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헹엘: 유대교와 헬레니즘 1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2. 26.
유대교와 헬레니즘 1 - 마르틴 헹엘 지음, 박정수 옮김/나남출판 |
추천사 / 김세윤 7
옮긴이 머리말 15
제3판 머리말 29
제2판 머리말 37
제1판 머리말 39
서론 41
제1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교와 초기 헬레니즘 문명의 만남
제1장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틀: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전략적 요충지 55
제2장 그리스-헬레니즘적 군무(軍務)와 유대인 77
제3장 헬레니즘적 지배하 팔레스타인의 행정과 세금 97
제4장 팔레스타인의 무역, 경제, 사회제도에 미친 헬레니즘의 영향 143
제5장 요약: 팔레스타인의 비종교적 세력으로서의 헬레니즘 문명 211
제2부 헬레니즘의 문화적 위력과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에게 미친 영향
제1장 팔레스타인의 유대교와 그리스어 221
제2장 그리스 교육과 교양교육, 팔레스타인 유대교 243
제3장 팔레스타인의 그리스 문학과 철학 293
제4장 요약: ‘헬레니즘적 유대교’로서 팔레스타인의 유대교 357
부 록 367
한국어 머리말
7 마르틴 헹엘 교수에 의해 저작된 이 책은 주전 333-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집트 원정 중 정복된 팔레스타인의 유대민족이—차례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를 받는 동안―주전 2세기 중반까지 헬레니즘과 어떻게 조우하였으며, 유대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다룬다. 이 책의 논지는 "대략 주전 3세기 중반부터 모든 유대교는 엄격한 의미에서 '헬레니즘적 유대교'로 특징지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러기에 "'팔레스타인적 유대교'와 '헬레니즘적 유대교'를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9 헹엘 교수는 자주 옛 종교사학파를 신랄히 비판하였다. 그것은 첫째, 그들이 부족한 자료들을, 그것도 엄밀히 비평하지 않고 사용하면서, 헬레니즘과 유대교를 엄격히 구분하고, 또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헬레니즘적 유대교를 엄격히 구분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그러한 오류에 근거하여 신약시대의 기독교를 "팔레스타인 (유대) 기독교"와 "헬레니즘적 기독교"로 엄격히 구분되는 두 범주, 또는 그 사이에 "헬레니즘적 유대 기독교"가 끼어 넣어진 삼각구도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구성한 유대 지역의 원시교회는 예수를 "종말의 선지자"나 랍비, 또는 종말에 올 "인자" 메시야 정도로만 인식한 "팔레스타인 유대 기독교"로 규정하고, 바울 서신들이나 요한 문서 등에 나타나는 기독론과 구원론一즉, 예수가 선재하고, 성육신하며, 속죄제사로 자신을 바치고, 하나님 우편으로 승귀하였다가 세상의 구원과 심판을 위하여 재림할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주"라는 고백━은 헬레니즘 종교들의 영향을 받은 헬레니즘적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영지주의 (특히 그것의 구원자 신화)와 신비종교들의 신화들을 예수에게 적용하여 생성한 것들이라고 주장하여, "역사적 기독교"를 헬레니즘 세계 의 한 혼합종교 현상으로 오해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서론
41 신약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있어 '유대교'와 '헬레니즘'을 전승사적으로 구별하는 작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당연해 보일 수 있는 근본적인 전제에 속한다. 사람들은 '유대교 묵시사상'과 '헬레니즘적 묵시사상'을, '유대·랍비 전승'과 헬레니즘적·동방세계적 영지 사상'을,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헬레니즘적 유대교'를, '팔레스타인' 공동체와 '헬레니즘적' 공동체를 구분한다. 무엇보다도 이 개념들을 연구하는 작업은 그러한 2개의 '전승 노선'들 사이에 대체로 하나의 구분을 초래하는데, 이는 종종 구약과 그리스 고전기까지 소급된다. 이런 불가피한 분리는 예수시대의 팔레스타인이 이미 360여 년간 '헬레니즘'의 지배와 그것이 초래한 문화적 영향 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간과하고 만다. 헬레니즘 문명이 신약시대에 유대·팔레스타인에서 오랫동안 파란 많은 역사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41 신약을 연구하면서 불가피한 이런 분리의 논점들을 도식적이지 않고 적절하게 구별하려면 반드시 이 역사의 결과를 고찰해야 한다. '신약시대사'라는 불행한 명칭 아래 너무 성급하게 지나치고자 하는 기독교의 이 직접적인 '전사'(前史)는 신약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한 불가결한 토대이다.
45 물론 헬레니즘의 개념을 시기적으로 구분하는 것과 내용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다. 여기서 문제는 무엇보다도 이 개념이 다양하게 사용되어 너무나도 불명확하고 모호하게 되었다는 것, 또한 그 내용이 보는 관점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헬레니즘시대가 기원전 4세기의 예비과정을 거쳤고, 이미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에 앞서, 특히 페니키아와 이집트에서 그리스 문화유입이 가시화되었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1권
358 문학과 철학교육의 중심지들은 알렉산드리아뿐 아니라 페니키아 도시들과 팔레스타인의 헬레니즘화된 몇몇 도시들에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 도시들은 중요한 시인들과 철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사상은 주로 셈족 출신의 철학자에 의해 창시된 스토아주의였는데, 이는 헬레니즘시대의 지배적인 철학이었다. 이와 더불어 기원전 2 세기부터는 학파들의 절충적인 혼합이 가시화되었는데, 시리아·페니키아 출신의 철학자들이 여기에 기여했다. 그리스식 교양교육의 침투는 팔레스타인에서 그리스어로 기록된 유대교 문학이 시작된 것으로도 입증된다.
359 전체적으로 보면, 헬레니즘은 정신적인 영향력을 과시함으로써 이미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유대 팔레스타인에 그 족적을 남겼다. 이로 보건대,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헬레니즘적 유대교를 구별하는 통상적 관점을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구별은 주제개념을 오도하고 마치 지리적 개념으로 대립된 양 잘못 사용될 뿐만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 유대교의 새로운 상황을 오해하게 한다. 대략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전체 유대교는 엄격한 의미에 '헬레니즘적 유대교"로 특징지어져야 하며, 구별하려면 차라리 서부 디아스포라의 그리스어 사용권 유대와, 팔레스타인 내지 바빌로니아의 아람어 혹은 히브리어 사용권 유대교로 구별하는 것이 더 낫다.
362 팔레스타인 공동체들이―아마 더욱 적극적으로―그리스어를 사용했다는 전형적인 특징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리스어 사용능력은 당연히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이라는 표지였고, 이들이 유대·팔레스타인 지역 밖의 세계와 더 많이 접촉했고 더 나은 교육을 받았다는 표지였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마태복음은 팔레스타인에서 그러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기독교 그룹에서 생겨나지 않았는가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62 신약시대 유대·팔레스타인의 그리스어와 그리스 교양교육과 문화의 확산을 연구하는 것은, 비록 지난 수십 년간 그 자료의 수가 상당히 증가했을지라도 이제 새로운 시작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주요 자료들 중 하나인 랍비전승들이 단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해, 더 이상 그렇게 크게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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