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일: 장성택의 길 ━ 신정의 불온한 경계인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4. 30.
장성택의 길 - 라종일 지음/알마 |
들어가며
1장 위대함의 그늘
2장 연애에도 드리워진 그림자
3장 불안한 로맨스
4장 김경희의 관저
5장 출세의 뒤안길
6장 가물치와 쌀
7장 햇볕과 그늘 그리고 그림자
8장 과거는 죽지 않는다
각주
26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았을 때는 상황이 사뭇 달랐다. 사회주의 신화는 현실에 관한 한 이미 폐허가 됐고, 신생 독립국가의 민족주의도 실망을 넘어서 주로 환멸과 비판의 대상이 돼버렸다. 대신 대두한 것은 대처와 레이건, 능률성과 생산성, 기술 전문가들, 만능의 시장,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자본, 그리고 높은 소비 수준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였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라는 나라가 처한 위기의 현실이었다. 끊임없는 투쟁 끝에 마침내 물려받은 주체의 왕국은 문자 그대로 파산 상태였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했다. 든든한 후원국이었던 나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남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31 문제는 여러 층으로 겹쳐 있었다. 남한의 존재만 아니라면 다른 사회주의 나라의 경우처럼 개혁개방을 못할 것도 없었다. 단지 체제의 정통성을 유지하려면 남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그러한 시도가 남한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한다면 해방후 남한의 노선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51 물론 지위와 권력의 세습은 북한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남한에서는 주로 기업과 학교,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일부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큰 저항없이 받아들인다. 가문이나 기업의 창업자에 관한 우상화에 가까운 작업들에 관해서도 별다른 비판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선대에 대한 후대의 효행으로 칭송하기도 한다. 이런 관행은 창업자가 이룬 업적이 크면 클수록 더욱 쉽게 받아들여진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의 경우 이런 우상화와 권력의 세습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권력이 나라안에서 모든 권력의 유일한 근거라는 점일 것이다.
166 김정일도 개혁과 개방의 현실적인 필요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한반도 내에서 남한과 숙명적인 대결에 처해 있는 북한의 김씨 정권으로서는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개혁과 개방의 체제 전환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당성을, 그 존재 이유의 기반을 허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꾸로 가는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었다. 마치 체제의 큰 변혁을 위해 스탈린에서 흐루시초프, 마오쩌둥에서 덩샤오핑, 브레즈네프에서 고르바초프 등의 정권교체가 있던 것과 같았다.
201 개혁은 외국의 자본과 기술에 대한개방과 연결이 되어야한다. 개방은 외국의 자본과 기술뿐 아니라 정보의 유통도 함께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백두 혈통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유일영도 체제를 유지하려면 외부의 정보 유입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 김일성이 휘하의 군사를 지휘해서 일본군을 물리치고 조선을 해방시켰고, 한국전쟁은 미국과 남한이 먼저 시작했다는 식으로 선전하고 있는 나라에 이리저리 정보의 홍수가 밀어닥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이룩한 체제는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와 차단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었다.
248 그러나 다른 한편 어렴풋하게 생각이 미치는 곳이 있었다. 나라를 열고 외국의 투자를 받고 외국과의 교류나 교역을 활성화하면서도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와 공산당의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김씨 일가의 유일영도 체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김정은은 현재의 권력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경제 발전을 추진하는 것보다 핵무기를 쥔 채 정권의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핵무기 때문에 세계에서 고립된다면 그것도 정권의 안보에 나쁘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북한 내에서는 적어도 반신적인 존재다. 최고지도자의 북한 내부에서의 위상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북한이 다른 나라들처럼 국제사회에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장애가 된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 (1) | 2024.05.07 |
---|---|
프리드리히 슐레겔: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 (0) | 2024.05.07 |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신학정치론·정치학논고 (1) | 2024.04.30 |
윌리엄 스트링펠로우: 사적이며 공적인 신앙 (0) | 2024.04.30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발타사르의 구원 이야기 (0) | 2024.04.22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발타사르의 지옥 이야기 (1) | 2024.04.22 |
마르틴 루터: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0) | 2024.04.22 |
Etienne Gilson: God and Philosophy (0) | 2024.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