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4. 7.
두 도시 이야기 -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작가 서문 · 9
1부 되살아나다 · 11
2부 금실 · 77
3부 폭풍의 진로 · 351
작품해설 / 혁명기의 두 도시와 역사의 울림으로서 문학 · 544
작가 연보 · 573
연대표 · 578
주해 · 582
1장 시대
13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들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현재와 너무나 비슷하게도, 그 시절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좋든 나쁘든 간에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고 했다.
영국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못생긴 왕비가 앉아 있었고, 프랑스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아름다운 왕비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빵과 생선을 쟁여 놓고 사는 두 나라의 귀족들은 모두 당시의 전반적 상황이 영원하리라 믿었다.
때는 서기 1775년 영국인들은 살기 좋았다는 그 시절에도 지금만큼이나 영적 계시에 현혹되어 있었다. 사우스콧 부인이 막 스물다섯 번째 복된 생일을 맞았을 무렵이었다. 선견지명이 있는 근위 기병대의 한 사병은 장차 런던과 웨스트민스터를 집어 삼킬 사건이 일어날 거라고 예언함으로써 일찌감치 그녀의 출현을 알렸다. 심지어 그로부터 꼭 열두 해 전에 콕 거리의 한 유령이 계시를 전하고 돌아간 일도 있었다. 바로 작년에 (초자연적인면에서 독창성이 떨어지게도) 유령들이 계시를 한 것처럼 말이다. 한편, 그즈음 아메리카에 있는 영국 신하들이 회의를 통해 영국 왕과 국민들에게 시시하기 짝이 없는 세계정세 따위의 세속적인 일들을 예언했다. 묘하게도 그 예언은 콕 거리의 풋내기 겁쟁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인류에게 더 중요한 것으로 판명났다.
21장 울리는 발소리
307 런던의 어느 캄캄한 창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안, 멀리 생탕투안은 한번 찍히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붉은 발자국으로 뒤덮였고, 광란의 위협적인 발들은 분노에 차서 닥치는 대로 목숨을 짓밟으며 자국을 냈다.
그날 아침, 생탕투안에서는 초라한 몰골과 우울한 표정을 한 거대한 무리가 앞뒤로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강철 칼날과 총검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굽이치는 수많은 머리 위로 번쩍거렸다. 생랑투안의 목구멍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고, 숲을 이룬 헐벗은 팔들이 허공을 향해 내지를 때의 모습은 찬바람에 흔들리는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았다. 손가락들은 온갖 무기와 저 마음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오르는 무기 비슷한 것들을 부들부들 떨릴 만큼 꽉 움켜잡았다.
누가 발사했는지, 방금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그것들을 뒤틀듯 흔들며 번개처럼 한 번에 수십 발씩 군중의 머리 위로 날아가게 했는지, 군중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소총과 함께 탄약통, 화약, 총탄 따위를 배분받았고, 강철과 나무 막대, 칼과 도끼, 창, 재주껏 고안한 온갖 무기를 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피가 철철 흐르는 손으로 벽에서 벽돌이나 돌을 빼서 무장했다. 생탕투안 시민들의 맥박과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들썩이고, 질주하듯 뛰었다. 그곳의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목숨을 내걸고 기꺼이 희생할 열정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15장 영원히 사라진 발소리
538 "나는 알고 있다. 바사드와 클라이, 드파르주, 방장스, 배심원 판사같은 옛 체제가 붕괴된 후 생겨난 기나긴 대열의 새 압제자들이 더는 지금처럼 사용하지 않아도 결국 이 보복적인 도구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깊은 구렁텅이에서 솟아난 아름다운 도시와 현명한 사람들이, 시간이 걸릴지언정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승리와 패배를 겪음으로써, 현재의 악행과 그것을 잉태한 예전의 악행이 스스로 속죄하고 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생명을 내려놓음으로써 다시는 보지 못할 그들이 영국으로 돌아가 평화롭고 보람되고 번창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가 내 이름을 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이 들고 허리는 구부정해졌지만 건강을 되찾은 그녀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환자를 정성껏 돌보며 편안하게 지내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이 가진 것으로 그들을 풍요롭게 해준 인자한 노신사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편안히 세상을 떠나리라는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들, 아니 대를 이어 그들 후손에게도 마음의 성소가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할머니가 된 그녀가 나의 추도일에 나를 위해 울어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와 남편이 이승의 행로를 마치고 지상의 마지막 침대에 나란히 누우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게 귀하고 존경하는 존재인 만큼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러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내 이름을 딴 사내아이가 한때 나의 길이기도 했던 인생길을 훌륭히 걸어가리라는 것을. 게다가 그 길을 훌륭히 걸어 내 이름을 빛내주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 이름에 묻었던 오점이 지워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공정한 재판관, 명예로운 인물이 된 그가 내가 너무도 잘 아는 이마에 금발, 그리고 내 이름을 만 사내아이를 이 장소로 ― 그때가 되면 지금의 끔찍한 흔적도 사라져 아름다운 곳이 되리라 ― 데려오리라는 것을. 그리고 들린다,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리가.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은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행위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곳보다 더없이 편안한 곳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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