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헹엘: 유대교와 헬레니즘 2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2. 26.
유대교와 헬레니즘 2 - 마르틴 헹엘 지음, 박정수 옮김/나남출판 |
제3부 팔레스타인의 유대교와 헬레니즘적 시대정신의 만남과 대결
제1장 구약정경의 후기 히브리문학에서 나타난 이른바 그리스 영향 15
제2장 초기 헬레니즘시기 유대 문학의 발전 21
제3장 전도서와 유대 종교 위기의 시작 35
제4장 벤 시라와 예루살렘의 헬레니즘적 자유사상가의 대결 83
제5장 유대·헬레니즘적 사고의 만남: 유대교의 지혜문학적 사변 139
제6장 하시딤과 유대교 묵시사상의 첫 번째 절정 209
제7장 초기 에센주의 327
제8장 요약: 헬레니즘에 대한 수용과 저항 사이의 팔레스타인의 유대교 421
부 록 439
제8장 헬레니즘에 대한 수용과 저항 사이의 팔레스타인의 유대교
421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시대가 막을 내리고 헬레니즘적 통치가 시작되는 시대에 유대교의 정신적 상황에서 특이한 점은, 이토록 작은 민족공동체 내부에서 그토록 풍부한 정신적 삶을 보여주는 유대교 문학은 놀랍도록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학적 활동의 중심에 아마 '지혜학파'가 존재했을 것이다. 이 학파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흐름이 표출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서 가장 강력했던 그룹은 범세계적인 지혜전승과 전통적인 경건을 융합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한 태도는 대략 잠언 1-9장에 나타나는데, 시편 119장이나 시락서 지혜와 율법이 동일시되는 사상에서 출발하여 발전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밖에도 우리는 욥기와 전도서에서 보편적이고 비평적인 경향을 갖는 두 번째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또 다른 세 번째 흐름에서는 후대에 하시딤과 초기 묵시문학이 발전되어 나왔던 경향이 존재하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예언전승의 유산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으로도 저 헬레니즘시대의 정신적 다양성에 대한 뚜렷한 윤곽이 아직 다 그려진 것온 결코 아니다. 그러한 다양성은 어떤 하나의 통일된 공통분모하에 묶어 둘 수 없을 만큼 본질적인 차이점들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주요 흐름들에는 공통적으로 강력한 이성적인 사고가 존재한다. 이 사고는 특별히 추상적 개념형성을 선호한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422 전체적으로 기원전 3세기에는 분명 율법을 엄정하게 준수했던 집단조차도 이방의 영향에 대해 여전히 개방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기원전 2세기 초반에 강력한 혼합주의적 요소 로 뒤섞인 하시딤의 묵시사상의 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초기 시대에 그리스인들이 유대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은, 당시 아직은 개방적이었던 유대인들의 태도와 부합한다.
422 대략 기원전 3세기 중반경, '전도자'는 전통적인 학파지혜의 정신적 · 종교적 토대와 비판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의(義) 자체는 물론, 신이 그것으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의미도 인간에게는 결코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어찌할 수 없이, '숙명'에 던져져 있다. 숙명은 자신으로서는 이해될 수 없고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어 있으며, 때로는 부당해 보이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죽음을 통해서 그 전제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적 가치는 회의적이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할당해 주신 "몫"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축소된다. 기도와 종교제의는 공허하고도 전통적인 형식이 된다. '전도자'가 그리스 사상에 참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회의주의에 나타난 차디찬 체념의 분위기로 보건대 그의 사상에는 기원전 5세기 후반 이래 그리스 세계에 서 일어나기 시작한 전통종교에 대한 비판이 표현되고 있다고 파악할 수 있다.
425 토라는 모든 랍비적인 삶과 사고의 중심과 목적이 된다. 이러한 '토라 존재론'이 가져온 하나의 결과는 ━ 알렉산드리아에서와 유사하게 ━ 역사의식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리아의 특징과 유대적인 특성을 갖는 이 '종교철학'은 자신의 선교적 과제를 확고히 하였고, 근본적으로는 헬레니즘적인 환경에 자신을 개방한 반면, 랍비 유대교는 특히 기원후 70년 이후 외부와 점점 더 결별하게 되었다.
426 묵시사상의 인식론적인 토대는 특별한 신적인 '지혜가 역사와 우주, 천상의 세계, 그리고 종말 때의 개인의 운명까지도 '계시'한다는 사상이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 계시를 알 수 없다. 비록 이 사상 자체는 유대교의 후기 지혜가 갖는 '백과사전적인' 지식의 욕구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았지만, 학파전승도 그렇거니와 관찰이나 경험에 기초하는 전통적인 지혜와도 결정적으로 구별된다. 지혜와 예언은 여기서 서로 합류된다: 예언자는 현자요, 현자는 예언자이다. 지혜와 계시를 이해함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사상적 발전은 그리스적인 합리주의에 대한 동방세계 종교들의 대응이라는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대교의 묵시사상은 점성술과 함께 자료를 통해서 입증될 수 있는 최초의 저항운동을 이끌었는데, 이를 '계시를 통한 고등지식의 추구'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예루살렘의 헬레니즘적 개혁과 그에 따른 마카베오 봉기를 통해 드러난 유대민족의 깊은 위기감은 그러한 저항운동을 완성하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428 헬레니즘적 환경에 완전하게 동화하고자 압력을 가했던, 저 영향력 있는 유대집단들은 마카베오 봉기가 승리로 귀결되면서 팔레스타인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또 기원전 2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형성되고 있었던 유대교의 '당파들' 사이에서 토라의 유효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민족은 마카베오 독립전쟁의 승리가 가져다준 유대교적인 통일성 안에서, 자신들을 하나의 통일체로 결합하는 일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토라를 비평하게 되는 운동은 이제 팔레스타인에서 좌절된다는 사실이 판명되기는 했지만, 토라를 권위 있게 해석하려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유발시켰다. 헬레니즘적 영향을 과도하게 강화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며 타올랐던 종교적 엄정주의는 기원후 1세기 젤롯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순조롭지 못한 영향을 미쳤다.
429 이방적인 '지혜'를 가장 통렬히 거부하였던 곳에서조차 헬레니즘적 · 동방세계적인 영향이 일어났다는 사실 또한 우리의 이목을 끈다. 이 영향은 하시딤적인 묵시사상과 에센파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약하기는 하지만 바리새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의 제2부 결론부에서 이미 관찰했던 바, 팔레스타인 유대교 역시 '헬레니즘적 유대교'라고 명명해야 한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확증된다.
430 헬레니즘 · 로마시대의 예루살렘은 전 세계의 디아스포라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났던 하나의 '국제도시'였다. 최초로 아리스토불로스에게서 발견되는 알렉산드리아의 '지혜사변'은 분명히 팔레스타인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는 후대의 랍비들의 '토라 존재론'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반대로 임박한 종말을 대망하는 것과 묵시사상의 영향은 결코 팔레스타인으로만 축소될 수는 없다. 묵시사상은 디아스포라에서도 매우 중대한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431 마카베오의 봉기와 예루살렘의 멸망 사이의 시기에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가진 경건이 묵시적인 종말대망에 의해 상당히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그러한 대망을 하나의 통일적인 실체로 보고 도식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그 관점은 여러 가지 미묘한 차이가 내포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경건에서 현재와 미래의 구원을 대망하는 것은 상호 배타적인 대립쌍을 형성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공간적인 하늘에 대한 관념 역시 그러하다. 이 사실은 대략 바울의 서신들 혹은 히브리서의 해석에서 잘 관찰될 수 있다. 묵시사상의 중요성은 그것이 헬레니즘의 신비주의와 신비종교에 대한 유대교적 대웅쌍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은 구약의 역사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434 강력한 종말론적 희망과 그에 부합하는 역사관이 초기 바리새주의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에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은 결국 바울사상의 묵시적 토대까지도 해명해줄지 모른다. 오늘날 자주 토론되는 바울과 에센파 간에 드러나는 문헌적 유사성에 관한 문제는, 에센주의와 바리새주의가 심각하게 상호적대적인 성향을 갖지만 도리어 신학적인 관점에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 근접해 있다는 사실로 소급될 수 있다. 물론 두 사상은 하시딤이라는 동일한 뿌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헬레니즘적 개혁에 대한 저항과 마카베오 봉기가 만들어 놓은 상황은 근본적으로 신약시대의 팔레스타인의 종교적 상황을 규정함은 물론, 디아스포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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