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2024.01.02 문학 고전 강의 — 77 근대 문학 고전 일반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근대 문학 고전 일반
2024년 문학 고전 강의를 시작하겠다. 작년에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까지 읽었고 이제 파스칼의 《팡세》, 괴테의 《파우스트》, 멜빌의 《모비 딕》 이렇게 세 개의 세 작품을 남겨두고 있다. 원래 성북정보도서관에서 강의할 때는 키에르케고르도 읽었는데 키에르케고르를 문학작품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해서 책으로 쓸 때는 뺐다. 기회가 만들어질 거라고 보고 있고, 실행 계획도 가지고 있다. 실존주의 또는 실존철학 또는 실존문학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그때 다시 검토해보려고 한다.
역사적인 고찰들을 해보면 근대라고 하는 시기는 거의 아무런 의미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는 그런 용어이다. 그래서 근대로 들어와서 라고 했을 때 도대체 언제인지가 말하기 어렵다. 마르틴 루터의 시기인가 아니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근대인가 또는 프랑스혁명쯤 되어야 근대가 아닌가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근대라고 하는 말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도 괜찮다. 도대체 어떤 시기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여튼 근대의 텍스트라고 그냥 말하겠다.
《팡세》, 《파우스트》, 《모비 딕》의 텍스트에 대한 설명들을 하겠는데 많이 부족하다. 지금 여기서 다루고 있는 텍스트 중 《모비 딕》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는데, 그래도 기독교 전통christian tradition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비 딕》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누구인가부터 일단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저는 에이해브를 좋아하지만 화자인 이슈메일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에이해브는 아주 명백하게 이교도pagan이다. 문학 작품 속에서 가장 성공한 이교도가 누구냐고 물으면 에이해브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 이교도라고 하는 말은, 애초에 christian tradition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플라톤 같은 사람들도 이교도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이교도이다. 즉 christian tradition을 극복한 이교도이다. 플라톤은 christian tradition을 극복할 필요가 없는 아주 원초적인 이교도, 그러니까 즉자적an sich 이교도라면 에이해브는 아주 즉자대자적인 이교도라고 말할 수도 있니다. 그런 얘기는 《모비 딕》을 읽을 때 다시 하기로 하고 《팡세》, 《파우스트》, 《모비 딕》이라고 하는 세개의 텍스트는 기독교 전통christian tradition과는 결코 빼놓을 수가 없는 중요한 텍스트가 되겠다. 트루나이젠이 얘기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의 텍스트들도 아주 강력한 동방 정교회의 배경을 놓고는 빠뜨리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니까, 사실 여기에서 《문학 고전 강의》에서 도스토옙스키까지 읽었으면 참 대단할 뻔했는데, 지금은 편협한 고전 텍스트이다. 서구 고전에서 기독교라고 하는 것을 빼놓고 설명한다는 것은 서구 고전을 안 읽겠다는 얘기이다. 《모비 딕》과 《팡세》는 아주 대척점에 서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제32강을 보면 스스로 ‘불멸’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는 개인의 고투, 제33강이 신으로부터 멀어져 본성이 타락하게 된 인간, 제34강이 《성서》를 통해 다시 신에게로 향하는 속죄자 인간이다. 여기 붙여놓은 소제목을 보아도 인간이 얼마나 신을 열심히 갈망하고 있는가를 《팡세》를 보면 알 수 있다. 파스칼이 우는 소리를 굉장히 많이 한다. 얀센주의자들은 그런 것이 경건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들의 경건함이라고 하는 것, 이들의 정서적인 어떤 특징들, 이런 것들은 단순히 신앙이라고 하는 것만 가지고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스펙트럼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서구 중세 사람들은 그 이름 붙이지 않았던, 뭔가 있긴 있는 감정, 그들이 뭐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던 낯선 감정들에 대해서 근대에서는 이름을 붙이게 되고, 그런 이름을 통해서 감정에 대해서 규정하게 되고, 그렇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렇게 호명함으로써 남들과 그것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니까 경건함이다 라고 하는 것들도 중세인이 생각하는 경건함과 근대인이 생각하는 경건함은 굉장히 다르다. 그래서 아주 독실한 기독교도다 라고 하는 것도 의미가 굉장히 다를 수 있다. 더욱이나 같은 근대인이라 하더라도 《팡세》에 등장하는 기독교도와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기독교적인 어떤 생각과는 이것 자체가 다르다. 결국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서로 반응을 주고받는가,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가 이런 것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드라마 《맥베스》나 《오셀로》의 정서적인 세계들에서는 인간이 보여주는 자신만만함이라는 게 있다. 르네상스적 인간들은 자신만만함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다 해치울 수 있어 하는 그런 자신만만함이 있는데, 《팡세》나 《파우스트》나 이런 데서 나타나는 인간들은 르네상스적 인간들보다 자신만만함이 많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근대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다니는 것이 굉장히 자신만만한 모습인 것 같지만 어찌 보면 굉장히 불안함에 쫓기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팡세》나 《파우스트》나 《모비 딕》이나 이런 텍스트들을 관통하고 있는 일반적인 정서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이라고 하는 것도 시대마다 불안의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불안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전형적인 근대적 감정, 근대적 정서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특정하게 나를 무섭게 하는 대상이 있으면 공포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이다 이렇게 얘기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면 중세 사람들은 신을 두려워했으니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그래서 불안이 있지 않았을까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불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신은 명백하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상을 아는, 내가 신을 안다, 그런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은 불안이 아니다. 불안이라고 하는 건 막연한 것인데 파스칼은 그게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파우스트》나 《모비 딕》에서는 그런 게 드러나 보인다.
《팡세》는 속죄하는 인간인데 반해 《파우스트》는 삶과 앎과 자연의 합일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인간 편력이다. 이 낭만주의자들이 어떻게 보면 르네상스 인간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이 그들의 경건주의와 연결되는 지점도 있지만 그때 그 경건주의라고 하는 건 결코 겸손주의는 아니다. 그 경건주의라고 하는 게 굉장히 무섭다. 감리교도들wesleyan의 영향도 있다. 제36강 감각적 삶을 통해 감각을 초월하고자 노력하는 파우스트, 제37강 심오하고 포괄적인 가치의 영역으로 올라서는 파우스트. 괴테가 그리고 있는 파우스트라고 하는 사람의 삶의 편력을 보면, 괴테의 작품은 단연 파우스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경우는 연습, 파우스트를 위한 연습이라고 본다. 내면을 가다듬는 교양소설, 도야소설Bildungsroman도 경건주의와 낭만주의가 결합이 되고, 그것을 가장 결정적으로 집약하고 있는 작품이 《파우스트》이다.
그다음에 멜빌의 《모비 딕》은 위엄 있는, 신을 믿지 않는, 신을 닮은 선장 에이해브. 아주 우뚝 선 pagan이 등장하면서 기독교적 전통을 무너뜨리고 다시 한 번 자신감이 넘치는 인간이 등장했는데 죽어버렸다. 그래서 참 굉장한 파토스가 넘쳐 흐르게 된다. 《팡세》, 《파우스트》, 《모비 딕》 다 해서 9개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는 부분을 이제 읽는다.
오늘은 전반적인 얘기를 간단하게 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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