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전설의 땅 이야기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4. 15.
전설의 땅 이야기 -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열린책들 |
서문
1. 평평한 지구와 대척지
2. 성서 속의 땅
3. 호메로스와 7대 불가사의의 땅
4. 동방의 신비, 알렉산드로스부터 사제왕 요한까지
5. 지상 낙원, 축복받은 자들의 섬, 엘도라도
6. 아틀란티스, 뮤, 레뮤리아
7. 울티마 툴레와 히페르보레아
8. 성배의 이동
9. 알라무트, 산상의 노인, 아사신파
10. 코케인의 땅
11. 유토피아의 섬들
12. 솔로몬의 섬과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13. 지구의 내부, 북극 신화, 아가르타
14. 렌르샤토의 발명
15. 허구적 장소와 그 진실
부록
서문
이 책은 전설의 땅과 장소를 다루고 있다. 굳이 땅과 장소라고 한 이유는 그것이 아틀란티스 같은 대륙일 수도 있고, 혹은 도시나 성(城)일 수도 있고, 혹은 베이커 가와 셜록 홈스의 경우처럼 아파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허구의 장소를 소개하는 사전은 많지만(가장 완벽한 것은 알베르토 망겔과 잔니 과달루피의 탁월한 『상상의 장소 사전』이다), 이 책에서는 허구 속에서 만든 장소까지 포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까지 포함한다면 보바리 부인의 집과 『올리버 트위스트』의 파긴의 소굴 『타타르스텝』의 바스티아니 요새도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광적인 독자들이 이런 소설 속의 장소들을 실제로 찾아 나서지만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소설 속 장소가 실제 존재하는 장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을 경우, 독자들은 애독서 속 장소의 흔적을 찾아내려 애쓰기도 한다. 『율리시스』의 독자들이 매년 6월 16일에 더블린의 이클레스 가에서 레오폴드 블룸의 집을 찾아보거나, 마텔로 탑—지금은 조이스박물관一을 방문하고, 어느 약국에서 1904년 블룸이 샀다는 레몬 비누를 사려고 하는 경우가 그런 예다.
심지어 허구 속의 장소가 실제 장소와 동일시되는 경우도 있는데, 탐정 네로 울프의 맨해튼 브라운스톤이 그렇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많은 이들이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한다거나 존재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현재나 과거에 망상과 유토피아, 환상을 만들어 낸 땅과 장소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가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있다. 전설에서 다루는 땅이 확실하게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옛날에는 그런 땅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아틀란티스가 그런 경우인데, 지극히 제 정신인 많은 사람들이 그 마지막 흔적을 찾아내려 애써 왔다. 그리고 많은 전설에서 언급되었어도 그 존재가 (비록 멀다 해도) 의심스러운 샴발라 같은 땅도 있다. 샴발라에 대해서는 순전히 〈영적〉으로 존재하는 곳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에, 그곳은 샹그릴라 같은 허구적 이야기의 산물이라고 확신하며, 쉽게 믿어 버리는 관광객을 상대로그 아류들이 계속 생산되고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밖에도 〈지상낙원〉이나 세바의 여왕의 나라처럼 성서 텍스트에서만 주장되는 땅들도 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땅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런 땅이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제왕 요한(프레스터 존)의 나라처럼 가짜문서에 의해 탄생했지만, 그럼에도 탐험기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두루 여행하게 만들었던 땅도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까지 실제로 존재하는 땅들이 있다. 때로는 폐허가 된 형태로 존재하는 이런 땅을 둘러싸고 하나의 신화학이 성장해 왔는데, 아사신파Assassins의 전설적인 그림자가 떠도는 알라무트 성채, 지금은 성배 신화와 연관지어진 글래스톤베리, 또는 아주 최근에 상업적 억측에 의해 전설이 된 렌르 샤토나지조르 성 등이 그런 예다.
한마디로, 전설의 땅과 장소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으며 딱 한 가지 특징을 공유할 뿐이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기원을 알 수 없는 고대 전설에 근거하든 아니면 현대적인 발명의 산물이든 간에, 그것이 믿음의 흐름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이 환상의 실제가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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