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트링펠로우: 사적이며 공적인 신앙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4. 4. 30.
사적이며 공적인 신앙 - 윌리엄 스트링펠로우 지음, 김가연 옮김/비아 |
들어가며
1. 종교의 어리석음
2. 개신교의 망령
3. 그리스도인의 단순한 삶
4.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해설: 성서적 인간이 된다는 것
윌리엄 스트링펠로우의 생애
윌리엄 스트링펠로우 저서 목록
46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이나 정교회와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교회’란 여러 ‘교회들’이 함께하는 존재이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거룩함과 하나됨을 이룬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사상과 조직을 지배하는 개인주의와의 역사적 연관성, 그 죄에 물든 연대를 철저히 끊어 내야한다.
이 자유는 교회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혹은 교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혹은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합의에 좌지우지되지 않으며 견고하고 빛을 발한다. 과거든 현재든, 전체주의 사회든 민주주의 사회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기리가 위해 자신들이 받은 자유를 누리고 실현하는 것은 그 어떤 정치적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 미국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가 교회와 소종파에 일정한 편리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복음이 확립한 자유, 복음이 준 자유를 그리스도인들이 표현하고 실현하는 데 그러한 ‘종교의 자유’가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개신교의 문제는 ‘종교의 자유’를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를 포기하는 데 있다.
47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는 두려움이나 갈등을 회피하지 않으며 그 갈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해결할 방법을 모색한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느긋하고 온화하지만 값싼 예외는 이 사회의 점이 아니라 약점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비록 그들이 가장 먼저 이 휴전을 독려했지만) 이 휴전을 거부하는 최후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무엇을 믿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휴전에 동참할 수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를 담대하게 믿으며 걸림돌이 되어서 그러한 무신론에 맞서 싸워야 한다.
102 하느님은 당신을 증언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든 없든 역사에 스스로를 증언하신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말씀을 증언할 가능성의 유무는 그가 세상에 임한 하느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더 나아가 세상에 임한 하느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예배란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이 모르는 상대를 향해 어떻게 예배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서, 자신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이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무엇은 선언하고, 선포하고, 찬미하고, 되새긴다는 말인가? 예배가 세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성서에 바탕을 둔 예배, 그리스도교에서 이야기하는 예배가 아니라 어떤 미신, 어리석은 종교 행위, 터무니없는 우상숭배에 불과하다.
104 그리스도인은 삶을 실아가는 동안 자신이 불안해하는 것들의 바탕에 언제나 하느님에 대한 앎, 하느님의 승리, 하느님의 기쁨이 있음을 안다. 그분은 지옥으로 내려가셨다. 이는 매우 기쁜 소식이다. 지옥은 그분이 미처 알지 못한 유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알고 있는 지옥을 그분도 아신다. 내가 지옥이라고 불렀던 것을 그분이 알기에 나도 지옥을 안다. 내가 설령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할지라도 그분이 알지 못하는 영역은 없다. 정신과 의시들이 말하듯 불안은 불안 그 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불안을 거절할 수 있다. 실존주의자들과 달리 이제 나는 절망, 외로움, 무관심, 탐욕, 권태, 그리고 그와 유사한 불안들을 즐기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제 더는 나를 유혹하지 못한다. 이제 나는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지닌 매력, 그것들이 자아내는 공포, 그것들이 지닌 무서운 힘의 원천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안의 끝이 죽음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안의 끝은 하느님이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불안을 극복하신다. 불안이 가리키는 것을 완성하신다. 그러한 면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불안의 끝이자 성취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인간의 역사, 인간의 위대한 면모와 추레한 면모, 즉 인간이 품고 있는 모든 다양성과 가능성을 철저하게 끌어안으셨음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이미 내가 겪고 있는 삶을 사셨다. 그분은 이미 내가 맞이할 죽음 또한 겪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위해, 모든 이를 위해 죽음에서 일어나셨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죽음과 죽음이 지닌 힘을 마주하고 이를 겪게 되었을 때, 자기 인격의 모든 부분, 자신이 겪은 모든 일과 모든 경험, 자신이 한 모든 말, 자신에게 있는 모든 앎이 무너지고 파괴될 때, 하지만 바로 그때 죽음보다 더 큰 하느님의 권능을 감지할 때, 자신과 함께하는, 자신을 향해 모습을 드러낸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해낼 때, 이를 고백할 때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151 결국 그리스도교 신앙을 종교와 구별하는 것, 그리스도인의 삶과 종교적 삶을 구분하는 것, 현실 그리스도교 교회의 (자기 보존을 위한) 신중한 태도와 그리스도의 활동에 참여하는 자유를 구분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느님이 하느님이시라는 것, 그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닌 이들, 그리고 모든 교회의 공통된 앎이자 기초 지식이다.
152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하느님이 인간,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전적 타자wholly other라는 것(인간과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라는 것), 그러나 동시에 당신의 자유를 바탕으로 세상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스스로 보여주시고 인류 역사에 들어와 활동하시며 당신의 생명을 세상에 내어주신디는 진리를 아는데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예배는 시작된다.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분이 온전한 분이며 자유로운 분임을 고백하고 어떠한 이념, 미신, 종교 제도, 국가, 인간의 평범한 탐욕 등 하느님을 대신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유를 고백하며 그 고백이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참된 자유의 시작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신뢰함으로써 고백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분투에서 해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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