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하비: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 10점
데이비드 하비 지음/한울(한울아카데미)

역자서문
주장
서문

Ⅰ. 현대문학 :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 가는 길
Ⅱ.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변모
Ⅲ. 공간 및 시간 경험
Ⅳ.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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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5 암스트라트사의 사장인 알란 슈가는 이렇게 말했다. '대량생산되는 휴대용 핵무기를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것도 팔아먹을 것이다'라고.

우리는 이런 세계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현재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한풀 꺾여 시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듯하다. 새로운 지식의 샘을 찾아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논리와 정치경제적 변화 사이를 이어주는 해석틀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 책은 그런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된 1989 년은 서양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지배력이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때였다.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사망선고를 내리고 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비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정치경제적 조건을 연구하여 문화변동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I부에서는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를, II부에서는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이라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III부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시공간 경험의 변화를, IV부에서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다루고 있다. 이를 간략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I부에서는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문화적 실천들의 변동을 진단한다. 특히 문학이나 예술분야의 사조 변 동뿐만 아니라 흔히 접할 수 있는 도시경관과 도회살이의 변동이 분석의 실마리로 제공되고 있어서 대중적인 설득력은 한충 더 높아진다. 일찌감치 이 부분의 논의가 불가피하게 요약된 것일 수밖에 없다고 단서를 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맑스의 자본주의 모던화에 대한 분석이나 도시경험에 대한 여러 건축가와 비평가들의 언급(특히 조나단 레이번, 제인 제이콥스, 르 코르뷔제, 레온 크라이어, 알도 로시, 찰스 젱크스 등의 논의에 대한 해석), 모더니티 이론으로부터 해체주의 경향에 이르는 사회이론들에 대한 비판적 해석들(맑스나 데카르트, 니체, 하이데거, 벤야민, 슘페터뿐만 아니라 보들레르, 핫산, 짐멜, 푸코, 후이센, 료타르, 보드리야르에 이르는 방대한 문헌들)은 상당히 정교하게 제시되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메타이론이 간과했던 측면들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다양한 사회적 차이와 타자성들에 대한 주목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 포스트모던한 관심이 제대로 펼쳐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유보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 하비의 최종적인 진단이다. 그는 '맑스의 모던화에 관한 해석은 모던한 감수성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던한 감수성의 뿌리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기름진 통찰력을 발휘한다'는 인식 아래 '모더니즘의 역사 전반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운동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관련성이 훨씬 더 많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속에서 일어난 특정 종류의 위기들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맑스가 그토록 밝혀보이고자 했던 자본주의적 물신성들에 대한 무분별한 찬양이리는 혐의를 받게 된다. 물신성과 구체성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보면 그 어떤 타지들의 운동도 보편적인 권력의 원천에 접근하지 못한 채 허망한 외침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여기서 하비는 다시 한 번 '본질과 원천'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한다. 즉 모더니티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단 하나가 그 불확실성이라면, 그러한 상태를 만들어낸 사회적 동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문화 변동의 뿌리를 살펴본 다음에 하비는 당대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변동에 대하여 논의한다. II 부는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기를 차근차근 돌이켜보는 부분이다. I부에서 정서구조의 변동을 살폈다면 II부는 정차경제 구조의 변동을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서 하비는 이른바 조절이론의 문제인식틀에 의거한다. 축적체제의 총체적 구성에 주목하는 조절이론의 강점을 적극 활용하여 전후 장기 호황기의 포디즘-케인즈주의 시기의 노동통제, 기술, 소비행태, 정차 경제적 권력의 판도를 세밀하게 분석해나간다. 1972년경에 이르러 이 축적체제가 불확실성의 파도에 직면한다. 언뜻 보아 이는 새로운 축적체제인 듯하며 기업가주의나 신보수주의와 같은 새로운 조절양식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꽤나 견고한 이행인 듯하다. 이른바 새로운 자본주의의 탄생이라 할 만한 것이다. 그런데 조절이론은 이런 이행국면을 이론화하는 데 있어 결정적으로 취약하다. 하비는 이와 같은 유연적 축적 국면에 대하여 신중한 결론을 내린다. 맑스의 『자본론』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오늘날 각광받는 유연성과 같은 개념이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주기적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그는 전체적인 자본축적 논리 속에서 주로 낡은 요소들을 끌어 모아 특수하고도 새로운 조합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유연적 축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즉 포디즘-케인즈주의의 위기는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이전되면서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한 국면에서 노동자계급은 유연성을 하나의 기회(계기)로서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III부에서는 사회생활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설명함으로써 정치경제적 과정과 문화적 과정 사이의 물질적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통해 공간 경험과 시간 경험을 매개로 하여 포디즘에서 유연적 자본축적 양식 후의 변화가 포스트모더니즘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규명하려 한다. 

하비는 우선 문화변동과 정치경제의 역학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해석틀로서, 헤거스트란트의 시간지리학과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현상학적 접근들(드 세르토, 부르디외, 바슐라르, 푸코)을 다룬다. 그리고 르페브르가 『공간의 생산』에서 이야기한 공간적 실천들에 관한 표와 구르비치의 8가지 사회적 시간의 유형을 살펴본다. 

한편 르페브르는 '공간에 대한 지배가 사회적 권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하지만, 하비는 이를 좀더 확장시켜 '화폐, 시간, 공간에 대한 지배가 실질적인 사회적 권력관계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화폐는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기 위하여 사용될 수 있으며, 역으로 시간과 공간의 지배는 화폐의 지배로 다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비는 사공간 압축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이 개념은 공간과 시간의 객관적 성질들이 매우 급격하게 변화하여 우리가 세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하는 과정이다. 이 개념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시공간에 대한 사고가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를 유럽을 사례로 논의한다. 

하비는 '1847-48 년의 위기가 재현의 위기를 가져왔고, 이러한 재현의 위기는 정치, 경제, 문화생활에서 시공간 감각이 급격하게 재조정됨으로써 비롯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1848년 이후 파리에서 일어난 최초의 모더니스트 문화운동을 이러한 재현의 위기에 대한 문화적 대웅(마네의 화법, 보들레르의 시와 사상, 플로베르의 소설)으로 본다. 

이처럼 시·공간 압축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포스트모던 조건이 형성된다. 즉 자본회전시간이 점차 가속화되면서 즉흥성과 순간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공간 장벽의 중요성이 감소될수록 장소의 차이에 대한 자본의 민감도는 높아지며, 자본을 유인하기 위해 장소를 차별화하고자 하는 욕구도 커진다. 덧붙여서 <블레이드 러너>와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두 편의 영화을 통해 포스트모던 영화에서 시·공간 압축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IV부는 결론부이다. 시·공간 압축에의 대응양식은 다양하다. 시·공간 압축에 굴복하는 것, 세계의 복잡성을 거부하고 단순화된 명제로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입장, 중간 영역을 모색하는 입장, 시·공간 압축을 반영하고 지배할 수 있는 언어나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시·공간 압축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입장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하비는 역사·지리 유물론을 제안한다. 부두 경제(거울 경제), 정치적 이미지의 조작, 새로운 사회계급의 형성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포스트모던 현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역사유물론의 테두리 안에 있으며 맑스의 지본주의 발달에 관한 메타서사로 이론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체역학의 법칙이 세계의 어느 강에서든 한결같이 적용되듯, 자본순환의 법칙들은 또한 어느 슈퍼마켓에서든, 어느 노동시장에서든, 어느 상품생산 체계에서든, 어느 나라에서든, 그리고 어느 가구에서든 한결같이 관철된다. 그러나 허드슨강과 템즈강이 서로 다르듯이 뉴욕과 런던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차이와 타자성, 미학적·문화적 실천, 공간과 시간 차원, 역사·지리 유물론을 중요하게 취급해야 한다. 

 

주장

10 1972년 경부터 정치경제의 실태뿐만 아니라 문화적 실태에서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어 왔다.

이 격변은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새로운 지배적인 방식의 출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시간과 공간차원의 변동이 동시에 벌어진다고 해서 어떤 필연적이거나 인과적인 관련을 맺는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포스트모던한 문화형태의 등장과 보다 유연한 자본축적양식의 출현, 그리고 자본주의의 조직에 있어 '시·공간압축'이라는 새로운 국면 사이에 일정한 유형의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상당한 선험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축적의 기본법칙과 비교해볼 때 이러한 변화는 완전히 새로운 탈자본주의사회나 심지어 탈산업사회의 등장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형태의 변화인 듯하다. 

 

서문

11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처음 접한 때가 언제쯤인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아마도 지난 몇십 년간 나타났다 사라져간 다른 여러 '이즘들(isms)'을 접했던 것처럼 그것에 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고유의 논리적 불일치에 짓눌려 사라지거나 또는 단순히 매혹적인 '새로운사상'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하게 되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들이 갖는 여파가 줄어들기는커녕 날로 늘어가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한때 구조주의나 탈산업사회론, 그리고 기타 '새로운 사상' 일반과 결탁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로운 감수성, 새로운 사상으로서 위력적인 형상을 갖추어가는 듯했다. 사회비평과 정치적 실천의 기준을 나름대로 규정하는 방식들 덕분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적·정치적 발전의 길을 획정하는 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듯했다. 최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은 논쟁의 기준을 결정하고, '담론'의 방식을 규정하고, 문화적·정치적·지적 비판의 척도를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일련의 사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명해야 할 어떤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속성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필자는 우선 '지배적인 사상들'을 먼저 살펴보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이 여러 상치되는 견해들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제I부에 제시된 그 결과들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형태로 요약된 것이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들은 '정치·경제적 배경'에 대한 검토작업(다소 단순화된 방식으로)을 거친 뒤에, 자본주의 역사·지리 발전의 역동성과 문화생산 및 이데올로기적 전환의 복잡한 과정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중간고리 역할을 하는 '공간 및 시간경험'을 보다 자세하게 살피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 몇 십 년 사이 서구에서 일어난 전혀 새로운 담론들 가운데 몇몇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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