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덴: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미술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4. 1.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미술 - 존 로덴 지음, 임산 옮김/한길아트 |
머리말 - 4
1. 신과 구원 - 9
2. 황제와 성인 - 61
3. 이교도와 은행가 - 101
4. 성상인가 우상인가? - 145
5. 정통과 혁신 - 185
6. 성스러운 공간 - 227
7. 성스러운 책 - 271
8. 인식과 수용 - 307
9. 위기와 지속 - 347
10. 시대의 종말인가? - 387
용어해설 - 426
후기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황제 - 428
주요연표 - 429
지도 - 436
권장도서 - 438
찾아보기 - 441
감사의 말 - 446
옮긴이의 말 - 446
4 신을 그린다면 어떻게 그려야 좋을까? 그리스도는 아직 턱수염이 나지 않은 젊은 모습일까, 혹은 길고 짙은 머리칼과 말려 올라간 턱수염을 가졌을까, 아니면 한 마리 어린 양일까? 만일 꿈속에 성 베드로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성당은 어떤 모습이고, 그 내부 장식은 어떤 것이 어울릴까? 이런 의문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및 비잔틴 세계의 화가, 건축가, 패트론, 일반 신도들이 직면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대답들은 오늘날 세계 도처에 남아 있는 건축물이나 미술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후대의 작품들에서는 그것이 더욱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예술가들이 구축한 그리스도교적 시각표현의 전통은 최근까지 유럽 미술을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보이는 세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종교적 체험과 신앙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그들이 창조한 이미지는 눈으로도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무거운 짐을 의식적으로 내던지려 했던 시대에도 비잔틴의 전통은 계속 지켜졌다. 이 책은 이러한 미술에 관한 책이다. 즉, 그것이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보여졌으며, 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다룬다.
우선, 독자들이 염두에 둘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첫째,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그리스도교 시대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대략 1,500년에 걸쳐 있다. 두번째, 그 지리적 범위는 그리스도교 미술이 시작된 로마 땅 지중해에서부터 발칸반도와 근동, 더 나아가 끝내 로마화되지 않았던 러시아의 그리스도교 공국까지 포함한다. 셋째,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중요한 많은 건축들이 현존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필자가 찾아가본 장소, 그리고 인물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선별하여 서술하도록 하겠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강렬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나의 패러독스다. 즉,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동방의 마지막 그리스도교 제국이 소멸하는 정치적 대변동의 세기를 거치는 동안, 그러한 상황들이 어떻게 극복되어 비잔틴 미술의 전통이 명료하게 규정될 수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질서가 바뀌는 동안에도 미술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비잔틴 미술은 분명 고립을 초월하여 눈부시게 발전했다. 또한 서구의 진보관으로 보자면, 비잔틴 미술이 로마제국의 전성기에서 시작하여 중세를 지나 초기 르네상스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독자들이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 가령 12세기에 노르만인의 지배 아래에 있던 시칠리아 섬의 비잔틴 미술은 분명히 외래의 사상, 그리고 전혀 다른 미술 및 건축양식 등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왔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런 미술에 접근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면, 그 미술이 실제로는 무엇이고 또 무엇을 재현한 것인지를 파악할 때 현대의 몇몇 가설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 더 명확해지겠지만, 심지어는 여기에 적용되는 미술사의 기본적인 분류조차 우리를 잘못 안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Early Christian art)이라고 불리는, 즉 신약(혹은 구약) 성서의 주제나 그리스도교적 상징물과 직접 관련되는 미술은 그리스도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이백 년 후에 처음 나타난다. 이와 유사하게, '비잔틴'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 식민지 비잔티움에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제국의 수도의 이름으로 다시 부흥시킨 명칭이며, 이것이 다시 개명되어 콘스탄티노플(오늘날 이스탄불)이 되었다. '비잔틴'이라는 용어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창조된 미술 · 건축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었으며, 콘스탄티노플황제들의 지배 아래 있었던 '비잔틴제국'의 국경 바깥에서도 조금씩 발견된다.
오늘날 우리가 '비잔틴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용어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스스로를 '비잔틴' 황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로마인의 황제'로 자처했고, 동방에서 로마제국을 계승한다고 생각했다. 제국의 영토는 시대에 따라 크게 변동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로마로부터 상속받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시대의 민중들은 로마제국의 주민 혹은 그 계승국가나 침략자나 이웃 국가의 일원으로서 정의되었다. 언어는 6세기까지 라틴어가, 7세기부터는 그리스어가 공통어였다.
7 미술가들은 새로움 그 자체만을 좇아서 작업하지 않았다. 고대 전통을 구현하는 한도 내에서 혁신적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항상 전임자들의 것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비잔틴인의 미술을 제대로 감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 비잔틴의 전통 개념은 완성된 규범에 대한 존중 그 이상이다. 예를 들어, 이콘은 화가가 그리스도나 성인의 모습에 대해 가진 인상하고는 다르다. 이콘은 대상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한' 이미지였다. 때문에 성상(聖像)은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채 전해 내려왔다. 화가들은 종교적 진리에 따라 소재의 가치와 아름다움, 장인정신을 위임받았다. 그리하여 신과 성인의 모습을 작품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이콘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인간의 생 너머까지 계속 존재하여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복잡한 개념을 평이한 언어로 쉽게 이해했다면 거기에는 위험요소가 있을지 모른다. 가령 우리는 일상적으로 읽고 듣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마리아'를 '성모'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살펴보는 미술에서 '성모'는 마리아에게 거의 붙여지지 않는 별칭에 불과하다. 비잔틴 사람들에게 마리아의 이미지는 '신의 어머니', 즉 '테오토코스'(Theotokos)의 이미지와 같다. 그래서 테오토코스를 성모로 부르는 것 자체는 별 문제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자주 접하게 될 신의 어머니로서의 그 복잡하고 강렬한 위용에 빅토리아 풍의 온후하고 관대한 현대적 감성을 부여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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