저주와 한탄 심화, 욥이 자기 파괴를 요구함, 인과응보에 대한 빌닷의 논의, 인과응보에 대한 빌닷의 논의, 그 다음에 욥이 신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확신한다.  그러다가 소바르가 신의 불가지성에 대한 논의를 한다. 

《문학 고전 강의》에서는 3장 1절에서 10절까지를 촘촘하게 읽는데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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